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28화 (128/221)

제128화. 연회

종전 선언 후 이틀 뒤.

도시는 술렁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활기가 넘쳤다.

이제 도시의 시민 수가 4만 명을 넘어서인지, 중앙 거리는 몰려든 인파로 인해 북적거렸다.

만경의 왕이 하사한 사치품들이 만경 시장 거리에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자부터, 라면, 물을 섞은 술과 통조림.

온갖 잔칫상의 먹거리들이 거리 중앙에 가득 모이기 시작했다.

-구어어어어어어어!

쿵!

노예로 부리는 작고 왜소한 오우거 한 마리가, 중앙 거리를 기준으로 승용차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건 거대한 식탁이었다.

그 위로 잔치 음식들이 승용차 식탁 위에 가득 올려지기 시작했다.

승용차 식탁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축제였다.

만경으로 돌아온 하윤하는 골목길을 돌아 시장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부터 가져와!”

“거기서 내가. 왼편으로 꺾으니까. 그 전사 새끼가 요래 웅크리고 있는 거야.”

“그래서?”

“바로 정수리에 칼부터 꽂았지! 생각보단 두개골이 단단하더라.”

하윤하는 분주한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갔다.

곳곳에 음식을 나르는 여인들.

서로의 무용담을 펼치는 병사들.

“비켜요. 음식 나가요!”

“잔 없는 분 계세요? 잔이요! 잔!”

“아, 니네 일번가가 뭘 아냐. 우리 비산동은……. 진짜 불지옥이었어. 불지옥. 보여?! 슈발. 나 화상 입은 거?”

“지랄- 하네. 니네가 동안 그 개X끼들 버스로 장난질 치는 거 봤어야 해. 아무리 지랄해도 안 넘어간다니까? 어? 알아?”

“뭐 이 새끼야?! 니 지금 결사대 무시하냐?! 백제에 계백이 있다면. 만경에는 우리 비산 결사대지! 우리 없었으면 너희들 못 이겼어.”

서로의 자존심을 세워 가며, 사소한 걸로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랜만의 술기운에 감정들이 격해진 것.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승전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도 너도나도 거리로 뛰어나와 분위기를 즐겼다.

새롭게 즉위한 만경의 왕이 하사한 사치품들이 거리에 가득 쏟아졌다.

그들 전부가 취해도 남을 만큼, 만경에는 많은 사치품이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사람들은 곧 사소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과거, 현대인들은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큰 쾌락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많은 자극에도 쾌락을 얻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잔혹한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형 집행, 노예 구경부터 대련장까지.

퍼억-! 퍽! 퍼억-! 꾸직!

목줄을 찬, 두 죄수가 서로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죄수를 둘러싼 수많은 관중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살이 찢겨 나가고 피가 솟구쳤다.

동안에서 잡아 온 전사들을 경기장에 세워, 유희를 즐기는 시민들.

“더 강하게 밀어붙여!”

“죽여! 죽이란 말이다! 이 벌레 놈들!”

“이 새끼들 전쟁할 때는 잘만 싸우더니, 왜 이렇게 힘을 못 써?”

경기는 한 명이 맞아 죽고 나서야 끝이 났다.

혈투 외에도 악기나 놀이.

카드 게임 같은 것도 훌륭한 즐길 거리였다.

트럼프나 화투.

이젠 무용지물이 된 신용 카드를 가지고 카드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동안의 전사들이 살아남을 길은 만경의 시민들의 놀잇감이 되는 것뿐이었다.

거리의 마술사.

차력 쇼.

스탠드 코미디언.

몬스터 요리사 등등.

동안에서도 나름대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직업의 시민들이, 만경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 외에 남은 전사들은 모두 교도소, 아니면 작업장이었다.

“…….”

한편, 하윤하는 맨발로 거리를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2라운드 혹한일 때에는 숨만 쉬어도 폐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완전한 봄이었다.

정체 모를 새가 날아가다 쉴 곳이 필요했는지, 해진 전봇대 위에 앉았다.

윤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 세상이란 뭘까아~~~~.”

윤하가 한 말이 아니었다.

윤하는 눈을 깜빡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최현지가 콜라 캔을 쥔 채, 씨익 웃고 있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하윤하에게 다가와 어깨에 팔꿈치를 올렸다.

