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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42화 (142/221)

제142화. 마녀의 흔적

빛남에선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주머니! 여기 땔감이요.”

“호호. 그래 잘했다. 고맙구나.”

누군가 본다면 시골 마을의 축제 준비 장면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평화로운 풍경.

마을은 분주했다.

저마다 웃고 떠들며 서로에게 힘을 보태 주고 있었다.

구울들은 곧 열릴 만찬에 대한 기대로 저마다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땔감을 나르던 한 구울 소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소년은 짝사랑하던 소녀의 앞이라고 무리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던 중이었다.

“으악! 쏟아질 것 같은데?”

“또 강한 척하더니만. 그렇게 힘쓰다가는 금방 지쳐 버린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저씨! 저도 이제 곧 어른이라고요!”

화로에 장작을 넣고 있던 사내가 낄낄대며 어린 소년을 나무랐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땔감을 든 덕분에, 소년은 연신 휘청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마을의 잔칫날.

인간들을 잡아먹을 생각에 구울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도끼가 날아들었다.

휘릭, 푸욱-!

날아온 도끼는 소년의 가슴팍에 박혔다.

새빨간 핏물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장작을 넣고 있던 사내와 인간 고기와 함께 곁들어 먹을 숲의 열매를 따던 아낙네들.

모두가 놀랐다.

소년의 작은 몸이 장작들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것을 시작으로, 마을 곳곳에 은색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쿠우웅-! 쾅! 쾅!! 콰앙-!!!

순식간에 마을은 은빛 불꽃에 휩싸여 버렸다.

그 불꽃 사이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단단히 열이 받은 최명준이었다.

“새끼부터 죽여야 해. 벌레들은.”

최명준은 천천히 다가가 소년 구울의 가슴팍에 박힌 도끼를 뽑아 들었다.

츄르륵-.

구울의 걸쭉한 피가 도끼날을 따라 소년 구울의 목부터 얼굴까지 적셨다.

피를 보고 점점 흥분하기 시작하는 최명준을 보며, 최현지를 혀를 내둘렀다.

“진짜 사이코 새끼.”

그럼에도 최명준은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재미 좀 볼까.”

최현지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검은 물체를 소환했다.

어쨌든.

지금은 청소 시간이었다.

“빨리 끝내자. 씻고 싶으니까.”

최현지의 말을 신호로, 구울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은 어떻게 된 거야?!”

“아……. 아……. 어떻게 이런 일이!”

빛남에 남아 있던 구울들은 대부분 전투를 할 수 없는 노약자나 아이들뿐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한 채 죽어 나갔다.

검은 물체, 빛기둥, 손도끼 등.

마을은 어느새 피바다가 되었다.

은색의 빛기둥이 마을 곳곳에 솟아오르며 집들을 박살 냈다.

일방적인 학살.

구울들은 강시온 일행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일행을 향해 덤벼들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그저 제 목숨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 사방의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짐승처럼 달려들던 숲의 사냥꾼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푸슉!

가장 앞서서 숲을 향해 뛰어가던 구울이 미간에 작은 구멍이 뚫리며 쓰러졌다.

별무리를 빚는 빛남의 장인이었다.

그리고 그를 뒤따라 내달리던 구울들은 허공에 떠 있는 작은 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악!

또 다른 미간으로.

또 다른 심장으로.

또 다른 눈알로.

그렇게 구울들은 차례로 쓰러져 나갔다.

최명준은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은 어느 늙은 구울의 멱을 칼로 그어 버렸다.

강시온 일행이 마을에 처음 당도한 날, 마을의 중앙에 앉아 햇빛을 맞고 있던 노인이었다.

한때, 챙의 집이었던 나무집이 산산이 터져 나갔고.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구울들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무형의 검은 물체에 의해 발밑에서부터 갉아져서 쓰러져 가는 구울들도 있었다.

마을의 구울들은 너무나도 쉽게 목숨을 잃어갔다.

