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뜻밖의 재회 (2)
진재희의 눈동자가 마구 요동쳤다.
“호승아, 너.”
그녀는 달려나가 쓰러져 있던 호승을 끌어 안았다.
와락-!
그의 몸은 마치 큰 살얼음을 껴안은 것처럼 차가웠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재희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지만, 우선 그의 안위를 살폈다.
그녀의 태도에 주위에 있던 죄수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재희는 계속해서 호승의 상태를 살폈다.
“너 괜찮아? 너……!”
온몸에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죄수들이 짓밟아서 생긴 상처로는 보이지 않았다.
회초리 자국부터 불에 지진 흔적, 이빨은 서너 개나 빠져 있었고 한쪽 눈동자는 없었다.
오랜 기간 노예로 방랑하는 자의 모습이었다.
재희는 호승의 양어깨를 움켜쥐며,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호승아……. 호승이 너……. 몸이 왜 이렇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 다른 애들은? 민지, 철호. 같이 안 왔어?”
그때, 낮게 가라앉은 호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인가.”
그 목소리에 재희는 어깨를 움츠렸다.
호승의 한쪽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고, 갈피를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두 눈을 마주친 뒤로는 호승은 계속해서 재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처음에…… 널 찾았어……. 너야 뭐. 언제나 같은 방에서 내가 깨워 주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도 않았으니까.”
힘없는 호승의 목소리가 구슬프게 감옥을 계속해서 울렸다.
“아무리 방문을 두드려 봐도, 넌 없었고…… 우린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어……. 네가 없으니까. 애들이 뭘 하겠어……. X나게 슬퍼하더라. 상심했어. 생각보다 우리한테 네가 많이 필요…… 했었나 봐.”
“…….”
진재희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전생에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라운드를 이겨냈다.
회귀자가 아닐지라도, 그녀는 S급 아티팩트 힘을 가지고 그 일대의 세력권에서 활약하며 살아남았다.
물론 진재희 외의 친구들은 아티팩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랬기에 대부분 그녀의 보호 아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갔다.
하지만 아포칼립스 속에서 진재희의 공백은 그들에겐 너무나 컸다.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여느 도망자들처럼 그들은 몬스터와 미쳐 버린 사람들에게서 미친 듯이 도망쳤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은 모두 죽어 버렸고, 끝내 살아남은 이호승은 미친 사람처럼 방황하다 노예로 잡혀 마침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이건 진재희가 선택한 결과였다.
만약 그녀가 그들 곁에 남아 있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호승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너 왜 여기 있냐.”
“…….”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철호는 널 찾다가……! 쿨럭!”
호승은 마지막 말을 차마 끝맺지 못하고 피를 토해 냈다.
호승은 재희가 자신들을 지켜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원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해 원망하고 있었다.
호승을 안은 재희의 손에 힘이 빠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신 이젠 호승이 그녀의 윗옷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디 갔었어. 어디 갔었던 거야. 이제 언제나 함께하기로 해놓고……. 왜……. 왜 말도 없이 사라졌냐……. 왜……. 왜. 왜…….”
“…….”
“말해 줄 수 있는 거잖아…….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거잖아……. 너라면. 살아남을 줄 알았으니까.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근데 왜 안 돌아왔는데……. 왜……. 우리가 서운할 사이야?”
예상하고 있었다.
회귀한 뒤, 그녀가 처음 부산에서 안양으로 올라오던 날.
이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미래는 뒤바뀌게 될 것이라고.
친구들이 혹시 만약 죽더라도, 그녀는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끝에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그녀의 원대한 꿈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저 나쁜 꿈이라고.
깨지 않는 나쁜 꿈이라고 계속해서 세뇌했다.
하지만 마주한 친구의 죽음은.
제아무리 그렇게 수천 번 이상 다짐했을지라도 버티기 어려웠다.
“미안…….”
그 한 마디를 꺼내는 것조차 진재희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차마 목소리와 생각으론 정의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이 몰려왔다.
진재희는 눈동자만 아래로 내려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누구에게 쫓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다급하게 말했다.
“이제 괜찮아. 날 다시 만났으니까……, 이제 다시 내가……, 너를……!”
그 순간, 이호승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니.”
이호승이 부정한 순간, 분위기는 더더욱 가라앉았다.
“괜찮은 건 없어. 전부 끝났으니까. 민지도 철호도, 부모님들도. 우리가 가던 작업실도. 같이 꿨던 꿈도…….”
그제야 호승은 눈물 섞인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둘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부 끝이야.”
호승은 재희의 품에서 벗어나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딱히 누군가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5년 동안 호승이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었다.
“제발 죽여 줘, 누가. 제발.”
