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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50화 (150/221)

제150화. 대규모 패치: 빅뱅

검은 물체가 거둬지고 쨍한 햇빛이 눈동자에 들어왔다.

나는 손바닥을 들어 햇빛을 막았다.

며칠 간의 공방 끝에 좀비들은 눈 녹듯이 사라졌고, 우린 드디어 이 숲을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을 바라보자, 짙은 파란 배경에 구름이 떼 지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겠지만, 숲에 있는 동안에는 끝없이 높게 뻗어 있는 나무들에 가려 하늘을 잘 볼 수 없었다.

가끔 하늘이 뚫려 있는 지역이 나와도, 지금처럼 하늘이나 쳐다보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으니까.

평화롭게 떼 지어 가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이제야 시간이 바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캬. 여기가 원래 숲이었다는 게 안 믿기네. 깔끔하게 밀렸어. 공사판처럼 말이지.”

최현지의 목소리에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은 정말 신축 아파트를 짓기 위해 깔끔하게 밀어 버린 재개발 지대를 연상케 했다.

그 울창했던 나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토양은 한번 뒤집어엎어 평탄해져 있었으며, 진재희의 칼날이 닿은 지대는 아예 작은 협곡이 되어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론 멀리 보이는 독 지대는 여전했다.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는 독 지대는 주변이 싹 다 밀려 있는 탓에, 이전보다 더욱 눈에 띄었다.

진재희의 설명에 의하면, 저 독 지대는 자신과 전투를 벌였을 때도 접근조차 불가능했다고 했다.

멀리서 투사체 아티팩트를 쏘아 오염된 토양을 들춰낼 수는 있겠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는 독성 물질을 제거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여전히 수원으로는 갈 수 없었다.

독 지대를 감싸고 있는 방향의 지평선 일대로는 여전히 나무들이 무성했다.

기억은 전혀 나지 않지만.

난 이곳에서 진재희와 싸웠다고 들었다.

솔직히 내가 어떻게 진재희를 압도했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 이 세계는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뿐이었다. 해답을 찾으려고 해도 오답밖에 찾을 수 없는 일들이 천지였으니까.

동생은 잘 살아가고 있다.

그건 이번 원정에서 얻은 값진 정보였다.

동생은 그 강력한 녹룡을 쓰러트린 존재이니까 말이다.

애태울 것도, 보챌 것도 없었다.

난 천천히 동생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저 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만경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여긴가? 아님, 여기?”

최명준이 요리조리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길 찾는 데는 도사였던 최현지가 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로 가면 돼.”

“거긴 숲인데.”

“저 숲을 지나야지, 멍청아.”

이 둘의 이야기를 흘려듣고 있다 보니, 진재희가 어느새 내 곁으로 살며시 다가왔다.

“업데이트양이 상당한걸.”

“대규모 패치, 빅뱅이지?”

“그치. 5년이란 세월이 흐른 게 실감이 가.”

대규모 패치, 빅뱅.

이는 리그의 판도를 전체적으로 재정비할 목적으로 진행되는 위원회 측의 대규모 패치였다.

지금껏 유지되던 인터페이스를 정리하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업데이트하는 이른바 재정비 패치.

물론 그동안의 목적이 변하진 않았다.

군주-플레이어-방랑자.

3개의 팩션에게 주어진 각 3개의 퀘스트는 지금처럼 유지되었다.

즉, 라운드 별로 진행되는 퀘스트를 가장 먼저 클리어하는 ‘집단’이나 ‘개인’이 리그에서 우승한다는 기본 룰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빅뱅을 통해 바뀌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Ⅰ. 각 라운드의 부분별 랭킹, 메인 상태 창의 활성화.

Ⅱ. 이종족 업데이트.

이 두 개의 키워드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난 알림 창의 내용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진재희 최현지에게도 같은 내용의 알림 창이 나타났다.

“이게 뭐야? 메인 상태 창의 활성……?”

“뭔데? 뭐? 나만 안 보여? 형님. 보이십니까? 저는 이 종족 업데이트? 이것밖에 안 보이는데.”

주변에서 무어라 떠들든 간에, 나는 변화된 상태 창을 천천히 살폈다.

예를 들어, 나의 상태 창으로 보자면.

기존에는 군주의 상태 창과 방랑자의 상태 창을 병렬하여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그 두 개의 상태 창이 하나로 합쳐졌다.

