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진재희 (2)
2021년 부산 시내, 어느 녹음실.
“아이 씨! 박자 다 틀리잖아. 다시 해. 아니, 무슨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야! 또 틀려? 다시.”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 한참 남았어.”
장발을 뒤로 묶고, 온몸에 문신을 한 프로듀서가 의자를 끌며 재희에게 다가왔다.
재희는 기타 줄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잔뜩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픽 숙였다.
프로듀서가 말했다.
“재희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경우가 뭔지 알아? 바로 너처럼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애들이야. 가진 재능도 X나게 어중간해서, 노력도 X나게 어중간해서, 뭔가 될 듯 안 될 듯한 거지. 근데 그런 애들은 안 돼. 끝까지 가도 안 돼.”
어중간한 재능.
재희는 그 단어에 몸을 움츠렸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대학에 가서 가수로서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호승이는 너튜브에 노래하는 영상을 올렸더니, 반응이 대박이 나서 소속사까지 생긴 모양이었다.
지난 3년간, 다른 친구들은 저만치 나아갔을 때, 재희는 제자리였다.
분명 그들을 따라 걷긴 했지만, 제자리 걸음일 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그냥 자신은 태어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시작했을 뿐인데.
세상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자격이라고 해야 하나.
어린 나이의 진재희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이 오빠 말만 잘 들으라니까? 너 싱어송라이터 패니 알지? 그 사람도 나한테 프로듀싱 받아서 잘 된 거야~ 아, 물론 일반적인 관계는 아니었어. 서로 주고받는. 응? 오빠가 하는 말 뭔지 알아?”
스으으윽-.
프로듀서는 재희의 등을 쓸다 어깨를 감았다.
몸을 바짝 붙이고,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그러자 재희는 힘없이 말했다.
“손 떼.”
“어……? 뭐라고?”
지금껏 프로듀서한테 한 번도 들려준 적 없었던 목소리였다.
재희는 그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분명히 말했다.
그를 바라보며.
“손 떼라고.”
“너……!”
부웅-! 퍽!
우당탕탕-! 퍼억! 퍽!
“미안! 미안! 잠깐!”
우르르! 쾅! 와르르르…….
“자, 잘못……!”
퍼억! 퍽! 퍽! 퍽! 퍽!
* * *
앙-.
재희는 입을 크게 벌려 콩나물 무침을 양껏 집어삼켰다.
짭조름하고 아삭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쩝쩝-.
티비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렸다.
“자식 하나 낳아 봤자, 소용없다니까. 나이를 처먹고도 허구헌 날, 쌈박질이나 하고 말이야. 어째, 이번에는 병원은 안 갔네? 애비 생각해서 적당히 때린 거여? 너 이년아, 니 애비가 운동선수였으면, 정신 차리고 운동이나 해서 애비 따라 선수나 할 것이지. 너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라고 운동 가르쳐 준 줄 알아?”
쩝쩝-. 후루룹.
“하여튼. 어휴……. 내 팔자다, 내 팔자. 이 애비가 공부를 잘하라고 했냐……. 뭐, 돈을 벌어 오라고 했냐……? 하이고…… 하이고야. 밥은 잘도 목구멍 안으로 처들어 간다잉? 으이? 맛있냐이?!! 빌어먹을 가시나야!!!!”
아그작-!
재희는 청양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씹은 뒤, 북어국을 한 숟갈 떠먹었다.
그러곤 부엌 너머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맛있네. 아부지. 요즘 요리 연습해? 어째 알고리즘에 천종원 선생님 뜨더라. 갈수록 실력이 늘어?”
“저년 저거……. 누굴 닮아서 저런 거여……. 아부지 말을 개똥으로도 안 듣고 있고. 하이고야-. 내 팔자다.”
“누구긴 누구야. 아부지 딸인데. 아부지 안 닮아 이렇게 예쁘지. ……아부지 딸, 시내 나가면 무조건 번호 따인다?”
“뭐라노……?”
재희는 다시 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베어 먹었다.
딸이 야무지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년, 저거 저거.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장군감이었다. 저거는. 아니, 백정인가?”
