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공작 (3)
체포된 이후,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실루엣이 사방으로 덮여 있는 고급 승용차였다.
물론 가솔린이나 기름을 태우며 가는 승용차의 기본 원리를 적용한 이동 수단은 아니었다.
그저 외관이 고급 승용차일 뿐이고, 그 차를 끄는 것은 두 마리의 거대한 사슴이었다.
주위는 어둡고, 조용했다.
기본적으로 만경에는 야간 통행금지법이 있기에, 연행은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역시 놈들은 계획적으로 나에게 접근한 것이다.
남자는 날 앞질러 걸어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난 천천히 걸어가 승용차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일행들은 아니었다.
“너흰 다른 차로 간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던 진재희는 막아 세웠다.
그러자 진재희는 인상을 막 구기고는 물었다.
“왜지?”
“죄명이 다르니까. 아가씨. 뒤쪽에 또 다른 마차가 준비되어 있다. 너흰 그걸 타고 와라.”
일말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진재희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의사를 묻는 듯하였다.
‘처분하려고 들었으면 그 방에서 공격했을 거야.’
어처피 내가 살아 있는 한, 저들도 동료들을 놔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진재희, 최현지, 최명준이다.
지옥에 떨어져도 살아남겠지.
세력 내부에 들어오면 세력의 법규에 따라야만 하고, 이것이 먼저였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진재희도 자연스레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그녀를 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옳지. 말 잘 듣네.”
그러고선 차 문을 닫았다.
터엉-.
고급 승용차라 그런지 좌석의 쿠션감과 방음이 잘 되어 있었다.
남자는 트렁크 쪽으로 한 바퀴 돌아 자연스레 내 옆에 앉았다.
“만경은 영웅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전 집행관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잠시 지내실 숙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출발해.”
집행관은 운전수에게 명령했고, 그는 고삐를 풀며 짐승을 몰았다.
창밖은 보이지 않았지만, 난 창가를 바라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오밤중에 급습하고 말이야. 날 홀대한 사실을 왕이 안다면 가만두지 않을 텐데.”
나의 말에 집행관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거 꽤나 거만한 태도군요. 뭐,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현 만경의 법을 어긴 사실은 변함이 없고, 저희는 사법 처리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떤 처분이 있지?”
“처분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저희도 만경의 정신적 지주를 홀대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모시겠다고.”
“모시는 것 치고는 거칠군.”
“보안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실진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세력 간 스파이 전쟁도 어마무시하거든요. 타 세력의 군주들이 실력 좋은 스파이를 만경에 침투시켜 왕을 암살하려는 몇 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첩보도 있었고요. 게다가 왕도 아닌 영웅이라니. 솔직히 당신을 보고 싶어 하던 타 세력의 군주도 적지 않습니다.”
“타 세력의 군주라니.”
“만경과 동맹 관계이지만, 군사적으로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강남〉 지역의 군주가 동맹의 조건으로 내건 것이 당신을 뵙는 것이었어요. 자문을 구한다나 뭐 한다나. 당신이 남긴 업적은 꽤나 대단한 것이어서 위쪽 지방 군주들도 알고 있거든요. 제갈공명 같은 느낌? 푸흐흐…….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뭐……. 물론. 당신이 없어서, 저희가 동맹을 맺는데 애를 먹었지만.”
집행관 남자는 마지막 말을 흐렸다.
그는 마치 나 때문에 동맹을 맺는 것이 힘들었다는 듯 말했다.
‘……어이없네.’
난 뒷목을 잡고 고개를 들어 목 근육을 천천히 풀었다.
차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집행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쨌건, 저희는 당신을 모시는 입장입니다. 별장은 넓고 좋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지내셔야만 합니다.”
“내가 거부한다면?”
“아……. 영웅니임……. 제발.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순간, 느껴지는 시선에 난 옆을 바라보았다.
그는 날 똑바로 보고 있었다.
감정 없는 눈동자로.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사법권에 근거한 명령입니다.”
덜크덕……. 덜크덕…….
한동안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차 내에 감돌았다.
난 헛웃음을 지은 뒤, 다시 그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럼 내 동료들은?”
“걱정 마십시오. 처형하는 건 아니니까.”
그 말의 의미는 처형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겠지.
괘씸하고…… 모자란 놈.
감히 날 엿 먹여?
잠시 시간이 흘렀다.
30분은 흘렀을까.
집행관은 손가락으로 무릎을 천천히 두드리다가 말했다.
