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45화 (145/221)

제145화. 초월자 (1)

일대에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

진재희는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억눌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단지 숨만 쉬고 있었을 뿐인데,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볼을 타고 뚝뚝 흘렀다.

‘……시온.’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저기 서 있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공포감을.

분명 강시온이었다.

지난 라운드 동안 단 하루도 그를 보지 않았던 시간이 없었던 진재희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조금 이상했다.

갈색 머리카락이 발목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짐승? 짐승의 모습을 한 인간의 느낌이었다.

몸은 앞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눈과 코는 앞머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매우 익숙한 하관을 가진 그 남자는.

분명 진재희가 알고 있는 강시온의 모습이었다.

‘누구냐, 넌……?’

진재희는 혼란스러웠다.

이틀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그가, 왜 지금 갑자기 일어나 저런 살기를 내뿜고 있는 것인지.

게다가 저 머리카락은 어떻게 된 일인가.

사자의 갈퀴처럼 허리춤까지 내려온 그의 머리카락이 상황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저 짐승은 누구인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

자신이 알고 있던 강시온이 맞긴 한가?

회귀자인 진재희조차 앞으로의 상황을 한 치도 예상할 수 없었다.

주변이 피 냄새로 진동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 모든 생명체를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였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새끼가 삶을 포기하고 굳어 버린 것처럼.

인간들 또한 예외는 없었다.

최현지 역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는 벌벌 떨었다.

“흐으……! 흐으으으……!!! 흐으으으으으…….”

최명준은 입에 거품을 물고 앞으로 쓰러졌다.

“커헉……!”

풀썩-!

오직 진재희만이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진재희는 힘겹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 시온……?”

그는 대답이 없었다.

진재희는 멈추지 않고 조금 더 애절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강시온…….”

그러나 여전히 같은 반응이었다.

“너어…….”

진재희는 손을 그에게 뻗었다.

그 순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숲의 마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으……! 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필드보스 마녀.

지난 이틀간 S급 플레이어와 A급 플레이어를 몰아붙인 절대 강자가, 아이처럼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마녀는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 잡고는 괴성을 내질렀다.

그 후 마녀의 눈과 코, 입에서 핏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마녀는 갑자기 뒤돌더니 소리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녀를 놓치지 않았다.

휙-.

산뜻한 바람이 진재희의 주위를 감쌌다.

“하아……?”

진재희는 바람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강시온은 어느샌가 한 손으로 마녀의 머리통을 붙잡고 있었다.

붙잡힌 마녀는 눈물을 쏟아 냈다.

“신(神)……, 신의 재림이다……. 아……!”

우득-!

곧이어 마녀의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녀는 목이 꺾인 채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실체가 없었던 마녀조차 ‘붙잡아’목을 비튼 강시온.

이제 그는 진재희를 바라보는 듯했다.

“…….”

“…….”

진재희와 강시온 사이에는 기나긴 정적만이 흘렀다.

‘어떻게 된 거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진재희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강시온이 저러는 이유도.

그리고 지금 강시온의 모습도.

왜인지 모를 위험을 직감하였기 때문일까.

그녀는 천천히 아티팩트를 불러들였다.

진재희는 최현지에게 조용히 말했다.

“……정신 차려.”

“……흐으으으! 흐으으으으! 추워……. 추워…….”

추워……?

진재희는 그제야 이 일대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원인이야 불 보듯 뻔했다.

강시온이 밟고 있는 지면을 중심으로 일대의 모든 풀잎이 검게 변하고 있었다.

“후우…….”

진재희의 고운 두 입술 사이로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어쨌거나 지금 진재희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위압감.

상대는 강시온이었다.

‘무력’과 ‘지력’을 모두 갖춘 강시온은 그야말로 최강이다.

자신들의 상황을 비유하자면, 사자에게 쫓기고 있는 얼룩말 세 마리였다.

얼룩말은 결코 사자와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사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우선 내가 미끼가 되어야 해.’

사라락-.

순식간에 진재희의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최명준의 몸에 보호막을 둘러 주었다.

진재희는 최현지에게 말했다.

“죽지 마.”

“……흐으! 흐으……!!!”

“그냥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지가 뜯겨 나간다 해도, 그냥 살아남아. 목숨만 붙어 있으라고. 살아남아. 반드시 살아남아. 내가 미끼가 될게.”

“……흐으! ……흐으으으!!!”

최현지는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재희는 지금 전력으로 강시온과 부딪히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테니.

“산개하는 거야. 어디든 좋아.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흐으! 흐으으으!!!”

최현지는 마구잡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강시온은 다시 한 발자국 두 여자에게 다가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는 천천히, 그리고 담담하게 두 여자에게 다가갔다.

진재희는 심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곤 내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

두 여자는 각각 양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강시온은 최현지 쪽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 * *

상영 스크린을 바라보는 K의 두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저게…… 뭐야……?’

관리자인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분명 지금 강시온은 기절한 상태다.

즉, 의식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분명 움직이고 있었고, 모습도 달라졌다.

관리자의 상식 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저건 마치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의 몸에 빙의했을 때나…….’

석가, 예수, 무함마드.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의 몸에 빙의하는 경우는 없진 않았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불가능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초월자들은 아직 자아(自我)가 형성되지 않는 1살 전후에, 미리 인간의 몸을 선점하는 것이지, 이미 자아가 형성된 인간에게 빙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우주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

아무리 하등한 인간의 자아라고 할지라도.

초월자의 자아와 인간의 자아, 이 두 자아가 합쳐질 수는 없었다.

그것은 우주의 탄생부터 계속해서 지켜져 오던 법칙이었다.

……원래부터 하나였다면 모를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K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원래부터 하나……. 원래부터 하나…… 라고?’

