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드러나는 실체 (1)
숲의 밤은 여전히 고요했다.
강시온 일행이 머무는 숙소 또한 예외는 없었다.
사사삭!
고요한 숙소 주변에서 누군가가 수풀을 헤치며 움직였다.
산발한 장발의 머리를 한 남자.
남자는 어둠 속에서 시온 일행의 숙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방은 빛 한 점 없이 어두웠지만, 남자는 낮처럼 환하게 앞을 볼 수 있었다.
“내…… 내 콜라……!”
희미하게 ‘손님’들의 잠꼬대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숙소의 동태를 파악한 뒤, 서둘러 숲을 내달렸다.
숲을 내달려 남자가 도착한 곳은 빛남.
그곳에서도 촌장의 집이었다.
“확실히 잠들었습니다. 숲을 헤매느라 피곤했을 테니 깊게 잠들었을 겁니다.”
무언가의 정강이뼈로 보이는 것을 날카롭게 깎고 있던 촌장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일전의 보여 주었던 허허로운 웃음과 달랐다.
입이 뒤틀리듯 벌어져, 그 안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나는 비릿한 웃음이었다.
“그래. 마녀님께서 특별하게 지시하신 인간들일세. 한 치의 실수라도 있어선 안 돼. 만약 실수를 저지른다면 마녀의 솥에 들어갈 건 인간이 아니라 우리일 거야.”
다른 주민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다운 인간.
마녀는 아름다운 인간만을 원했다.
특히나 이번에는, 원정대를 사로잡으라는 마녀의 특별 지시가 있었다.
빛남의 주민들은 계획했다.
원정대를 마녀에게 바칠 준비를.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명, 아름다운 외모가 돋보이는 여자가 있던데, 그것 말고는 전부 저희에게 주시지 않을까요?”
어두운 방 안이었지만, 남자는 촌장의 방을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어둠 속에서 누런 안광을 번들거리는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모두 입을 뒤틀어 열고 침을 질질 흘려 대는 중이었다.
“몇 놈은 우리에게 넘겨주실지도 몰라.”
“아니, 최근 들어 이곳에 많은 인간들이 북쪽에서 왔으니까.”
“마녀만 아니었어도, 그 아름다운 것을 그냥.”
“아-. 살점은 부드럽고 피는 꿀처럼 달콤한 거야.”
그들의 정체는 구울.
인간의 살을 뜯고 피를 마시는 몬스터였다.
특히, 아름다운 존재를 먹는 것을 좋아했다.
구울은 아름다움을 쫓는 몬스터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저 그런 인간을 먹었을 뿐, 아름다운 인간을 먹진 못했다.
압도적인 힘을 지닌 마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촌장은 한껏 달아오른 주민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진정들 하시게나. 호락호락한 인간들은 아니야.”
촌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동안 빛남을 지나간 플레이어는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촌장과 주민들은 그들을 ‘먹을 수 있는 자’와 ‘먹을 수 없는 자’로 나눴다.
나누는 기준은 간단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강함의 척도.
‘그 강준호라는 방랑자도 그렇게 보냈었지.’
문득 촌장은 얼마 전에 마을을 지나쳤던 강준호에 대해 떠올렸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하는 듯한 강함이었다.
용의 둥지로 간다길래, 처음에는 정신이 나간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숲의 주인인 녹룡은 쉽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촌장은 그들이 죽었을 거라고 장담했지만.
‘설마 녹룡을 잡았을 줄이야. 괴물 같은 자식.’
촌장은 그때를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이 몸서리를 쳤다.
그들을 빛남에서 하루라도 빨리 내보내기 위해 얼마나 공들였던가.
“어쨌든, 이들처럼 감당하기 힘든 강자들은 그냥 보내는 게 맞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이번에도 마녀님께 바칠 인간을 놓친다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야. 일단 챙이 그들의 무위를 살펴보았으니 챙을 기다려 봄세.”
그때, 촌장의 집 문이 열리고, 챙과 하나가 들어왔다.
“챙.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느냐.”
“죄송합니다. 촌장님. 하나가 산책에 나서자고 졸라 대는 바람에…….”
“촌장! 걸은다! 숲! 재밌다! 하나! 안 먹었다!”
하나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그렇게 외쳤다.
