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공작 (2)
난 책에서 시선을 거둬 괴한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방에 침입한 괴한이었지만 무턱대고 일행들에게 덤벼들진 않았다.
“뭐여! 이 씨X놈들은!”
침대에 누워 있는 최명준이 성질을 내자, 근처에 있던 괴한이 그에게 발길질했다.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그 순간, 최현지가 손을 빼내 아티팩트를 소환했다.
동시에 진재희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괴한들도 무기를 쥔 채, 언제든지 덤벼들 것처럼 위협했다.
한 차례 긴장감이 가득한 기류가 방안에 맴돌았다.
그때, 괴한들 뒤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티팩트?”
어깨가 좁고, 마른 체형의 남자.
검은색 뿔테 안경과 곱상한 외모.
한눈에 봐도 이 괴한들을 이끄는 수장으로 보였다.
그는 괴한들을 비집고 나왔다.
“내가 알기론 초대 만경의 왕은, 세력 내에서 그 어떠한 경우라도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했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영웅이시여.”
놈은 날 보며 분홍빛 입술을 씰룩거렸다.
만경 내부에서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아티팩트 스킬을 발동할 수 없었다.
그건 과거 내부의 안정과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나의 방식이었다.
물론 그건 일차적인 규정일 뿐이고, 나의 명령만 있다면 언제든지 지정된 사람에 한에서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놈은 의자 하나를 집어와 내 앞에 놓고 그 위에 앉았다.
그러고는 두 손을 깍지를 껴 꼰 무릎 위에 포개어 놓았다.
“굉장히 똑똑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영웅께선.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그 많은 만경의 시민들을 일심동체로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
정장 차림의 남자는 내게 답변을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난 응할 생각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남자는 재킷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강시온, 만경의 초대 왕이자 안양을 통일시킨 영웅. 하지만 5년 전, 만경을 떠난 뒤 다신 돌아오지 않았음. 그 뒤로 만경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는, 제가 굳이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이었으니까요. 아-. 그래요. 어떤 이유로 떠나시고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까지도 이제 와서 묻지는 않겠습니다만. 한 국가의 책임자가 격동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 국가 운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간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범죄 행위입니다. 인정하십니까?”
그들은 현행법과 책임, 그런 단어들을 떠들어대며 자신들이 집행관인 척 굴고 있었지만, 집행관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정식 군대나 헌병들일 것이다.
이들은 그런 집행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단순한 괴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또 이상했던 건, 그들의 머리 위에 군주만이 보이는 시민들의 상태 창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상했다.
아니, 굳이 이상할 것도 없나.
남자가 친절히 먼저 설명해주었으니.
“칙령의 힘을 사용하려고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저흰 만경을 위해 일하고는 있지만 신분은 방랑자거든요.”
“…….”
군주가 가지는 막강한 권한, 칙령.
그건 만경 내부에 소속되어 있는 시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즉, 이들은 만경 시민이 아니라는 이야기.
난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뱀처럼 간악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마른 체형이기에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차 있는 눈동자였다.
딱히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고 할 건 없었다.
놈들이 날 어떻게 대할지 먼저 ‘관찰’하고 있을 뿐.
관찰은 언제나 옳다.
여기서 순순히 체포당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만경 내부에서 체포당한다면 저들이 어떤 공작을 꾸미는 단체인지는 몰라도 세력 내부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니까.
“자, 한번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남자는 상체를 앞으로 수그리며 팔꿈치를 두 무릎에 올려놓았다.
“전 분명 체포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만경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사법 제도 안에서 그 가장 높은 자의 명령을 받고 온 것이죠. 하지만 당신은. 현재로는 명예시민 비슷한 존재지요. 그러니까, 5년 전. 당신이 만경을 떠났을 때부터 당신은 더 이상 만경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헌법을 개정했고 왕을 새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때, 침대에 누워있던 최명준이 꽥 소리쳤다.
“그게 뭔 개소리야, X발놈아!”
“조용히 하고 있어.”
난 그를 진정시키고 다시 남자를 노려보았다.
“참 친절하시네요. 영웅님. 어쨌든 계속 설명해 드리죠. 그러니까 제 행동은 만경 왕의 뜻이고, 만약 여기서 체포하기를 거부하시고 난동을 부리신다면…….”
