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타락한 자들의 숲 (3)
“죽여.”
“이응.”
꽈드드드득- 촤르르륵……!
강시온의 말에, 최현지는 고민도 하지 않고 검은 물체를 강하게 조였다.
챙은 검은 물체 안에서 과즙이 짜이는 오렌지처럼 찌부러졌다.
모든 사실을 원정대에 실토한 챙은 그대로 죽어 버렸다.
애초에 강시온은 챙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놈은 몬스터니까.
점점 구울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수풀을 헤집고 나오는 구울 무리.
놈들은 하나같이 횃불을 들고 있었다.
몰아치는 빗물에도 횃불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문득 강시온은 구울들이 왔다는 사실보다 더, 빗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저 횃불들의 재료가 신경 쓰였다.
구울들은 하나같이 붉은 눈동자를 하고 손톱과 발톱을 길게 늘인 채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마치 죽기 전 챙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들은 모두 한곳으로 쏠렸다.
피가 말라붙어 있는 진재희의 손가락이었다.
“아, 아름다워. 피. 피.”
“엘프처럼 아름다운 존재는 처음이야. 마녀님한테 바치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진재희의 모습에 감탄하던 구울들은 다시 눈을 돌려 다른 일행들을 돌아봤다.
그들은 이제 미친 듯이 코를 킁킁대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엄마. 배고파!”
“기다려. 저 튼실한 놈으로 금방 구워다 줄게.”
“나는 오른쪽 다리가 좋아. 창에 꿰뚫어서 익히면…….”
“별미는 눈동자라고.”
“나는 심장……. 심장이 좋아…….”
“통구이로 먹어도 얼마나 맛있을까? 마을에서 준비가 한창이겠지?”
구울들은 원정대를 둘러싸곤 연신 수군덕댔다.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일말의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구울들은 강시온 원정대를 두려워해 천천히 함정에 빠뜨려 죽이려는 계획까지 세울 정도로 치밀했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어린 사자 몇 마리가 거대한 물소를 향해 달려드는 꼴이랄까.
자신들이 어떤 입장인지도 망각한 채, 오로지 식탐에 몸을 맡긴 타락한 자들.
이성을 잃게 만드는 흑마법의 위력이었다.
구울들 사이에서 백발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빛남의 촌장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자태야. 영롱해. 마치 엘프 같은 모습이야. 저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면, 마녀님도 굉장한 상을 내리실 거야.”
촌장을 비롯한 구울들의 기괴한 대화 소리를 듣다가 강시온은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곁에 있었던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준호에 대해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어.”
강시온조차도 혐오감에 휩싸여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진재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한 놈만 사로잡을까?”
“…….”
강시온은 조금 고민하다 다시 촌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준호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했던 방랑자. 그 이야기도 거짓인가?”
“강준호……. 사실이다. 그들은 지나갔다. 부패한 땅을 넘어서 말이지.”
“언제.”
“글쎄, 우리에게 시간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어서…….”
촌장은 혼자서 낄낄대더니 이내 폭소를 터트렸다.
“꽤 소중한 사람 같은데……. 근데 어쩌나! 너는 여기서 잡아먹힐 운명인데!”
강시온은 뒷목을 잡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역시 도움이 안 될 줄 알았다.
촌장은 말을 이었다.
“여자만 놓고 가면……. 너흴 해치진 않겠다. 사라져라.”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했지?”
“…….”
강시온은 꿋꿋하게 다른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촌장은 침묵을 지켰다.
“네가 원하는 것을 놓고 갈 테니까, 대답이나 잘해.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했냐고.”
“…….”
“엥?”
강시온의 엉뚱한 약속에 최현지는 그를 쏘아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동료를 버린다고 말하다니.
최현지는 게슴츠레 강시온의 옆얼굴을 쳐다보았고, 촌장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말이 통하는 가축이군…….”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어떻게 했냐고.”
강시온은 이 보급품을 옮겨 왔을 만경의 지원대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이곳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면, 지원대 역시 이곳에 갇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원정대는 지원대를 보지 못했다.