챙은 티 나지 않게 하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하지만, 촌장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나가 무언가 사고를 친 눈치였지만, 챙이 왔으니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챙. 이번 손님들은 강하다지? 어디 가까이서 봐온 바를 말해 보게.”
“예. 촌장님. 그들은 강한 자들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을 정도로요.”
챙의 말에 마을 주민들이 웅성거렸다.
주민들의 웅성거림이 커지자, 촌장은 다시금 주민들의 주의를 끌었다.
“자. 그만. 그만. 다들 집중하시게. 아까도 말했다시피,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그냥 보내선 안 되네. 특히 이번에 들어온 인간들은 마녀님께서 반드시 잡아 오라고 직접 지시까지 하셨으니.”
촌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마을 사람들은 연신 침을 꼴깍대며 촌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방 안에 찐득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곧, 촌장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그놈을 부르는 게 좋을 듯하네.”
촌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옳소! 그놈이라면…….”
“손님들! 죽은다! 만찬! 맛있다!”
촌장은 다시 소란스러워지려는 주민들을 진정시켰다.
“진정들 하시게. 진정! 아직은 일러. 한동안, 친절한 주민으로 철저하게 위장들 하시게나.”
누릿한 빛으로 번득이는 눈동자들이 모두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 * *
밤새 쥐 죽은 듯 잠들었던 숲은 일출과 함께 깨어났다.
짹짹.
숲의 새들은 밤새 움츠렸던 날개를 펴면서 울음소리를 내었다.
부드러운 햇살이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를 지나치며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잠에서 깨어난 최현지가 눈을 비비며 숙소의 문을 열었다.
최현지는 아직도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는 듯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코를 X나게 고네. 돼지 같은 자식…….”
최현지는 숙소의 내부를 돌아보았다.
풀잎으로 엮어 만든 커튼을 쳐 둔 덕분에, 숙소의 내부는 아직 어두웠다.
숙소 안의 일행들은 모두 제각각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혹시 죽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동도 없는 시온과 재희.
그에 반해, 최명준은 윈드밀이라도 돌았나 싶을 정도로 기괴한 자세였다.
“거어어어억! 거어어어어억!”
기괴한 자세로 누워 코를 골아 대는 최명준.
최현지는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최명준을 째려보았다.
“진짜 덩칫값을 X같이도 해요.”
현지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밖으로 나가 숲을 내다보았다.
빛남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오솔길 저 멀리에서 익숙한 생김새의 꼬마가 낑낑대며 무언가 짊어진 채 걸어오고 있었다.
“오. 하나잖아?”
“하나. 물 왔다! 세수하다! 기분 좋은 아침!”
최현지는 방긋 웃으면서 하나에게 인사했다.
‘내가 저런 귀여운 꼬마를 위협했다니.’
티 없이 맑게 웃는 하나를 보며 최현지는 내심 미안함을 느꼈다.
하나는 끙끙대며 길어온 물을 숙소의 앞에 내려놓았다.
“다들 일어난다! 아침! 밝은 아침!”
하나는 쾌활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기분 좋은 아이의 외침에, 일행들이 하나둘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고마워 하나야. 잘 쓸게.”
“히히. 하나! 열심히 하다! 무겁다! 힘 냈다! 아침에 씻는다! 나중은 냄새난다!”
최현지는 하나의 볼을 살살 꼬집어 주었다.
하나도 기분이 좋은 듯 빙긋 웃으며 숙소 주위를 뛰어다녔다.
최현지가 가장 먼저 세수를 끝내자, 뒤이어 걸어 나온 시온과 재희가 차례로 얼굴에 물을 묻히며 남은 잠기운을 털어 냈다.
“기분 맛있다! 아침!”
“그래. 좋은 아침이다.”
강시온은 짤막하게 하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괜한 의심을 덜기 위한 인사였지만, 하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진재희는 아직 경계심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살짝 하나를 흘겨 보았다.
그때, 숙소가 부산해지며 뒤늦게 눈을 뜬 최명준이 밖으로 나왔다.
“으어-. X바꺼. 늘어지게도 잤네. 형님도 일어나셨습니까! 끄으으-!”
최명준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자신의 발밑에 놓인 물 양동이를 발견하고는.
“오! 이야, 여기 서비스가 뒤지네. 어제 술을 잔뜩 먹어서 목이 타던 차였는데.”
최명준은 양동이를 집어 들고 그 안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모두가 세수를 했던 그 물을.
