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죽은 자들의 도시 (1)
최현지는 서투른 손길로 불을 피우려 애썼다.
나무 작대기를 판때기에 꽂아 넣어 연기가 날 정도로 비벼대는 중이었다.
“비벼. 막 비벼. X나 비벼.”
최현지는 언젠가 봤었던 영화 속 캐릭터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아오, 그냥 X나 비벼. ……으으으으! 악! 못하겠음. 하아……!”
한참을 나무 작대기와 싸우던 최현지는 결국 포기해 버리고는 뒤로 뻗어 버렸다.
그러던 중, 사냥을 나갔던 진재희가 토끼 형태의 몬스터를 한 손에 들고 돌아왔다.
진재희는 최현지 앞의 상황을 한번 살피더니, 손가락으로 아티팩트를 쏘아 아주 간단하게 불을 붙여 버렸다.
“…….”
툭.
진재희는 토끼 몬스터를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최현지 근처에 앉았다.
최현지는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불을 피우려고 행했던 자신의 노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얼마 뒤 물을 길으러 간 최명준까지 온몸에 한가득 물통을 짊어진 채 복귀한 뒤, 캠프에는 작은 모닥불이 완성됐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자 일행은 모두 모닥불 주위로 모여 비에 젖은 몸을 말렸다.
그와 동시에 꼬챙이에 꽂아 놓은 고기도 먹음직스럽게 익어 갔다.
진재희는 모닥불 주변 가장 따뜻한 가운데 자리에 강시온을 뉘었다.
그리고 모포를 덮어 주었다.
“자, 이제 어떡할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최현지가 입을 열었다.
검은 속내를 드러냈던 빛남도 정리했고, 이제 남은 건 숲을 탈출하는 일이었다.
최현지는 괜히 퀘스트 창을 열어보았다.
[마녀의 흔적을 찾아라.]
퀘스트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도대체 마녀는 어디 있는 거야?”
최현지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명준 또한 퀘스트 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진재희는 주변의 푸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시온의 옆에 바짝 붙어 간호에만 전념했다.
걱정스럽고 안타깝다는 눈길로 강시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 우리끼리 고민해 봐야 소용이 있나. 형님께서 많이 지치셨던 모양이니 일단은 좀 쉬었다가 생각하자고. 하아암…….”
최명준은 늘어지게 하품을 뱉으며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일행의 두뇌였던 강시온은 의식을 잃은 상태.
앞으로의 목적지를 정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천천히 강시온의 회복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그런 까닭에 최명준이 냅다 드러누워 코를 골기 시작해도 말릴 사람은 없었다.
거어어억-!
“그래도 지루하진 않네.”
끔찍하기만 했던 최명준의 코골이도, 지금처럼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선 반갑게만 느껴졌다.
최현지는 강시온을 간호하는 진재희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는 턱을 괴며 말했다.
“동생님아. 왕님이 그렇게 좋아?”
그냥 농담조로 툭 던지듯 뱉은 말.
숙연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진재희의 반응은 가볍지 않았다.
“뭐?”
한껏 날 선 목소리.
최현지는 기껏해야 ‘헛소리 마.’ 정도의 핀잔 같은 반응을 예상했지만, 진재희는 어울리지 않게 조금 당황한 티를 내며 정색했다.
최현지는 진재희의 반응에 화들짝 놀라 손사래 쳤다.
“아니, 아니, 그냥 농담.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왕님을 보고 있길래.”
진재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든 듯 보이는 강시온의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볼 뿐이었다.
그러다 잠시 후, 그대로 주저앉아 토라져 있던 최현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시온은 강해. 우리 모두를 리그의 우승까지 이끌 수 있을 만큼. 그는 희망이야. 내가 그를 보는 게, 어떤 식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몰라. 그냥. 묻지 마. 그런 거.”
최현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재희가 자신의 속내를 비치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재희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강시온을 잃어선 안 돼. 그뿐이야.”
그녀는 어물어물 말을 흐리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최현지는 문득, 변하기 이전의 세상을 떠올렸다.
평화로웠던 삶.
그 당시 진재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저 지루하지만 평온한 나날을 보내며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여행도 한번 떠나보고, 가끔은 술도 한잔하면서 웃고 떠드는, 그런 평범한 삶이 있던 세상.
그 세상에서는 진재희도 행복하게 웃었을까.
최현지는 가슴이 메어 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진재희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여전히 최명준은 시끄러운 소리로 코를 골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애써 목소리를 낮추지 않아도,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최현지는 갑자기 진재희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왕님 정도면……. 키는 좀 아쉬워도 곱상하게 생겼지. 이런 세상에서 사랑이니, 연애니, 전부 사치긴 하지만. 그래도 이딴 세상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좀 눈에 들어왔을 것 같아?”
