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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32화 (132/221)

제132화. 군포 가는 길 (1)

만경에선 5년 전, 강시온의 현재.

* * *

수원 원정 1일 차.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며 새로운 생명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을 감싸는 거대한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위로 뻗었다.

단단한 아스팔트를 꿰뚫고 나온 꽃과 잡초.

익숙한 생김새를 가졌지만, 이름조차 모를 몬스터들.

몬스터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는데, 분류하는 기준은 기존의 분류법을 따르지 않았다.

육식을 하냐, 초식을 하냐가 아닌, 사람을 공격하느냐, 공격하지 않느냐.

또 사람을 잡아먹느냐 아님, 방어하기 위해 사람을 공격만 하느냐로 나뉘었다.

식물성 몬스터와 동물성 몬스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모든 동물을 나누는 기준은 인간의 주관적인 분류법에 따른 것일 뿐.

이제 이곳에는 약한 자는 잡아먹힌다는 야생의 법칙만이 존재했다.

안양시 외곽을 조금 벗어나면, 완전히 숲으로 우거진 지대가 나왔다.

군포시 전체가 그러했는데, 지금껏 살아 있는 인간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죽어 백골이 되어 버린 인간의 시체는 여럿 있었다.

건물조차 가릴 정도로 하늘 높게 치솟은 나무들.

나무들의 생김새는 마치 얼굴 같았다.

정말 나무의 주름이 잠든 인간의 얼굴처럼 생겼다.

그걸 바라보던 최현지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방랑자 커뮤니티에서도, 전혀 이곳에 대한 정보가 없네. 그냥 가지 말라는 경고뿐인데? 왕아, 우리 안 가면 안 될까? 방랑자들도 안 가는 지역은 정말 뭔 일이 있을지 모르거든?”

최현지는 강시온에게 말했지만, 대답한 건 진재희였다.

“수원을 가기 위해서는 군포, 의왕을 반드시 지나야 해. 여기 말고는 길이 없잖아.”

“아-. 그야 그렇지만.”

“불만 많으면 콜라 내려놓고 가.”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원정대는 다시 발길을 서둘렀다.

이제 이곳부턴 밀림 지역이었다.

원정대는 한참을 그 밀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는 와중, 또 하나의 상태 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띠링-!

참으로 오랜만의 상태 창이었다.

지금껏 강시온은 군주의 상태 창과 개개인에게 발휘되는 아이템 창을 확인했을 뿐.

지형에 따른 퀘스트, 던전에 따른 상태 창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야 그럴 것이 만경 내부에서는 개발되지 않은 곳,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으니.

만경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지금껏 군주 신분으로는 볼 수 없었던 퀘스트가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강시온은 그 퀘스트 창을 올려다보았다.

[울창한 숲: 마녀의 흔적을 찾으세요.]

‘마녀의 흔적.’

강시온은 퀘스트 제목을 곱씹었다.

퀘스트에 대한 내용은 강시온뿐만 아니라, 다른 원정대에게도 보였다.

수군거리는 목소리.

퀘스트는 인간들에게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이상 원정대를 데리고 가 봐야 의미가 없어.’

그는 원정대를 해산시키기로 결정했다.

강시온은 지원대에게 말했다.

“지원은 여기까지만 오시면 됩니다.”

그러자 지원대장은 말했다.

“하지만 질서부장은 왕을 수원까지 잘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지원후발대가 계속해서 오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지원대장은 다른 간부들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강시온은 다시 한번 괜찮다고 했다.

“후발대도 여기까지만 지원 오시면 됩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수원까지 그다지 멀지도 않고.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말씀이 그러하시다면……. 따르겠습니다.”

사실은 혹시나 이곳에서 준호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준호를 만난 순간, 원정대의 목적은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원대장은 강시온에 대한 보급품 전달 장소에 깃발을 꽂았다.

표시를 해 둔 것이었다.

지원대는 고개 숙여 왕을 배웅했다.

강시온은 지원대를 내버려 두고, 애초에 꾸렸던 원정대원들과 함께 숲의 안쪽 더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 * *

이 우거진 숲은 빽빽한 나무와 지붕처럼 덮인 나뭇잎들 덕분에 내부에 있으면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울창했다.

