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훌륭한 짐꾼 (1)
“미친! 미친! 미친!!!”
최현지는 그렇게 세 번 외치고는, 운동장에 펼쳐진 광경을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았다.
만경, 방랑자 거주 구역.
이곳은 원래 방랑자 출신이었던 ‘최현지’를 그 어느 것보다 흥분하게 만들었다.
최현지는 금세 달려 나가 이곳저곳 방랑자와 이 종족을 살펴댔다.
“퀘, 퀘스트 창?! 이건 뭐예요?”
“드워프! 저건 나가족?! 헐. 오크도 있어. 저것 봐! 오크야!”
“이건 뭔 고기예요?”
“헐, 지도가 이렇게나 많이 나왔다고? 얼만데요?”
마치 처음 놀이동산에 놀러 온 어린 꼬마처럼 이리저리 쏘다녔다.
최현지가 놀이동산에 처음 놀러 온 꼬마였다면, 남은 원정대는 그걸 바라보는 사촌 형, 누나 같은 입장이었다.
강시온과 진재희는 나름 흥미롭게 주위를 둘러보곤 있지만, 흥분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최명준의 감정은 오묘했다.
그는 주위에 돌아다니는 거구의 생명체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오크라고……?’
우락부락한 팔 근육. 날카로운 어금니. 구릿빛 피부까지.
누가 보아도 최명준의 상위 호환 의 육체였다.
‘형님이 오크를 부린다면……. 내 짐꾼 포지션이 위험해.’
최명준은 다른 느낌으로 불안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원정대는 이곳에서 하루 동안 휴식을 지내기로 했다.
궁전에 버금가는 화려한 식사와 이부자리는 아니었지만, 강시온은 오히려 이렇게 소소한 공간이 좋았다.
만경의 왕으로 있을 때에도 남들이 자신을 위하여 허리를 굽히거나, 과하게 낮추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강시온은 방랑자 시장 거리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숙박 시설은?”
“내가 알아볼게!!!”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최명준과 최현지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이윽고 둘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형님의 심부름은 내가 한다. 넌 빠져라.”
“너가 방랑자 시스템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음? 방랑자 커뮤니티도 모르면서.”
“뭐야?”
“뭘.”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 이미 진재희는 근처 노점상과 이야기를 해 숙소를 알아냈다.
강시온은 서로에게 이를 갈고 있는 둘을 뒤로 한 채, 그녀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한 일행은 방을 두 개 잡고, 성별에 따라 나누기로 했다.
그러자 진재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성별에 따라 방을 나누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자신이 강시온과 같은 방에 들어가야 한다고 일행에게 주장했다.
최현지는 진재희의 팔을 끌어안으며 달랬다.
“제발, 동생님아. 여기가 빛남도 아니고. 만경인데. 응? 가끔은 우리끼리 놀기도 하자고.”
“…….”
평소라면 완고하게 그의 옆에 있겠다고 언성을 높였겠지만, 재희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빛남에 있었던 감정의 변화 때문이었다.
그를 지킨다는 건.
정말 그의 갑옷처럼 곁에 딱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지키는 것보단, 도움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또 그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례로 빛남에서 자신은 괜찮다는 강시온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변(變)을 당하지 않았나.
가끔은.
정말 가끔이겠지만, 진재희는 강시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강시온의 말은 대부분 옳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강시온은 ‘자신의 건강’ 따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더 치밀해야 해. 내가 더……. 빛남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되니까.’
진재희가 혼자서 진지하게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자, 강시온은 상황을 정리했다.
“하루 이틀 정도는 푹 쉬어. 나도 잠시 도시를 돌아다니고 싶기도 하고.”
“어, 응.”
“그럼 결정이네? 내일도 쉬는 거?”
“알아서 해. 어차피 옆 방이잖아. 저녁에만 모이면 돼.”
그 말을 끝으로 강시온은 최명준과 함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잔뜩 신이 난 최현지가 여전히 진재희의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오. 나이스~ 나이스~ 동생님아. 내일 뭐 할래? 어머. 동생 옷 봐. 이거. 완전 너덜너덜하잖아. 쇼핑할래?! 아까 보니까 옷 가게가 줄지어 있던데.”
“훈련.”
“……그딴 거 말고.”
그렇게 원정대는 두 팀으로 나뉘었다.
* * *
도시에 어둠이 짙게 깔리자 곳곳에서 노란색의 빛들이 차올랐다.
나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테이블 중앙에 있는 어느 한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반딧불이……. 뭐. 그런 비슷한 생물인 건가?’
램프처럼 생긴 유리관 안에는 반딧불이보다는 큰 어떤 생명체가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은 생각보다 밝아서, 순간 도시에 전기가 들어오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형님. 근데 왜 바로 하윤하를 안 만나는 겁니까? 칙령……. 이었던가. 그걸 사용하면 바로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최명준이 반대편에서 내게 물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여러 음식과 함께 음료가 놓여 있었다.
방랑자 숙소에서 파는 저녁 식사 거리였다.