아버지의 농담에 재희는 낄낄거리며 받아쳤다.
“그럼, 나 남편만 마흔 명 사귈 거다.”
“……가시나 미칫나?”
하나뿐인 딸이 하라는 운동,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쌈박질만 하고 돌아다녔다.
세상 어떤 아버지도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낼 수 없을 것이다.
도무지 바깥에 싸돌아다니면서 뭘 하고 다니는지, 아버지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니. 서울 갈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이도 어리고, 부산에 있어도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서울 가서 뭐라도 해 보라는 아버지의 생각.
그는 다시 딸을 바라보았다.
재희는 어느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니. 서울 가라. 돈은 걱정 말고. 가서 뭐라도 해라. 막일을 하든, 뭘 하든. 니 좋아하는 음악하든. 서울 가면 생활이 달라질 거다.”
딸그락-.
어느새 재희는 설거지를 마치고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내며 대답했다.
“됐네요~. 난 서울말도 못 하고……. 또, 나 서울 가면 아부지는? 다리도 불편하신 양반이. 참 혼자서 잘 생활하겠어? 아님, 여자라도 생긴 거? 아, 설마……. 1203호 아줌마?”
재희는 힐끗, 아버지의 다리를 보았다.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아버지의 다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신경이 없으니 걷지도, 혼자선 소파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집 안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였다.
오른발은 괜찮았지만, 깽깽이걸음으로 다녀야만 했다.
그는 한때 대한민국에서 알아 주는 복싱 선수였다.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몇 번 받고, 신문에도 대문짝만큼 실릴 정도의 유망주였다.
재희가 어려서부터 여러 운동을 시작했던 것도, 그의 영향이 컸다.
동네에선 꽤 알아 주는 집안이었다.
경기장에서 상대방의 반칙으로 왼쪽 다리 관절이 180도 꺾이기 전까지는.
“여자는 무슨. 이 애비는 너희 엄마밖에 없다.”
엄마 얘기에 재희는 인상을 팍 구겼다.
“도망간 여자를 왜 자꾸 말해. 아부지 다치고, 평생 병시중 감당 못 한다고, 도망간 년을.”
“재희야!”
“내가 틀린 말 했나? 그것도 병이여. 다시 돌아올 거라는 환상이지. 떠나간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요즘 뭐, 드라마 좀 보더니 주인공 된 줄 알아? 너튜브 알고리즘 보니까 드라마 좀 보는 것 같은데……. 아, 그리고 국뽕 tv 좀 그만 봐. 아저씨 티 내? 진짜로. 충격!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기술력에 놀랐다……! ……내가 볼 때 아저씨는, 밖에 나가서 여자를 좀 만나봐야 해. 응? 그러니까 지금까지 여자친구가 없지. ……하여튼 난 부산이 좋아. 그런 말씀 마. 아저씨.”
끼이익…….
재희는 자기 방문을 천천히 열며,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지그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저 가시나 저거…… 애비한테 말하는 본새 봐……?”
아주…… 천천히 방에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쿵!
아버지는 굳게 닫힌 재희의 방문을 보며 혀를 찼다.
“저…… 저. 연애도 한 번도 안 해본 가시나가 자꾸 뭐라는 겨? 허! 나아참……. 너나 남자나 좀 만나! 이년아-!!!!!!!! 시집은 갈 거여?!?!”
아버지는 조금 숨을 가다듬더니 다시 소리쳤다.
“그리고 내 너튜브 좀 그만 염탐해!!!”
* * *
서-걱! 콰직!
재희는 또다시 박지수의 약점을 베어 냈다.
그녀는 아직까지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있었다.
육체의 고통보다 정신의 고통이 더 컸다.
왜, 왜 지금 이런 기억들이 떠오르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2개. 남은 시간은 16분.’
그녀의 토벌 속도는 강시온이 예상한 수치와 정확히 일치했다.
재희는 지금, 다시 한번 시온의 대단함을 느꼈다.
지금껏 그녀는 강시온의 구체를 따라 차례차례 약점을 베어 냈고, 이제 두 개만이 남아 있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랐지만, 몸을 멈출 순 없었다.
