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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47화 (147/221)

제147화. 질서 (1)

나무로 울창했던 숲은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나무는 뿌리째 드러나 바닥 여기저기서 나뒹굴었고, 빛남의 오두막들은 판자만 남았으며, 땅은 솟구쳐 크고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 구울들이 지면에 처박혀 바둥거렸다.

허공엔 수천 번의 불꽃이 튀었다.

진재희의 은성검이 사방에서 날아드는 수 없이 많은 구체를 받아치며 만들어 낸 진풍경이었다.

휘릭-. 채재재재재재재쟁-!!!!!

마치 은하수가 동시에 폭발을 일으키면 이런 장면일까.

수많은 빛들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성검이 베어 낸 구체와 선(線)은 두 동강이 난 채 지면으로 낙하했고, 이 또한 별똥별처럼 아름다운 전경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직도 사방에선 구체와 선(線)이 진재희를 겨누고 있었다.

둘의 오랜 경합은 곧 결착이 났다.

진재희는 강시온의 손에 붙들렸다.

그녀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푸흐흐……. 흐읍.”

S급 플레이어라고 할지라도, 초월적인 존재 앞에선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지금까지 호각으로 싸웠어도 지치지 않는다는 점이 둘의 승패를 갈랐다.

진재희는 몇 번의 유효타를 허용하고 이미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쿨럭……!”

진재희의 패배였다.

초월자의 전투력은 진재희를 압도했다.

이제 초월자는 더 강하게 그녀의 목을 움켜쥐며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꽈아아아아악……!

“하윽……!!!”

진재희는 시온의 손에 붙들린 채,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었다.

팔을 붙들고 목덜미가 잡힌 강아지처럼 아등바등 몸을 움직여 댔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의미한 발악이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현지는 중얼거렸다.

“왜…….”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초월자와 진재희를 올려다보았다.

지금껏 진재희는 초월자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로지 방어할 뿐이었다.

최현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변해 버린 강시온에게 공격을 퍼붓지 않았는지.

‘……도와줘야 해. 내가…… 도와줘야…… 해.’

최현지는 자신의 아티팩트를 불러왔다.

그리고 초월자를 향해 검은 물체를 휘둘렀다.

검은 물체는 채찍처럼 곡선을 이루며 목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휘릭-!!! 챙!

하지만 그녀의 공격을 막은 건, 초월자가 아닌 진재희였다.

하나 남은 성검이 검은 물체를 막아 낸 것이다.

검은 낫과 성검이 짓이겨지며 불쾌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최현지는 진재희를 바라보았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안 돼.”

최현지는 진재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래-!!!!”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진재희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그저 안된다고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안 돼, 안돼…….”

“왜냐고! 아니……. 이미 이성을 잃었잖아……. 걔는 강시온이 아니라니까……? 이러다 너 죽어……. 죽는다고!”

“난…… 괜찮아. 괜찮으니까……. 가서 최명준이나 챙겨.”

“야이 미친……. 미친년아……. 네가 여기서 왜 죽어……. 네가 여기서 죽을 필요가 없는데……! 이제 그만해. 제발…….”

최현지는 눈물을 쏟으며 땅에 엎드려 흐느꼈다.

쿨럭-.

진재희는 조용히 피를 토해 냈다.

눈앞이 아찔하니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필사(必死)의 정신으로 버텼다.

지금껏 몇 번이나 강시온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야, 강시온만이 이 리그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지키겠다고 다짐한 이상,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진재희는 자신의 신념을 결코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믿고 있었다.

강시온이라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만약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아.’

그녀는 아랫입술을 핏물이 터질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다.

그리고 남은 모든 힘을 쥐어 짜내, 그를 밀쳤다.

초월자는 뒤로 날아가 지면에 강하게 부딪혔다.

휘릭-. 쾅!

자욱한 먼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마지막 남은 성검이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목표는 하나였다.

강시온을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

‘남은 모든 힘을 쥐어 짜내겠어.’

결의를 다진 진재희는 피로 얼룩진 윗도리를 한 손으로 찢었다.

촤아악!

찢겨진 윗도리가 허공에 뿌려졌다.

검은 나시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몸에는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결의에 차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성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휭-.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연기 속을 바라보았다.

1라운드가 끝나면서 재희는 각오했다.

자신은 그가 가는 길을 같이 걸을 것이라고.