난 그중 오독오독한 식감의 무언가를 들곤 씹었다.
“급하게 윤하를 만날 필욘 없지. 솔직히 조금 쉬고 싶기도 하고.”
반대편 테이블에선 오크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왁자지껄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세계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아보고 싶어.”
오크들의 테이블 밑에는 벌써 5통이 넘는 술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원래 만경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광경이었다.
오우거나, 악어 거북 같은 ‘지능’이 없는 몬스터야 여럿 보았지만.
이번 대규모 패치 빅뱅 이후로는 이 리그에 ‘지능’을 가지고 있는 여러 생명체가 등장했다.
내가 회귀자를 통해 파악하고 있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저들이 어떤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물론 드워프 종족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필요했다.
붉은 원석을 제련할 수 있는 드워프 종족.
붉은 원석의 역할은 3라운드와 4라운드에서 대단히 중요했다.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붉은 원석은 플레이어의 아티팩트 능력을 제어, 즉, 능력을 봉인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원으로써 가치가 훌륭하다.
당장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저 요리사만 해도, 프라이팬 밑에 붉은 원석이 놓여 있었다.
붉은 원석은 압력을 가하면 뜨거워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사용 방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지구 자원을 대체할 수 있었다.
그건 드워프들과 거래를 통해 얻어야 할 제련 기술이다.
세 번째는 아무래도 드래곤의 비닐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광물이라는 것이다.
각 세력의 왕들은 붉은 원석을 독점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붉은 원석이 상용화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채굴 능력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채굴에 대한 해답도 결국 드워프다.
드워프는 여러모로 보물 같은 종족이지만, 그중 검은 수염 드워프들이 제일이다.
오직 그들만이 붉은 원석을 제련할 수 있으니까.
만경을 돌아다니다 보면 드워프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갈색 수염 드워프들뿐이었다.
‘검은 수염 드워프들은 인천, 방랑자 연합에 있다고 했어.’
원래는 제주도 한라산에 소환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이겠지만, 바닷길이 뚫리고 나서는 인천을 통해 서울로 올라오는 검은 수염 드워프들이 적지 않다.
아마 지금 이 시대가 대변화의 시대이기 때문일 터.
어떻게 보면 5년이 지난 이 시점에 돌아온 것이 내게는 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불필요한 시간들이 한 번에 스킵된 것이었으니.
난 시민들을 살피며 붉은 원석이 어떻게 가공되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도시 국가의 왕으로서 그것들을 파악한다면 한계가 있을 터이니, 방랑자의 입장에서 찬찬히 뜯어볼 생각이다.
아그작-!
이상한 과자를 먹다 보니 나의 시선은 아무 곳에 꽂혀 있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너무 대놓고 사물을 관찰한다는 것이 나의 단점이었다.
그랬기에 과거에도 시비를 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난 싸움을 피하는 것을 택했다.
“…….”
난 너무 오크를 대놓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잔뜩 술에 취한 오크 한 마리가 나와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눈을 자연스레 돌려 최명준을 바라보았지만, 오크는 내 시선을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검은 문신을 한 오크는 날 노려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형님-. 이것도 좀 드셔 보십시오. 이거 되게 맛있습니다!”
오크가 날 향해 다가오고 있음에도, 내 앞에 앉아 있던 최명준은 먹는 데에만 정신 팔려 있었다.
그 순간.
텅-! 콰당!
내게로 다가온 오크는, 최명준의 뒤통수를 붙잡고는 그대로 스프 안에 처박아 버렸다.
시비는 나에게 걸었을 터인데, 화풀이 대상은 최명준이었다.
“인간. 아까부터 뭘 보나?”
낮고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또렷한 한국어.
생각해 보니 빛남의 구울들도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인간이 아닌 생물이, 한국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
“너 이 새끼. 너도 내가 오크라고 무시하는 거냐? 인간이면. 이종족을 노려봐도 되는 거냐?”
아, 그렇군.
이종족은 이 도시 안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난 태연하게 나무 컵을 들어 물을 마시며 오크를 올려다보았다.
오크는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위협했다.
오크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선술집에 있던 다른 오크들의 시선이 쏠렸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분위기는 험악하게 흘러갔다.
‘……근데.’
조금 이상한 것이 있었다.
내가 아는 하윤하라면 성격상, 차별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째서 차별이 존재하는가?
그 해답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곁에 있던 날렵한 타입의 오크가 내 앞의 술 취한 오크를 말렸다.
“그만하소! 아, 저기. 미안합니다. 이 형제가 오늘 부대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해서. 인간 동료들이 따돌리고 그런가 봅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십시오. 인간 형제여.”
“인간 놈들이 오크를 그렇게 벌레 보듯 쳐다보는 게 역겨워. 역겹다고!”
오크가 버럭버럭 소리 지를 때마다 침이 튀어 이마에 묻었다.
난 자연스럽게 침을 닦아내고는 다시 문신 오크를 바라보았다.
“그만해라! 형제! 또 헌병에 잡히지 말고!”
