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59화 (159/221)

제159화. 3사동의 왕 (1)

진재희는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그때, 그녀의 엉덩이에 깔린 피그미가 신음을 내뱉었다.

“으…….”

진재희는 놈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피로 얼룩진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 지친 기분은.’

아티팩트 플레이어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몸의 회복력이었다.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회복 능력을 지녔기에, 뼈가 부러진다 한들 하루면 나았다.

하지만 아티팩트 능력이 없어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전투는 밤새 이어졌고, 그 후엔 여느 일반인들처럼 그녀는 지쳐 있었다.

물론 배도 고팠다.

그녀는 피로 얼룩진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교도관들을 내려다보았다.

한편, 마찬가지로 진재희를 올려다보던 선배 교도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말도 안 돼……. 혼자서 3사동의 죄수들을 모두 쓰러트렸다는 거냐? 하룻밤 사이에?”

“……대박이네요. 하하.”

죄수들이 흐른 피가 한데 모여 사동 바닥에 고여 있었다.

대다수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지만, 몇몇은 죽어 있었다.

도무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 전번 근무자가 선배 교도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뭐, 어쩌겠습니까. 말릴 수도 없는데.”

기본적으로 쇠창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교도관들이 통제하지 못한다.

이곳 둥지는 ‘죽음을 장려’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윤하의 강고한 뜻대로 국가가 개인을 처형하는 일은 없었다.

그랬기에 만경의 사법 간부들은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 냈다.

죄수들을 한곳에 모아 가둬 놓는다면 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 죽어 버릴 것이라고.

그랬기에 이곳 둥지 내에서는 거대한 범죄 파벌이 존재했다.

3사동은 그 범죄 파벌 중 가장 거대한 곳.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파벌은 무너져 내렸다.

한 여자에 의해.

“정체가 뭐야?”

“선배님……. 그 왜라는 질문하지 말라고 본인 입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저 여자와 같이 들어온 다른 두 놈은 어떤데?”

“비슷하던데요. 그 최현지랑 최명준이라는 사람은 1사동에 같이 가게 되었는데. 최명준 이거. 이 여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완전히 괴물 새끼더만요.”

“최명준? 설마 정예대의 시초를 말하는 건가?”

선배 교도관이 놀라 전번 근무자에게 되물었다.

근무자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그분은 5년 전에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X…… 발. 뭐가 어떻게 되어 먹는 거냐. 오늘 정상끼리의 회담장에 출전할 검투사조차 저 지경이 되었는데.”

“예?! 선배님. 그럼 저희 X된 거 아닙니까?”

“젠장.”

선배 교도관은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진재희를 올려다보았다.

진재희 역시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다냐.’

선배 교도관은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담배 두 까치를 받으며, 부탁을 받았다.

한 마디로 뇌물.

익명의 누군가는 진재희를 이곳에서 처단하고 그녀의 실체를 바깥으로 공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시합에 나가야 할 검투사가 전투 불능이 되어 버렸고, 3사동에 남은 사람은 저 여자뿐이었다.

‘그렇다고 정상끼리의 회담장에 쓰일 검투사를 내보내지 않을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선배 교도관은 한가지 묘수를 생각해 냈다.

선배 교도관은 진재희를 불렀다.

“어이, 잠깐 내려와 보지?”

꿀꺽-.

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 * *

펜션에서의 하루는 그야말로 낙원과 같았다.

매일 새롭게 들어오는 먹거리와 즐길 거리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이 오가며 불편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고 간다.

펜션은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지하에는 거대한 수영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언제였던가.

막노동 판 점심시간.

헬멧과 장갑을 낀 채, 아저씨들과 함께 식당에서 봤던 그 드라마 속 재벌 집과도 같았다.

이런 집에 살아 보는 것이 딱히 꿈은 아니었다.

애초에 조금이라도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면, 난 꿈조차 꾸지 않았으니.

내 꿈이라고 하면 수도권에 2억짜리 전세 빌라에, 삼시 세끼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

거기서 더 바란다면 동생의 대학 등록금과 동생의 결혼식 비용, 그리고 전세 자금 정도만 있으면 되었다.

‘그것만 해도 5억이 넘네. 내가 그때 한 달에 저금을 30만 원씩 했었나.’

그것도 없는 돈을 긁어모아 겨우겨우 저축하던 30만 원이었다.

일 년에 360만 원.

10년이면 3,600만 원.

100년이면 3억 6,000만 원.

그렇게 100년 동안 저금한다 한들, 5억을 모으는 건 불가능했다.

엉뚱한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근데 지금 내 눈앞은 그야말로 낙원이었다.

전속 요리사 4명이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전문 마사지사는 다음 마사지를 위해 마사지 젤과 침대를 정리하고.

