제168화. 집결 (2)
오우거가 집결한 순간, 세력의 모든 것이 강시온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시온이 의도한 것은 간단했다. 세력의 주도권을 다시 거머쥐는 것.
빛남에서 있었던 일은 사고였을 뿐이고,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선 방법이 필요했다.
단순히 무력을 사용한다면 잃는 것이 너무 많았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강시온은 이곳에 갇혀 그 방법을 강구했다.
적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난 5년간 바뀐 세력이 어떤 식으로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지 파악했다.
세력 내부에서 아티팩트 사용은 전면 금지되었지만.
그건 공격이나 위협적인 수단으로 사용할 때만 금지될 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엔 금지되지 않았다.
특히 이번처럼 공격할 목적이 아닌 경우엔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었다.
강시온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해 룰을 들먹이며 자신을 가둔 놈들의 허점을 찌른 것이다.
“으아아아악! 사, 살려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서를……!”
“…….”
강시온은 양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놈들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이곳 펜션에 가두었던, 요원들은 이제 산 채로 오우거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그들은 오우거의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비명을 질렀지만.
강시온은 조금의 연민이나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하나였다.
가담자와 반대파는 모조리 척결(剔抉)한다.
‘만경은 나의 도시야.’
처음부터 시온은 만경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세력 전체가 곧 개인이라는, 과거 프랑스의 강력한 왕권을 자랑하던 절대 왕정 시대처럼.
시온은 세력을 통치하고, 통제하면서 점차 힘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드는 자가 있다면, 무자비하게 처단할 뿐.
그 과정에 자비란 없다.
말 안 듣는 개새끼에게는 적절한 몽둥이를, 주인을 무는 개새끼는 그 가죽을 벗겨 솥에 집어넣을 것이다.
-쿠르으으…….
가장 덩치가 큰 오우거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린 다음 시온 앞에 손바닥을 내려놓았다.
시온은 그곳에 올라, 예전처럼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는 움푹 파인 오우거의 쇄골에 앉아, 만경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발전된 도시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발전된 도시의 풍경 주변에서는 아직까지도 수리산에 집결 중인 오우거들이 몇 마리 보였고, 이 정상을 중심으로 수백 마리의 오우거들이 강시온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만약 시온이 여기서, 이 도시의 모든 것을 짓밟으라고 명령하면.
놈들은 그럴 것이고.
도시의 모든 인간을 잡아먹으라고 한다면, 역시 그럴 것이다.
오우거들은 강시온의 충실한 하수인이었으니 말이다.
강시온은 주먹을 말아 쥐며 아티팩트를 거두었다.
도시에 퍼져 있던 그의 구체들이 다시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이곳으로 다가온 세력의 최고 간부들은 강시온을 목도한 순간, 바로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가 도시에 뿌린 공포는 실로 효과가 굉장했다.
* * *
아티팩트가 한곳으로 모이는 것을 확인한 대신들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종이 모여드는 곳을 향해 가야 해.”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만 합니다. 경비부터 세우고, 헌병을 풀어 시민들을 통제하십시오.”
“움직여. 어서, 빨리!”
대신들은 일사천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웅이 돌아온 것은 분명했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상황은 급변했다.
거대한 변화와 마주해 당혹스러웠던 건, 만경의 대신들뿐만이 아니라 강남의 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그곳에 어중간하게 서 있었다.
저들끼리 무어라 얘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어느새 옥상에는 토지부장과 총사령관, 그리고 엎드려 흐느끼는 하윤하만이 남았다.
토지부장 이석진은 하윤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직 황제는 내가 저지른 일이라는 건 몰라. 철저하게 숨겼으니까.’
토지부장 이석진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하윤하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총사령관이 앞을 막았다.
“황제께 접근하지 마라.”
“…….”
이석진은 황민재 총사령관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험악한 표정을 짓고서는 이석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좀 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황민재는 언제든지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엔 근거가 부족했다.
이를 감지한 이석진은 오히려 당당하게 나섰다.