시체만 봤을 뿐이다.
그때 촌장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꽤 아름다운 놈들은 마녀의 솥에……. 몇 놈은 육포……. 몇 놈은 바비큐 파티……. 몇 놈은 회로 먹었던가?”
촌장의 말에 구울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나름 괜찮았어. 끌끌끌.”
“그때 먹었던 놈은 비린내가 좀 나더라고.”
“바비큐로 먹을 때가 가장 좋았지. 하하하하!”
“요즘 들어 계속해서 가축들이 뛰어다니는 바람에, 사냥꾼들이 힘 좀 냈지.”
“챙이 제일 많이 싸워 줬던가?”
“그중에는 강한 놈도 몇 있었어.”
“마녀님께 진상할 할당량도 채우기 쉬웠고.”
구울들의 웃음소리가 숲에 가득 차올랐다.
최현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지 파르르 떨었다.
촌장은 강시온에게 말했다.
“자, 이제 여자를 놓고 가라.”
“…….”
만경의 지원대.
그들은 모두 강시온을 돕기 위해 만경에서 떠나온 자들이었다.
아마……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곳에 왔던 이유는 하나였다.
혹시라도 만경의 왕, 강시온이 살아 있진 않을까.
배고파하진 않을까.
길을 잃진 않았을까.
괴한 무리에 잡혀 있진 않을까.
만경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왕을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 숲에 발을 들였다.
1년 동안 돌아오는 이가 하나 없음에도 지원대를 보낼 정도로 강시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렇기에 강시온이 수색대를 잡아먹은 구울들을 용서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강시온은 구울들이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진재희에게 말했다.
“전부 죽여 버려.”
“응.”
강시온과 최명준, 최현지는 구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다가오자 구울들은 점차 길을 터 주었다.
이윽고 이곳에는 진재희 혼자 남게 되었다.
진재희를 둘러싼 구울들이 비열하게 웃어 댔다.
“버림받았다……! 아!!! 버림받았구나……!”
“캬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악!!”
“이제 참을 수 없어……. 너무 배고파!”
“어떻게 먹어야 하지? 아, 저 매끈한 목덜미를 입으로 덥석……! 아……!”
“난 귀! 귀를 먹을 테다!”
여자의 모습을 한 구울도, 남자의 모습을 한 구울도.
노인은 물론이고, 아이의 모습을 한 구울도.
하나같이 손톱을 들이밀며 이빨을 갈았다.
놈들은 천천히 진재희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성검을 불러들였다.
어두웠던 숲에 찬란한 은빛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은색으로 뒤바뀌었다.
* * *
“혀, 형님……. 이제 어쩝니까.”
생각.
생각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았다.
결국 이 숲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퀘스트를 클리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일 년.’
눈앞이 캄캄했다.
이 숲에서 조금만 시간을 허비하더라도, 밖에서는 순식간에 시간이 지날 것이었다.
물론 만경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무너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대략적으로 훑어본 보고서였지만, 만경은 순항하고 있었다.
하윤하는 제법 유능한 행정가로 거듭난 모양이었는지, 만경은 무서우리 만큼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숲 밖의 세계는 격동하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직접 그런 변화들에 대응할 수 있다면 마음이 편했을 테지만, 지금은 이 숲에 발이 묶인 신세.
좋지 않았다.
문제는 만경뿐만이 아니었다.
준호의 위치.
빛남의 촌장은 준호가 숲을 나갔다고 했다.
준호는 나를 찾고 있을 터였다.
내가 그러하듯, 동생 또한 나에 대한 걱정으로 매일 밤을 지새우고 있겠지.
발길이 닿는 곳마다 나를 찾기 위해 수색에 수색을 거듭하다가 이 숲까지 흘러들어 왔으리라.
‘일단 만경으로 돌아가야 해.’
지금까지는 준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준호는 드래곤을 잡고 퀘스트를 완료한 것이 확실해졌고, 숲의 시간이 어그러져 있는 것도 알게 된 상황.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목적은 바뀌었다.