즉, 강시온이 없다면 자신도 없다는 것.

죽으면 같이 죽는 것이다.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다.

그녀는 남은 모든 힘을 방출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파공음이 울려 퍼지며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한편, 최명준을 지키던 최현지는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우웃?!”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휘날렸다.

동시에 태양처럼 밝은 빛줄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진재희 주위의 지면이 폭발하기 시작하며 힘의 기류에 따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파편들이 허리케인처럼 돌고 돌며 그녀를 보호했다.

압도적인 포스였다.

그 어떤 몬스터보다.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아니, 성전에 묘사된 초월한 자들의 기적보다.

진재희의 모습은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여신처럼.

밝게 타오르는 그녀의 검날은 오로지 한 곳.

지면을 박차고 나온 강시온을 향해 있었다.

강시온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진재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둘의 재경합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시온은 지면을 박차고 올라,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진재희는 지면을 향해 낙하하며, 그를 향해 성검을 휘둘렀다.

둘의 공격이 맞닿는 순간 빛이 모여들었고.

치잉-.

곧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

전투는 빠른 판단이 생명이다.

적이 공격해 들어오는 루트를 파악하고, 어떤 것이 치명상을 입힐 공격인지 알아내고 방어해야만 했다.

막을 수 없는 건 맞되, 치명상만은 피해야 하는 것.

예를 들어 심장으로 들어오는 선은 칼로 쳐낼 수 있겠지만.

동시에 목을 노리는 손날치기는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터억-!

“……?!”

쾅! 트드드드드드드드득! 퍼엉-!

초월자의 손날치기 한 방에, 진재희는 몇 바퀴나 굴러선 저만치에 떨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일어나 다시 들어오는 공격에 대비했다.

전방에서 수많은 쇠사슬이 날아들었다.

진재희는 쇠사슬을 베고 또 베면서 초월자를 향해 다시 날아갔다.

초월자는 이미 진재희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가 검날을 휘두르는 방향대로 구체를 붙여 힘을 사방으로 분산시키고 경로를 변경했다.

그렇게 성검은 빗나갔지만, 그녀의 주먹은 초월자의 왼쪽 갈비뼈에 꽂혔다.

초월자는 처음으로 피를 토해 냈다.

“커헉-!”

진재희는 방금 공격에서 충분히 ‘초월자’를 죽일 수 있었다.

갈비뼈로 향하던 주먹이 목이나 머리로 향했으면, 필시 초월자는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강시온도 죽겠지.

진재희는 최소한의 공격만을 이어 나갔다.

몇 번의 경합이 더 이어졌다.

강시온의 능력은 이제 구체를 넘어선, 그리고 다양한 도형을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것이 아티팩트를 극한으로 연마한 강시온의 능력.

그는 만물을 창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도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셀 수도 없는 많은 공격방식을 구사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예로, 선을 교묘하게 꺾어 낚시 바늘로 이용한다거나, 선 중앙에 구멍을 만들어 쇠사슬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강시온에겐 시전자의 상상력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가 만들어 낸 아주 다양한 형태의 사물들이 사방에서 진재희를 위협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조리 베어 냈다.

기괴한 형태의 무기들도 진재희를 위협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모조리 베어 냈다.

초월자는 그녀의 모든 행동반경을 예상하고, 경로상에 함정들을 설치해서 진재희를 위협했다.

이것도 모조리 베어 냈다.

초월자라고 할지라도, 제아무리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이라고 할지라도.

진재희는 이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했다.

무력마저 그에게 밀린다면, 정말 자신이 그의 옆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녀의 마음속 절반은 진심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걱정이었다.

진재희는 남은 모든 힘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성검으로 최대의 힘을 모아 공간을 베었다.

우드득-. 우직!

공간이 일그러졌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둘로 분리되어 일그러진 것이다.

그녀는 원래 초월자와 대결하기 전까지만 해도 ‘실체가 없는 것’을 베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진재희는 실체가 없는 공간 자체를 베어 냈다.

이 전투 중에 그녀는 성장했다.

“아아아…… 아악!”

초월자는 처음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진재희는 그와 싸우면 싸울수록 깨달았다.

자신이 100%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초월자인 그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초월자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뒤로 쓰러졌다.

풀썩-!

* * *

“흐, 흐, 흐으……! 흐, 흐, 흐으.”

재희는 가쁜 숨을 빠르게 내쉬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초월자는 드디어 쓰러졌다.