전투나 학살.

그런 단어들은 마을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해충박멸이나 청소 등의 단어가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 * *

솨아아…….

비가 천천히 멎어 들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마지막 빗방울이 나뭇잎 끝에 부딪혀 부서졌다.

얼마나 죽어 나갔을까.

한 구울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구울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빛남 안에는 강시온 일행을 제외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강시온은 한때 빛남이었던 폐허의 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지루한 눈빛으로 폐허를 훑어보았다.

멀쩡한 것이 없었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부서졌고.

구울들의 핏물이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번져 나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일행들은 저마다 새빨간 핏물을 뒤집어쓴 채 자신들의 무기를 갈무리했다.

최명준이 주변에 널브러진 천 조각으로 자신의 얼굴을 슥슥 닦아 냈다.

그때.

어디선가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시온은 소리에 집중하여 마을 한쪽 구석의 잔해더미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나무판자를 들어 올렸다.

“히이익!”

그 안에 숨어 있던 어린 구울 하나가 몸을 움츠리며 작게 신음 소릴 내었다.

“하나…….”

마지막 남은 구울을 알아본 최현지가 신음하듯 그 구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하나는 잔뜩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강시온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으로 그런 하나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잡아먹기 위해 집으로 데려온 돼지가 온 가족을 다 죽여 버리면, 겁이 날 법도 하겠네.’

딱히 눈앞의 하나에게 연민을 느낀 건 아니었다.

겁에 질려 도망을 다니던 구울들의 행동 양식에 대해 약간의 이해를 더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구울들은 인간들과는 딱히 다를 것 없이 행동해 왔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시온은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고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이 숲에 온 뒤로 계속 이 상태였다.

헛것이 보이고, 머리가 어지럽고, 차마 서 있지도 못할 정도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아하니, 강시온 본인만 그런 것 같았다.

숲의 공기가 이상한가.

아님…….

강시온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히, 히익!”

하나는 잔해들 틈에서 잡히지 않기 위해 더욱 몸을 웅크렸지만, 결국 피할 곳이 없어 강시온의 손에 잡혀 잔해 밖으로 끌려 나왔다.

꽈당.

우악스런 손길에 바닥을 나뒹군 하나를 향해, 최명준이 나섰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연신 숨을 시근덕거리고 있었다.

“형님. 형님께서 그 X새끼의 더러운 피를 손에 묻히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처리하죠.”

최명준은 손에 들고 있는 도끼를 높이 치켜들었다.

피에 젖어 원래의 색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도끼였다.

하지만.

“가라.”

강시온은 하나를 놓아주었다.

최명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강시온을 바라보았고, 곧 군말 없이 도끼를 다시 허리춤에 걸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하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강시온 일행을 번갈아 가며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지, 진짜냐. 하, 하나. 살다?”

하나는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강시온은 주변의 일행들에게 물러서라는 듯 턱짓했다.

일행들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강시온의 지시에 토를 달지는 않고 길을 비켜 주었다.

“흐으으……. 흐으으으……. 고맙다! 하나! 살다! 고맙다!”

하나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연신 허리를 숙여 댔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숲을 향해 와다다 달려 나갔다.

“그런데 저러다 나중에 복수라도 한다고 까불면……. 예전에 제가 생활하던 시절엔…….”

일행들은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강시온에게 다가갔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살려 준다고 한 적 없어.”

강시온은 하나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은빛의 불꽃들이 점차 사그라들고, 잿빛처럼 어두운 숲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강시온은 휘청거렸다.

점점 버티기가 힘들었다.

누군가 머리통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이 번져서 보이기 시작하고, 점차 의식이 흐려졌다.

강시온은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풀썩-!

쓰러지는 그를 안은 건, 진재희였다.

* * *

비와 함께, 숲에 쏟아지던 한 줌의 태양 빛 또한 저물었다.

어느새 작은 소란들로 가득하던 낮이 지나고, 숨을 옥죄는 고요가 내려앉은 숲속.