“다음에 보면 결투로 승부를 보자고! 눈싸움 말고! 알겠나! 부대 놈들도 똑같아! 자신 있으면 힘으로 해 보자고! 킁!”
“가자고! 어서! 가자!”
“…….”
난 별다른 대응 없이 그들을 돌려보냈다.
차별인가…….
인간 사회에서도 법적으로 정한 차별은 없지만, 사회에 차별은 분명 존재했다.
아픈 자에 대한 차별.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차별.
나이에 대한 차별.
이 도시 속 이종족들도 그런 차별을 겪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이곳은 인간들의 도시이고.
이종족은 이방인들일 테니.
“기다려.”
그때, 스프에 코를 박고 있었던 최명준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스프가 그의 얼굴에서부터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곤 내게 고개 숙이며 물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는 내게 정수리를 보이며 허락을 구했다.
몇 번, 그의 행동을 제지했더니 이젠 사전에 허락을 맡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겠지만, 좋은 타이밍이다.
오크의 힘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과연 최강의 인간을 상대로, 어떤 힘을 낼지.
난 되돌아가는 문신 오크를 붙잡았다.
“결투라고 했나?”
“뭐인가. 인간 형제. 나한테 볼일이 남았던 것이냐?”
“하지. 결투. 내기를 걸어야 하나? 네가 이기는 경우에 뭘 걸면 될지 먼저 정해라.”
“…….”
검은 문신 오크는 술이 조금 깼는지, 우락부락한 표정을 하고선 날 노려보았다.
그러다 술집 전반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내가 이기면 이곳에 있는 손님 전원의 술값을 계산하라! 이 술집의 술값은 만만치 않을 거다. 적어도 50라이터는 필요할걸? 네 한 달 월급보다 많이 나올 것이다! 근데! 행색을 보니 영 그런 큰돈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드는군. 인간 형제여. 돈이 없다면 결투도 없다.”
50라이터라.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의 1퍼센트 정도였다.
난 먼저 최명준에게 물었다.
“이길 수 있겠어?”
그는 여전히 내게 정수리를 보이며 말했다.
“찢어 죽일 수 있습니다. 형님.”
“좋아.”
난 안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담배 한 까치에 라이터 20개니까.
대충 세 까치를 들어 책상에 놓았다.
모두가 놀랐다.
“다, 다, 담배?!”
“한 갑이나 있어…….”
“역시 평범한 방랑자가 아니었어. 저 인간 형제.”
놀란 건 검은 문신 오크도 매한가지였다.
아무래도 돈에 대한 가치는 인간이나 오크나 비슷한 모양이었다.
“어때? 오크. 이만하면 증명이 되었나?”
내 질문에 문신 오크는 미소를 보였다.
“충분하다, 인간 형제.”
“대신. 네가 지면 어떡할래? 담배 세 까치의 가치를 내줘야 할 텐데. 네가 말했다시피, 꽤 비싸다고?”
문신 오크는 콧바람을 킁, 내뱉더니 말했다.
“팔 한쪽을 주지. 내가 인간한테 힘으로 질 리가 없다. 어떤가. 충분한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순간.
선술집에 있었던 다른 오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결투다!”
“피와 살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결투다! 결투!!!”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선.
마치 경기를 응원하는 자들처럼.
그들은 선술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놀이였다.
* * *
“최명준! 최명준!”
“최명준! 최명준!”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최명준과 검은 문신 오크를 둘러싸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근데, 오크들이 연신 최명준의 이름을 소리치고 있었다.
그때, 선술집 사장이 강시온에게 넌지시 다가와 말했다.
그는 인간이었다.
인간인 방랑자.
“저…… 괜찮겠습니까? 사장님. 저 검은 문신. 최명준의 정예대원이라는 표시입니다. 최명준의 정예대원은 이 일대에서도 아주 유명한 살육 집단입니다. 정예대원들과는 되도록 엮이지 않는 것이…….”
‘아-. 그렇게 된 건가.’
선술집 사장의 말에 강시온은 조금 미소를 보였다.
상황이 재밌게 되었다.
최명준과 최명준이 키워 낸 제자가 키워 낸 오크 정예대라니.
저들은 꿈에도 자신들이 상대하는 남자가, 정예대를 이끄는 최명준이라고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오크는 두 손을 번쩍번쩍 들며 관객들에게 호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승리다!!!”
“정예대는 반드시 승리한다!!!”
“살살 해라! 살살!”
그 뒤, 검은 문신 오크는 손 마디마디를 꺾어 대며 최명준에게 다가갔다.
최명준의 키는 197cm.
검은 문신 오크의 키는 230cm였다.
근육면에서도 차이는 컸다.
하지만 검은 문신 오크를 앞에 둔 최명준은 각오를 다졌다.
이 새끼한테 지면, 자신은 밥과 담배만 축내는 돼지 새끼일 뿐이라고.
형님의 짐꾼에서 탈락이라고.
최명준은 그렇게 각오를 다지곤 앞으로 나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