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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60화 (160/221)

제160화. 3사동의 왕 (2)

하윤하는 말없이 팔을 벌렸다.

그러자 시녀들이 하나둘 다가와 그녀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한 시녀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그 목소리에 가만히 멍을 때리던 하윤하는 눈꺼풀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윤하가 표정이 안 좋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영웅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단순히 오보였다는 것 때문.

한껏 기대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똑같았을 뿐이다.

가뜩이나 오보 때문에 심란하기 그지없었는데, 첩보에 따르면 암살 위기도 맞이했다.

오늘은 암살에 대한 논의와 적룡에 대한 대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대회의라고 해 봐야, 의회에서 토론에 의해 결정된 사안에 대해 하윤하가 승인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건 왕의 절대적인 권한이었다.

시녀의 걱정에 윤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냥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리고. 우리끼리 있을 땐, 그 호칭 안 해도 된다니까. 나이도 나랑 같으면서. 그놈의 폐하, 폐하. 황제도 아니고 왕인데, 왜 폐하야. 솔직히 조금 오글거려.”

폐하라는 호칭은 황제를 칭하는 단어였다.

그랬기에 현재 도시 국가일 뿐인 만경에서는 사실상 왕과 전하로 부르는 게 맞았다.

하지만 궁 내부에서는 만경을 제국이라고 부르고, 대신들은 폐하와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윤하의 말에 시녀는 웃어 보이곤 궁 복의 단추를 여미며 말했다.

“폐하께선 그리 생각하실진 몰라도, 다른 분들은 안 그러시잖아요. 이제 손 내리셔도 돼요.”

하윤하는 고분고분 두 손을 내렸다.

“그리고 난 황제가 아니야. 황제가 있다면 ‘그분’뿐이지. 난 대행일 뿐이라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폐하. 여기로 앉으시겠어요? 마무리 화장해야 하니까.”

“진짜. 내 말 듣고 있긴 하지?”

“눈 감아 주세요.”

“네…….”

시녀는 조심스럽게 윤하의 화장을 마무리했다.

바깥 복도에서는 벌써부터 부산스럽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방에 들어온 건, 토지부장 이석진과 총사령관 황민재였다.

이석진은 웃으며 그녀가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아, 아닙니다.”

하윤하는 말을 흐리며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이석진은 야릇한 눈동자로 윤하의 위아래를 훑었다.

그러고선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숙여 윤하의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주었다.

“이번 회의에는 강남의 외교 대신도 있습니다. 용모에 신경 쓰셔야죠.”

그 말에 윤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폐하. 회의장까지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황민재는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석진과는 대조적이었다.

“이제 가실 건가요?”

“예. 동안의 대신들은 이미 자리하고 있고, 저희 측 간부들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 방문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나가도록 할게요.”

황민재는 재차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방을 빠져나갔다.

이석진은 황민재가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하윤하에게 말했다.

“요전에 그 사건 때문에 아직 침울하신가 보군요.”

요전에 그 사건이란, 강시온이 돌아왔다는 그 소문을 말했다.

하윤하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리고 의회장에서 이석진이 했던 영웅에 대한 발언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그 소식은 단순한 오보에 불과했고, 지난 5년 동안 이어진 강시온에 대한 수색 작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석진이 영웅에 대한 안 좋은 발언을 한다 한들, 세력 내에서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토지부장은, 세력에 속하는 모든 토지와 건물, 시장, 방랑자 거주구역을 총괄하는 자리로 부서 중요도로 따지자면 그리 높진 않다.

하지만 다른 부서들이 어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지부장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토지부장의 권력은 바로 거기서 비롯했다.

만경의 황제, 하윤하조차 쉽게 대하지 못하는 남자.