서걱! 촤악!

진재희가 선두에 서, 덤불들을 베어 나갔다.

강시온은 재희의 뒤에, 또 시온의 뒤로 최명준.

그 뒤로 최현지가 목마른 강아지처럼 혓바닥을 내민 채, 헥헥거리며 따랐다.

그때, 최현지는 갑자기 손을 들며 소리쳤다.

“잠깐만! 타임! 휴식! 휴시이익!”

그녀의 외침에 선두에서 나아가던 재희는 인상을 구기며 돌아보았다.

하지만 최명준이 먼저 말했다.

“어이, 여자. 얼마나 걸었다고 벌써 그래?”

“하아아…… 헥헥…… 더워…… 더워어…….”

“형님! 그냥 버리죠? 30분 전에도 그러더니만. 아주.”

최명준은 보란 듯이 자신의 가방을 고쳐 메었다.

이번 원정에서 짐꾼으로 발탁된 최명준이 메고 있는 가방의 무게는 무려 40kg이 넘었다.

그가 자진해서 짐꾼을 자처했다.

원래 자진해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허세에 불과할 텐데.

최명준은 달랐다.

최명준은 정말 타고난 체력꾼이었다.

진재희조차 이 울창한 숲 지대에서는 숨을 고르지만, 담배도 하루에 두 갑씩 피워 대는 사람이 헉헉 대지도 않고 있었다. 정말 체력 하나는 끝내주었다.

물론 그의 체력을 높이 사, 강시온이 유치장에서 꺼내 준 것이었지만.

최현지는 스포츠 저지의 지퍼를 조금 내리며 힘겹게 말했다.

“……야이 미친. 문신충아……. 내가 너냐? 체력이…… 체력이…….”

사실 최현지가 정상이었다.

그들은 이미 10시간이 넘도록 이 숲을 돌아다녔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제외해도 9시간이었다.

강시온은 끈기와 인내로 버텼고.

진재희는 나름 체력이 좋았을 뿐이고.

최명준은 괴물 같은 체력을 가졌지만, 최현지는 지극히 일반인 수준의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강시온은 주변을 둘러보다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도 한계였다.

이상하리만치, 이 숲에 온 뒤로부터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왜 자신만이 이러는지.

강시온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원정대에게 말했다.

“좋아. 오늘은 여기서 숙영하자.”

터억-.

그제야 시온은 가방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식은땀을 닦아 냈다.

* * *

“콜라. 콜라. 콜라. 콜라.”

최현지는 콜라를 벌컥벌컥 마셔 댔다.

껄렁하게 앉아선 담배를 피우던 최명준은 혀를 끌끌 찼다.

“목마를 때, 탄산 먹으면 더 갈증 난다.”

“난 갈증 안 나던데?”

“네 혈관에는 콜라가 흐르냐?”

“지랄. 그럼 네 폐는 니코틴에 가득 찌들었겠네?”

“그건 맞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시덥지 않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시온은 나무 그늘에 앉아 한숨을 돌렸고, 진재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시온에게 다가갔다.

“뭔가가 이상해.”

“……나도 느꼈어.”

걸어서 10시간이다.

걸어서 10시간이면 서울에서 적어도 천안까지는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근데 10시간이 넘도록 안양에서 수원으로 가고 있는데도, 숲은 끝나지 않았다.

우거진 숲속 도중에 발견되는 이정표로, 현재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원정대는 장장 10시간을 걸었는데도, 아직까지도 군포시를 벗어나질 못했다.

흔한 레퍼토리.

우거진 숲이라면 당연한 흐름.

길을 잃었던 것이다.

물론 멍청하게 10시간 동안 계속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온은 원정대가 숲에 들어온 지 1시간이 되었을 때부터, 이상함을 느꼈고 차근차근 길을 찾기 시작했다.

보이는 모든 나무에 표식을 남기기도, 구체를 이용하여 이동했던 거리를 계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숲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모든 방법을 동원했어. 근데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건, 뭔가가 우리를 이곳에 묶고 있다는 거야.”