“왜 그러십니까? 이렇게 제게 적개심을 품는다는 것이 당황스럽군요.”
하윤하는 아무 말 않고 있었고, 총사령관 황민재는 그에게 말했다.
“이 세력 내부에서 영웅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건, 너와 진보당의 대신들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영웅이 돌아왔다면, 그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제가 왜 반대를 합니까?”
“우리가 바보인 줄 아는가? 토지부장.”
총사령관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고, 이석진은 자연스럽게 뒤로 한 보 물러났다.
“영웅은 돌아왔다. 그리고 수리산 정상의 네놈의 펜션에 계시지. 영웅께서 그곳에서 일종의 ‘구조 요청’을 보냈다는 건, 분명 너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억측이군요.”
“억측인지 아닌지는 영웅께서 설명해 주시겠지. 그전까지 네놈은 도주와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체포한다.”
총사령관은 손을 뻗어 이석진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석진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거부하겠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건 전부 추측일 뿐입니다. 증거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만경은 더 이상 야만적으로 운영되는 세력이 아닙니다. 만경은 체계적이고 문명화된 세력입니다. 체포하시려면 그에 합당한 증거를 가지고 오시지요.”
“…….”
이석진은 도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조금의 시간만을 벌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하윤하가 나섰다.
“증명?”
하윤하의 목소리는 낮고 곱게 옥상에 울렸다.
총사령관은 뒤를 돌아보았고, 이석진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든 하윤하의 얼굴은 울음 때문에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 봐야, 황제의 미모를 감출 순 없었지만.
“증명은 간단해요.”
하윤하는 목걸이를 쥐고는 그대로 뜯어내 던져 버렸다.
뜨득-. 타아악!
그 목걸이는 이제까지 그녀의 능력을 속박하던 물건이었다.
이걸로 그녀는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아티팩트는 절대적이었다.
타인의 신체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과거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
지금껏 목걸이를 차고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영웅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개개인의 자율을 중시한다는 만경의 기본 원리를 따르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강시온 앞에서 무의미하다.
하윤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석진에게 다가갔다.
눈물을 삼킨 그녀는 고운 손을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잡으세요. 제 손.”
“…….”
저 손을 잡으면 끝장이라는 것을 이석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기본법에 대해 들먹이기 시작했다.
“만경의 최고 지도자가, 만경의 기본 법률을 위반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부하겠습니다.”
이석진의 반박에 하윤하는 숨을 고르게 내쉬더니 말했다.
“만경의 최고 지도자는…….”
그때, 총사령관은 이석진을 강제로 제압했다. 이석진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완력으로 총사령관에게 덤빌 순 없었다.
이석진은 제압된 똥개처럼 고개를 푹 숙였고, 하윤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오로지 강시온 님뿐입니다. 난 단 한 번도 이 세력의 수장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난 그의 대행일 뿐.”
하윤하는 고개 숙인 이석진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댔다.
그 순간 그의 과거가 하윤하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석진이 행한 모든 범죄 행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강시온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들에게 한 짓들, 둥지와 관련된 불법적인 인신매매의 정보들 등등.
그 모든 사실을 확인한 순간, 하윤하는 알 수 있었다.
만경에 일어난 모든 썩은 범죄들은 사실 이석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윤하는 이석진의 이마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이석진의 두 눈동자는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감히.”
하윤하의 고운 이마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에 핏줄이 솟았고, 표정은 일그러졌다.
하윤하는 고운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영웅을 우롱하다니.”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던 사람은, 화를 내는 순간 달라진다.
하윤하는 지금 화를 내는 수준을 넘어, 크게 노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우롱하고 함정에 빠트리고, 영웅을 홀대한 이석진의 만행에 격노했다.
“총사령관.”
“말씀하십시오.”
터억-.
하윤하는 총사령관의 손목을 붙잡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이석진의 정보를 넘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돌아서며 차갑게 말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잡아들이세요. 현시간 부로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가담자, 배신자, 위선자 그리고 만경의 모든 썩은 족속들은 전부 뿌리 뽑아야 한다.