이제는 다시 퀘스트를 쫓아야 했다.
마녀의 흔적을 찾는 것.
하루라도 빨리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만경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하는 것이 옳았다.
아까 보았던 독 지대를 지날 방법을 생각하는 것은 재정비를 끝낸 다음 단계였다.
“왕아. 이제 어쩔까?”
최현지의 물음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최현지와 최명준.
두 사람 모두 눈빛을 빛내며 나를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다.
명령만 내린다면 어떤 일이든 해내겠다는 독기가 내비쳤다.
숲에서 겪은 고난들이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든 것이리라.
그리고 곧, 생각은 정리되었다.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만경으로 돌아가서 독 지대를 통과할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전에, 빛남으로 가서 복수해야겠지.”
만경의 수색대와 함께 숲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숲을 청소해 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뒤탈을 남겨 놓아선 안 된다.
게다가 부하들의 복수는 반드시 해야 했다.
-끼에에엑!
이름 모를 구울의 비명이 멀리서 메아리쳤다.
최현지와 최명준은 연신 그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빛남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 * *
타닥……. 타닥…….
흩날리는 빗방울에도 아랑곳 않고 타오르는 은빛 불꽃.
숲은 그 은색의 신성한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나무와 숲의 가녀린 것들을 집어삼키지 않았다.
오직 적들만을.
구울만을 집어삼켰다.
구울들은 검에 베이고, 몸이 불타 사라지며 비명을 질러 댔다.
그들의 비명이 숲 안 가득 울렸다.
“사, 살려 줘!!”
호기롭게 진재희에게 달려들었던 구울들은 더 이상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사냥감들만이 존재했다.
구울들은 저마다 사지가 날아가고, 머리가 날아간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쿠웅!
진재희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난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파공음이 숲을 뒤흔들었다.
거대한 빛의 기둥.
진재희의 검에서 뻗어 나온 은색의 빛기둥이 구울들을 집어삼켰다.
“끼에에에엑!!!”
단칼에 수 마리.
어쩌면 수십 마리의 구울들이 죽어 나갔다.
구울들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쓰러져 나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리 오래 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구울이 사냥당한 이후, 놈들의 비명 소리는 서서히 멎어 들었다.
진재희는 그 은빛 불꽃의 정중앙에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났나.’
진재희는 자신이 베어 넘겼던 구울들의 숫자를 헤아려 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진재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구울은 없었다.
은빛으로 빛나던 진재희의 머리카락이 점점 검은 빛으로 돌아왔다.
그때.
“사, 살려 줘…….”
진재희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 구울이 복부에서 쏟아지는 자신의 내장을 그러모으고 있었다.
그 구울은, 시체 더미에 등을 기댄 채로 미력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 놈들은 이성을 되찾은 듯 보였다.
“제, 제발……. 마, 마녀님께서 시켰어. 우, 우리는 죄가 없어……. 마녀가 우리에게 영원한 아름다움을 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제발 살려 줘.”
구울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 눈동자에는 생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몬스터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인간의 눈동자였다.
“응? 제발……. 아아, 마녀님……. 우리도 다 시키는 일만 한 거야…….”
변명.
회피.
놈은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고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이었을까, 구울은 연신 헛소리를 섞어 가며 목숨을 구걸했다.
진재희는 천천히 그 구울을 향해 다가갔다.
“히, 히이익!”
구울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사지를 바둥거리며 뒤를 향해 기었다.
진재희는 놈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작은 단도를 꺼내 들었다.
진재희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녀?”
“마, 마녀님이 이번 손님들은 반드시 살려서 잡아 오라고 했어. 그러니 제, 제발…….”
마녀.
퀘스트의 실마리.
구울들이 아까부터 끊임없이 입에 담던 단어였다.
구울들이 퀘스트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로써 확실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한참이나 선을 넘어 버렸다.
진재희는 구울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구울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곧, 진재희는 마지막 남았던 구울의 사체를 뒤로하고 숲으로 사라졌다.
강시온에게 합류해서, 청소를 끝마치기 위함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