만약 정말로 하나의 자아였다면, 지금 스크린 속 저 ‘괴물’ 역시 강시온이고.

아직 기절한 상태의 원래 강시온 또한 강시온이라는 소리.

사실 지금껏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많았다.

첫 번째로, 다른 인간들은 왜 강시온의 눈빛만 봐도 벌벌 떠는가.

두 번째는, 어째서 관리자인 자신이 저 하등한 인간의 계획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인가.

관리자는 존재들과 인간들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자다.

중간 다리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 인간과 관리자의 영혼적 가치의 차이는 우주만큼이나 컸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K의 결론은 하나였다.

‘……인간이. 아닌 건가?’

스크린 속 강시온을 바라보는 K의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에 반해 존재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시큰둥했지만, 지금은 열광했다.

지금껏 무력 최약체였던 강시온이 진재희를 몰아붙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이만큼이나 재미있는 광경은 없었다.

* * *

살기를 느낀 최현지는 순식간에 아티팩트를 불러들였다.

검은 물체가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 순간, 왼편에서 날아드는 수많은 바늘.

파바바바바바박!

일차적으로 날아드는 바늘은 검은 물체에 박혔지만, 뒤이어지는 공격까진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츠즈즈즉.

검은 물체를 꿰뚫고 나온 바늘들이 나뭇가지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최현지는 깜짝 놀라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변형?!”

강시온이 현재까지 구사할 수 있는 건, 구체의 이동, 확산, 응집 정도.

구체의 변형이라고 할지라도, 선까지는 발전하지 못하고 타원형 정도로 미세하게 변하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구체는 바늘처럼 얇게 날카로워진 것도 모자라, 변형을 이루어 검은 물체를 파괴해 나가고 있었다.

곧 검은 물체는 찢겨졌다.

찌지지직-!

마치 거대한 고무 밴드가 뜯기는 것처럼.

‘……미친. 괴물인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최현지는 곧장 또 다른 방어 물체를 소환했다.

이 일대는 나무가 많은 숲 지대.

검은 물체는 나무를 둘러 하나의 바리케이드를 만들어냈다.

‘우선 도망쳐야 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현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분명히 죽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강시온의 손바닥 안이었다.

“…….”

최현지의 검은 물체보다 먼저 나무에 붙어 있었던 건 바깥으로 뻗어 있는 거대한 가시.

강시온은 가시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했다.

파바바박! 파바바바바박!

가시는 거대해지면서 검은 물체를 순식간에 찢어 버렸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검은 물체를 꿰뚫은 가시는 이제 다시 우산대처럼 사방으로 퍼져, 검은 물체를 봉인하기에 이르렀다.

‘설마 처음부터 다 예상……?’

최현지는 검은 물체 아티팩트 자체를 취소하여 이동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깨달은 순간에는 늦어 버렸다.

스르르르르륵……. 촤륵!!!!

쇠사슬이 발밑에서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단숨에 최현지의 발목을 낚아챘다.

“꺄아……! 으으으……!!!!”

비명조차 나오다 끊길 정도의 고통.

쇠사슬의 끝부분은 낚시 바늘처럼 꿰어져 있어, 최현지의 다리 살점을 단숨에 낚아챘다.

“하아……! 하아……! 하!”

최현지는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려 불규칙적으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보이는 광경은 실로 놀라우면서도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최현지를 잡기 위한 수많은 함정들이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심지어 자신을 맞상대하고 있는 순간이었는데도.

강시온은 그녀의 퇴로를 모두 막아 버렸다.

낚시 바늘이 파고든 그녀의 다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종아리, 허벅지, 배, 목, 얼굴을 순서대로 지나 지면에 떨어졌다.

뚝……. 뚝……. 뚝.

최현지는 이제 삶을 포기한 생선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공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올곧게 일직선으로만 걷고 있었고, 그가 걸어온 길은 구체가 모조리 파괴하고 있었다.

강시온의 눈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최현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보며 공포와 무력함을 느꼈다.

그녀는 몰랐다.

강시온이라는 사람을.

혹시 강시온을 상대했던 지금까지의 적들은, 모두 이런 공포감을 느꼈던 것일까?

그 순간, 최현지는 자신이 상대했던 강시온의 적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쓰든 결국 강시온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그의 영역.

그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

“…….”

어느덧, 강시온은 거꾸로 매달린 최현지 앞에 마주 섰다.

강시온은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최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관통해 보이는 듯한 공포감을 느꼈다.

그러자 최현지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살려 주세요.”

하지만 강시온이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을 뿐.

그때였다. 강시온에게 세 개의 성검이 날아들었다.

휘릭-. 휘릭-. 휘릭-. 폭, 폭, 폭!

진재희였다.

그녀는 피로 얼룩진 채, 최현지를 덮쳤다.

파바바바바박-!

두 여자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고, 조금이지만 강시온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재희가 얼마나 강하게 최현지를 낚아챘는지, 그에게서 적어도 500m는 떨어져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최현지는 울먹거렸다.

“동생……. 동생아……. 동생아……!!! 나……!!!”

“알아. 아니까, 조용히 해.”

진재희는 침착하게 그녀를 진정시켰지만, 정작 본인도 온몸이 찢어져 상처투성이었다.

설마.

자신이 최현지를 구하러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이동 경로에까지 함정을 설치해 두었을 줄이야.

진재희는 자신의 보호막을 최현지에게 둘렀다.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두컴컴한 숲을 바라보았다.

세 개의 성검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적어도 5분은 묶어 둘 수 있을 것이다.

그 5분 동안 자신이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

진재희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강시온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려면 지금밖에 없었다.

스응-. 스응-. 스응-.

성검이 주인 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의미는 강시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진재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방에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