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25화 (125/221)

제125화. 종전 (3)

“안 찾아도 돼. 동생.”

거짓말이다.

난 동생을 찾아야만 했다.

“대신 다른 걸 내놔. 네가 약속한 것에 합당한 다른 무언가를.”

동생의 위치를 알고 싶었다.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지금 만경의 모든 병력들을 총동원해서 동생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때, 떨리는 K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그렇게 해 준데요?”

“난 너와의 약속을 지켰어.”

“……그 보상은 동생의 위치를 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어. 다른 걸 요구할게.”

“불가합니다.”

“아니, 난 너한테 묻지 않았어.”

“예?”

“네 윗 존재한테 물은 거다. 넌 아무런 힘이 없잖아. 그들을 대신할 뿐이지.”

그 순간, K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떠본 것이었다.

시온은 지금껏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얻었던 정보들을 토대로 나름의 상황을 추측했었다.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느니, 더 돋보이라느니.

관리자는 중간계의 전달자일 뿐이고, 이 리그를 주관하는 더 높은 차원의 조직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 높으신 분들께서는 인간들의 살육 현장을 보고 즐기며, 각각 마음에 드는 인물들을 잡아 응원하지 않을까.

지구는 일종의 신이 주관하는 콜로세움.

그리고 K가 제안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 그 높은 차원의 존재가 내린 명령일 뿐이라면, 충분히 보상을 바꾸는 것을 제안할 수 있을 거다.

보상을 바꾼다고 해서 신들에게 피해는 없을 테니, 그들은 자신들이 더 재밌어지는 쪽으로 리그를 진행시킬 것이다.

물론 모든 건 추론일 뿐이다.

난 실제로 그들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기 때문.

게다가 난 박지수를 만나고서 더 이상 K를 신뢰할 수 없었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 자신이 위험에 처할 일은 없다는 것,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

박지수의 말들, 그건 분명 K를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게 K를 신뢰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만약 K가 박지수와의 약속을 지켰다면,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날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K는 이야기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1라운드나, 만경의 왕을 다시 선출할 때는 정해진 룰에 따라 간접 개입을 했을 뿐.

또한 룰에 어긴 존재만을 삭제시키거나 아이템을 금지하거나.

그러니 저들은 직접 자신의 힘으로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만들 순 없다.

‘결국 K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거짓말. 관리자는 믿을 족속들이 못 돼.’

지금 내가 K의 바람대로 동생을 찾으러 길을 떠나는 것 자체가 곧 동생에게서 멀어지는 일인 것이다.

애초에 관리자의 힘이라면 당장이라도 나와 동생을 만나게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고, 위치만 알려 준다.

그 자체가 모순이었다.

지금껏 K는 날 가지고 놀고 있었다.

K는 동생과 관련된 보상을 분명히 내게 준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내가 동생과 가까워진 적은 없었다.

난 더 이상 K에 의해 놀아나기 싫었다.

이젠 그녀의 어떠한 제안에도 응해줄 생각이 없다.

K에 의지해서는 동생을 찾을 수 없다.

고차원의 존재들은 내가 동생을 만나는 걸 원하지 않을 테니.

그 사실에 미친 듯이 화가 났지만, 지금은 숨을 죽여야 할 때다.

마치 늪지대의 악어처럼.

먹잇감이 서서히 물가에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K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지고 있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 추론이 들어맞은 모양이다.

그때, K는 누군가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 * *

“예? 아니……. 그래도 이건 경우가……. 하, 하지만! 아니……. 아……. 네에……. 네. 네. 알겠습니다. 네.”

K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다시 시온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 있었고, 짧은 한숨을 연이어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시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다른 보상을 드리죠. 어쨌건, 안양을 통일하라는 약속은 지키셨고, 보상을 드리긴 해야 하니.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뭐지?”

“동생의 위치를 알려 달라는 그 보상에 비해 낮은 단계의 보상이어야만 합니다. 당신에게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겁니다. 그분들은.”

K의 조건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시온은 오히려 태연했다.

보상의 정도가 낮아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K는 눈살을 찌푸렸다.

“꽤 큰 전쟁에서 승리하셨는데, 조금 낮은 보상에도 만족하시는 겁니까?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요? 당신은 그런 인물이 아닐 텐데요?”

