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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23화 (123/221)

제123화. 종전 (1)

하늘도 무심하시지.

21세기 아파트에서 화재가 생기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살아남는다.

요즘 아파트들은 화재경보기며, 스프링클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희가 살던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불이 나고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탈출했다.

한 명을 빼놓고서 말이다.

“…….”

불타는 아파트.

치솟는 검은 연기.

분주한 소방관들.

멀리 떨어져서 구경하는 주민들.

그들을 통제하는 경찰관들.

앰뷸런스 몇 대.

그 앞에 주저앉은 진재희.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다리가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데……. 화재 시에는 엘리베이터도 작동되지 않아서……. 그 아픈 다리로 어떻게 15층에서 내려와…….

어떻게…….

그리고 그동안 술을 처먹고 있었던 자신이…….

호승과 철호, 민지가 재희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그녀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울먹이고 있었다.

“재희야! 재희! 일어나라!”

“재희야……! 재희야……!”

“정신 차리라……!”

“으아아아아……! X발 진짜!!!!”

“이건 아니잖아! X발!!!”

“재희야……! 재희야……!!!”

“X발, 세상이 왜 그래!!! 왜, 얘한테만 X랄이냐고!!! 왜!!!”

“재희야……. 진재희…….”

울먹거리는 친구들이 재희의 몸을 이끌고 뒤로 빠지려고 했다.

불길이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재희의 친구들은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재희는 몸을 추욱 늘여 놓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믿기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니, 아무런 감정조차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재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소방관들이 뛰어와, 재희를 끌고 나올 때까지.

그녀는 불타오르는 아파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뭐합니까?! 어서 피하세요!”

소방관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와중, 재희는 그제야 눈물을 터트렸다.

치솟는 불길에 아지랑이가 펼쳐진 아파트 정문을 보며 애달프게 소리쳤다.

“……아빠.”

고개를 저어 가며.

“아빠……. 안 돼.”

닿지도 않을 손을 뻗어.

“아빠……. 아빠 안 돼…….”

시야는 이미 눈물로 가득한 채로.

“아, 안 된단 말이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아빠……! 꺄아아아악……! 아아아……! 아아아아아!!!”

아기처럼 떼를 썼다.

* * *

“후우……. 후우……. 후우…….”

수만 마리의 세포 시체로 가득한 이 장소.

진재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위에 선 재희의 은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은색 빛이 감돌던 머리카락도 조금씩 변색되더니 흑발이 되었다.

각성 2의 힘이 다한 것이다.

“…….”

푸-욱! 퍽!

재희는 전방에서 달려드는 세포를 찌르고, 뒤에서 다가오는 세포는 팔꿈치로 뒤돌려 가격했다.

이미 수백 마리의 세포가 재희에 의해 베어져 쓰러졌다.

결국에는 힘으로 해결했다.

그녀는 역시 생각하는 것보단, 아무래도 힘이 편했다.

게다가 만약 전투에 있어서 ‘자신이 돌파 불가능한 일’이 있었더라면 시온은 사전에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온은 재희에게 그저 서두르라고 했다.

즉, 돌파되지 않는 난관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재희는 시온을 강하게 신뢰하고 있었다.

강시온은 언제나 정답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니, 자신은 그 정답을 따라가면 될 일.

생각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역할은 그를 지키고, 그를 위하며, 나아가서는 이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것.

못 다한 염원도.

결국에는 세상을 모두 되돌린 뒤의 일이다.

전생에 재희는 많은 감정을 쏟아 냈다.

지금 와서 그것을 다시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꾸우우우욱…….

재희는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일도록.

곧 그녀의 두 손이 올곧게 위로 뻗었다.

엄청난 힘이 성검에 모이기 시작했고, 이내 태양 빛보다 더 강렬히 발광하기 시작했다.

“카하아아악……!”

“아아아아악!”

“흐아아…… 하아아아……!”

박지수의 세포들은 그 빛으로부터 숨기에 급급했다.

힘이 모두 모인 순간, 재희는 검날을 내리쳤다.

검날이 닿은 모든 살집들이 홍해처럼 둘로 갈라졌다.

쿠과과과과과과과광-!!!

신성한 빛이 세포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그곳에 있던 모든 세포의 산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

진재희는 조금의 휴식도 없이 다시 앞으로 날아갔다.

첫 번째 약점을 베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두 번째 약점을 베는 건 더욱 쉬웠다.

세 번째 약점을 벨 때부터는 졸개들을 벨 때처럼 쉬웠다.

그녀는 베면 벨수록 더욱 강해졌다.

네 번째 약점을 벨 때부터는 이 육체 감옥 안에서 그녀를 단 1초라도 묶어 둘 존재는 없었다.

다섯 번째 약점을 벨 때부턴 세포들은 포기하고, 망연자실했다.

여섯 번째 약점을 벨 땐, 놈들은 오히려 길을 터 주었다.