진재희의 눈동자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재희는 눈빛을 가다듬고 최현지에게 쏘아붙였다.
“멍청한 소리 할 거면 저리 가.”
“에이, 그러지 말고. 그냥 생각해 보는 거야.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네 말대로 왕님이 이 거지 같은 리그를 끝장내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다면.”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다면.
진재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만경에서 강시온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면, 강시온은 어떤 나날을 보낼까.’
그리고 진재희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강시온의 모습 옆에, 슬며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연인이니 사랑이니 하는 그런 바보 같은 관계 말고.
함께 고난을 헤쳐 온 동료로서.
밤늦게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가,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한 곡 뽑는 그런. 정말 평범한 친구 관계.
옆에서는 최명준이 노래방의 작은 리모컨에 코를 박고 있고, 최현지가 그런 최명준에게 다음 곡은 자기 거라고 버럭버럭 성질을 부리는.
그런 멍청한 풍경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진재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흩어 버렸다.
최현지의 바보 같은 상상에 마음이 약해진 걸까.
“그만. 이미 원래 세상은 끝장났어. 지금은 당장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야.”
최현지는 진재희의 단호한 말투에 김이 빠진다는 듯 입을 삐죽댔다.
하지만 곧, 굴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가끔은 좀 괜찮아. ‘예전에는 좋았지’ 하면서 세상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보는 거. 좀 힐링 된달까?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자꾸 옛날엔, 옛날엔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지 좀 알 것 같다니까?”
그러고는 키득키득 웃는 최현지.
그녀는 갑자기 손으로 사진을 찍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면서 진재희에게 말했다.
“그거 알아? 나 너튜버였어.”
진재희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지만, 최현지는 끝까지 말을 이어 나갔다.
“캬! 우리 동생님 그림 죽이네. 나중에 나랑 합방도 해줘. 동생님처럼 예쁜 사람이랑 같이 영상 찍으면 조회 수 완전 대박일 듯.”
하지만 최현지는 곧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릴 긁었다.
“구독자는 천이십이 명밖에 없었지만.”
진재희는 그제야 최현지를 돌아보았다.
최현지는 바보 같은 목소리를 꾸며 내며 그런 진재희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오! 거기 아름다운 여성분! 잠시 시간 좀 있으세요?”
최현지의 손가락 카메라 안에서 진재희는 엉뚱하게 표정을 구겼다.
그러다 최현지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왜 천이십 명밖에 없었는지 알겠네.”
“천이십이 명! 구독자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
“아, 그래. 근데 그거 알아? 너튜브에 내 영상도 한 번 올라온 적 있어.”
“뭐어?!? 언제?!”
최현지가 깜짝 놀라 진재희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재희는 콕, 최현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어, 자신에게서 떨어트렸다.
“어떤 사람이 내 버스킹을 찍어서 너튜브에 올렸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오오오오!!! 버스킹? 조회 수 얼마?”
“20만.”
“20만?!?!? 와…… 내 너튜브 총 조회 수보다 높은데?”
최현지는 입술을 오므렸다.
진재희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러면 뭐 해. 어차피 실패했는데.”
진재희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려다 말았다.
그녀는 강시온과 약속했다.
담배도 끊고, 노래 연습도 계속할 거라고.
두 사람은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실패.
원래의 세상에서도 두려운 단어였지만, 지금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 무거운 단어는, 잠깐이나마 뭉근하게 풀어졌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사람은 알았다.
이제 슬슬 현실로 돌아와야 함을.
그리고 그때.
두 사람은 공기 중에 퍼져오는 이질적인 냄새를 포착해 냈다.
풀 내음과도 잘 어우러지는 새콤한 냄새였지만, 어딘가 가시를 품고 있는 냄새였다.
마치 화사한 장미와 같은,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향기.
두 사람 모두 냄새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움의 비결? 비결이랄 게 있나. 그저 태어나길 아름답게 태어났는걸.”
그곳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띠링.
최현지와 진재희, 두 사람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마녀를 찾아라. 완료.]
[히든 퀘스트: 던전 울창한 숲]
[필드 보스 에리어.]
[내용: 마녀를 죽여라.]
[보상: S랭크 아이템.]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 * *
눈앞의 퀘스트 창을 확인한 두 사람.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벙쪄 있는 최현지와는 달리, 진재희는 순식간에 눈앞의 존재가 무엇인지 파악했다.
마녀.
놈은 이 숲을 빠져나갈 열쇠였다.
생각을 마친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최현지도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
그녀의 검이 지면을 썰어 버리며 강하게 마녀를 향해 휘둘러졌다.