총사령관은 이석진을 붙잡은 채, 그녀에게 고개 숙였다.
“받들겠습니다.”
분노한 건, 총사령관 황민재도 마찬가지였다.
이석진의 기억 속에는 분명, 자신의 오랜 형님인 ‘최명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엄령 선포.
만경은 이제 썩은 살을 도려내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썩은 살을 도려내기 위해선, 희생이 불가피했다.
* * *
세력 내부의 독버섯들은, 도시의 가장 어두운 공간에서부터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둥지, 콜로세움.
무장한 헌병들이 콜로세움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헌병대장은 소리쳤다.
“모조리 체포해! 저항하면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
“옛!”
병력들이 쏟아지자, 콜로세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헌병들은 곤봉을 들고, 교도관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자행되었던 노예 시장.
그 시장에 연관된 자들이 하나둘 체포되었다.
저항하는 교도관들은 무자비한 곤봉으로 범인들을 제압했고, 그들의 체포는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다.
교도관들뿐만 아니라 VIP 관람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노예상들도 범인으로 지목되면 무차별적으로 체포되었다.
“누구 마음대로 우릴 체포한다는 거야? 우린 강남의 시민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외부인이기 때문에 만경의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황제의 명령 앞에선 무의미했다.
헌병들이 곤봉을 강하게 움켜잡은 채, 그들에게 점점 다가가자 그들도 꼬리를 내리고 순순히 체포당했다.
반항하면 무자비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아찔한 공포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헌병들은 기어이 경기장 안으로 쳐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누군가를 모시기 위함이었다.
진재희와 그 동료들은, 높이 쌓인 검투사의 시체들 사이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헌병대를 이끄는 책임자는 그들에게 다가가 넙죽 고개부터 숙였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저흰 황제의 명을 받고, 영웅의 동료분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함께 가시죠.”
그는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지금껏 무섭다고 징징거리던 최현지가 갑자기 의기양양해선 소리쳤다.
“그래! 이런 대우는 오바지! 안 그래? 우리가 누군데!”
“죄송한 생각뿐입니다. 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알면 됐어!”
최현지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가며 그들을 따라가려 했지만, 진재희가 먼저였다.
진재희는 최현지를 가로막고선 헌병대장에게 다가갔다.
헌병대장은 바짝 긴장해선, 아직까지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열쇠부터 내놔.”
진재희는 자신의 목에 감긴 목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줄을 푸는 순간, 그녀는 100%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헌병대장은 고민하지 않고, 열쇠를 찾아 그녀에게 건넸다.
철크덩-. 텅!
족쇄처럼 묶인 목줄을 푸는 순간, 진재희의 눈동자는 살기가 드리웠다.
헌병대장은 느껴지는 살기에 차마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주동자는 누구지?”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아직…….”
“시온은?”
“영웅께선, 수리산에 계십니다. 저희 최고 수뇌부들이 지금.”
“시끄럽고, 거기로 안내해.”
진재희의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녀는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좀처럼 힘을 숨길 수가 없었다.
만경의 썩은 뿌리는 반드시 청소해야만 했다.
헌병대 병력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감히 강시온을 넘으려고 한 놈들은 뿌리째 뽑아 교육을 시켜 줘야 했다.
그녀는 이 둥지 안에 갇혀 있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런 그녀 앞에서 헌병대장은 말없이 고개를 더 숙이며 말했다.
“안내하겠습니다.”
한편, 진재희의 등 뒤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이호승은, 좀처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둥지 내부에서 진재희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강시온.
그를 보는 순간, 달라질 것이라는.
그는 이 리그를 유일하게 끝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진재희의 그 이야기.
이호승은 방금 일어난 일을 목도하며, 왜 진재희가 강시온을 이토록 강하게 신뢰하는지 깨달았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모든 것이 꽉 막힌 경기에서도, 단 한 번의 수로 모든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껏 이호승이 만나온 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강시온이라는 자는.
이호승이 보기에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에 더 가까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