마주한 공포에 자신의 본분도 잊어 먹은 채, 신체 곳곳에 숨기 바빴다.

그녀의 검술은 우아함의 극치였다.

손, 허리, 어깨, 가슴, 다리까지.

곡선에서 회전하여 직선으로 이어지는 몸의 동작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백조의 깃털처럼 가볍고 우아하게.

어떨 땐 호랑이의 이빨처럼 무자비하고 강렬하게.

자신에게 달려드는 세포를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무자비하게 베어 버렸다.

사방으로 튀는 피와 살점들.

검술뿐만 아니라 육체로 하는 모든 격투술.

그녀는 어릴 적부터 검도, 유도, 태권도, 무에타이, 복싱까지. 하다못해 재밌어 보인다고 너튜브 보고 따라 해 시스테마를 독학으로 마스터했다.

운동이라면 운동.

전투 기술이라면 전투 기술.

재희는 온몸이 무기였다.

각성 2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최강이었다.

그녀는 참았던 숨을 깊게 내뱉었다.

“후-.”

숨을 한 번 참고, 내뱉을 때마다 그녀는 전투의 호흡을 맞췄다.

결국, 전투 역시 연속된 운동 동작과 마찬가지여서 호흡법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검도를 배우고, 수십 년간 몬스터와 싸우며 연마된 그녀의 공격 기술은 가히 인간을 뛰어넘었다.

두 개의 은성검은 그녀의 교차 된 양손을 따라 두 어깨 위로 뻗어 있었다.

세포들이 쏟아 내는 핏물은 성검에 닿자마자 산화되어 흩어졌다.

회귀자는 압도적인 초월자다.

이미 과거로 전생한 것에서부터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제 그녀가 넘어야 할 건, 고차원의 존재였다.

겨우 이따위 졸개들이 아니라.

마지막 일곱 번째 약점.

진재희는 고민도 않고 베었다.

* * *

“쿨럭……! 쿨럭!”

나는 힘겨워 옆으로 휘청거렸다.

손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놓아선 안 되었다.

이곳은 박지수의 영역이고 아직 그녀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보호막 주위로 진재희가 두고 간 은성검 한 자루가 공전하고 있었다.

시전자가 적으로 설정한 대상을 자동적으로 공격하는 스킬이었다.

아마 날 염려해 준 것일 터다.

난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박지수를 바라보았다.

“흐으으으……. 흐으으으으…….”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때, 박지수는 숨을 불규칙하게 내뱉기 시작했다.

그리고 빨갛게 충혈된 두 눈동자로, 피눈물과 각혈을 쏟아 내며 날 바라보았다.

“……네가 못난 거야.”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우린 지금 가족보다 더 많은 추억과 기억을 공유했다고?”

“……근데 어째서 날. 배신 한 거야.”

“……네까짓 게 뭔데.”

“날…… 이렇게 절망에 빠뜨리는 거야.”

“안 돼. 있을 수 없어.”

“나에게는 관리자가 있어.”

“어딨어……?”

“K……?”

박지수는 절망에 빠져 날 저주하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손을 뻗자, 빠른 속도로 공전하던 은성검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내 손아귀에 쥐어졌다.

조금의 저항감이 있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다.

휙-. 휙-.

사선으로 검을 휘두르며 감각을 익혔다.

나쁘지 않았다.

검은 가벼웠고, 날카로웠다.

그리고 다시 박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이 뒤틀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기포들이 피부를 찢고 나오려고 하다, 이내 거대한 손이 등에서 뻗어 나왔다.

“너도 죽일 거야. 내가 정한 거야. 내가 정한 건 이뤄지는 거야. 알겠어? 난……. 난……. 주인공이니까. 이 세계에 한 명뿐인. 그랬단 말이야……. K!!!!!!”

푸슛-!

그때, 또다시 등에서 거대한 팔이 돋았다.

“꺄아아악! 아아아아악! K……. K……!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준다고 했지? 듣고 있잖아! 대답해! K!!! 날 만들어 주겠다고 했잖아. 주인공을……. 이 리그에 단 한 명뿐인……. 주인공을!!!!!!! 꺄아아아악!”

푸슈우웃-!!!

팔이 돋아날 때마다 박지수는 괴로운 듯 괴성을 내질렀다.

피가 방류된 댐의 물처럼 뿜어져 나왔다.

피들이 파도처럼 날 덮쳤지만, 보호막을 중심으로 흩어졌다.

이제 그녀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기괴하게 뒤틀린 육질 괴물.

오우거만큼 거대해졌으며, 꿈틀거리는 피부와 근육, 뼈들이 곳곳에 뻗어 있었다.

육질 속에 파묻혀 있는 두 눈동자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K……!”

부웅-!

놈은 손을 들어 보호막을 강타했다.

하지만 보호막은 끄떡없었다.