“새는 새고, 하늘은 하늘이다~. 세상이란 뭘까아~~~ 덧없음? 그래. 그래. 세상은 덧없고, 하늘 아래 가치 있는 건, 이 콜라밖에 없으니……!”

꼴딱, 꼴딱!

“캬하-! 뒤지네. 진짜. 아, 난 이것 때문에 미치겠다.”

맥주 광고 속 주인공처럼 콜라를 들이켜는 최현지를, 하윤하는 게슴츠레 노려봤다.

“……뭐야. 나 그런 생각 안 했거든.”

“히히히. 아니, 아니. 뒷모습이 무슨 시인처럼 보이더라고. 그래서 이 언니가 너의 마음을 대변해서 시 한 편 읊었다.”

“완전 별로야.”

“그래그래……. 이 언니가 원래 시인을 꿈 꿨. 응? 야. 나 국문학과거든?”

윤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이 오가며 이곳은 이제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

최현지는 후다닥 윤하 옆으로 따라붙었다.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그러다 또 미아 된다?”

“내가 어딜 다니든. 본인이랑 무슨 상관?”

“본인? 보오오오니이이인? ……너무 딱딱하다. 언니라고 해 봐. 언니.”

“혀 깨물고 죽어도 싫어.”

“우- 와.”

윤하는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그녀의 집은 만경 시장 거리 근처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배속된 빌라였다.

그곳은 강시온이 특별 지정한 자치구로, 만경 세력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살아가는 구역이었다.

물론 최현지는 하윤하의 윗집에 살고 있었다.

“윤하 짱. 잠깐, 잠깐.”

“……짱?”

윤하는 빌라에 들어가려다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한 손에는 콜라,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짚고 있었다.

“왕께서 친히 뵙기를 원하신단다. 궁으로 가자.”

“…….”

윤하는 최현지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 * *

강시온은 목욕탕에 몸을 담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욕탕 천장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물방울은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가 이내 목욕탕에 떨어졌다.

똑-.

작은 물방울이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며 욕탕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때, 욕실 바깥에서 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아입으실 옷과 수건을 준비해 놨습니다.”

“…….”

“또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종을 한 번 울려 주십시오. 그럼.”

부하는 목욕실 선반에 있던 푸른 종을 두고 말했다.

시온이 대답하지 않자, 부하는 자리를 옮겼다.

그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똑-.

작은 물방울이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며 퍼져 나갔다.

시온은 물에 얼굴을 담갔다 얼굴을 다시 꺼내었다.

그의 갈색 머리카락이 수면 위에 퍼졌다가, 고개를 들자 얼굴에 착 달라붙었다.

그는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머리 위로 쓸어 올리곤, 코를 양쪽으로 눌러 콧속의 물을 빼내었다.

그는 느긋하게 목욕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강시온은 다른 간부들처럼 성욕을 해소하거나, 담배를 태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쾌락적 행위를 싫어했다.

한 번만 접해도 정신과 신체를 망가뜨릴 수 있었기에.

어릴 적부터 자리 잡은 그의 습관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생존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으니까.

그에게 있어 최고의 휴식은 그저 이렇게 목욕탕에 누워 편안함을 느끼는 것뿐이었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소설책이겠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온은 이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

아무도 없는 대중목욕탕에 홀로 온수에 몸을 담아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천장만을 바라보는 시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휴식이고 안식이었다.

시온은 몸을 누운 채로 상태 창을 불러왔다.

[만경의 왕: 강시온]

[수도: 만경]

[

●보유 도시: 35

●시민 수: 40,851명 (부상 8,356명 / 경상 2,103명, 중상 6,253명)

●지역 내 순위: -

●자원:

식량 835일 (+105), 식수 431일 (+150), 사치품 2,805,190개.

●식수: 431일 (+150)

●지지율: 98, 12

●전력:

병력 5,851명 / 무기 15,109개]

전쟁은 많은 것을 잃게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주기도 한다.

영토와 인구가 많아지고, 전력도 좋아진다.

무엇보다 군주들의 전용 화폐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

현재 강시온이 보유하고 있는 골드량은 대략 천만 골드.

트레이드 마켓에 올라가 있는 대부분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껏 만경에는 마땅한 우방 세력이라든지, 거래하는 집단이 없었기에 시온은 경매를 통해 아이템을 구매하기만 했다.