보는 사람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아마 이 리그를 지켜보는 존재들을 위한 업데이트일 것이다.

상태 창에서 첫 번째로 나와 있는 건 칭호였다.

[F급 플레이어][도시국가 왕][방랑자][마녀 처형자: 필드 보스 경기권 클리어(모든 능력치+5)]

두 번째는 방랑자에 관한 개인 상태 창 및 퀘스트.

[방랑자, 강시온.] [3라운드]

[퀘스트: 드래곤을 잡아라(0/1)]

[보유 아티팩트(스킬): 구체, 죽은 자들의 군단, 돌창.]

[무력: 30(+5)/100][지력: 100(+0)/100][체력: 10(+5)/100][아티팩트: 22(+5)/100]

“본격적으로 정말 게임처럼 만들어 놓았네.”

난 상태 창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진재희가 보충 설명을 이어갔다.

“응. 더 보기 편하도록. 지금까지 우린 아티팩트의 능력 수치를 유추만 했었잖아. 정확한 수치를 객관화해서 볼 순 없었어. 그런데 이젠 달라.”

확실히, 진재희에게 아티팩트를 수련받기 위해 우린 안양 일대의 조그만 던전을 돌거나 훈련을 거듭하며 분명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성장했다는 그 사실을 아무리 체감한다고 해도, 그것을 객관화된 수치로 확인해 볼 방법이 없었다.

마치 과거의 보디빌더들이 인바디 측정 장비가 없어서 눈으로만 성장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무력]- 육체가 가지는 전투력.

[지력]- 아티팩트를 유지할 수 있는 정신적 지속력.

[체력]- 말 그대로 체력.

[아티팩트]- 해당 아티팩트의 활성화 정도.

하나하나 손가락을 가져가니 그 항목의 세부적인 부가 설명들이 떠올랐다.

나는 원정대의 전력을 다시 한번 파악하기 위해 일단은 진재희에게 상태 창에 대해 물었다.

“넌 어때?”

“아, 난.”

기본적으로 상태 창은 타인이 확인할 수 없기에, 진재희는 친절히 말로 설명했다.

[S급][진재희]

[무력: 82/100][지력: 66/100][체력: 89/100][아티팩트: 54/100]

정말 어마무시한 스탯이었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하니 정말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나는 다음으로 최현지의 스탯을 확인하기로 했다.

“최현지. 넌 어때?”

최현지는 방금 전 진재희의 스탯을 듣고는 입을 떡 벌리고 있다가 당황하며 대답하였다.

“어, 어? 나? 오케이. 나는 말이지.”

[A급][최현지]

[무력: 32/100][지력: 41/100][체력: 10/100][아티팩트: 64/100]

최현지의 능력치는 기본적으로 전투를 아주 잘하는 방랑자나 플레이어에게서나 볼 수 있는 수치였다.

진재희가 말하기를, 웬만큼 리그에서 알아주는 플레이어들의 평균 스탯이 40이라고 했으니.

이 정도도 정말 훌륭한 스탯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진재희의 스탯은 그야말로 압도적.

다시금 회귀자라는 존재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다.

“왜? 나는? 없어?! 왜! 나는!”

구석에서는 최명준이 잔뜩 성을 내었다.

아쉬운 일이지만, 애초에 그는 플레이어가 아니기 때문에 상태 창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난 그를 뒤로하고 다시 상태 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개인 상태 창 밑에 있는 것이 기존 도시 국가 왕에 관한 군주 상태 창 및 퀘스트.

지난 5년간의 업데이트가 완료된 군주 상태 창이었다.

[만경의 왕: 강시온]

[수도: 만경]

[보유 도시: 79

시민 수: 140,851

지역 내 순위: 3(경기)

자원: 식량 1,935, 사치품 2,805,190개. 무기 217,938.

지지율: 68%

병력: 15,851명]

상태 창이 보기 편해진 건 둘째치더라도, 무엇보다 놀랐던 건 시민 수와 사치품이었다.

‘설마 윤하가 내 사치품을 단 하나도 안 건드렸다는 건가.’

내 예상이 맞는다면, 하윤하는 지금 이 리그에서 유일하게 ‘군주 상태 창’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군주일 것이다.

