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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35화 (135/221)

제135화. 흔적 (1)

“당신들을 손님으로서 환영합니다. 편하게 쉬시죠.”

챙은 이제까지의 앙금은 모두 털어버렸다는 듯,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챙은 곧장 앞장서 걸었다.

“어서 오시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순순히 챙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결코 경계를 푼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두 눈에 담았다.

‘원시인들 같아.’

나는 그렇게 감상을 내렸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특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우선 그들은 모두 산발이 된 장발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같이 밝게 웃는 표정이라는 것.

마치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다는 듯이.

그때, 멀리서 나무를 타며 놀던 아이들이 시온과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꺄르륵! 와라! 와서 이거 먹어라!”

“뭐냐? 새로운 사람. 어서 와라.”

저마다 손에 나무 열매나 정체 모를 뼛조각을 깎아 만든 장신구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안양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보지 못했던 식물이야.’

원래의 세상에서 자라던 식물 대부분이 멸종했기 때문에 익숙한 식물을 보기 힘들어진 것은 맞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내미는 것들은 세상이 바뀐 이후로도 처음 보는 식물들뿐이었다.

숲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마녀의 흔적을 찾으라고 했다.

마녀와 이 마을의 관련성도 찾아보면 좋을 터.

어쨌거나 이 마을에 머무는 것은 당장은 좋아 보였다.

원정대의 체력도 많이 줄었고, 마녀의 흔적, 더 나아가서는 준호의 흔적도 찾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저들이 ‘살갑게’만 대해준다면.

“챙. 이거 새로운 사람들 준다. 줘도 되냐.”

“잠시만 기다려 얘들아. 지금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잖아.”

아이들은 금세 풀이 죽은 얼굴이 되어 물러났다.

챙은 이곳 아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보였다.

이 마을에 유일한 유치원 교사와 같은 위치.

난 지금 도저히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어느샌가 원정대와 챙, 그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건.

이 아이들 역시 남녀 가릴 것 없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는 것.

“형님. 애들 불러다가 여기 나무들 베어 가면 요긴하게 쓰겠는데요? 특히 성벽에 필요한 나무들이 없잖습니까.”

최명준은 나를 보며 신난 얼굴로 말했다.

실제로 이곳의 나무는 일반적인 나무와는 달랐다.

그 깊이와 폭부터가 거대했다.

이 마을의 오두막 대부분이 나무 기둥을 파내어 만든 것이 많았다.

그 안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불을 피워 요리를 만들거나, 나뭇잎을 엮어 옷을 만들고 있기도 했다.

난 어느 순간 습관처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는 평가 내리고 있었다.

챙의 등 뒤를 졸졸 따라가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나도 생각 좀 그만해야겠어. 머리가.’

잦은 생각 때문인지.

아님, 이 숲 때문인지.

여하튼 무척이나 쉬고 싶었다.

“아, 마침 저기 촌장님께서 오십니다.”

챙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고개를 숙인 방향에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분명 촌장이라고 했지만, 차림새는 다른 주민들과 다를 바 없었다.

역시나 머리는 장발에 풀을 대충 엮어 만든 옷을 입은 채였다.

“허허, 젊은 손님들께서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이곳은 빛남. 평화와 치유의 숲입니다.”

촌장은 허허롭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챙. 어디서 오신 손님들이신가?”

“숲에서 만났습니다.”

“숲에서? 어려운 길을 오셨구만. 그래요.”

“맞습니다. 그래서…….”

그때 최명준이 챙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섰다.

“어이. 다 집어치우고, 이 숲에서 나가는 길이나 좀 알려 주쇼.”

최명준은 한껏 인상을 쓴 표정으로 촌장을 쏘아붙였다.

그러자 진재희가 최명준의 어깨를 당기며 말했다.

“좀 조용히 있어. 그냥.”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촌장은 괜찮다는 듯이 웃어넘기며 말했다.

“허허, 마을 바깥에 숲은 매우 위험합니다. 일단 여기서 좀 쉬었다 가시지요. 편히 쉬신 뒤에 길잡이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진재희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언가 불안하다는 듯한 시선.