“동의해. 이상한 힘이 느껴지진 않는데……. 약간 꿈을 꾸고 있다고 할까. 지금 좀 몽롱해. 정신이. 조금 이상하리만큼.”

시온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는 원래 자신의 몸 상태를 입 밖으로 잘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스스로가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는 걸 말했다는 건, 그가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는 것이었다.

혹시 이것도 마녀의 수작일까?

재희는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내었다.

“당이 떨어진 것일 수도…….”

“아니야.”

시온은 단칼에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응.”

재희는 조심스럽게 초코바를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시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최명준과 최현지는 제외하고.

모든 것이 똑같은 외관을 가진 나무들, 이상한 꽃과 줄기들.

그리고 지면 위로 솟아 있는 거대한 나무뿌리 밑으로 흐르는 물들까지.

가끔가다 현대 사회의 문물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식된 것들이었다.

물론 인간의 백골은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아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 나무들의 정체가 뭔지 정말 모르겠어?”

“응……. 미안.”

“미안할 건 없지.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그냥 물어본 거였어.”

시온은 그녀를 위로했다.

회귀자라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지구에 펼쳐진 이 또 다른 세계에는, 겨우 몇 년 살았다고 해서 모든 걸 알 순 없었다.

당장에 주변을 윙윙거리며 날아드는 벌레도.

모기처럼 인간의 피를 빨아먹지만, 그 크기는 참새처럼 거대했다.

숲을 이루는 나무의 외관들도 전부 달랐다.

게다가 진재희의 시작 지점은 경상남도였으니, 경기도와는 다른 세계, 자연, 세력들이 있었다.

‘숲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해.’

어디든 그렇지만, 어떤 내부에 오랫동안 방황한다는 건 좋은 일은 아니었다.

수원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군포시를 넘어 의왕시에 도착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숲을 보자면, 왜 지금껏 수원 세력이 안양시에 쳐들어오지 않았는지 납득이 되었다.

이 숲에 소수의 방랑자 연합이 있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가 박지수와의 전쟁을 펼쳤고, 박지수는 꽤 다수의 전사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패배했다.

적어도 이 숲 내부에 있는 세력은 외부 세력에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 세력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인간들의 시체만 있을 뿐.

혹시 퀘스트와 연관되어 있는 걸까?

이를 시온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조심했다.

하지만 조심한다 한들, 결국엔 사람과 조우해야 대결이 성립될 것인데, 지금 그들은 사람은커녕 작은 동물조차 만나보지 못했다.

생각해 둔 방법은 있었지만, 원정대원들이 이미 많이 지친 상태라 당장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한편, 최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헥헥거렸다.

“습해……. 짜증 나……. 씻고 싶어……. 더워서 죽을 것 같아……. 졸려…….”

최현지는 목이 말랐는지,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강시온에게 말했다.

“대장아……. 우리 좀 쉬면 안 될까? 아니, 이렇게 10분씩 쉬는 거 말고. 진짜 씻고 잠 좀 자고 싶어.”

“……여기가 호텔이냐? 뭘 씻고 자. 씻을 곳도 없잖아.”

“그럼 넌 그루밍하고 자든지.”

최명준과 한마디씩 주고받는 최현지에게 강시온은 말했다.

“씻을 때가 있어?”

“응응……. 나무뿌리 밑으로 물이 고여 있드라. 확인해 봤는데, 마실 수도 있는 거고……. 생각보단 시원하고……. 어때?”

시온은 주변을 둘러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프고, 숨이 턱턱 차올랐던 시온은 눈을 조금 붙이고 싶었다.

휴식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좋아. 4시간 정도 쉬는 게 좋겠어. 불침번은 1시간마다 1명씩 서고, 나머지는 휴식.”

강시온의 휴식 명령에, 그제야 최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살에 쓸리는 까슬까슬한 가방끈을 벗어들었다.

“우와-! 아……. 드디어……!”

“내가 제일 먼저 불침번을 슬게.”

“형님. 물 드시죠. 제가 가져왔습니다.”

“…….”

원정대의 첫 휴식이었다.

* * *

참으로 이상한 지형이었다.

마치 두 개의 지면이 있는 것 같았다.

원정대가 다닌 흙과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는 첫 번째 지면.

