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49화 (149/221)

제149화. 5년간의 변화: 강준호의 경우

강시온의 말은 장장 8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진재희는 말문이 막힌 듯 벙찐 표정으로 시온만 바라보고 있었고.

최현지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냐며 박장대소를 했다.

최명준은 과연 형님이시라며 신난 표정으로 연신 감탄해 댔다.

모든 것을 말한 강시온은 의자의 등받이를 누우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린 그렇게. 이 리그를 끝낼 거야. 따라오지 않아도 돼. 하지만 따라온다면. 날 믿고 끝까지 같이 가야만 해.”

언제나 그랬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끝끝내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

일행은 강시온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말한 이야기 역시도 그런 일.

그것도 지금까지 그가 시도했던 일들을 한 차원 뛰어넘는 계획이었다.

그러니 강시온의 계획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모두가 강시온을 따르겠다고 했다.

머리로는 불가능한 일일 거란 생각이 들어도,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런 걱정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기에.

진재희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금 감정에 변화를 느꼈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긴 시간을 함께한 그였지만, 아직까지도 그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졌다.

회귀한 직후,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안양에 올라왔다.

평화로운 열차 안.

그 안에서 진재희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갈등했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이 리그를 헤쳐 나가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 옳은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진재희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실감했다.

역시 그는 이 빌어먹을 리그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

강시온과 대화를 마치고, 시간이 흐른 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무렵이었다.

구울 좀비들은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필드 보스 마녀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퀘스트는 그렇게 클리어되었다.

[마녀를 죽여라.]

[필드 보스: 빛남의 마녀]

[클리어!]

[보상자: 강시온(플레이어)]

[보상: 죽은 자들의 군단(S급 스킬)]

원정대는 지긋지긋한 숲을 빠져나와 다시 바깥세상으로 향했다.

드디어 다시 만경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뒤틀렸던 시간은 이제 다시 원래대로 바로 잡혔다.

원정대가 숲에서 나왔을 땐,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제는 다시 현재를 살아갈 때였다.

곧 마주할 거대한 변화를 기다리면서.

그건 정말 거대한 변화였다.

* * *

“으아아아아아!!! 갸아아아아악!!! 아아……! 아아아아……!!!!”

K는 절규했다.

쇼는 성공적이었지만, K에게 남은 건 끝없는 형벌뿐이었다.

죄목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K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쏟아부었지만, 한낱 인간이었던 ‘강시온’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를 탈락시키지 못한 대가는 컸다.

그것은 절대자로부터 영원한 삶을 빼앗기는 것.

그건 어길 수 없는 약속이었다.

K는 절대자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마지막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

그러고는 패가망신한 자처럼 바닥에 엎드려서는 눈물을 줄줄 흘려가며 사정했다.

하지만 K를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시선은 냉혹했다.

사정하다.

그 뜻은 어떤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남에게 말하고 무엇을 간청한다는 뜻이다.

그건 약한 존재가 하는 일이다.

고귀한 존재는 결코 남에게 사정하지 않는다.

고고한 존재는 결코 남에게 고개를 조아리거나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K는 지금 인간만도 못한 추태를 보이며 절대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런 K를 보며 절대자가 내릴 판단은 하나뿐이었다.

처분.

쓸모가 없어진 물건은 매정하게 버려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K는 절대자에게 그냥 장난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 아아……. 제바알…….”

서서히, K의 발목부터 먼지로 변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존재 자체가 삭제되는 것이었다.

마치 컴퓨터 게임 속 캐릭터가 클릭 한 번으로 원래 없었던 것이 되는 것처럼.

K는 울음을 터트리며 절규했다.

“고작 인간 때문에……. 수천 년을 산 내가……. 내가……. 아……. 억울해……. 억울하단 말입니다……. 아아…….”

허벅지, 배, 가슴까지.

이제 얼굴과 손밖에 남지 않은 K는 절대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절대자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평소 절대 소리를 내어 웃지 않던 절대자였기에 K는 흠칫했다.

“고작 인간이라고……?”

그리고, 절대자는 가면을 벗어들었다.

그 가면 속에서 드러난 얼굴은 다름 아닌…….

“……아!”

K는 삭제되는 와중인데도 너무나 놀라 된소리를 내었다.