오히려 내려친 놈의 손바닥이 원형으로 뚫렸다.

“K……! 대답해……! 약속했잖아……!”

쿵, 쿵, 쿵, 쿵!

이젠 마구잡이로 난타하기 시작했다.

난 몸을 웅크리고, 구체를 모았다.

몸을 움직일 순 없었지만, 아티팩트를 조종할 수는 있었다.

대부분의 구체를 진재희에게 보냈기에, 이곳에 남은 건 별로 없었지만 해 봐야 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구체를 한데 모아 폭발시켰다.

“카하아아악……! 아아악! K! 나 아파……! 아파……! 도와줘.”

효과는 있었다.

놈의 근육들이 허공에서 터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다시 구체를 이동시켰다.

이번에는 아까부터 휘갈기는 촉수를 향해서였다.

근접에서 놈이 다가올 때엔, 은성검으로 맞받아쳤다.

“내가 위험에 처하면…… 넌 언제나 오기로 했으면서……! 으으……!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이동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공격하는 데에는 한계 따윈 없었다.

놈은 몸만이 거대해졌지, 실질적으로 이 공간을 지배하는 건 나다.

내가 의도한 대로 상황은 흘러갔다.

진재희의 보호막이 큰 역할을 했다.

놈의 공격은 내게 먹혀들지 않았고, 나의 공격은 놈에게 먹혀들었으니.

이제 놈의 육체는 절반가량 망가져 있었다.

마무리 시간이었다.

절규하는 박지수의 머리를 향해 모든 구체를 집중시켰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비참해! 원통해! 제발 이러지 마!!!”

구체들은 계속해서 모여들었고, 박지수 역시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듯했다.

네 팔을 들어 올린 박지수는 울먹였다.

“이젠…… 끝이야…….”

그러고는 네 개의 팔을 그대로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난 구체를 쏘았다.

쾅-!!!!!

“…….”

“…….”

엄청난 폭발음 뒤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 * *

“후우……”

시온은 보호막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에게는 더 이상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모든 힘을 마지막 전투에 쏟아부었고, 결판은 났다.

시온은 반쯤 풀려 버린 눈동자로 박지수를 바라보며 떠올렸다.

박지수의 기억.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보통의 사람일지라도, 떠올리기 싫은 정신적 고통이 한두 가지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그 한두 가지의 슬픈 기억만 하더라도 심장이 좀먹듯 아플 텐데, 박지수는 생애 전반에 걸쳐 빌어먹을 인생을 살아왔다.

시온은 그런 감정을 한 번에 받아들였으니, 만약 그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니, 이세범과 같았다면 진즉 미쳐 버려 죽었을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도, 참으로 불쌍한 인생을 보내온 여자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강시온은 타인의 감정을 신경 쓸 만큼 정 많고,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원래 세계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 봉사였다.

그는 꽤 오래전부터 인간은 스스로 개개인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바깥의 타인은 침입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왔다.

타인은 결코 자신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사회생활, 인간관계, 타인과 교류하는 모든 일이 결국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것들을 하지 않으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없으니,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걸 할 수밖에 없는 거다.

결국 강시온은 선택했다.

부모를 잃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확실히 결정했다.

더 이상 타인에게 이끌리며 살아가지 않겠다고.

그때부터 그는 언제나 자신을 위해 살아왔다.

동생을 만나고 싶다는 것도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을 죽여 온 것도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다.

“쿨럭……! 쿨럭……! 퉤……. 후우…….”

시온은 부들부들 떨려 대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까지 흐느끼며 울고 있는 박지수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좀비처럼, 술 취한 사람처럼.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 채,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느덧 강시온은 박지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지수는 흐느끼다 조금씩 그를 올려다보았다.

온몸이 망가지고 피로 얼룩져도, 눈망울만큼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박지수는 애원했다.

“……살려 줘. 시온아.”

박지수는 다시 애원했다.

“……부탁이야. 이렇게 죽기 싫어. 제발…….”

강시온은 박지수의 기억을 들여다본 뒤로, 좀 더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타인이 보기에 인간 강시온은 그저 실패한 고아 정도로 보였겠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는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결론지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결국엔 최고의 자리를 올라 기만으로 시민들을 통제하고, 자유로 위장한 억압으로 세력을 키워 내는 사람이었다.

수천 명을 죽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그의 혓바닥에서부터 시작했고, 이제 그 종지부를 찍을 차례였다.

강시온, 그는 아주 단순한 놈이었다.

……어떤 놈이냐.

시온은 중얼거렸다.

“……인간이 아닌 거지.”

시온은 쥐고 있던 성검을 사선으로 올렸고, 곧장 내려쳤다.

촤악-!

검날에서 느껴지는 작은 저항감이 사라진 후에는 박지수의 목이 사선으로 떨어졌다.

오랜 전쟁의 끝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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