부탁한 소설책을 찾아온 심부름꾼은 두 손 가득 책들을 들고 와서 책장에 정리하고.

비서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어젯밤 내 침실에 벌거벗은 채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사람이 찾아와 불편하신 건 없냐고,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물어본다.

이 모든 건, 가진 자의 여유.

가진 자가 누릴 수 있는 사치들.

내가 현생을 살면서 누리지 못했던 쾌락들이, 세상이 멸망하고 나서는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

조금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동생은 강하다.

동생이 강하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이 세계에서 강하다는 건, 어딜 가든 잘 살 것이라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내가 굳이 동생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퇴색된다.

동생이 살아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만날 날이 올 것이며, 그때 다시 만나면 그만이니까.

난 지금 한 세력에서 영웅 취급을 받으며, 국가는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나의 안락과 안정을 위해 힘쓰고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꿈이었나?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난 지금껏 너무 작은 세계에서 살아왔기에, 큰 세계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정말 지금으로써는 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낼 수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난 그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서님.”

“네, 말씀하세요.”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내 명령을 듣기 위해 찾아와 고개를 조아렸다.

“제 동료는 어딨죠.”

“……어떤. 동료 말씀이시죠?”

“저와 함께 있었던 세 명 말입니다.”

“……집행관님께 여쭤보겠습니다.”

그녀는 내게 재차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다.

“명령한다.”

“…….”

그들은 만경의 백성.

집행관이라고 불리는 그 남자는 만경의 시민이 아니기에 명령을 받을 순 없겠지만, 여기서 일하고 있는 자들은 다르다.

난 그들에게 ‘명령’할 수 있다.

“내 동료에 대한 정보. 안다면 모든 걸 말하고, 모른다면 알아 와.”

비서는 조금 멍하니 있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순순히 물러났다.

한 가지 확실했던 건.

난 이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고, 만경 내부에선 누구도 나에게 이런 대우를 할 수 없었다.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날 이곳에 가둔 그놈도, 결코 만만치 않은 놈일 터.

내가 이곳에 갇힌 채로 정보를 수집해 나가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한 번 미끼를 던져보는 것이다.

* * *

만경의 궁, 안양시청.

궁 경비가 평소보다 삼엄하다.

하나의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매트로 세력 내에서 만경 왕에 대한 암살 시도 정황 포착.

이는 왕 직속 특수 부대 소속의 스파이가 수집한 전보로 개인이 절대로 조작할 수 없는 공식 문서였다.

이 첩보는 토지부장 이석진에게는 굉장한 운으로 따라 주었다.

하윤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궁에 가둬 놓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왕실 내부 복도. 겸허의 홀.

이석진은 정장을 입은 채, 벽면에 가득 새겨진 벽화들을 바라보았다.

혹한에 떠는 만안경찰서.

피어오른 봉화를 따라 만안경찰서로 몰려드는 안양 시민들.

경찰서장을 처형하는 강시온.

동안에 의해 핍박받던 시민들.

끝끝내 승리를 쟁취해 내고 개선하는 군대에 열광하는 시민들.

전쟁 이후 만경이 겪은 고난과 구원의 발자취들.

……그리고 영웅, 강시온.

이 모든 건 지난 7년이라는 시간을 기념하기 위한 벽화였다.

이석진은 조금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닌, 종말 이후 새로운 세계가 개척되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21세기를 일컫는 현대 사회는 이제 끝이 났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뉴에이지.

AD(서기: 그리스도의 해)로 세던 시간의 단위를 이젠, NA(NEW AGE)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토지부장 이석진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인류의 역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고대 왕국들을 건립했던 초기 멤버들은 압도적인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대대로 세습했다. 그렇게 그들은 역사에 굵직한 이름을 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석진이 원하는 건 분명했다.

만경이라는 도시.

그 초기 건립 멤버에, 이석진이라는 석 자를 남기는 것.

또한 막강한 부를 쌓아 하나의 명(名) 가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라운드는 영원할 것이다.

3라운드 뒤에는 4라운드, 5라운드.

더 나아가선 30라운드, 50라운드까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3라운드를 깨지 못했으니 나름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이석진을 불렀다.

“이 부장.”

먼발치에서 거대한 풍채를 가진 남자가 걸어왔다.

황민재.

그는 과거 최명준의 부하 중, 가장 강했던 자라고 했다.

지금은 정예대 대장을 거쳐, 진급에 진급을 거듭해 만경의 최고 사령관이 되었지만.

“아, 사령관. 반갑습니다.”

이석진은 손을 건넸지만, 황민재는 이를 무시했다.