K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시온은 개의치 않았다.

이젠 K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온은 태연하게 말했다.

“보상은 전쟁 보상으로도 충분해. 내가 구축하고자 한 세계는 완성되었거든.”

“……뭐라?”

“안양시는 서울과 경기를 통틀어 지리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거든. 북쪽 관악산, 동쪽으로는 청계산, 남쪽은 광교산, 서쪽은 수리산이 있으니까. 안양시를 통일했으니 되었어. 그러면 세력의 안정성은 확보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세력 간의 전쟁은 없을 거다.”

시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제로, 안양은 4개의 산 사이에 자리한 평원 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 보물 같은 지형이었다.

안양만 통일한다면, 다른 세력에 대비할 수 있는 자연적인 성벽이 생기는 셈이었다.

앞으로 시온이 무리하게 정복 전쟁으로 땅을 넓힐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시온은 이제 전쟁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만경이 수용할 수 있는 인구수는 대략 10만 명에서 20만 명 사이일 텐데.

아포칼립스인 마당에 그 정도의 인구가 만경으로 몰려올 일도 없을 테고, 자신들의 영토만 잘 지켜낸다면 앞으로도 만경은 무너지지 않을 거다.

시온의 말에 K는 반박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니. 만경의 군주…… 아니, 이젠 왕인 당신이 전쟁을 통해 세력을 확장해 나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건 왕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시온은 K를 보지도 않고 답했다.

“필요 없어. 이제.”

“예?”

K는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훑었다.

왕의 자리가 필요 없다니.

기껏 힘들게 전쟁을 해서, 한 세력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가 할 소리인가?

K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강시온’과는 뭔가 달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순간 무언가 번뜩였다.

“당신 설마…….”

시온은 K를 바라보았다.

“왕의 자리를 포기하겠다는 건가요?”

“다른 의미다.”

“그럼 뭡니까? 도대체. 왕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데, 왕의 자리는 필요하지 않다니?! 저랑 말장난하십니까?”

“우리가……”

그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시온은 K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말장난할 사이인가?”

“당신…….”

“인간보다 고차원인 당신이 내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있어. 난 너한테 설명해 주고 싶지 않으니까. 이제 내가 원하는 보상을 말하지. 빠르게 보상을 쥐여 주고 꺼져. 난 너랑 노닥거릴 시간 없어.”

시온은 뒤돌아 걸어갔다.

하지만 그런 시온을 K가 붙잡았다.

“기다려…….”

K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리그는 시작하면서 총 세 개의 직업으로 나뉘게 된다.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소수의 리더들.

게임을 조율하는 플레이어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변수를 창출해 내는 방랑자들.

그중 가장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면 역시 ‘군주’였다.

역사가 증명하듯, 군주가 가지는 힘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시온은 첫 번째 정복 전쟁에서 대승리하여, 군주에서 왕으로 승격한 상태였다.

누구나 군침을 흘리는 자리.

그런 자리가 이젠 필요 없다니.

본인의 목적을 위해선, 뭐든지 했던 강시온의 말을 K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관리자’였지만, 자신이 관리하는 인간의 생각을 묻고 싶어졌다.

“알려 줘. 왜 그런 판단을 한 건지. 납득시켜 달란 말이야!!!”

“……?”

강시온은 울부짖는 K를 바라보았다.

처음이었다.

관리자가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며, 교란종이라 불리는 존재에게 성질을 내는 건.

“이해할 수 없어.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군주의 자리가 필요 없다는 건데? 납득시켜라. 이건 관리자로서 당신에게 요구하는 거야.”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관리자를 두려워하고 요구에 따르겠지만, 시온은 달랐다.

그녀와 지난 3라운드를 함께하며, 그는 깨달았다.

관리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랬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싫다면?”

“……!!!”

“내가 왜, 널 납득시켜야 하는 거지?”

“……너.”

“세상 모든 것이,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이야. 정보 역시 자원이지. 네가 내 생각을 알고 싶으면 그에 마땅한 값을 내놔.”

“……뭐, 뭐를?”

그렇게 묻는 K를 두고 시온은 말했다.

“……네가 날 만족시킬 만한 아이템을 제시해. 나한테 묻지 말고.”

“으으으……! 으으으으으……!”

