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메트로 세력 (1)
메트로 세력.
동안 이후, 새롭게 만경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이다.
그들은 이따금씩 철로를 따라 걸어와, 자신들이 정부의 구조대임을 주장하고 사람들을 회유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지금껏 그들의 꼬임에 넘어간 시민은 없었지만, 세력 내에 불안감을 조성하기에는 충분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아직 건재하다는 불안감.
정부 입장에서 만경은 명백한 범죄 집단이었다.
따라서 충돌을 피할 순 없을 터다.
강시온은 철로를 봉쇄하고, 안양역 일대를 군사 지역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방랑자 최현지를 그곳에 파견하여 일정 기간 정찰을 명령했다.
종전 선언 이후, 이 주일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동안 강시온과 진재희는 수원 원정을 위한 준비를 했다. 세력의 인력들은 전쟁 복구에 힘썼으며, 최현지는 서울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 콜라. 콜라. 콜라 줘. 엄청 힘들었음.”
최현지는 세력에 돌아오자마자 콜라를 찾아 댔다.
만안 경찰서 회의실.
그동안 그녀가 정찰한 성과를 보고 받기 위해, 이곳에 간부들이 모였다.
최현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은밀하게 적 세력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2년간 방랑자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스킬.
그녀의 능력을 이용하면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쥐새끼보다 더 작은 몸집이 되어 적진에 침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번 정찰을 통해 알아 온 정보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서울 메트로 세력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 거대할 줄은 몰랐네요.”
최현지는 한 손에는 여전히 콜라를 쥔 채, 책상에 여러 물품을 꺼내 놓았다.
“이건 지도고. 이건 걔네들이 사용하는 화폐. 라이터, 병뚜껑, 건전지. 기타 등등. 그리고 이건 내가 알아본 각 역의 수장들.”
간부들이 시장 바닥의 어르신들처럼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그녀가 구해 온 메트로의 지도는 마치 대동여지도처럼 여러 지도를 합쳐 놓은 합본이었다.
그 주위로는 그 세력에 속하는 여러 물품들을 놓아두었다.
간부들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최현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엄청 비싸게 샀어요. 사기도 어려웠고.”
만경의 국고로 산 지도였지만, 그래도 이만한 지도는 어디 가서 못 구할 정도로 정교했다.
지도로 모여든 간부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터트렸다.
서울 메트로.
세계 그 어떤 도시보다 촘촘하고, 범위가 넓다.
유사시에는 대규모 지하 벙커로도 활용하기 위해, 깊고 넓고 안전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넓은 지하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이 원래 전쟁 중인 국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라고 자처하는 세력은 지난 라운드 동안 메트로를 점령하여 그곳에 또 다른 지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인구수는 적어도 10만 이상.
내부에는 신흥 종교도 있고.
각 역마다 지배하는 군주도 다르다고 했다.
사용하는 화폐도 다양했다.
최현지의 설명을 들으며, 시온은 중학교 시절,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에서 읽었던 어느 러시아 소설을 떠올렸다.
“사실 1라운드 당시, 도로보다 더 거대한 곳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지하철이었죠. 대한민국 정부라고 불리는 그놈들도 1라운드 이후부터 지금까지 천천히 세력을 키워왔던 것 같고. 아마 그놈들이 서울 제1세력일 듯싶습니다. 특이한 점은 유럽 연합처럼, 각 역은 독립 세력이에요. 이들은 이 용산역을 중심 세력으로 뭉쳤어요. 그리고 각 역에서 대표자를 선출하여 대통령을 선발하는 과정을 가진다고 합니다. 임기는 6개월.”
서울특별‘시’에서의 제1세력이라는 의미는 남달랐다.
당장 안양시 내부에서도 1세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강시온과 박지수는 피비린내 나는 정복 전쟁을 벌였으니 말이다.
서울은 인구 천만의 도시.
지금껏 그들이 흘렸을 피가 어느 정도일지 감히 상상조차 안 갔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이곳 안양이 지난 라운드 동안 낭떠러지라고 불렸다는 거?”
“낭떠러지요?”
간부 중 한 명이, 최현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최현지는 이제 과자를 먹고 있었다.
“4호선, 인덕원역 알죠? 그 역과 과천역 사이에 어마 무시한 싱크홀이 있어요. 웬만해서는 넘나들기 어려울 정도죠. 그래서 지하 세계에 사는 그놈들이 4호선 방면으로, 감히 안양으로 내려올 생각도 못 한 거지. 멍청이들이 지상으로 내려오면 될 텐데. 그쪽은 신흥 종교가 지상을 금지하고 사람들을 역 바깥으로 못 나가게 했거든요. ……물론 이번에 1호선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거대한 싱크홀…….”
