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준비된 미래 (1)
K의 손아귀에서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관리자에 의한 보상은 언제나 이득이었다.
1라운드 때 받았던 총도 충분히 위협적인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 수준으론 어림도 없었다.
웬만한 아이템이 아니라면, 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좋아. 그 누구도 토 달지 못할 정도로……. 아주 만족스러운 보상을 얹어 주겠다. 손을 내밀어라.”
K는 주먹 쥐었던 손을 폈다.
화려한 빛과는 대조적이게,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건 작은 창이었다.
선사시대에서나 볼 법한, 나무 막대기에 노끈으로 날카로운 돌을 묶어놓은 돌창.
“창.”
돌창은 내게로 날아들었고, 난 그것을 잡았다.
이것이 과연 창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정말 짧았다.
길이 30cm 자와 비교하면, 그것보다 길거나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K는 부연 설명을 했다.
“그건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아이템이 아니지.”
난 창을 쥔 채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이템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건 절대자의 권한이다. 기뻐해라. 이 오만한 교란종아. 지난 수천 번의 리그 역사 속, 교란종에게 그 창을 받은 건 네가 처음이니.”
수천 번의 리그 역사.
그건 다시 말해 수천 번의 리그 경기 중 겨우 하나의 리그일 뿐인, 지구.
이 리그를 주관하는 존재들이 도대체 얼마나 고차원의 존재들인지, 지금으로써는 감도 잡히질 않았다.
K는 창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건 찌른 대상을 리그에서 삭제할 수 있다.”
“삭제?”
“그래. 아무리 강한 S급 플레이어도, 그보다 더 강한 필드 보스, 클리어 불가 월드 보스도. 그 어떤 존재도 그 창에 찔린 순간 ‘삭제’된다. 지형을 제외한 리그에 속하는 모든 걸 없애 버릴 수 있는 권한이다. 게임에 비유하자면, 삭제 치트라고 할 수 있지. 단, 횟수는 1회뿐이다.”
“…….”
K는 내게 한걸음 다가와 설명을 이었다.
“치트키의 발동 조건은 정해져 있다. 아티팩트에 소모되는 정신력을 그 창날에 집중하고, 대상이 창날에 닿아야만 하지.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성립되지 않는다면 효과는 발동될 수 없어. 분실할 시에 추가적인 지원은 없을 거다.”
“훼손은?”
내 물음에 K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훼손이라고? 웃기는 소리……. 지구를 폭발시켜도 그 창날은 살아남을 거다. 고차원의 대장장이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막대기는 일반적인 나무이지만.”
K의 설명을 들으며, 난 돌창을 바라보았다.
떨어트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처럼 약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다른 것들과 비교 불가한 절대적인 권한을 주는 아이템임에는 틀림없었다.
시험해 볼 필요는 있어 보였다.
만약 K가 내게 불량품을 준 것일 수도 있으니, 그녀의 눈앞에서 확인하려는 것.
마침, 난 진재희의 성검을 쥐고 있었다.
이 은성검 역시 S급 아티팩트이니, 돌창을 시험하기에 적합했다.
난 창을 위로 던졌다.
그리고 야구 선수처럼 공중에 떠오른 창을, 성검으로 있는 힘껏 깨 버렸다.
챙-! 콰드드드득……!
“?!”
그 순간, S급 아티팩트였던 은성검이 잘게 부서져 공중으로 흩어졌다.
확실히 창날에는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물론 창날을 이루고 있었던, 나무 막대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내가 가지고 있을 건, 이 돌날 부분이면 되었다.
그때, K는 혀를 찼다.
“쯧.”
난 그녀를 노려보며 다시 물었다.
“이건 거짓이 아니겠지?”
그러자 K는 잔뜩 성을 내었다.
“아-! 진짜!!! 짜증 나네……. 거짓? 내가 지금껏 당신한테 거짓말을 한 적은 있어? 내가 언제 거짓말했다고 그래? 관리자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리그 규정에 명시되어 있어. 그리고 난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수용하고 보상을 줬다고.”
“하지만 그 끝은 ‘거짓’이잖아.”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내 생각이 옳아.”