……난동을 부린다면 지지율은 급격하게 하락할 것이다.
내가 처음 이 도시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시했던 건 도시의 안정과 치안이다.
시민들의 행동반경을 통제하고, 불법적으로 소지하고 있는 무기를 압수해 중앙 정부에서 통제함과 동시에 군대와 경비대를 도입해 범죄를 예방했다.
인간의 자유는, 모순되게도 억압된 사회와 엄격한 통제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건 인류 역사 속에서도 증명된 사례였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동안의 군주, 박지수가 꿈꿨던 진정한 자유는 사실 중앙 정부가 시민을 방치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내게 위협을 가하고 있는 이 남자의 말이 옳은 셈이다.
내가 설정한 나의 통제력이, 5년이 지나 돌아온 지금 나의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 칙령의 힘을 사용한다면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릴 위협하는 이자들을 잡아 죽이라는 칙령을 각 통제부에 보낸다면 쉽게 해결될 일.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가능할 리가 없어.’
핵미사일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괴력과 살상력을 지닌 무기이지만, 사용하게 된다면 인류 파멸의 길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 핵미사일과 칙령은 비슷한 힘을 가진다.
칙령은 가장 강력한 군주의 권한이지만, 명분 없이 사용한다면 지지율은 폭락할 것이다.
만약 칙령의 힘을 나의 개인적인 일에 사용하게 된다면 2라운드, 만안경찰서를 통치하던 경찰서장 박건우 꼴이 나겠지.
‘…….’
내가 구상했던 만경을 내 소유로 만드는 계획은.
그런 통제와 억압 속에서도, 그들의 머릿속에 ‘나’라는 인물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건 파시즘과 독재 국가에서나 나오는 주입식 교육이었지만, 개인이 국가의 모든 힘을 사용하기 위해선 그만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즉 내가 만경에서 사라진 직후에 만경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시민들은 이러한 교육에서 비교적 영향을 덜 받았다.
날 이렇게 체포하려고 드는 그 인물이 누군진 몰라도…….
‘생각보다 똑똑한 놈이군.’
내 유일한 약점을 파고든 사람이니까.
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말을 끝내고 있었다.
“부디. 영웅이라는 고귀한 업적에 걸맞게 체포에 응해 주십시오.”
남자의 등에서 또 다른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그때, 진재희는 조용히 물었다.
“어떡해?”
“뭐……. 응하지.”
난 나에게 다가오는 괴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날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은 분명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그래도 이런 식의 대우는 있을 수 없었다.
난 이 도시를 계획하고, 만든 사람이다.
날 체포하려고 든 놈의 목적이 무엇인진 모르겠으나. 날 체포한다고 해도 나에 대한 대우를 이런 식으로 할 순 없을 거다.
무언가가 있겠지.
그리고 이런 공작을 벌인 그놈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 * *
토지부장실.
호화스러운 사치품들이 가득한 방.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고급 가죽 소파가 마주 보고 있었고, 소파 사이에는 양주들과 컵이 가득 놓여 있었다.
방 한편에는 거대한 만경의 지도가 걸려 있었다.
책상 위의 카세트에서는 연이어 나름 최신 가요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만경의 토지부장, 이석진은 책상에 앉아 손톱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톱깎이로 걸리적거리는 손톱을 잘라 내고, 사포에 문대며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의 새끼손가락에는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그때, 몇 무리의 사람들이 부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경호팀 길대헌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의 머리카락이 창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휘날렸다.
이석진 부장은 손톱에 입바람을 불며 말했다.
“들어와.”
부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강시온을 체포한 길대헌이었다.
길대헌은 이석진이 있던 책상까지 다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체포했습니다. 현재 둥지를 향해 호송하고 있습니다.”
“문제없이 잘 해결했지?”
“예. 부장님이 예상하신 대로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았습니다.”
길대헌의 보고에 이석진은 피식 콧방귀를 뀌었다.
“거기서 반항하는 행위 자체가 자살 행위라는 걸……. 그 ‘위대한’ 영웅님께서도 자각하고 있던 것이겠지. 내가 말했잖아. 똑똑한 분이라고.”
끼익-.