촤좌좌좌좍-! 솨아아악!
성검을 위로 휘둘렀을 뿐이었지만, 파공음이 숲을 뒤흔들었다.
“거어어어……. 컥! 뭐, 뭐야!”
최명준 또한 파공음에 놀라 눈을 번쩍 뜨고는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X벌!”
최명준이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전투를 준비하는 사이, 진재희에게 공격받은 마녀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놀랐잖니. 꼬마야. 그렇게 위험한 걸 휘두르면 못써.”
“……뭐?”
진재희는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성검은 이 세상의 어떤 것이든 베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눈앞의 마녀를 똑똑히 베었건만, 마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멀쩡하게 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재희가 서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몇 가닥의 넝쿨이 올라와 허공을 휘감고 있었다.
아까까진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던 숲은, 어느새 거대한 적이 되어 있었다.
나무의 이파리 하나, 바닥에 자라난 풀 한 포기까지.
모두 강시온 일행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듯 꿈틀댔다.
“미안하구나, 아이야. 우리 아이들이 그래도 효심이 지극해서 제 어미를 공격하면 화를 좀 낸단다. 이해해 주겠니?”
마녀는 빙긋 웃는 얼굴로 손을 살살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진재희는 마녀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실체가 없어.’
진재희는 자신이 사전에 마녀의 기척을 감지해 내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마녀의 모습은 허상.
본체는 이곳에 없었다.
“웬 아이들이 내가 보살피던 구울들을 헤쳤다기에 나와봤더니,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는걸? 너도 내 재료가 되려무나.”
말을 마친 마녀는 본론을 꺼냈다. 누워 있던 강시온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역시 아름다워. 직접 보니 더욱 아름답구나…….”
마녀는 황홀한 얼굴이 되어서는 강시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녀는 구울들을 시켜 아름다운 인간들을 수집해 왔다.
얼굴이 아름다운 인간.
육체가 아름다운 인간.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아름다움은 역시.
영혼이었다.
“저 흔들림 없는 내면. 굽힐 수 없는 의지. 너무나도 아름다워.”
강시온의 영혼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다른 인간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마녀는 강시온의 아름다운 영혼을 꼭 가지고 싶었다.
“아이야. 네 얼굴도 제법 반반한 것이 마음에 들지만, 저 꼬마의 옆에 있으니 그 미모도 빛을 잃는구나.”
마녀는 그렇게 말하며 진재희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진재희는 그 소름 돋는 시선에 몸서리를 치며 다시 아티팩트를 불러냈다.
“소용없다니까. 아이야.”
콰아앙! 콰앙!
연속된 파공음이 다시금 숲을 뒤흔들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일격에 두 동강 내는 진재희의 검이었지만, 실체가 없는 허상을 건드릴 순 없었다.
마녀는 진재희의 공격이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하하! 재밌구나, 꼬마야. 닿지도 않을 공격에 연연해서야 되겠니?”
진재희는 마녀의 말에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마녀는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한 마디를 던졌다.
“멍청한 여자…….”
마녀는 강시온이 너무나도 탐이 났다.
하지만 그 옆에 바짝 붙어서 강시온을 지키는 진재희는 거슬렸다.
마녀는 진재희의 공격을 피할 순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미지를 줄 수는 없었다.
강시온을 갖기 위해선 마녀 혼자서는 무리였다.
하지만 혼자서가 안된다면, 든든한 아군을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닌가.
마녀는 강시온 일행들이 숲에 들어왔을 때부터 착실하게 강시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낼 준비를 해 왔다.
경계심 많고, 굳건한 정신을 가진 강시온을 무너뜨릴 방법.
그것은 강시온이 집착하는 ‘강준호’라는 존재였다.
“어려웠어. 하지만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어 완성해 냈단다! 이제는 그 굳건한 정신도 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거듭난 거야.”
그때, 주변 수풀들이 어수선하게 흩어지며 괴물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
진재희는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죽은 줄만 알았던, 아니 확실하게 죽었던 구울들이 되살아나 걸어오고 있었다.
마녀의 뒤에서 걸어오는 한 아이.
하나.
소녀의 목은 뒤로 꺾인 채, 좀비처럼 다가왔다.
흑마법이었다.
죽은 자들을 일정 시간 되살려, 시전자가 지정한 적이 죽기 전까지 공격을 계속하는 흑마법.
마녀는 기이한 미소를 띠었다.
“3일간, 내 아이들은 너희들을 공격할 거다. 절대 죽지 않는, 나만의 좀비들이 끝없이 공격할 것이다.”
구울들, 아니 이젠 좀비 구울들이 원정대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