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뜻밖의 재회 (1)
둥지, 3사동 철창 한편.
삼 일이 지난 뒤, 더 이상 이곳에서 이상한 곡소리를 내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경건하게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차분하게 배식을 기다렸다.
식사가 배식되면 3사동의 죄수들은 그것을 가져다 공손하게 진재희에게 바쳤다.
“배, 배식입니다. 하하…….”
연쇄살인마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녀 앞에 식판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진재희는 짙게 깔린 그림자 속에서, 눈동자만 내려 배식판을 바라보았다.
그 뒤, 말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3사동의 생태계는 이제 새롭게 자리 잡았다.
절대적인 강자 앞에서 약자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고, 더 이상의 야만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진재희에게 아티팩트의 힘이 없더라도, 그녀는 전투의 신이었다.
하루에 몇 번이고 그녀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죄수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무자비하게 상대를 제압했다.
3일이 지난 뒤에는 더 이상 그녀에게 도전하려고 들지 않았다.
무리 안의 제왕이 된 수사자에게 엎드린 암사자들처럼.
모두 꼬리를 내리고 몸을 엎드렸다.
“퉤-.”
재희는 벽돌처럼 딱딱한 식빵을 뱉어 버리고는 식판을 발로 밀었다.
그러자 아까 연쇄살인마가 후다닥 달려와 그녀의 식판을 도로 가져갔다.
그녀는 철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복도 끝에는 교도관 둘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교도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분노감에 가득 차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떤 새끼가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설마 시온도 나처럼 감금되어 있는 건가? 만약 그도 이따위 대우를 받고 있다면, 만경이고 뭐고 없어.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다. 주동자, 연관자, 그 모든 놈들을…… 철창 바깥만 나가면. 밖에만 간다면…….’
진재희의 분노는 만경의 수뇌부를 향해 있었지만, 정작 두려움에 떠는 건 같은 사동의 다른 죄수들이었다.
“히이이익……!”
“대장께서 심기가 많이 안 좋으신 모양이다.”
“빨리 바닥이나 닦자. 대장께선 더러운 걸 가장 싫어하시니까.”
살인마. 테러범. 정치범이 나란히 걸레를 바닥에 대고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그때, 철창 넘어 복도 끝.
또 다른 죄수들이 걸어 들어왔다.
진재희 이후 처음으로 들어오는 죄수들이기에, 죄수들은 한껏 들떠서는 철창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휘유-! 이야! 신입이네.”
“어서 와. 어? 와.”
순간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 순간, 진재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앉아.”
그러자 죄수들은 말 잘 듣는 똥개처럼 철창에서 벗어나 착석했다.
재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을 뿐인데도, 죄수들은 본능적으로 살기를 느껴 도망쳤던 것이다.
또각. 또각. 또각.
교도관들의 발자국 소리가 3사동에 일정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죄수들이 찬 수갑이 흔들리며 날카로운 쇠 마찰음도 들렸다.
철컥-! 끼이이익…….
교도관은 다시 철창문을 열고 죄수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교도관은 철창 내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진재희를 바라보았고, 진재희 역시 그를 노려보았다.
둘은 하나의 거래를 한 상태였다.
“모두 얌전히 있도록.”
교도관은 그 말만을 남기고 뒤돌아 걸어갔다.
그가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교도관이 완전히 빠져나가자, 죄수들은 신참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퍽! 퍽! 퍽! 퍽! 퍼억!
죄수들은 엎드려 머리를 감싼 신참을 흠씬 두들겨 패 주고. 피떡이 된 그들을 진재희 앞으로 데려갔다.
철푸덕-!
신참은 피를 흘리며 진재희 앞에 엎드렸다.
“으으으……. 으……. 죽여……. 죽이…… 라고. 차라리 죽여 달라고…….”
신참은 신음을 내뱉으며 부들부들 떨어 댔다.
신참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기존의 죄수들은 낄낄대며 웃어 댔다.
하지만 진재희는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표정이 일그러졌다.
“……호승?”