세상이 뒤집힌 이후로, 이렇게 조건 없는 환대를 받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흐으, 쉬어가자! 나 너무 힘들어!”

최현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투정을 부렸다.

최명준은 그런 최현지를 째려보았다.

“저런 경우 없는 년이 또. 형님, 이년 이거. 아예 여기에 버리고 갑시다! 아까부터 종알종알.”

“…….”

“형님?”

나는 명준의 말을 무시한 채, 눈앞에 서 있는 촌장을 쳐다보았다.

시종일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저 촌장.

미소를 띠고 다가오는 사람을 믿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특히 지금의 세상에서는.

하지만 숲을 벗어나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기란 어려웠다.

게다가 이 괴상한 숲속에서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 이들을 조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나중에 또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원래 내렸던 결론대로, 난 촌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허허. 챙. 이분들을 잘 모시게나.”

“예 촌장님.”

챙은 방긋 웃으며 앞장섰다.

“식사하시러 가시죠. 빛남에서 제일가는 음식들을 베풀죠.”

* * *

챙은 달뜬 발걸음으로 주방과 거실을 오갔다.

챙에게 간단하게 마을을 안내받은 뒤, 강시온과 일행은 챙의 집에 둘러앉았다.

그의 집은 마치 집의 형태로 자라난 듯한 생김새의 거대한 나무였다.

이곳의 그림 같은 풍경과 어울리는 집이었다.

“자, 여러분들 식사를 내왔습니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와! 맛있어 보여!”

최현지는 거실에 놓인 식탁 위에 차례대로 올라오는 음식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특이한 모양의 이파리로 만든 무침과 오묘한 검붉은 빛을 내는 고기들.

하나부터 열까지 일행들이 접해보지 못한 음식들뿐이었다.

벌써 쌍심지를 켜고 음식을 향해 손을 뻗는 최현지와는 다르게, 강시온을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은 음식을 먹길 주저했다.

“하하,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독을 넣거나 그런 일은 없어요.”

그들을 지켜보던 챙은, 자신이 먼저 식탁의 고기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최명준 역시 곧바로 음식에 손을 댔다.

명준은 고기를 한 점 크게 베어 물더니 눈을 큼직하게 떴다.

“워- X발. 진짜 맛있네. 형님! 한 번 드셔보십쇼.”

강시온은 느릿하게 손을 뻗어 음식을 손에 쥐었다.

“먹어 둬. 이런 걸로 장난질을 치진 않을 테니.”

시온은 먹기를 망설이는 재희에게 말했다.

재희는 그제야 시온을 따라 한 입 베어 먹었다.

시온은 그런 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두세 입 더 뜯어먹었다.

챙은 그런 일행들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손님들께서 이렇게 맛있게 드셔주시니 대접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이봐, 챙이라고 했나? 거, 술 같은 건 없나? 맛있는 걸 먹으니 술도 좀 땡기는데.”

최명준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챙을 쳐다보며 말했다.

“술이요? 물론 있습니다. 저희 빛남의 자랑거리가 또 하나 있었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챙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 큼직한 호리병을 가져왔다.

나뭇가지를 엮어 장식한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호리병이었다.

챙은 나무를 깎아 만든 잔을 꺼내 일행들에게 한 잔씩 술을 따라 주었다.

“이곳에서만 자라는 별나무 열매로 빚은 술입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호평 일색인 술이라 자부할 수 있죠.”

최명준은 기다렸다는 듯 잔의 내용물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크아! 죽이네! 이봐. 한 잔 더 줘봐. 형님! 드셔보세요. 죽입니다! 이야! 이런 술을 먹어 본 지가 또 언제인지!”

명준은 연신 감탄을 해 댔다.

향긋한 과일의 맛과 풍부한 알코올의 향.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하게 가슴을 때리는 알싸한 목 넘김까지.

세상이 뒤집히기 전이었더라도 분명 명주로 꼽힐 만한 물건이었다.