시온은 최현지의 설명을 들으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진재희에게 들은 3라운드의 메인 보스. 그리고 3라운드를 클리어하기 위한 열쇠.
싱크홀은 그 흔적일 것이다.
시온은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진재희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지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안양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만경에 붙고 싶어 하더라고. 내가 깜짝 놀란 게. 메트로에선 라이터를 주력 화폐로 이용한다는 거야. 어지간히 만경의 시장 파워가 센가 봐. 서울 사람들한테도.”
자주 있는 일이다.
자국의 화폐 가치보다 타국의 화폐 가치가 더 높은 경우.
라이터의 값어치는 2라운드 혹한이 끝나고도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불을 피울 수도 있고, 휴대성도 높고, 나름의 희귀성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터 내부에 차 있는 기름의 용량에 따라 그 값어치는 또 나눠졌다.
만경을 예로 들자면.
빈 라이터의 가치를 1로 두면 가스 용량이 5분의 1씩 차오를 때마다, 그 가치는 배로 뛰었다.
스티커가 붙여진 새 라이터의 가치는 보통 라이터의 5배인 셈이다.
만경의 화폐가 대내외적으로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화폐가 공통적으로 통용된다면 만경의 시장은 다른 세력의 시민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거대한 잠재 시장이라는 의미였으니까.
‘이거……. 잘만 이용하면.’
강시온은 어느 묘책을 떠올렸다.
최현지는 자리에서 빙글 돌아 나와 간부들을 바라보며 책상 끝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하여튼 내가 알아본 정보는 여기까지. 아마 당장은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저들도 아직까진 만경보단 세력의 안정을 목표로 잡았으니까. 근데 방심은 금물이죠. 일차 목표가 만경이 아닐 뿐이지, 한 오차 목표까지 내려가면…….”
“무기라든가. 더 중요한 정보는 없소?”
“……무기? 아~. 맞네.”
그리고 이어지는 최현지의 말은, 간부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최현지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맺었다.
“걔네 총 있어요.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 총.”
간부들의 어깨가 주춤거리며 떨렸다.
* * *
나는 진재희와 함께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간부들은 저마다 복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코너를 돌며 물었다.
“계획 변경은 없는 거지?”
“응. 뭐. 당장은.”
그들이 아무리 서울 메트로를 전부 집어삼킨 강대한 세력이라고 해도, 이젠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안양 말고도, 서울에는 무수히 많은 세력이 있다.
지상 세력과 지하 세력은 어쨌거나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칼날을 갈고 있을 터.
당장 만경은 명백한 적 세력을 모두 소탕하였고, 이제 세력은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다.
계획의 변경은 없다.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다.
경찰서 계단을 내려가다 진재희를 돌아보았다.
“오늘 교육 준비 끝났지?”
“아……. 뭐. 으응…….”
그러자 그녀는 떨떠름하다는 듯 시선을 회피했다.
난 그녀를 타일렀다.
“괜찮아. 나한테 했던 거랑 똑같이 하면 돼.”
“……원래 난 누구 가르치는 거 진짜 못해.”
“잘하던데.”
“그건 너였을 때고. 넌 내가 이상하게 설명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니까.”
“애들도 잘할 거야. 마침 저기 모여 있네.”
“아, 저기. 자, 잠깐. 시온.”
건물 밖으로 나서자, 2급 간부들이 하나같이 모여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정현수, 하윤하도 같이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은, 앞으로 일주일 동안 훈련에 돌입할 것이다.
내가 다가가자, 정현수는 허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소리쳤다.
“군주님, 오셨습니까!”
“이젠 왕이시잖아. 멍청아.”
곁에 있던 하윤하가 잘못된 지칭을 고쳐 주었지만, 정현수는 꿋꿋했다.
“군주님! 오셨습니까!!!”
“오늘 준비 잘 됐지?”
“옛!!!”
“네.”
둘은 이번 전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젠 그 가치를 키워, 만경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 역할은 진재희다.
그녀는 회귀자고, 아티팩트의 달인이었으니.
날 가르쳤던 것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정현수와 하윤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등 뒤에서 다가온 진재희는 괜스레 차가운 눈빛으로 두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각오해.”
그 한마디를 끝으로 진재희는 두 아이를 지나쳐 걸어갔다.
남겨진 정현수와 하윤하가 힐끗거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난 턱짓으로 그녀를 따라가라고 했고, 두 아이는 후다닥 진재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것보단 당돌해 보이네.’