하윤하에겐 왕의 권한인 상태 창이 없어 권력 통제가 어려웠고, 그 결과 이석진 같은 인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석진은 하윤하의 목에 붉은 원석이 박힌 목걸이를 확인하고서야 자연스럽게 그녀의 양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영웅을 반드시 찾아드리겠습니다. 게다가 만약 영웅께서 돌아가셨다면, 분명 세력에도 무언가 변화가 있었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지 않았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절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제가 미래를 안내하겠으니. ……그럼 전 먼저 강남의 대신들을 만나고 있겠습니다.”

이석진은 거울 속 하윤하를 바라보며 눈웃음 짓더니 이내 구둣발 소리를 내며 방을 나섰다.

끼익- 쾅.

다시 방 안에는 하윤하와 그녀의 시녀밖에 남지 않았다.

하윤하는 어깨를 움츠리며 살짝 떨었다.

이석진의 구둣발 소리가 멀어지더니 점차 사라졌다.

그때, 시녀는 시원하게 한마디 날렸다.

“저 X같은 변태 새끼가. X을 빼다가 XX에 쳐 넣어서 XXXX한 다음, XXX로 쑤셔 시장 거리에 내놓아 버릴까 보다. 어딜 감히. 우리 황제님한테. 와-. 저 쓰레기 새끼 진짜. 폐하. 괜찮으세요?”

시녀의 구수한 욕지거리에, 움찔대던 하윤하의 어깨가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 아-! 진짜. 뭐야. 아, 눈물 나와.”

“아! 안 돼요! 폐하! 눈 화장 지워지니까 고개 들어서 웃으세요. 몇 시간 동안 한 메이크업인데.”

“이렇게?”

하윤하가 고개를 바짝 든 채, 엉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시녀도 폭소를 터트렸다.

“푸흐흐흡……. 푸흡……!”

강시온과 최현지가 세력을 떠난 후, 그녀는 자신과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지난 나날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 * *

사적인 자리에선 울거나 웃거나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던 하윤하지만, 외국의 대신들과 만날 때는 달랐다.

그녀를 마주한 강남의 대신들은 하나 같이 그녀를 얼음여왕이라고 불렀다.

절대 감정을 얼굴로 드러내지 않은 차가운 표정.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름답고 차가운 인상에서 나오는 무표정은 왜인지 모르게 엄숙함과 위압감까지 느껴졌다.

강남의 대신들은 침을 삼켰다.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도한 하윤하의 걸음걸이를 보며 강남의 대신들은 서로 속닥거렸다.

“만경의 왕이라. 과연 얼음 여왕에 걸맞은 외모야.”

“저래 보여도 만경의 시민한테는 한없이 자애롭다고 합니다. 오로지 타국을 대할 때만 무자비하답니다.”

“매력 있는 지도자군. 자고로 지도자란 저래야지.”

“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번 안건을 저들이 수용해 줄지에 있겠죠.”

“그것도 그래. 하지만 별수 없을 거야. 우리가 동맹을 빼 버린다면 저들로서도 전선이 둘로 나뉜다는 거니까.”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보죠.”

강남의 대신들은 상석(上席)에 앉는 하윤하를 바라보았다.

시녀는 의자를 뒤로 빼주었고, 하윤하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정면을 응시했다.

하윤하의 붉은 입술이 떼어지며 나오는 목소리가 회의장에 나지막히 울렸다.

“시작하세요.”

* * *

하윤하의 정치 외교 전략 중 가장 무서운 점은 아무래도 자국의 이익을 가장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하윤하의 기본 협상에는 세 가지 조건이 붙는다.

Ⅰ. 어떠한 조약 내용에도 만경의 시민과 영토에 대한 조항을 넣을 수 없다.

Ⅱ. 만경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조약은 불가하다.

Ⅲ. 만경은 정복 및 선제공격에 의한 전쟁에 참전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

첫 번째는 자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장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만경이 세워진 기본 원리 즉 노동에 신념과 가치관을 공유한 세력만이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으며, 세 번째는 3년 전 대전쟁을 통해 정복 전쟁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 넣은 기본 조건이었다.

만경과의 협상은 이 세 가지 조건을 준수하였을 때만 이루어진다.