“슬슬 도착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지내실 곳입니다. 아마 부족한 건 없을 겁니다. 만경 내에서, 어쩌면 궁보다 더 안락한 시설을 자랑하는 펜션이니까요.”
덜컹-!
집행관은 차문을 열고 나가 날 기다렸다.
내가 아직까지 시트에 앉아있자, 그는 고개를 숙이며 날 들여다보았다.
“내리십시오.”
“…….”
난 다시 한동안 침묵하다가, 그를 따라 내렸다.
바람이 휘몰아치며 앞머리가 순간 시야를 가렸다.
이곳은 어느 숲속 거대한 펜션.
그의 말대로 으리으리한 시설이 가득한 곳이었다.
집행관은 내 곁에 섰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뭐든 가져다 드릴 테니. 아, 그리고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 일대는 원래 궁을 지키던 베테랑 병사들이 경비를 서니까요. 그럼 들어가시죠.”
집행관은 펜션 쪽으로 손을 가리키며 날 이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곳에 우두커니 서서, 그에게 말했다.
“네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든 상관없어. 내 동료들에게 손 하나라도 건드리지 마라. 특히 내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진다면……. 너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
“……원래 세상에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 줄게. 나도 이거 부탁 아니다.”
나의 말에 집행관은 눈웃음쳤다.
“걱정 마시죠. 영웅님.”
* * *
찰그랑- 찰그랑- 찰그랑-.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내밀 때마다 불쾌한 쇠 마찰음이 들렸다.
목과 손, 발목에 쇠고랑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한 발자국 내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굴에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탓에 진재희는 숨을 가쁘게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성검을 소환해 보았다.
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아티팩트가 안 써져. 붉은 원석의 힘인가.’
그녀의 목에는 쇠사슬로 이루어진 목줄이 채워져 있었는데, 여기엔 붉은 원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붉은 원석은 일반인이 아티팩트 플레이어에 대항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 플레이어의 아티팩트 능력을 억제하는 힘을 가졌다.
진재희는 손에 힘을 주어 수갑을 풀려고 했지만, 강력한 육체를 가진 그녀였지만 붉은 원석이 박혀 있는 철 수갑을 힘으로 풀어낼 수 없었다.
그때, 웬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곡소리처럼 구슬픈 노래.
여인의 목소리였다.
“미쳐 버린 거지. 이곳에서 여자는 단 하루도 미치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진재희는 검은 두건 속에서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희미하지만 자신을 끌고 가는 간수의 등이 보였다.
“걱정 마. 너도 곧 저 여자처럼 될 거다. 너처럼 외모가 출중하면 이곳 사동의 ‘검투사’들은 좀처럼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거든.”
진재희는 옆을 돌아보았다.
희미한 시야 속, 죄수들이 야릇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과거 정부청사가 있던 과천. 지금은 만경과 강남의 국경 지대이자, 공동경비구역이지. 또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려주지.”
촤륵-!
교도관은 진재희를 묶은 쇠사슬을 세차게 끌었다.
그녀는 힘없이 앞으로 두 발 끌려 나왔다.
“만경과 동안의 전쟁이 있던 당시, 하나의 볼거리가 생겨났어. 그게 바로 검투다. 검투사들이 서로 싸우는 걸 구경하는 거지. 검투사들은 죄인이나 전쟁에서 패한 포로들을 잡은 자들이다. 자애로운 만경의 왕, 하윤하는 실질적인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죄인을 검투장에 내세워 처리할 방법을 찾은 거야. 우린 네놈들에게 기회를 줄 거다. 다른 죄인들처럼.”
말을 마친 교도관은 진재희의 머리에 뒤집어 쓰인 검은 두건을 벗겨 냈다.
터억-. 화악!
밝은 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쏟아져 내렸다.
순간 눈이 부셨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그녀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사방이 쇠창살이었고, 그 안에는 교도관이 말한 죄수와 검투사들로 보이는 이들이 가득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대부분 남자였고, 여자들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놈들은 쇠창살을 두들겨 대며 어서 빨리 먹이를 던져 주라며 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이곳은 둥지, 콜로세움. 죄인들이 자신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오는 곳이다. 아까 말했지? 네놈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결투에서 7번 승리해라. 7번만 승리한다면, 너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상관 않고 해방시켜 준다. 하지만…… 한 가지 알려주자면, 그 막강한 오크 죄수들조차도 5번 이기는 게 최대였다.”
교도관은 진재희를 쇠창살 쪽으로 밀쳤다.
그때, 쇠창살 내부의 영악한 죄수들이 침을 질질 흘려댔다.