“멋대로 생각해. 빌어먹을 교란종 같으니…….”
난 돌멩이를 안전하게 소지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했다.
지금은 몸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기에 마땅한 방법이 없었지만, 옷을 입고 있더라도 돌멩이의 안전이 불안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을 ‘항상’ 몸에 소지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때, K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다시 존칭을 섞으며 말했다.
“……다만, 그 아이템을 주는 건, 당신의 근거가 타당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왕의 자격이 필요 없다고 한 그 근거가 타당하지 않는다면 해당 아이템은 몰수됩니다. 이건 윗분들이 직접 제게 하달한 명령입니다.”
“알고 있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다.
지금 내가 결정한 일이야말로 동생과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간단하고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제가 있어. 내가 왕의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왕의 지위가 필요 없다고 했죠. 그걸 납득시키라는 말입니다.”
“좋아.”
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 * *
왕좌는 어떻게 보면,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일 수 있다.
현대에선 그것이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대통령이든 부족장이든 지도자는 어느 시대든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그건 모두 세계가 정상일 때의 의미였다.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지금 세계에선 왕의 지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시온은 K에게 말했다.
“더 이상 내가 만경의 시민들을 위해 이곳에 남아 봉사를 할 필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봉사……? 리그에서 군주라는 건, 그만한 자격과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걸 의미할 텐데요?”
“만약 내 목표가 부와 명예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내 목표는 동생을 찾는 거야. 그게 변하지 않는 내 목적이야.”
리그가 시작되고 나서,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온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목적을 잊은 적이 없었다.
다만, 그동안은 동생을 찾기 위해 K에게 협력했을 뿐.
부? 명예?
시온에겐 전부 필요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걸 이용할 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생을 찾기 위해 말이다.
“이제부터 만경은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나만의 공장으로 이용될 거야. 골드, 자원, 식량, 필요하다면 병력까지. 세력 자체가 나의 힘이 되는 거지. 지지율 98%. 이 수치는 그걸 위한 거다. 지금의 만경의 시민들은 나의 말 한마디면 모두 납득하고 수긍할 거야. 그들은 날 구원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강시온은 지금껏 시민들을 ‘안정적인 생존’이라는 아주 달콤한 보상으로 지금껏 ‘조련’해 왔다.
그들 모두 그만의 체스 말로 사용하기 위해.
“…….”
“군주의 자리……. 달콤하지. 근데 그건 과거에 한정해서야. 고대 시대였다면 왕으로서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지금은?”
시온의 물음에 K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겠지. 라운드가 진행될 때마다 반드시 한 세력의 군주는 반드시 죽어. 라운드마다 죽게 되는 그런 자리. 별로 좋은 자리는 아냐.”
“그러면 당신은 탈락할 겁니다. 알잖아요? 지금까지의 라운드들……. 모두 세력 안에 있어서 가능했던 거.”
“……아니. 틀렸어.”
K는 조금 뒷걸음질 쳤다.
시온은 다시 말했다.
“누가 왕의 자리에서 내려온대? 왕의 신분은 유지하되, 더 이상 만경의 국정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만경은 이제 내 후원처다. 나만을 후원하는, 나를 위한, 나의 힘이 될 곳이지. 그리고…….”
굳이 군주의 위치에 있지 않아도, 굳이 시민의 위치에 있지 않아도, 라운드는 치를 수 있다.
그건 시온이 진재희에게서 사전에 들은 바였다.
“방랑자.”
“……?!”
“방랑자들은 지금껏 어떤 세력에도 속하지 않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녔지.”
“…….”
“방랑자들은 세력에 속하는 플레이어들보다 ‘벽’이 더 빨리 해방되더라고.”
1라운드 때, 건물을 막았던 벽은 라운드를 진행하면서 서서히 넓어졌다.
K는 분명 말했다.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점점 지역이 넓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방랑자들이 도시가 봉쇄된 2라운드부터 여러 도시를 오갔다는 사실이다.
이에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방랑자는 저들만의 라운드를 치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건 사실이었다.