골드를 수급하고, 세력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리그 각지의 퍼져 있는 발명가들의 아이템이 필요했다.

대표적으로 수력을 이용한 물레방아, 거리 포장, 의료 기술, 몬스터의 정보 등.

이것들을 하나씩 구매할 때마다 세력은 세력답게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이번 전쟁 복구에도 꽤 많은 골드를 소모하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이번 전쟁을 통해 새로 얻게 된 자원이 있었다.

시온은 목욕탕 턱에 올려져 있었던 붉은 원석을 집어 들었다.

그는 진재희를 통해 이 원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붉은 원석,

원석의 내부는 투명해 반짝였다.

이건 이 시대의 새로운 자원이었다.

정확히는 외계 물질이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인류 역사는 화약 개발의 전후로 나뉜다.

인류는 화약을 통해 과학 문명을 발전시켰다.

화약은 중세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와 역사를 함께해 온 자원이었다.

이 붉은 원석도 화약과 같은 자원이었다.

더 많은 원석을 얻을수록 더 강력한 세력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처음 박지수는 이 자원을 이용해 앞으로의 라운드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했다.

물론 현재는 강시온이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그가 모든 자원을 독점하게 되었다.

이제 이 붉은 원석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세력에게 있어선 숙제로 남아 있었다.

종전 선언을 한 지 일주일.

만경의 지도부들은 연신 세력 곳곳을 뛰어다니며 피해 복구를 서두르고 있었다.

병사에서 다시 노동자가 된 이들도, 단 이틀만 휴식한 뒤 곧바로 복구 작업에 뛰어들었다.

복구 작업의 최전선에는 이번 전쟁을 통해 사로잡은 3만 명에 달하는 동안의 전사들이 동원되었다.

이는 기존 만경 시민들에게는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전쟁에는 보상이 필요했다.

노동자들의 가장 큰 보상은 업무 외 휴식이다.

지금껏 만경의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주 6일을 일해 왔다.

하지만 동안 전사들을 노예로 부림으로써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한 지금, 만경의 시민들은 하루 6시간, 주 5일만 해도 충분했다.

이는 질서부장이 철저하게 계산한 결과였다.

왕의 파격적인 보상에, 만경의 노동자들은 열광했다.

전쟁 직후임에도, 그의 지지율은 98%를 유지했다.

강시온이 지난 라운드 동안 일궈 놓은 이 압도적인 지지율은 분명 시온에게 큰 힘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때, 목욕탕으로 한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2군 지휘관이었다.

시온은 여전히 목욕탕 안에 있었고, 2군 지휘관은 그에게 말했다.

“종전 선언이 있던 그 날, 안양역 플랫폼에서 총성이 있었습니다. 조사대를 파견한 결과, 병사들이 총상을 입은 채 나체로 죽어 있었습니다.”

“…….”

총성 소리와 병사들이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건 그냥 넘길 수 없는 내용이었다.

놈들은 지난 이틀에 걸쳐 총 두 번의 정찰대를 파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부에서 파견된 구조대라고 주장하며, 만경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사실 외부 세력이 말썽을 부린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저들이 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

시온은 목 주위를 물로 씻어 내며 생각했다.

‘관리자의 혜택? 아님, 개조된 것인가?’

상황이 복잡하게 되었다.

“총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정부에서 파견된 자들이라니. 믿을 수도 없거니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병력만 주십시오.”

2군 지휘관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시온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그는 이제 세력에서 나갈 생각만 가지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내부를 안정시켜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다음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 현재 시온의 관심사였다.

최대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놈들의 대장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대화를 거부한다면 무력으로 해결해야겠지만.

“아직 병력 동원은 안 됩니다. 상황을 지켜보죠.”

시온은 목욕탕에서 일어났다.

촤르르륵-.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들이 욕탕에 떨어졌다.

진재희로부터 들은 정보는 리그의 근간을 뒤흔드는 핵심 플레이어와 세력에 관한 것.

자잘한 내용의 미래는 알 수 없다.

진재희는 경남 일대에서 리그를 시작한 플레이어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없을 터.

그들이 아무리 발악한다 한들, 앞으로 만경의 성장세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설령, 놈들이 대한민국의 근본을 이은 세력일지라도.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