재희는 다시 날아갔다.
또다시 세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갸아아아아아악!!!”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재희는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자신을 지나치는 세포들을 베어 냈다.
은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몸의 움직임에 따라 아름답게 춤을 추었다.
세포들은 기껏해야 할퀴기, 때리기 공격을 퍼부었지만, 놈들의 공격은 재희의 몸에 닿지도 않았다.
그녀의 아티팩트는 이제 각성 2.
이제 일반적인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칼날 끝에 닿기만 해도, 세포들이 연두부처럼 녹아 베어질 정도였다.
재희를 막아서는 세포들이 수천 마리씩 죽어 나갔다.
‘…….’
동시에 재희는 감정을 컨트롤했다.
스스로 세뇌하면서 꿋꿋하게 버텼다.
‘전생에 많이 후회했잖아.’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
‘죽을 만큼 많이 울었잖아.’
그때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한 후회.
‘그러니까 모든 걸 되돌려 놓겠다고 다짐했잖아.’
자신의 다짐을, 그리고 약속을.
‘돌아간다고 약속했으니까.’
전생에 그토록 슬퍼했기에, 지금 아픈 기억들이 떠오른다고 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거다.
이젠 흘릴 눈물도 없을 만큼.
재희는 자신의 감정을 꾹꾹 삼키며 눈앞의 살상에 몰두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쉽게 폭력을 행사한다. 상대방을 해치며 자신이 약하다는 걸 숨긴다.
재희가 그런 케이스였다.
실상은 여리지만, 그녀는 상대를 파괴하는 행위에서 진통의 효과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강시온의 구체를 따라 움직이다 마침내 박지수의 마지막 약점 앞에 도착했을 때, 재희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그 표정만큼은 강렬했다.
모든 걸 찢어 죽여 버리겠다는 살의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마지막 위치.
그곳에는 수만 마리의 세포들이 모여 있었다.
놈들은 하나같이 마지막 남은 세포를 둘러싸고 지키고 있었다.
이들을 허공에서 내려다보던 재희는 세포들이 우글거리는 그 공간을 향해 낙하했다.
스스로 더 어려운 환경에 몰아넣는 꼴이었다.
더 강력하고, 더 괴롭고, 더 아찔한 육체의 고통으로 지금의 기억 속 고통을 상쇄해 버리기 위해서.
재희는 수많은 박지수의 아비규환 속으로 들어갔다.
* * *
재희의 전생.
그날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이 부산에 내려와 술이나 한잔하기로 한 날이었다.
너무나 평범했고, 집 밖을 나갈 때까지 재희의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너튜브를 보고 있었다.
재희는 문밖을 나서기 전, 힐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불렀다.
“아부지.”
“……?”
아버지는 국뽕tv에서 눈을 떼,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재희는 조금 침묵하더니 이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냥 불러 봤소.”
“……뭐고. 가시나.”
재희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그때, 아버지는 재희를 붙잡았다.
“가시나.”
“응? 왜요.”
재희는 반쯤 문밖을 나서다, 고개만 빼꼼 집어넣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한 손에는 여전히 리모컨을 쥔 채로.
“……항상 응원한다.”
“…….”
재희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응원에 침묵을 지키다 이내 피식 웃었다.
“드라마 좀 그만 보시라니까.”
“……가시나가 말을 해도.”
“오늘 좀 늦어요~ 먼저 주무세요.”
끼이이이익……. 쿵!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동네 호프집.
잔뜩 취한 재희가, 볼을 붉힌 채 호승의 등을 철썩 때렸다.
“호승이 니 성공했네! 짜식이 말이야! 코찔찔이 어디 갔노.”
짜악-!
호승은 부끄러운 듯 뒤통수를 매만지며 웃어 보였다.
“이제 음악 프로그램 하나 나간 건데. 뭘.”
“이야-. 이 새끼. 서울말 겁나게 잘 쓰네? 서울 사람 다 됐다. 야.”
“야, 그래도 벌써부터 데뷔한 거면 확실히 재능 있는 거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민지가 호승이를 응원했다.