현수는 전쟁이 끝난 뒤, 내게 부탁했다.
자신의 아버지 시신만큼은 오우거의 먹이로 삼지 말고 땅에 묻게 해달라고.
난 그것을 허락했고, 정현수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얼마간은 의기소침하니 풀이 죽어 있었지만, 금세 상태를 회복한 듯 보였다.
두 아이는 모래알 속 사금과도 같은 존재다.
하윤하, 정현수.
난 이 둘을 다음 만경의 지도자로 키워 낼 생각이다.
누구보다 날 잘 믿고 따르는 두 아이야말로, 내 후계자로 키워 내기 적합할 터.
더 나아가서는 이 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한 압도적인 플레이어로 성장시키는 것.
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 * *
“아티팩트는 소모적인 능력이니까, 상황에 따라 잘 써야 한다는 말씀.”
“…….”
“또한 플레이어를 상대할 때는 항상 눈과 손을 주시한다. 아무리 하찮은 능력일지라도, 절대 방심하지 않는다.”
“…….”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제발 조용히 해. 속으로 외우라고!”
듣다 못한 하윤하가 폭발해선 정현수를 몰아붙였다.
그러자 정현수도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뭐래. 너는 정보 관련 능력이니까. 이해가 빠르겠지만, 일반인은 다르다고!”
“딱히 정보 능력이 아니라도, 그냥 척하면 척 외워지는 수준이거든? 그리고 네가 어떻게 일반인이야?”
“조용히 해. 못생긴 게?”
“뭐? 이 감자 머리가 뭐래!”
하윤하가 으르렁거리며 정현수에게 달려들었다.
동안과의 전쟁 이전에도, 하윤하와 정현수는 서로 알던 사이였다.
만경 내에서 나이가 같은 애들은 별로 없었고, 둘은 강시온에게 인정을 받아 세력에선 2등 간부급으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알던 사이였을 뿐,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같다는 건 서로의 가치관이 많이 대립한다는 소리.
게다가 둘의 나이는 흔히들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중학교 2학년들이었다.
“원래 너, 내 부하였잖아! 이 멍청아!”
“부대가 다른데 어떻게 내가 네 부하야? 이 감자 머리가!”
“……그만.”
진재희는 한숨을 푹 내쉬며 둘을 쳐다보았다.
서로 멱살을 잡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할퀴고 난리가 났다.
재희는 두 사람을 보면, 전생에 자신과 함께였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향수가 느껴지는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감성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현수. 너는 능력을 5분 동안 유지하는 연습을 해. 그리고 하윤하. 너는 쓸데없는 정보는 거를 수 있는 기술을 연습해. 연습이 시작된 지 세 시간이나 지났는데, 왜 집중을 못 하는 거야? 앞으로 한 번만 더 싸우면 가로등에 거꾸로 매달릴 줄 알아.”
“……예.”
“네에…….”
아티팩트를 연마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몇 시간이고 집중을 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이 둘은 강시온처럼 집중력이 좋거나, 배우는 자세가 갖춰져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때로는 강압적으로 훈련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두 아이를 가르치며 진재희 역시 훈련에 들어갔다.
이젠 필드에서 뛰게 될 테니, 앞으론 플레이어보다 몬스터와의 접전이 더 많을 것이다.
몬스터 중에서는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잔혹한 놈들이 많다.
악어 거북 정도야, 귀여운 애교 수준.
‘……나도 안심할 순 없지.’
진재희는 아직 강해질 수 있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이제 3라운드일 뿐.
그녀는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폐차의 보닛 위에 마치 명상을 하듯이 앉아, 정신력을 끌어올렸다.
많은 집중력이 필요한 만큼 그녀는 점차 자신의 생각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집중……. 집중…….
“왜 넘어와? 넘어오지 말랬잖아. 넌 저어어어어어기. 똥간에서 연습하라고! 그게 너랑 잘 어울려.”
집중이다…….
“아! 조옴! 괴롭히지 말라고.”
집중…….
“와-. 인상 찌푸리니까, 더 못생겼어.”
집…….
“진짜 뒤져 볼래, 오늘? 어?!?!”
“바라던 바야. 전기 맛 좀 볼래? 찌릿찌릿-?”
벌떡-!
진재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던 전깃줄을 집어 들었다.
밧줄 대신 사용하는 전깃줄.
그것을 꾹 움켜쥔 진재희는 아직까지도 서로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두 아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날이 저물 때까지, 두 아이는 가로등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