그리고 그 첫 번째 지면 아래로,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기둥을 이룬 덕에 만들어진 습하고 축축한 지면.

햇빛이 거의 닿지 않지만, 그 밑에는 냇가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불침번 중 마지막 순번을 맡게 된, 최현지가 냅다 밑으로 내려갔다.

씻기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때마침 수심도 적당하고 물의 온도도 적당히 시원한 곳을 발견했다.

최현지는 가방을 열어 비누를 꺼내었다.

세계가 멸망한다 한들, 이 위생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 위생보다 더 이 찝찝한 기분이 더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비누를 챙겨 다녔다.

“…….”

최현지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누가 훔쳐보진 않나,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웃옷을 벗어들었다.

벗은 옷을 차곡차곡 조심히 쌓고, 내친김에 빨래도 할 겸 속옷은 한쪽에 옮겨 비누로 빨아 냈다.

그녀의 방랑자 백팩의 구성품은 정말 단순했다.

배낭여행족이 메고 다니는 거대한 백팩에는, 100종이 넘는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정말 단순하게는 갈아입을 속옷 5벌, 수건 2개, 치약과 칫솔, 비누.

손톱깎이는 물론이고, 머리핀, 아날로그 시계, 면도기, 여분의 옷 두 벌씩. 필수 중에 필수, 콜라와 각종 통조림과 음식까지.

나열하자면 끝도 없었다.

도저히 세계가 멸망한 이후의 백팩 구성품이라곤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치카- 치카- 치카-.

최현지는 양치질을 하며 물 온도에 적응하기 위해 발부터 냇가에 넣었다.

“앗- 차가.”

차가운 물 온도에 발끝에서부터 등까지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땀을 흘린 직후라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퉤-.”

그리고 양칫물을 뱉곤 머리끈으로 머리카락을 묶고 천천히 물속으로 몸을 담았다.

차가운 물결이 그녀의 몸을 휘감고, 찝찝하고 습했던 기분은 단번에 사라졌다.

손으로 물을 퍼 얼굴을 적시고, 수면 아래로 목까지 넣었다.

태양 빛이 간간이 떨어지는 이곳.

뿌리들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계곡에서 최현지는 마음 놓고 수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인기척.

사박-,

“?!”

최현지는 깜짝 놀라 손으로 가슴을 감싸곤, 인기척이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웬 검은 물체가 줄기 사이에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야, X바……?’

최현지는 수면 아래로 몸을 더 집어넣은 뒤, 천천히 옷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설마 최명준? 이 미친 변태 새끼.

‘아, 아냐. 아무리 걔가 멍청이라도…….’

이 미친 근육 문신충이 이런 유치한 장난을 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 육체는 숨는다고 숨어지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뭐야……. X바……. 아, 씨.’

솔직히 몬스터라면 천만다행인 거고.

인간이라면 반드시 죽여 버릴 거고.

귀신이라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최현지는 애기들도 웃으면서 들어갔다 나온다는 서울 대공원 귀신의 집도 무서워한다.

귀신만큼은 끔찍했다.

간담이 싸늘해지고, 무리에서 조금 벗어나 씻기를 선택한 자신도 약간 후회스러웠다.

‘살려 줘……. 엄마……. 제발……. 나. 아니, 나. 제발. 아니…….’

최현지는 조심스럽게 계곡에서 나왔다.

철퍽-. 또르르르…….

물줄기가 그녀의 머리카락에 맺혀 있다가, 차례로 수면 위로 떨어졌다.

최현지는 조심스럽게 옷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언제라도 이 일대를 초토화해 버리게, 아티팩트를 불러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방랑자라고 할지라도, 두려움 앞에선 감각이 마비되길 마련이다.

순간, 최현지는 여기까지 오며 보았던 수많은 백골을 떠올렸다.

사실 모두와 함께 있을 땐 몰랐지만, 진짜로 무서운 몰골들이었다.

당장 귀신이 튀어나와도 아무도 모를 정도.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배후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터벅……. 터벅……. 터벅…….

무언가를 쥔 누군가가 최현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최현지는 고장 난 로봇처럼 고개를 돌렸다.

“…….”

그녀는 사색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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