신참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 * *
지금 내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는 것.
우선 이 펜션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
펜션을 둘러싼 방랑자 신분의 병사들이 촘촘하게 경계를 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들의 전력을 모른다면 전투를 벌여 그들을 이길 수 있을지도 미지수.
물론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칙령의 힘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절대 군주의 힘으로, 세력에 속하는 구성원을 반드시 대면해야만 발동된다.
대면한 구성원과 눈을 마주친 순간, 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칙령에 규정한 율법에 따른 준수 사항이다.
이는 첫 번째 힘처럼 강제적이고 강압적이진 않지만, 어긴다면 그에 따른 페널티가 부여된다.
정확한 수치로 계산할 순 없지만, 군주의 칙령을 어긴다면 수명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갔다.
난 두 번째 힘을 발동시켜 세력 내부를 분열시킬 순 있겠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나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윤하가 날 배신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치상으로만 봐도 그녀는 철저하게 나를 위하고 있으니.
하지만 무언가 걸림돌이 있겠지.
어쨌거나 이곳에선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펜션에 눌러앉아 휴식을 만끽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면 천천히 교란을 시작하면 어떨까.
굳이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내부에서 조직을 무너뜨리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다.
조직의 구조는 간단하다.
대표, 규칙 그리고 관계.
조직은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단 하나의 요소라도 불안정하면 조직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판을 바치고 있는 세 개의 기둥이라고 볼 수 있을 터.
처음 만안경찰서를 내부에서 무너뜨릴 땐, 관계성을 파고들어 세력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당시 만안경찰서는, 누가 봐도 위태로운 구조였기 때문에 무너뜨리는 건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여기도 그럴까?’
눈동자를 돌려 사람들의 행태를 살폈다.
대걸레를 쥐고 마루를 닦는 중년 여자.
화력을 뿜어내며 요리를 하고 있는 젊은 남자.
책장을 정리하는 젊은 여자.
무기를 들고 ‘바깥’이 아닌, ‘안’쪽을 감시하고 있는 병사 여럿.
모두가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놈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였다.
이곳에 날 가둬 놓는 것이다.
‘시험해 보자. 놈들에게 난 어떤 위치의 존재인지.’
고급진 소파에서 일어나 반대편 책장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책장을 정리하는 젊은 여자는 자연스럽게 반대편으로 빠졌다.
만약 놈들이 날 모시고 있는 입장이라면, 저들의 행동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야 내가 행하려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길을 비켜주는 것이니.
‘오만과 편견. 이걸 볼까.’
적당한 소설책을 집어 들고, 다시 마루 쪽으로 향했다.
대걸레를 쥔 중년 여자가 내게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마루에 걸터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책을 보기 시작했다.
‘……역시.’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놈들은 내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놈들의 시야 안에서 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젊은 여자는 책장에서 비켰을 뿐, 다시 내가 잘 보이는 공간에 서서 물건을 닦았다.
중년 여자는 이제 대걸레를 놓고 빗자루를 가지고 와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지금 확인하진 않았지만, 밤 시중을 드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거절해도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식사를 할 때도.
몸을 씻을 때도.
난 언제 어디서나 놈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놈들은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시선 역시 결코 나와 마주친 적이 없었으니, 이는 필시 훈련된 요원들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상해.’
너무 이상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도망갈 수 없도록 만들 생각이라면, 그저 경비병력만 두 배, 세 배로 늘리면 될 일이 아닌가.
내가 두더지도 아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도 아니고.
어째서 이 펜션 ‘내부’에서 날 감시하는가.
날 모시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겉모습에 불과하다.
분명 노리는 것이 있을 거다.
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니.
‘생각하자, 생각하는 거야.’
숨 막힐 듯한 긴장감과 숨을 옥죄여오는 압박감이었다.
분명 이곳은 여느 고급 휴양지 못지않은 별장이었지만, 난 누군가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살의를 느꼈다.
이제 모 아니면 도다.
놈이 내 등에 칼을 꽂을지.