황민재는 이석진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몇 가지 신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눈 찢어진 사람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석진은 내밀었던 손을 천천히 거뒀다.

‘싸가지 없는 새끼. 이 새끼 언제 조지지?’

하지만 이석진은 표정 관리하며 미소를 지었고, 황민재는 입을 열었다.

“용건만 간단하게 말하겠소. 왕의 안전이 걱정된다면 현 정예대 대장을 부르면 될 일 아니오? 무법지대에 파견된 대장 말이오.”

“정예대 대장이요? 아-. 정현수 말입니까?”

“그렇소. 정현수의 실력이라면 왕의 안전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지 않겠소?”

정현수, 정예대 대장.

그는 강시온에게 플레이어 교육을 받은, 영웅의 충실한 심복 중 하나였다.

현 만경의 지도 계층은 영웅을 지지하고 충성을 맹세한 심복인 보수 세력이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도전과 변화를 원하는 진보 세력은 40% 수준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정현수와 총사령관 황민재는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수장들.

그리고 이석진은 진보 세력의 유일한 수장이었다.

둘의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정현수가 세력에 다시 들어와 활약한다는 건, 이석진 입장에선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정현수는 그야말로 신시대의 전쟁 영웅이었으니까.

3년 전, 격동하는 시대에서 전설적인 사건이 있었다.

도합 2만 8천 명.

매트로 세력이 만경을 정복하기 위해 끌고 내려온 군사의 수였다.

그에 반해, 역경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던 만경에는 정규군이 3천 명도 되지 않았었다.

하나, 정현수는.

단 3천 명만을 이끌고, 매트로 세력을 개박살 냈다.

그냥 개박살 낸 것이 아니라 적을 거의 괴멸 수준으로 만들었다.

이 전쟁 이후, 매트로 세력은 진로를 바꾸어 만경을 포기하고 강남 세력으로 쳐들어갔다.

정현수는 그 사건을 통해 더욱 더 성장했으며 현재로서는 만경에 없어선 안될 플레이어가 되었다.

‘그런 정현수가 다시 세력에 들어온다고? 안 되지. 안 돼. 내가 정현수를 세력에서 내보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석진은 그것만큼은 필사적으로 막아야만 했다.

이석진은 황민재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무법지대 속 살인마들로부터 시민을 지킬 수 있는 건, 현시점에선 정현수 대장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정현수 대장을 불러들인다면, 궁의 경호대의 체면이 살지 못하겠지요. 중요한 첩보입니다만, 반드시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할 겁니다. 경호대를 믿어 보시죠. 그리고, 겨우 첩보 하나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 이상하게 보지 않겠습니까?”

궁 경호대는 본래 황민재 부대에 속해있는 기관.

그러니 이석진은 황민재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천천히 도발했던 것이다.

물론 황민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경호대는 문제없다. 하지만 난 왕의 안전을 생각해 말한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현수 대장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2년간 쉬지 않고 토벌을 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휴식을 주는 거다.”

“휴식이요? 사령관.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저희가 세력 내부 행정직에 있다고 쉬는 건 아닙니다. 어제만 해도 토지과에 과로로 쓰러진 직원만 셋이죠. 정현수가 복귀한다고 해도 그가 쉴 시간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더 바쁠 수도요. 그는 무법지대에선 자유롭게 휴식 시간을 가졌지만, 이제 여기선 그런 자유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할 겁니다. 그런 이유로는 복귀하는 것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지죠.”

“이봐, 이 부장.”

“사령관.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걸요. 하지만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린 뿌리가 같습니다. 바로 만경의 지대한 초대 왕, ‘강시온’이 이룩한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지요. 저 자신도 세력에 이로운 일들만 하고 싶을 뿐입니다.”

황민재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이석진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한 뿌리다.

처음 만안경찰서에서 보일러로 때운 수증기가 올라갈 때.

사람들은 희망을 보았고, 그 수증기를 만든 사람만이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을 거라며 혹한을 이겨냈다.

황민재는 떠올렸다.

혹한의 날씨. 가로등에 기대어 얼어 죽던 그 와중, 만안경찰서에서 피어오른 그 희망의 수증기를.

황민재는 영웅 강시온의 존재를 결코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살아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세력에 전해진 반가운 소식은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끝이 났고, 이젠 또다시 제로가 되었다.

“……좋다.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 그대의 말대로 하지.”

황민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석진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고는 반대편 복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가시죠. 사령관. 왕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지.”

이석진은 앞장서 걸어갔고, 황민재는 그 뒤를 따랐다.

황민재는 이석진의 뒤를 따르고 있었기에, 이석진의 표정을 볼 순 없었다.

간악하고 사악한, 두 입꼬리가 귀에 걸린 그의 미소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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