그러고는 힘없이 걸며 반대편 벽면으로 향했다.
둘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죄수들은 자연스레 길을 터 주었고, 호승은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숨을 불규칙하게 내뿜으며 서서히 죽어 가는 자처럼.
진재희는 그 자리에 남아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그녀의 턱에 맺히도록.
오늘, 내일, 모레가 지나도록 둘이 다시 대화하는 일은 없었다.
* * *
“동료분이, 3사동에 가셨다고요?!”
민머리 여자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최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가 그렇게 위험해요?”
“당연하죠! 거기는 온갖 흉악한 범죄자들만 가는 곳이니까요. 빌어먹을 범죄자 놈들.”
민머리 여자가 이를 갈며 말하자, 최현지는 그녀의 말이 참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민머리 여자도 범죄를 저질러서 이곳에 갇혀 있었으니.
물론 자신은 억울하게 갇혔지만.
그녀는 빵을 쥐어뜯어 먹으며 이어 말했다.
“근데 결국에는 콜로세움에서 7번을 이겨야만 면죄가 되어서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거죠?”
“그렇죠. 기본적으로는 자원을 받는데, 저 같은 사람은 좀 다릅니다. 참을성 없는 놈들만 평생 깜빵에서 썩을 순 없다며 뛰어나가 먼저 죽지.”
“그러게…… 요. 그냥 경기장에 안 나가면 그만일 텐데, 왜 목숨 걸고 나가려고 하는지.”
“맞아요. 맞아. 이해가 안 돼요. 이곳 생활도 익숙해지면 나름 괜찮다니까요.”
“그러게요. 그러게. 누군가 알아서 꺼내 줄 텐데.”
최현지는 마지막 남은 빵조각을 입에 털어 넣으며 반대편 쇠창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웃통을 벗은 최명준이 등에는 남자를 앉히고선 운동하고 있었다.
최현지는 껄렁껄렁하게 그를 불렀다.
“야. 돼지.”
“후-. 흐읍!”
돼지라고 불리는 최명준은 그녀의 말을 듣는 척도 안 하며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얌마. 돼지!”
“말 걸지 마라. 여자. 난 이곳에서 나갈 테니까.”
“이분 말 못 들었냐? 콜로세움에 나가면 거의 죽는다고.”
“잠자코 있어라. 깜빵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니.”
최명준에게 감옥은 정말 지긋지긋한 공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는 어서 빨리 이곳에서 나가 강시온을 만나러 갈 생각뿐이었다.
“그럼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야- 돼지. 그만해.”
“시끄러워. 집중 안 돼.”
“아- 좀! 내 말을 들어 보라니까?”
“닥쳐.”
“아오-! 두뇌에 근육만 가득한가. 저 모지리가.”
“모지리 운동한다. 좋은 말할 때 닥쳐라.”
최명준은 다시 힘을 주어 상체를 내렸다.
그의 근육은 살아 있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아. 진짜 말 안 통하네.”
최현지는 벅벅 머리를 긁었다.
그녀는 이곳에 갇힌 뒤로 끊임없이 탈옥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최현지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근데 그 계획을 실행시키려면 최명준의 힘이 필요했다.
최명준은 최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됐다-! 가서 뒈지든지 말든지. 네 알아서 해!”
최현지는 괜히 짜증이 솟구쳐선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그를 힐끗 훔쳐보며 중얼거렸다.
“멍청이가…….”
* * *
‘뭘까.’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가, 기어이 바닥에 떨어졌다.
물방울은 작은 웅덩이를 만나 파동을 일으켰다.
그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진재희는 생각했다.
‘도대체 뭐야?’
그러다 고개만 살짝 들어, 반대편에 누워 있던 이호승을 바라보았다.
이호승은 이곳에 온 뒤로 삶을 포기한 자처럼 등을 웅크려 누운 채, 여린 숨만을 내쉬고 있었다.
간신히 물만 홀짝일 뿐,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도 전생에 그를 잃었을 때,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지금 자신을 배척하는 것이 뭔가. 삐진 것도 아니고.
마치 어린 남동생을 보는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진재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히익-! 죄, 죄송합니다!”
“아, 안 훔쳐봤습니다!”
괜스레 다른 죄수들만 바짝 겁먹어서는 몸을 움츠렸다.
죄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말든, 진재희는 저벅저벅 그에게 다가갔다.
이호승은 뭔가 거대한 것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웅크린 채로 고개만 들었다.
그리고.
덥석-!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언제까지.”
진재희는 쓰러진 호승의 멱살을 쥐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호승은 말을 얼버무렸다.
“무, 무슨 짓이야?!”
“언제까지 병신처럼 그러고 있을 거냐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뭘 하든. 네 할 일이나 해!”