사실 만안경찰서 서장이 내게 했던 것처럼 군주의 권한을 일부 양도해 주었다면, 충분히 여타 다른 군주들과 같은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윤하는 그런 상태 창을 보거나 활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가 모으고 있던 사치품, 즉 국고는 전혀 건들지도 않은 채, 시민 수를 14만 명에 육박하게 성장시켰고, 보유 도시도 거의 두 배로 확장시켰다.

물론 병력은 동원령이 발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낮게 나오는 것일 테고.

지지율이 하락한 건, 내가 세력을 떠나 있어서 그럴 터.

사실 지지율 68%도 다른 세력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

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잘했네. 잘 키워 놨어.’

하윤하를 차기 지도자로 점찍어 두었던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그녀는 정말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벌써 만경으로 가는 길이 기대될 정도다.

그때, 진재희가 내게 물었다.

“만경은 어때? 괜찮아?”

“순항 중.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상황 같아.”

내가 키워 낸 지도자가 이렇게나 성장하고 있으니, 앞으로 방랑자로서의 길도 순탄하게 흐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 걱정이 조금 앞서긴 했었다.

만약 돌아갔을 때, 군수 창고와 지원을 해 줄 세력이 없어진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괜한 걱정을.

다행히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님들. 님들도 보여? 이 업데이트 공지 창.”

“그건 나도 보인다. 아-. 이종족들의 등장……. 이거 말하는 거지? 뭐, 별놈들이 다 있네.”

최현지와 최명준이 서로의 공지 창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것이 이번 대규모 패치의 두 번째 업데이트.

그리고 3라운드를 클리어할 핵심 키워드.

바로 이종족들의 등장이다.

사실상 이곳 빛남에 살고 있던 구울들도 이종족의 일부였다.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고, 여타 다른 야생 동물과는 다르게 사회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종족들.

그리고 ‘붉은 원석’을 제련할 수 있는 유일한 종족들.

붉은 원석은 이 세계에 등장한 새로운 자원이다.

앞으로는 이 붉은 원석이 매우 중요했다.

바로 ‘용의 비늘’을 꿰뚫을 수 있는 유일한 원석이기 때문.

‘물론 나한테는 드래곤도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돌창이 있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써먹을 데가 분명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에 쓰려면 아껴야만 했다.

우선 드워프 종족을 찾아야 한다.

드워프 종족.

솔직히 뭐 하는 종족인지는 잘 모르지만, 진재희의 설명에 따르자면 대장장이 종족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아주 노련한 장인들만이 이 붉은 원석을 가지고 여러 가지 무기들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곳에 오기 전, 총이 등장한 것도 어쩌면 이 붉은 원석을 가공한 결과물일 수 있어.’

물론 총은 구매 가능한 물품이다.

1라운드 당시 K가 말했듯 총은 트레이드 마켓이나 관리자가 여는 상점에서 구매가 가능했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싸고(당시 나의 국고로도 겨우 20~30정 밖에 구매할 수 없었다.) 효율도 떨어지기에, 국가 차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다.

게다가 총은 아티팩트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개인 플레이어가 사용하기에도 큰 메리트가 없는 자원인 셈이다

그랬기에 안양역에서 총을 든 정부 구조 요원들이 등장했어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총은 무력하니까.

붉은 원석 앞에서는.

여기까지가 대규모 패치 내용이다.

그리고 이건 이미 진재희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최현지는 놀란 듯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난 이미 업데이트에 대한 준비를 해 둔 상태다.

하윤하가 나의 재산을 건들지 않았다면, 이제 담배값은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수직 상승했을 것이다.

담배는 이제 황금보다 더 희귀한 사치품이다.

담배는 소모가 되니까.

물론 옛날 조선 시대처럼 담배를 제조할 수도 있겠지만, 상품으로 만들어진 담배는 다르다.

지금은 적어도 3배, 아니 5배까지 가격이 뛰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만경의 시장을 가 보면 알 일.

먼발치의 숲을 바라보았다.

발걸음을 서두르고 싶었다.

난 어수선한 원정대를 불렀다.

“이제 가자. 여기서 시간을 너무 낭비했어.”

원래라면 3~4일 걸렸어야 할 원정.

5년이나 걸리고 말았다.

“가자. 다시 만경으로.”

우린 다시 만경으로 간다.

내가 만든 나의 도시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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