“하하! 저희의 자랑 ‘별무리’입니다. 맛있어서 계속 먹다가 눈앞에 별 무리가 아른거릴 만큼 취한다고 해서 별무리죠.”

최현지는 그 어느샌가 콜라를 꺼내 술잔에 섞어 마시고 있었다.

강시온은 술에 혀끝만 살짝 대어 보고는 조금 놀랐다.

‘맛있네. 괜찮은 술이야.’

지금 세상에서 술을 빚는 일 자체는 할 수 있어도, 이런 고급의 술을 빚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방법을 알아낸다면 분명 이득이 될 것이었다.

술이 있다면, 노동자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현대에서도 술과 담배는 싼값에 만족할 수 있는 중요한 기호식품이었으니까.

“이 술을 빚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새로운 기술.

강시온이 탐낼 만한 것이었다.

“하하.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나중에 양조장인들을 소개해 드리지요.”

좋은 술이 곁들여진 식사 자리는 천천히 무르익어 갔다.

어느덧 자리가 마무리되자, 시온은 지금이 본론을 꺼내기에 적합한 타이밍이라 판단했다.

“챙. 이전에 촌장이 길잡이를 붙여 준다고 했죠. 당신들은 이 숲의 지리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건가요?”

챙은 다리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몇몇 위험한 몬스터가 사는 곳을 제외하면 전부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원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도 알고 있겠군요.”

강시온은 가능하다면 이 숲의 자원들을 모두 활용할 방법을 천천히 강구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동생을 찾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수원? 수원이란 곳이 어디죠?”

그때, 돌아온 챙의 대답은 이곳에 모인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일동은 먹던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추었다.

일행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와중에, 챙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 지역 이름입니까? 가까운 곳이에요? 혹시 저만 모르는 건가요?”

챙의 멋쩍은 듯한 웃음에 최현지가 입에 가득 들어찬 음식들을 씹지도 못한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수원을 모른다고요? 바로 요 밑인데?”

“모릅…… 니다. 모르겠습니다. 아, 혹시? 촌장님께선 아실 수도 있겠네요.”

챙은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 있니! 아무나 좀 와볼래?”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어린아이가 와다다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부르다!?”

“그래. 불렀다.”

숲에서 최현지에게 ‘물 먹는 하마’를 건넸던 어린아이였다.

“하나야. 촌장님을 좀 모셔 올래? 손님들이 촌장님께 여쭤볼 게 있으시다고 하더구나.”

“물어온다! 데리고 온다!”

하나는 챙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쌩하니 집을 나가 버렸다.

어린아이다운 활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모두에게 익숙한 백발의 노인이 집에 들어왔다.

촌장이었다.

“촌장님.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손님들께서 긴히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셔서요.”

“허허, 아닙니다. 아니야. 젊고 파릇파릇한 손님들께서 오셨는데, 이 노인이 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나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수원엘 가신다고?”

허허롭게 웃는 노인의 앞에 최명준이 술에 취해 말했다.

술의 이름에 걸맞게, 최명준은 벌써 별무리를 보는 듯 발걸음을 비틀 댔다.

“그래. 노땅. 수원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

“뭣이? 노땅……? 노땅이 뭐죠?”

“이 멍청이는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린 수원으로 가야 하는데, 그 길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진재희가 이야기에 껴들며 물었다.

노인은 단신인 강시온과 눈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아, 그래요. 저도 얼마 전에 수원이 어디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 참. 우리 주민들은 숲에서만 살아서 숲 밖의 지리에는 어둡죠. 저도 얼마 전에 밖에서 오신 손님과 대화하면서 수원이 어딘지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노인은 침침해진 기억 속에서 헤매는 듯한 눈빛으로 허공을 보았다.

“어디 보자……. 분명히 얼마 전에 강씨 성을 가진 방랑자가 와서는 수원으로 간다고 해서 용의 둥지로 안내했죠. 용을 잡는 것이 그들의 퀘스트라고 했지요. 맞아요. 맞아. 이름이…….”

일행들의 이목이 온통 노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촌장은 덥수룩한 콧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강준호……. 정말 작은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수원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네.”

그 순간, 시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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