절대자의 빨간 입술이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끝까지 무지하구나. 멍청한 것아.”

“아…….”

K는 그렇게 사라졌다.

마지막에 K가 가졌던 심정은 허무함과 절망감뿐이었다.

K가 완전히 사라지자 절대자는 다시 가면을 썼다.

그리고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갔다.

“순조롭네. 과거로 회귀한 자와, 그 회귀자가 목숨을 걸고 지키는 존재.”

“…….”

그 누군가의 정체는 강시온의 꿈속에서 나왔던 장발의 강시온이었다.

“사실상 본인이 회귀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지. 제아무리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또 그런 자가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고 리그에서 살아남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

절대자는 장발 강시온을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정보 수집은 어때? 이제 어느 정도 진전이 있나?”

장발 강시온은 물었고 절대자는 대답했다.

“순조롭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에게 마지막 퍼즐이라고 말한 이유가 뭐지?”

절대자의 물음에 장발 강시온은 조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야. 그래야. 좀 더. 음…….”

장발 강시온은 생각을 마쳤는지 손뼉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

“재밌으니까! 푸흐흐…….”

“쓸데없군.”

“퍼즐 조각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수가 필요하고, 이제 ‘만들어진’ 퍼즐 조각은 고작해야 13 정도니까.”

“시간이 얼마 걸리든 상관없어. 난 알고 싶다.”

절대자는 장발 강시온에게서 시선을 거둬 우주를 바라보았다.

별들이 촘촘하게 빛을 내는 저 너머, 공허한 우주의 끝.

절대자는 그 우주의 끝을 보고 싶었다.

“누구냐. 누구지. 알 수 없다.”

절대자는 그 우주의 끝이라고 생각되는 저편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인간은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진화한 생명체다.

과학, 문학, 정치, 역사.

그 모든 건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호기심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그 호기심은 무한한 것이어서, 그것이 하나씩 해결될 때마다 마치 우주에 한 발짝 다가서는 듯한 깊은 쾌락과 희열을 느낀다.

오감과 연관된 그 어떠한 쾌락보다 더 높은 차원의 쾌락이었다.

인지한다는 것.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이젠 어디로 향하는가.

절대자는 그 질문의 해답을 알아 내겠다는 인지의 쾌락을 원했다.

절대자는 그런 존재다.

절대자는 그걸 위해 존재하는 이 세상 유일신(神)이었다.

* * *

수원 화성, 경기 제1세력 수도.

이곳은 단언컨대 한반도 내부 세력 중 가장 큰 발전을 이룩한 곳이었다.

화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인구는 20만 명에 육박했다.

이 인구수는 인간 8만, 이종족 12만을 합한 숫자였다.

인구 12만에 육박하는 이종족들은 도시의 분위기를 확연히 변화시켰다.

어느 순간 다른 차원에서 지구로 이주당한 그들은 나름대로 지구의 질서에 맞춰 가며 살아 갔고, 원래의 주인인 인간들 역시 그들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수원화성 세력은 그중에서도 도시 내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이종족인 드워프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숲 지대와 가까운 위치였기 때문에 도시 외곽에는 목재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엘프들의 특성상 도시의 건물들은 더욱 화려한 외관으로 꾸며지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연보라색 나뭇가지들로 엮은 아름다운 울타리들과 몬스터 뿔로 만든 조각품들이 세워졌고, 밤에는 초록빛과 주황빛을 내는 곤충 몬스터에서 뽑아내 바른 염료가 도시를 밝게 빛냈다.

한편.

도심 속 자리 잡은 어느 빌라촌에서는 이종족 방랑자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아침부터 분주했다.

30대에 접어든 이주연은 쟁반을 들고선 4층에 올라갔다.

복도 중간중간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이종족들의 모습은 이젠 익숙한 광경이 되었다.

이주연은 그들을 비집고 들어가 복도의 끝방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쟁반을 한 손으로 받친 채,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쪽 방에선 연신 신음 소리가 들렸는데, 곧 노크 소리와 함께 멈췄다.

이주연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쥔 채 기다렸다.

그러자 안쪽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이주연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7평 남짓의 작은 방.

침대에는 채채연이 이불을 움켜쥐고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이주연에게 손 인사를 건넸다.

“언니, 일찍 일어났네.”