“와-! X발!!!! X나 예뻐. 미친!”
“형님. 진짜 대박입니다!”
“아-. 시. 와! 진짜 대박이다. 횡재다.”
성욕에 사로잡힌 놈들은 연신 쇠창살을 흔들어 댔다.
교도관은 진재희에게 속삭였다.
“이곳 3사동은 방화, 살인, 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들만 있는 곳. 네가 아무리 살려 달라고 소리쳐도 우린 절대 이동시켜 주지 않을 거다. 절망해도 도와주지 않을 거다. 그게 네가 치러야 할 죗값이니.”
“…….”
휘릭-. 철컥!
또다른 교도관이 쇠창살 문을 열었고, 진재희는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교도관은 그녀의 손과 발에 묶인 쇠창살을 풀어주었다.
손과 발은 자유가 되었지만, 목줄은 여전했다.
그러니 아티팩트는 사용할 수 없었다.
진재희는 쇠창살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교도관은 말했다.
“그럼. 행운을 빌지.”
끼이이익- 덜컹! 철크덕!
간수가 쇠창살 문을 다시 닫고, 그들은 되돌아갔다.
한동안 이곳엔 교도관이 되돌아가는 발걸음만 울렸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진재희는 안으로 들어온 이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곧 그들이 다가왔다.
굶주린 놈들이 진재희를 애워싸기 시작했다.
그때, 이곳의 대장.
거대한 몸집을 지닌 한 생명체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피그미족.
얼굴은 돼지이지만, 스모 선수처럼 육중한 몸을 지닌 생명체.
몬스터라 하기에는 언어를 구사하지만, 지적 생명체라 하기에는 오로지 욕구에 빠져 사는 종족.
놈은 3사동의 제왕이었다.
“좋다…….”
쿵……! 쿵……! 쿵……!
놈이 움직일 때마다 감옥 전체가 울렸다.
피그미는 마침내 그녀 앞에 섰다.
키 차이만 해도 두 배였다.
진재희는 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먼저 움직인 건, 진재희였다.
* * *
다음 날.
선배 교도관과 후배 교도관은 교대를 위해 옷을 차려입고 열쇠를 거머쥐었다.
후배 교도관은 조심스럽게 선배 교도관에게 물었다.
“근데 선배님. 3사동에 여자 한 명은 정말 심한 거 아닙니까? 그곳은 남자가 들어가도 겁탈당하는 곳인데.”
“정치적 이유다.”
“예?! 설마……. 암살이라든가.”
“정치적 이유에 왜는 필요 없지. 토지부장의 특별 명령이야. 우리 같은 공무원은 위에서 내리는 명령만 수행할 뿐, 왜라고 묻지 마라. 목숨 날아간다.”
철크덕-!
선배 간수는 3사동으로 향하는 자물쇠를 열었다.
두 간수는 천천히 걸었다.
“와-. 근데 진짜 불쌍하네. 지금쯤 반쯤 미쳐 가지고 침 질질 흘리고 있겠네.”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만경에서도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건 가장 중한 죄로 처벌받는다. 감히 왕께 도전한 결과겠지. 아마…… 저번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히야-. 진짜 둥지행인 거 뻔히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다니. 정말 멍청한 새끼들이 아닐 수가 없어요.”
“미친 새끼들이 그런 거 신경이나 쓰고 범죄를 저질렀겠어? 그러니까 3사동에 있는 거지.”
선배 간수는 3사동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제와는 확실히 뭔가가 달랐다.
원래는 욕구에 굶주려 포효하던 죄수들이 쥐 죽은 듯 조용했던 것이다.
그때, 가장 가까운 쇠창살에서 한 남자 죄수가 소리쳤다.
“이, 이봐! 살려 줘! 살려 줘!!! 사동을 바꿔 줘. 사동……!”
“뭐……?”
그는 3사동에서도 힘으로 알아 주던 남자 죄수였지만, 이젠 피범벅이 되어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선배 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쇠창살 내부의 모습을 주욱 살펴보았다.
하룻밤 사이.
수십 명에 달하는 죄수들이 저마다 곡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다……! 헉!”
그리고 그 순간, 선배 간수의 입이 턱 막힐 만큼 엄청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
죄수들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다.
관절이 뒤틀리고, 피로 얼룩진 시체인지 기절한 것인지도 모를 죄수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피라미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에는 이곳의 제왕이었던 피그미가 쓰러져 있었다.
피그미의 풍만한 가슴 위에는.
“…….”
악마처럼 살의를 띈 진재희가 앉아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