그 말 뒤로 이석진은 의자에서 일어나 부하를 지나쳐 테라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은 따사로운 햇살이 드는 테라스를 개조한 수영장이었다.
그 앞에는 여자 둘이 나란히 서 있다.
이석진이 손을 내밀자, 한 여자가 골프 가방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석진은 테라스 끝, 만경의 전경이 보이는 곳에 섰다.
그곳에는 간이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기구들이 있었다.
길대헌은 그를 따라가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둥지에 도착하면, 우선은 지하 3층의 독방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지. 아니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다 같이 X 되자는 거냐? 강시온은 뭐라 해도 만경의 영웅이다. 지금 당장 시장바닥만 나가봐. 그를 신봉하는 자들이 한 둘인가.”
쓴소리를 한 이석진은 골프공을 폴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드라이버로 골프공을 조준하며 몸을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합법적인 이유로 그를 체포한다 한들, 내가 강시온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내가 노리는 건 강시온의 목숨이 아니야. 그렇다고 하윤하의 왕위도 아니지. 왕? 그런 귀찮은 걸 내가 왜 해야 해? 그치?”
이석진은 동의를 구하는 듯 길대헌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전속’골프 코치인 짧은 치마의 여자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잡았다.
“조금 자세를 낮추고요. 팔에 힘을 빼세요.”
그녀는 만경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소위 공무원이었다.
이석진은 계속 말했다.
“명심해. 우리 입장에서도 그는 극진하게 모셔야 할 귀빈이야. 영웅을 감옥에 처넣으면……. 아직까지 총인구의 70%가 지지하는 영웅을 그렇게 대우하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날 거야. 그럼 안 되지. 안 돼. 안 돼. 강시온은 모신다. 철저하게 모신다. 신처럼 모셔. 그게 네가 할 일이야.”
그때, 이석진은 상체를 비틀어 힘차게 골프공을 쳤다.
휘릭-. 타악!
골프공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도시를 향해 뻗어 나갔다.
새하얀 구름이 낀 하늘을 바탕으로 그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휘유-! 잘 날아가네!”
이석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골프공이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하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나이스-샷!”
“대단합니다!”
“이야-! 자세가 잘 나옵니다!”
짝짝짝짝-.
이석진은 부하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골프 선생에게 드라이버를 건넸다.
이석진은 흰 장갑을 벗으며 다시 집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강시온은 내 세 번째 별장에다가 모셔 둬. 그리고 원하는 건 뭐든 줘. 여자, 음식, 술, 사치 거리, 전자 게임기도 좋아. 가지고 싶은 건 뭐든. 단,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 그곳에서 나오면 안 돼. 그리고 왕에 대한 감시는 철저하게 해. 하윤하가 강시온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몰라야 돼.”
“예, 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이석진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 가죽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고급 양주의 뚜껑을 땄다.
딸그락-. 촤르륵.
크리스탈 잔에 가득 담긴 얼음이 양주를 만나 노랗게 물들었다.
그는 컵 하나를 더 꺼내 양주를 담았다.
그리고 길대헌에게 건넸다.
길대헌은 허리를 굽혀 이석진에게서 양주잔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탱-!
잔끼리 부딪히며 청량한 음성을 내었다.
“앞으로 조금이야. 나만 믿고 따라와. 그 돈만 거머쥔다면. 이 세계를 거머쥘 수 있다. 그 돈만 있다면 말이지.”
“…….”
이석진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단번에 잔을 비워 냈다.
그의 사악한 미소를 바라보던 길대헌은 이내 자신의 잔도 말끔히 비워 냈다.
이석진과 길대헌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길대헌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술기운에 볼이 붉어진 그에게 물었다.
“나머지 셋은 어떡할까요?”
“나머지 셋?”
“예. 강시온의 부하들입니다. 최명준, 최현지, 진재희. 셋 모두 전쟁에 크게 기여한 바가 있어, 만경 내에서 위치가 있습니다. 게다가 최명준은 현 만경의 최정예 부대의 뿌리이기도 하고요.”
“아. 그렇네……. 그 성가신 3인방…….”
이석진은 조금 생각을 하다 이내 결론을 내었다.
“둥지, 콜로세움으로 보내. 직접적인 처형은 불가할 테니. 어차피 거기선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