아님, 내가 뒤돌아 반격할지.
* * *
호두 껍질이 서로 부딪히며 요란하게 소리가 났다.
아그득-. 아그득-.
두 개의 호두가 남자의 손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소리를 내고 있어도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주의를 주진 못했다.
남자는 망원경으로 신중하게 뭔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 망원경에서 눈을 떼곤 짧은 숨을 내쉬었다.
“흐음.”
길대헌.
이석진의 심복이자, 이번 암살 작전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남자.
길대헌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긁으며 계속 생각했다.
그때, 그의 뒤에 있던 한 부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길대헌에게 물었다.
“대장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지.”
“어째서 바로 죽여 버리지 않으신 겁니까? 강시온이라는 자. 제가 알기로는 무력은 약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지 않습니까?”
“…….”
사실 이석진이 강시온을 죽이려고 들었다면, 호송 중인 차량 내부에서 바로 죽여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석진은 그러지 않았다.
그건 자폭하는 꼴이었으니.
“멍청하긴.”
부하의 멍청한 소리에 길대헌은 혀를 찼다.
그리고 째진 눈동자로 부하를 노려보았다.
“넌 저게 사람으로 보이냐?”
“예, 예……?”
부하는 길대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 먼발치에 있던 강시온을 바라보았다.
두 다리, 두 팔, 머리.
사람 맞았다.
하지만 길대헌의 답변은 달랐다.
“저건 사람 아냐.”
길대헌은 다시 전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건 폭탄이지. 언제 어디서나 터질 수 있는 폭탄. 저 폭탄이 터지면, 우린 다 끝장이야.”
“폭탄. 말씀이십니까?”
“그래. 폭탄. 너 과거에 미국이 북한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었음에도 왜 가만히 내버려 뒀는지 아냐?”
“……그거야 북한에 핵이 있기에.”
“그건 완벽한 정답은 아니다. 핵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미국은 언제든 북한을 무력화할 수 있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왜냐. 분명 득은 있겠지만, 실이 더 많거든. 그랬기에 북한은 핵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오히려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낳았어. 저자도 똑같아. 저자는 자신이 몰렸다고 생각한다면, 곧바로 칙령의 힘을 발동할 거야. 물론 그건 최후의 수단이 되겠지만, 최후의 수단이 왜 최후의 수단이겠냐? 만약 그런 결말이 도래한다면 우린 전부 끝장이니까.”
길대헌의 설명에, 부하는 조금 생각하다 되물었다.
“그렇다면 부장님께선 왜, 강시온을 저 펜션에 가둬 놓은 것입니까?”
“죽이려고.”
“예?”
죽이지 못하는 사람인데, 죽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펜션에 가뒀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길대헌의 바로 다음 설명에 부하는 곧바로 납득했다.
“제 자신도 모르게 죽여 버리는 것이 이번 우리의 목적이다. 우린 강시온의 전반적 생활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천천히 죽일 거다. 누가 보아도 자연사 혹은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한 거지. 남이 개입해서 죽어선 안 돼. 절대로. 강시온을 속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조차 죽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왜’ 죽는지 몰라야만 하지. 그게 부장님께서 계획한 영웅 죽이기다.”
길대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부하는 짧게 감탄했다.
토지부장, 이석진.
그는 뛰어난 두뇌와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만경 내부에서 빠른 승진을 거듭한 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전쟁이 있던 당시에도, 하윤하의 곁에서 수많은 일을 주도하며 만경을 발전시켰다.
물론 이석진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더러운 짓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했다.
감금, 납치, 살인, 협박.
이석진은 만경의 최고 수뇌부들조차 벌벌 떨게 만드는, 만경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
그 이석진의 ‘개’가 바로 길대헌이었다.
물론 길대헌도 이번 작전만큼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강시온이다.
만약 그가 영웅적 서사시에 걸맞은 대단한 인물이라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이석진일지라도.
“저자가 어떻게 나올지 한 번 두고 보자고.”
길대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망원경 속 강시온은 마루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