최현지를 통해 이미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보상을 다른 것으로 바꿀 계획을 세웠다.
내게 유리하게,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동생을 만날 수 있게.
“나와 진재희, 두 사람에게 ‘방랑자’의 권한을 줘. 직종 변경은 어렵지 않은 거겠지? 최현지에게 들어 보니, 세력에 속하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방랑자가 되고. 또 세력에 속하더라도 관리자에게 부탁하면 된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이건 네가 말한 동생의 위치 정보보다 더 값싼 보상일 거다. 아니, 거의 공짜지. 자, 이제 내놔. 내게 그 권한을.”
시온은 손을 뻗었다.
“……!”
이제 방랑자의 권한을 얻게 된다면, 전보다 더 넓은 영역을 탐사할 수 있게 된다.
‘세력에 속하는 플레이어’가 해금된 영역은 소지역.
현재 강시온이 속한 영역은 ‘경기 남부’뿐이다.
하지만 방랑자는 현재 대한민국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방랑자에게도 아직 ‘대륙’이 해금되지 않았지만, 강준호가 북한이나 일본으로 갔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시온은 생각했다.
‘내게는 회귀자가 있어.’
진재희.
그녀는 정말 대단한 존재다.
전생에 이미 리그를 경험하고, 풍부한 아포칼립스 지식과 압도적인 전투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왔다.
진재희가 가지고 있는 힘은 이 조그마한 돌멩이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어쨌거나 시온은 동생만 찾으면 될 일이고, 동생을 찾은 후에는 이 빌어먹을 리그를 끝낼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젠 그는 달라질 것이다.
군주는 압도적인 지위와 권력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 준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군주는 이동이 제한적이라는 것.
하지만 방랑자라면 다르다.
방랑자는 이동에 제한이 없다.
만약 시온이 방랑자 지위를 추가로 부여받는다면,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게다가 만경이라는 거대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까지 방랑자 중 그 누구도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세력’을 등에 업은 방랑자가 최초로 탄생하고 있었다.
강시온은 바로 그런 점을 파고들어,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다음 라운드를 치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라운드별 퀘스트를 이중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군주가 치러야 하는 퀘스트 그리고 방랑자에게 주어지는 개별 퀘스트까지도!”
K의 목소리는 잔뜩 격양되어 있었다.
그건 맞았다.
강시온이 방랑자의 권한을 얻게 된다면, 그는 왕과 방랑자의 퀘스트를 동시에 수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없었다.
“내가 못 할 것 같아?”
만경은 권력이 세분화되어 있어, 지금껏 각 부장과 참모들이 세력을 유지해 왔다.
강시온이 지난 라운드 동안 정성을 다해, 쌓아 올린 만경이라는 세력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남은 건, 방랑자에게 주어지는 개별 퀘스트뿐.
그리고 만약 군주의 자리가 걸리적거린다면, 굳이 그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딱히 군주라는 직책이 아니더라도, 만경 시민들이 강시온을 생각하는 평판은 이미 압도적이었다.
그랬기에 세력의 후원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강시온의 예상.
이것이 시온과 여타 다른 군주들의 차별점이었다.
다른 군주들이 공포로 통치했다면, 강시온은 희망으로 통치하였으니.
이제 그에게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방랑자의 신분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준호를 찾는 것.
더 이상 지체할 시간 따윈 없었다.
시온은 K를 바라보며 물었다.
“납득됐어?”
강시온이 가진 위치와 목적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다.
이 장면을 시청하고 있던 존재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환호하고 있었다.
새로운 자신들의 스타를 향해.
K는 자신이 강시온을 존재들의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시온은 정작 스스로의 힘으로 스타가 되었다.
존재들의 스타가 되었다는 건, 관리자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의 인물이 되었다는 의미.
이제 K는 강시온에게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절대자가 K에게 제안했던 내기.
강시온을 탈락시키라는 명령.
그건 어쩌면 절대자가 K 자신에게 던진 함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강시온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전쟁의 보상, 관리자의 보상 그리고 존재들의 보상.
이번 전쟁을 통해 시온이 얻은 것들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