인천을 제외하고 만경과 적대적이건 우호적이건 교류한 세력은 총 셋인데, 그중 강남만이 만경의 요구 조건에 따르기로 했다.

물론 위의 세 가지 조건 중 마지막 세 번째 조건에 의해 만경에 시비를 걸려는 모든 세력에게는 명분이 사라졌다.

즉, 저러한 조건들이 우방이든 적이든 공통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자국을 기습 선제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강남의 대신이 말했다.

“저희 측 첩보원에 따르면 그저께 서북 연합이 롯데타워 던전 마(魔)의 30층을 격파했다는 겁니다. 놈들은 확실하게 롯데타워 정상에 있는 적룡(赤龍)에 다가가고 있고 저희 군은 더 이상 잠실 공격을 미룰 순 없습니다.”

이석진은 손깍지를 끼며 반박했다.

“선제공격은 불가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건 우리 측과 협상하기 위한 기본 조건 중 한 가지입니다.”

“조항은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만약 서북 연합이 적룡을 잡게 된다면 만경도 세력이 무너질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만경은 무너지지 않는다. 만경은 굳건한 신념과 시민 의식으로 무장되었다. 설령 라운드에서 패배한다 해도 살아남을 것이다.”

“대신 군주가 죽겠죠. 졌는데 군주를 그렇게 내버려 둘까요? 뭐. 알고 있습니다. 지금 만경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건, 저기 계신 여왕이시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칙령.”

턱수염이 지긋한 대신은 뒤로 살짝 몸을 누우며 이어 말했다.

“칙령을 소유하고 있는 건, 강시온이니까요. 그러니 강시온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만경이 무너진다면, 분명 자신의 신변에도 문제가 있을 터인데.”

그때, 이석진은 피식 웃으며 답변했다.

“아-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요한 건 만경과 더불어 강남의 발전이니까요.”

이석진의 태도에 강남 대신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제가 알기론. 만경은 영웅의 안전을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말씀하신 바는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조금 다르군요.”

그 말에 이석진은 손에 깍지를 끼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대신.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처음 영웅께서 만경을 세우셨을 때. 그건 만경을 위한 일, 즉 시민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이건 영웅께서도 바라시고 고대하는 일일 겁니다. 저희는 대내외적으로도 영웅을 추격하기 위한 대대적인 탐사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크흠…….”

강남 대신은 콧바람을 불며 말을 삼켰다.

그때, 하윤하가 이야기에 껴들었다.

“하나, 선제공격은 불가합니다. 절대로.”

지금껏 침묵하며 이야기를 정리하던 윤하는 동안의 대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경의 기본 세 가지 조항은, 우리 자신을, 노동을, 시민을 지키는 조항입니다. 그 가치는 영원하며, 시민들 역시 그 조항에 따른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죠. 그 가치관을 잃고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면 내부적인 단결력이 떨어질 겁니다. 선제공격은 절대 안 됩니다. 물론 지원 역시 불가합니다.”

“……폐하.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하윤하는 강남 대신의 말을 끊어버렸다.

“……거래할 수는 있겠죠.”

용병 집단.

그건 만경의 거대한 힘이자 장사 수단이었다.

‘역시 용병 카드를 꺼내 드는 군.’

강남 대신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결국 거금을 들여, 만경의 용병단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

지난 3년간 강남은 만경에게 엄청난 보상금을 쥐여 주며 만경의 오우거 부대, 정예대를 고용해 왔다.

이번 회의도 결국 하윤하의 고집(?)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철저하게 만경의 이득만을 고집했다.

이것만이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유일한 보답이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그가 다시 만경으로 되돌아왔을 땐.

그 어떤 세력보다 강대하고 막강한 국가를 키워 내, 다시 강시온에게 넘길 것이다.

그때까지 하윤하는 고집스럽게 현 상황을 유지할 뿐이다.

남은 건 돌아온 영웅이 알아서 할 테니.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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