아마 필드 보스 ‘마녀’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에 이른 플레이어일 터.

만약 정신을 잃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승부의 행방을 알 수 없었을 테지.

‘됐어……. 된 거야…….’

이제 아티팩트 능력은 완전히 사라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진재희는 두 손으로 몸을 감싸고는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아찔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온몸에 힘이 빠진 것처럼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진재희는 쓰러져 있는 강시온을 바라보았다.

토요일 낮잠이라도 자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의 가슴팍이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앉았다.

살아 있다.

그거면 되었다.

그 앞에 진재희는 무릎 꿇었다.

풀썩-!

‘뭘까.’

도대체 뭘까.

이 오묘한 감정은.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은 쓰러져 있었고, 정작 자신은 그 앞에서 지쳐 쓰러졌다.

지키겠다고 맹세했지만, 이 세계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그를 지키기에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이미 숲의 초입부터 강시온은 두통을 호소했지만, 자신은 그가 과로로 인한 일시적인 통증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라면 이상함을 눈치채고 그 즉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만 했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은 ‘강시온의 뜻’만을 따르겠다고 했지 정작 그의 안전은 유의하지 못했다.

이게 뭐가 회귀자냐.

이게 뭐가 조력자냐.

진재희는 얼굴을 감쌌다.

미칠 듯이 슬픔이 몰려왔다.

순간, 자신이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엎드린 채 오열했다.

온갖 감정이 교차하며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그녀에겐 참으로 가혹했다.

쓰러진 줄 알았던 강시온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진재희는 다시 일어난 강시온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초월자였다.

눈을 감고 있었으니.

초월자는 이제 능력을 사용할 정신력을 모두 소모하였는지,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주먹만 휘두르는데도 공기가 찢겨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진재희는 가까스로 그의 주먹을 피하고, 다시 그를 기절시키기 위해 공격을 퍼부었다.

체력이 떨어져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건 그녀도 매한가지였다.

이제 둘은 개싸움을 이어 나갔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차고, 밀치고, 피하고, 이빨로 물어뜯고, 안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거나, 그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내리꽂았다.

퍽! 퍽! 퍽! 퍽!

강시온은 쓰러진 재희의 몸 위에 올라타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재희는 얼굴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중얼거렸다.

“제발…….”

그리고 두 발을 있는 힘껏 치켜올려, 그를 반대 방향으로 넘어뜨렸다.

레슬링 기술.

강시온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주먹 대 주먹은 진재희가 한 수 위였다.

콰당-!

이제 강시온은 바닥에 쓰러졌고, 그 위에 진재희가 올라탔다.

진재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처롭게 부탁했다.

“……기절해 줘.”

휘릭-. 퍼억!

진재희의 주먹이 초월자의 오른 볼을 강타했다.

진재희는 아이처럼 애원하며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기절해 줘, 기절해 줘. 기절……! 제발…… 기절해 줘……!”

퍽! 퍽! 퍽! 퍽!

초월자는 얼굴을 방어하면서도 무릎으로 그녀의 등을 차 대며 떼어 놓으려고 했다.

진재희는 지금 이 순간, 극단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강시온의 두 다리를 절단하는 것이 낫겠다고.

이대로 영원히 무의식 상태로 있는 것보단, 무의식을 깨우기 위한 방법을 찾기 전까지 두 다리를 자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재희는 흐느끼며 마지막 주먹을 휘둘렀다.

휘릭-. 퍼억!

하지만 이번에 초월자는 그녀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받아 냈다.

“…….”

“…….”

재희는 살짝 눈을 떴다.

뭔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초월자의 손바닥에 마주친 진재희의 주먹.

스윽-.

초월자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부드럽게 그녀의 거친 주먹을 감쌌고, 곧 시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파.”

재희는 눈물 섞인 눈동자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눈을 뜬 강시온이 있었다.

눈은 퉁퉁 부어올랐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분명 재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그만 때려. 아…… 파.”

그의 손가락이 스르르 빠져나가 지면에 털썩 쓰러졌다.

시온은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기어이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새근새근 마치 요람 속 아이처럼 잠들었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재희는 말없이 흐느꼈다.

그러다 못 참겠는지, 처음으로 큰 울음을 터트렸다.

다행이라는 생각.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생각.

그녀는 기절한 시온을 꼭 껴안고는 한동안 울음을 토해 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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