그리고 K는 부들부들 떨어 댔다.

하지만 K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관리자 네트워크.

관리자와 존재들의 직통 연결선에서, 계속해서 존재들이 ‘어떠한 보상’을 주더라도 반드시 강시온의 선택을 알아내라고 지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꺄아아아아아악-! 강시온……! 으으……! 강시온!!!”

K는 열을 내고, 고막이 따가울 정도로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플레이어를 보고, K는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존재들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존재들이 있기에, 관리자가 있는 법.

“…….”

K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뒤, 말했다.

“……좋아. 그 누구도 토 달지 못할 정도로……. 아주 만족스러운 보상을 얹어 주겠다. 추가로 네가 요구하는 이번 전쟁의 보상까지.”

그 말 뒤로 K는 자신의 인벤토리를 열었다.

* * *

종전 후, 같은 시각.

안양역 지하철 1호선 플랫폼.

횃불을 든 병사들이 그곳으로 내려갔다.

안양역 지하철은 꽤 오랫동안 방치된 장소였다.

만경의 왕, 강시온도 지하철의 활용성에 대해서 부정적이었기에, 아직까진 간단한 창고나 군수 물자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시체 썩은 내보다 몇 배는 더 역한 냄새였다.

이번에 병사들이 굳이 그곳으로 다시 내려간 이유는, 역 곳곳에 숨어든 동안의 졸개들을 소탕하기 위함이었다.

“젠장……! 냄새. 진짜 적응 안 되는군.”

“이 개X끼들이 이런 데까지 숨었을까요? 조장님. 적당히 찾고 올라가시죠?”

“뭐, 이 새끼야?”

전방에서 걸어가던 토벌조 조장이 한심한 소리나 해 대는 병사를 돌아보았다.

“군주님께서 명하신 거다. 너 이 새끼……?”

“죄, 죄송합니다. 군주님께 반항할 생각은 아니었고. 그저 전사 놈들이 굳이 이런 곳까지 기어 왔을까…… 하는.”

토벌조 조장은 혀를 차곤 소리쳤다.

“군주님이 없었더라면, 우린 멸망한 이 세계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다. 너희! 잊지 않았겠지. 2라운드 혹한 때. 군주님께서 이뤄 낸 기적을 말이야.”

보일러.

2라운드 막판에 합류한 시민들에겐 전설로 내려져 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2라운드의 당사자들은, 강시온을 구원자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한 구원자.

다 얼어 죽을 것을, 다 살려 냈으니, 강시온은 그들에겐 기적 같은 존재였다.

“한 번이라도 그딴 말 하면, 군법으로 다스릴 거다. 알겠나?”

“……예. 생각이 짧았습니다.”

조장은 다시 횃불을 든 채, 앞으로 나아갔다.

강시온의 지지율이 왜 98%인지, 그들은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1라운드 때 죽어 버린 인간의 시체가 2라운드 때 얼어 버리고, 다시 녹으면서 심한 악취를 풍겼다.

눈살을 찌푸릴 만큼 시신은 훼손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고블린의 시체도 종종 보였다.

토벌조는 이곳 지하철 플랫폼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그 어디에서도 동안의 전사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없는 것……. 같습니다?”

몇 시간 동안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조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위로 올라가지.”

위로 올라가자는 조장의 말에, 조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다시 지하철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쿠궁……. 쿠르르르…….

깜짝 놀란 조장은 횃불을 들고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인기척이 들린 곳은 놀랍게도 지하철이 오가는 철로 쪽이었다.

서울 방면은 원래 지면에 폭삭 주저앉아서, 막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몇몇 사람들이 방독면을 쓴 채, 기어 나오고 있었다.

“저, 전투 준비.”

사람들의 등장에 토벌조들은 쥐고 있던 무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조장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철로에서 나온 사람들은 휴대용 손전등과 K2 소총을 지니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손전등으로 병사들을 비추었다.

무너진 줄로만 알았던,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던 ‘대한민국 정부.’

시온은 1라운드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무너졌다고 일관되게 말했고, 구조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지난 라운드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는 시민을 방치해 왔었다.

근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었던 건 정부에서 파견된 구조대였다.

군인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생존자이십니까……? 생존자예요? 저흰 대한민국 정부에서 파견된 구조대입니다! 무기를 버리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