한 어린 발걸음이 숲을 내달리고 있었다.

“흐아아…….”

빛남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한 하나는 어두운 숲을 내달렸다.

와다다!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하나는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바위를 넘어서 점점 숲속 깊숙이 들어갔다.

외지인이라면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운 길만을 따라서, 구울들만이 아는 길로 움직였다.

그리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하나의 눈물이 멎어 들었다.

하나는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마녀님! 살려 주세요! 제발…….”

이제는 구울들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옛 언어.

엘프였던 선조들이 사용하던 오래된 언어로, 하나는 악에 받힌 듯 외쳐 댔다.

마녀는 강했다.

구울들은 모두 마녀가 절대적으로 강하다고 믿었다.

하나는 예전에 마녀가 마을로 찾아왔었을 때를 떠올렸다.

제대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대가로 마을 어른들 몇의 머리통이 일순간에 날아갔던 그때를.

하나는 작게 몸을 떨었다.

“마녀님이라면……. 마녀님이라면 도와주실지도 몰라……!”

하나는 예전에 챙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나야.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어른들에게 말씀드리렴. 하나는 우리 마을에서 제일 귀여우니까, 누구든 하나를 도와줄 거란다.

챙의 따뜻한 목소리.

하나는 마녀 또한 ‘어른’에 포함되는지를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생각을 털어 버렸다.

이제 믿을 만한 존재는 마녀뿐이었기 때문에.

곧, 눈에 익은 오두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오두막.

하나는 오두막의 앞에 다다라 소매 춤으로 흐르던 눈물을 닦아 냈다.

그리고 하나가 오두막의 문에 손을 올려 노크를 하려던 그때.

끼이익-!

오두막의 문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스스로 열렸다.

“히익!”

하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조용하다…….”

하나는 다시금 용기를 얻어 오두막에 들어섰다.

오두막은 어두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그리고 그때.

어두운 오두막의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뭇잎을 우아하게 엮어서 만든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고목의 가지처럼 생긴 지팡이를 들고 있는 여인.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었다.

마녀였다.

“작은 아이야.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니?”

마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입에 물고 나긋하게 물었다.

하나는 깜짝 놀랐지만, 마녀를 알아보고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 마녀님! 음식들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어요! 막 불이 콰앙! 구슬들이 콰아앙 하면서…….”

마녀는 여전히 여유로운 몸짓으로 횡설수설하는 하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팔을 뻗어 포근하게 하나를 안아 주었다.

“옳지. 옳지, 아이야. 진정하렴. 이제 무서운 존재는 없단다.”

“흐으……. 마녀님! 너무 무서웠어요.”

하나는 이제야 마음이 완전히 놓인 듯 서럽게 울어 대기 시작했다.

마녀는 천천히 하나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하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얼마나 울어댔을까.

딸꾹.

하나가 울음을 멈추고 작은 딸꾹질을 시작할 무렵, 마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이야. 그래서, 구울들이 모두 죽은 거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죽었어요……. 딸꾹! 마녀님이 혼내 주세요……. 그 사람들은……. 딸꾹! 그 사람들은……. 무서웠어요! 무서웠어요…….”

“옳지. 그랬구나. 하지만 걱정 마렴. 아이야. 너는 네 할 일을 잘 마쳤으니. 그러니까…….”

마녀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하나의 머리를 감싸았다. 우드득!

곧 뼈가 비틀려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오두막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다만 하나의 목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어깨 뒤로 늘어진 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하나는 옆으로 쓰러졌다.

“……이제 편히 쉬려무나. 이제 네 쓸모는 다했단다.”

마녀는 하나의 머리카락 사이에 끼어 있던 작은 구체를 손에 쥐어 들었다.

마녀는 그 구체를 보고는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그 구체는 강시온의 것.

도망치는 하나가 어디로 향하는지 추적하기 위해 그가 남겨 놓은 것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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