“병신이.”
퍼억!
진재희는 호승의 정강이를 발로 차버렸다.
호승은 필요 이상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 자지러졌다.
“아악! 악!”
재희는 흥분해선 그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뭐! 어떡하라고! 나도 사정이 있었던 거 아냐? 그리고 혼자서 어딜 다니든, 뭘 하든!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네가 뭐 우리 아빠라도 돼? 무슨 참견이야.”
재희는 강한 척 소리쳤지만 화재로 아버지를 잃은 뒤, 세상을 모두 잃은 것처럼 많이 침울해했다.
지금의 호승처럼 친구들이 챙겨주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았고,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호승과 친구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재희를 챙겨주었다.
그런 재희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이 고릴라 같은……! 습관 나오네. 내가……. 말했지. 그 주먹부터 나가는 성격 고치라고. 사회생활 못한다고.”
“참견하지 마.”
“내가 뭘……! 종일 뒈질 것처럼 방에 처박혀 있던 게 누군데!”
“누가 참견해 달랬어?”
“참견 안 하면! 참견 안 하면! 다 뒤져 가는 네 꼴을 가만히 보라는 거냐?!”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알아서 한다고!”
재희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고, 호승 역시 질 생각이 없었다.
둘은 서로에게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평소의 자잘한 잘못들은 넘어갔지만, 한 번 터지는 순간 그동안 쌓인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다.
“알아서 한다고 돼?! 매일 밥 챙겨 주고, 심지어 빨래도 내가 했잖아! 넌 종일 이불 속에서만 처박혀 있었고. 너 씻겨 주는 것도 민지가 도와줬다고!”
“뭐, 뭐?! 내가 언제……?!”
호승의 회심의 한방에 재희의 볼이 붉어졌다.
“됐다. 됐어. 챙겨줘도 지랄할 거면, 내버려 두는 것이 맞았어. 뒈지든 말든.”
호승은 그 말만을 하고선 다시 뒤돌아 걸어갔다.
주먹을 말아 쥔 진재희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리고 되돌아가는 그에게 소리쳤다.
“그러니까! 나도 하고 있잖아! 지금……!”
그 솔직한 말에 호승은 순간 걸음을 멈추고 재희를 돌아보았다.
그때, 참다못한 진재희는 더욱 거칠게 호승의 멱살을 쥐고선 벽면으로 밀어붙였다.
쾅-!
진재희는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겁먹은 호승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얼굴을 가까이 마주한 채,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희는 감정을 애써 삼키곤 말했다.
“날 봐. 나 보라고.”
자신을 보라는 재희의 말에 호승의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끝났어?”
“뭐……?”
“우리가 끝났냐고!”
“끝났잖아……. 난 모든 걸 잃었어. 모든 걸…….”
“뭐가 끝나.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난 살아 있고. 너도 살아 있어. 그래. 솔직히 말할게. 아버지가 죽고 나서, 난 솔직히 살 이유를 못 찾았어. 근데 간 사람은 간 거야. 난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네가 그랬잖아? 이 멍청아. 네가 이젠 아버지를 잃고 내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며……? 그게 나한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아?”
호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근데 지금 네 모습을 봐. 말과 행동이 다르잖아. 우리 만났잖아. 우리 둘 다 살아 있잖아. 지금부터 제대로 살아가면 돼. 빌어먹어도 살아남고, X 같아도 살아남고, 남을 짓밟아서라도 살아남으면 돼!!! 인생은 어차피 버티는 거라고, 우리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어. 그러니까 버텨. 병신아. 이 악물고 버텨. 네가 나한테 해 줬던 말처럼. 그래. 네 말대로 뒈져 가는 날 너희들이 도와줬던 것처럼…….”
“…….”
스르륵-.
호승의 멱살을 쥔 재희의 손이 빠져나갔다.
재희의 손은 자연스레 호승의 양어깨를 움켜쥐었고, 그녀는 그의 명치에 이마를 대며 속삭였다.
“너만큼은 내게 약한 모습 보여주지 마. 너만큼은…….”
재희의 목소리는 서서히 잠겨 갔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재희와 호승도, 쇠창살에 갇힌 모든 죄수도 모두 침묵했다.
하지만 진재희는 몰랐다.
방금 그녀의 말이 죄수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을.
그때, 철문이 열리며 무장한 교도관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재희와 호승은 교도관들을 바라보았고, 교도관은 슬쩍 3사동을 훑어보더니 소리쳤다.
“시합이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검투사들은 앞으로 나와 준비하라.”
교도관은 차례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린 자는 사색이 되었다.
그 이름 속에는, 진재희와 이호승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