간밤에 최명준의 코골이에 당한 일행들은, 한마음으로 그가 마시던 물의 정체에 대해 함구했다.
“근육 돼지야. 너는 참……. 답도 없다.”
“아침 댓바람부터 시비야.”
최현지와 최명준이 티격 대는 사이.
진재희는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하나에게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뭐야?”
진재희가 물었지만 하나는 그대로 재희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제 막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의 재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뭇잎들 사이에 흩어졌던 햇빛이 그녀의 주변에 모여들 듯이 빛났다.
“호와아…….”
하나는 넋을 놓고 진재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매끄러운 흰 살결.
건강한 혈색으로 빛나는 피부.
제대로 단련되어 균형 잡힌 몸매.
하나는 천천히 진재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재희의 소맷자락을 잡고 헤실헤실 웃었다.
“맛있겠다!”
하나는 빙긋 웃으며, 헤- 입을 벌렸다.
그러자 벌어진 입으로 말간 침이 주룩 흘렀다.
누가 보아도 군침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나의 말에, 겨우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진재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맛있겠다고?”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직감한 진재희의 손이 조용히 자신의 검으로 향했다.
그러자 하나는 당황하며 중얼댔다.
“아, 아니다! 잘못 말한다! 아니…… 우웁!!”
그때, 어디선가 챙이 나타나 하나를 잡아챘다.
“아하하하! 이놈 이거. 말이 어눌해서 참 말썽이네요. 아하하!”
“읍읍!”
챙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하나를 껴안은 채 하나의 입을 막았다.
하나는 챙의 품에 안겨 바둥거리다가 겨우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파하! 오빠! 숨 막힌다! 하나 죽은다!”
“요 녀석아. 손님들께 실례되는 말을 하면 어떡해!”
“미안하다! 실례! 싫다!”
하나는 금세 울상이 되었다.
챙에게 야단맞은 것이 서글픈 모양이었다.
“어서 사과드려!”
“알았다. 하나! 착한 아이! 미워한다. 싫다!”
하나는 챙의 품에서 바둥거려 빠져나온 뒤에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말 어렵다. 실례 싫다. 미워한다. 싫다.”
하나는 배꼽 인사를 하며 진재희에게 사과했다.
챙 또한 하나의 고개를 푹 누른 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엄하게 가르쳐야 하는데, 어린 것들에게 모질지 못해서요. 아직 말도 어눌하고 제대로 배우질 못해서 그런 것이니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잔뜩 풀이 죽은 하나의 모습에 진재희의 굳어졌던 표정이 풀어졌다.
‘그래. 적어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는 거짓이 없어. 내가 너무 과민했던 것일지도.’
하나의 올망졸망한 눈동자에 습기가 맺혔다.
그 모습을 보고 최명준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저 쬐깐한 녀석을 울리고 그러냐. 하여튼 칼질만 잘하지, 다른 것들은…… 꾸엑!”
진재희는 번개 같은 속도로 최명준을 발로 찼다.
최명준은 볼품없이 바닥에 구르더니 벌떡 일어났다.
“아오! X팔! 내가 축구공이야? 왜 자꾸 발길질이야!”
최명준이 길길이 뛰든 말든, 진재희는 최명준을 무시한 채 그 어린 것의 사과에 어쩔 줄을 모르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괜찮아. 괜찮아.”
재희는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았다.
세상이 뒤집히고, 순수한 것은 사라져갔다.
어린 것들이든 나이 든 것들이든.
오로지 투쟁과 생존만이 남았다.
사과받고, 용서하고, 그런 따뜻한 교감은 이제 낯선 것이 되었다.
그것이 진재희를 당황케 했다.
‘차라리 칼부림이 편하겠네.’
진재희가 어울리지 않게 당황하며 삐걱대는 동안, 강시온은 챙에게 다가갔다.
그는 수건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챙에게 물었다.
“챙. 날이 밝으면 수원으로 갈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죠. 안내해 주세요.”
챙은 하나와 진재희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예! 맞습니다. 어제 길잡이들과 이야기를 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수원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얼추 알아냈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단 촌장님께……. 아. 시장하시겠네요.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드시고 바로 출발하시죠. 식사를 준비해 뒀습니다. 하하!”
챙은 호탕하게 웃어 보이고는 일행을 안내했다.
일행은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챙을 따라 움직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