이주연은 채채연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반쯤 깨진 거울 앞의 남자.

머리를 뒤로 묶은, 그리고 우악스럽게 갈라진 등 근육을 가진 남자는 세면대를 붙잡고는 침을 뱉어 내고 있었다.

그는 나체였기에 엉덩이도 훤히 드러나 있었다.

남자는 거울을 통해서 이주연을 바라보았다.

이주연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쟁반을 들며 말했다.

“아침밥이야, 준호야. 채연이도 있는 걸 알았으면 2인분을 챙겨 왔어야 했나?”

“…….”

강시온의 동생, 강준호.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이었다.

준호는 그의 형과는 다르게, 키가 185cm에 육박했고, 온몸이 우람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형 강시온과는 다르게 어릴 적부터 부족함 없이 먹고 자란 덕분이었다.

어쨌거나.

강준호는 잠시 거울 속 이주연을 바라보다가 옷걸이에 걸려 있던 바지를 입고는 걸어 나왔다.

그는 이주연을 지나쳐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채채연은 물고 있던 담배를 강준호에게 건넸다.

“방대한은 어딨어.”

변성기가 지난 강준호의 목소리는 낮고 걸걸했다.

푸우-.

그가 내뿜은 담배 연기가 방 안에 차올랐다.

이주연은 주위에 있던 식탁에 쟁반을 올려놓고 대답했다.

“수원의 왕 심부름. 아마…… 지금쯤 도시를 빠져나갔을 거야.”

스읍-. 푸우.

강준호는 연신 담배를 피워 댔다.

이주연은 식탁에 있던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 5년간.

강준호라는 어린 꼬마는.

사나운 들짐승으로 바뀌어 있었다.

온몸엔 칼자국을 비롯한 상처가 선명했지만, 얼굴은 날렵하고 실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생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에는 왠지 모르게 슬픔도 같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어린 꼬꼬마 시절 소원이었던 ‘형을 만나러 가는 것’은 여전한 희망 사항이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칙-. 치지지지지.

강준호는 테이블에 담배를 비벼 꺼트리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떠날 준비를 마친 방랑자들이 하나둘씩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창밖을 바라보는 강준호의 모습은 그들과 달리 여유로웠다.

이주연은 그런 강준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은……. 이제 찾지 않는 거야?”

이제 찾지 않는 거냐는 물음.

그 물음은 정말이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강준호를 중심으로 한 개인 세력은 리그 내에서도 톱 수준의 전투력을 가졌다.

그런 만큼 그들은 수많은 도시를 돌아다닌 베테랑들이었다.

울창한 숲을 다시 지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는 유일하게 ‘뱃길’이 열려 있는 부산에서 인천까지 갔다가 만경을 다시 오가기도 했다.

울창한 숲으로 인해 길이 끊겨 있는 강원도 속초까지 돌아서 만경으로 가는 것보다 차라리 부산으로 내려가 인천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사실 바닷길은 리그가 시작된 직후 모조리 막혔다.

바다는 강준호라고 할지라도 위험한 공간이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배로 지금의 바다를 건너는 것은 미친 짓과 같았다.

그런데도 부산과 인천을 오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이종족 덕분이었다.

이종족 ‘나가’들이 바로 그 해답이었던 것.

어쨌든, 강준호는 지난 5년간 온갖 모험을 겪으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험난한 원정 끝에 얻을 수 있었던 결론은 잔인하게도 형은 죽었다는 것이다.

만경.

그곳은 꽤나 발전된 도시였고 그곳의 여왕은 누구든 인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다름 아닌 ‘강시온의 죽음’.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어느 날 수원으로 향하기 위해 길을 나섰고, 그 뒤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방랑자 커뮤니티, 사람들의 수소문.

그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도 형을 찾을 순 없었다.

강준호는 받아들였다.

형이 없는 세계를.

“별수 있어? 이젠 내가 이 리그를 개척해 나가야지.”

강준호는 슬픈 눈동자를 하고선 여전히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도록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

강준호는 이제 다른 꿈을 꾸었다.

그는 창밖에서 눈을 거둬 이주연을 바라보았다.

“4라운드를 클리어해야지. 이젠.”

그의 눈동자 속에서는 강인한 결의가 느껴졌다.

“그리고 형을 되살릴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