그러자 호승이는 재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재능은 얜데.”
“……내?”
“그래. 너 연습 계속하고 있지?”
“어? 어어. 어어어. 그래. 그래.”
재희는 홧김에 또 프로듀서를 패 버렸다는 말은 절대 친구들에게 하지 못했다.
말없이 맥주잔을 들이킬 뿐.
호승은 마른안주를 하나 집어 들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나 아직 포기 안 했다.”
“……뭐를?”
“나 데뷔 성공해서 어느 정도 인지도 쌓으면 본격적으로 그룹 만들 거야. 그땐 재희가 보컬 담당하고, 우리 했던 대로 하는 거지.”
“……그게 가능해?”
“밑밥은 깔아 놨어. 대표님한테 말해서 그룹 한번 준비해 보게. 걱정 마. 내가 너희 생각 안 할 리가 없잖아?”
“오오오오…… 호승이……!”
호승의 이야기에 하나둘 화색이 돋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재희만 웃을 수 없었다.
“……내는 빼라.”
그녀의 대답에 깜짝 놀란 호승이 돌아보았다.
“야…… 뭔 소리야? 네가 없으면 보컬 누가 해?”
재희는 자신이 그룹에 들어가면 분명 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학교 폭력 전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승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학교 폭력 때문에 그래……? 아니, 그거 네 잘못 아니잖아. 그 새끼가……?”
“……내 잘못이든, 내 잘못이 아니든. 세간에선 다르게 보겠지. 너희 성공해라. 내는 됐다. 지금 하는 것도 그냥 미련 못 버려서…….”
“……야, 진재희!”
“아, 띠바! 깜짝아……?!”
재희는 깜짝 놀라 맥주를 흘릴 정도로 몸을 움츠렸다.
호승이 화내는 건 처음 봤다.
재희는 두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난…… 한 번도……. 서울 가서도……. 니네 생각 안 한 적 읎다!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고!”
“……니 내한테 지금 고백하나? ……미안타. 내는 니 코찔찔이 이상으론…….”
“뭔 개소리야! 아오!!!”
그때, 호승은 2000cc 맥주 통을 들곤 한 번에 들이켜기 시작했다.
덥석!
벌컥, 벌컥, 벌컥-!
꼴딱, 꼴딱, 꼴딱!
물도 저렇게 못 먹을 텐데, 호승은 맥주를 모조리 비워 버리곤 책상에 신경질적으로 맥주 통을 내려놓았다.
쾅-!
호승의 화끈한 술 쇼를 본 재희는 박수를 쳤다.
“마. 서울대 학생이라 그런지, 화끈하게도 마시네…….”
“서울예대다, 예대! 경기도에 있어. 서울대 학생 아이다.”
“……? 서울예대인데, 서울에 왜 없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다! 가시나!”
호승은 빙 둘러앉은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니네도……. 내 알제? 어릴 적부터 몸이 하도 약해가. 처맞고만 다닌 거. 솔직히…… 위험한 생각도 많이 했다. 근데, 재희가 다 도와준 거 아니가? 얘는 누가 우리한테 시비 걸면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선 도와줬다. 나는 니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고, 난 항상 잊지 않을 거다! 니 없었으면, 나 대학 가지도 못했을 거다. 약한 소리 마라! 가시나.”
“그치, 재희가 많이 도와줬지…….”
“맞아…….”
다른 친구들이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근데…… 고백 맞는 듯?”
“그래. 저 새끼 고백하네.”
“지랄 마라! 난 진짜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호승은 자리에 넙죽 앉았다.
취기가 돌았는지, 얼굴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친구임에도 고맙다는 말도 쉽게 못 하는 약간 이상한 거리감이 있었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조금은 부끄러웠던 것.
호승도, 민지도, 철호도 마찬가지였다.
호승이 총대를 메고 소리치긴 했지만, 나머지 친구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재희는 고마웠다.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감정을 숨겼다.
“에잇! 좋타! 내한테 고맙다 이거제? 그럼 오늘 내가 주는 술, 모두 빼지 마라?!”
그때, 재희는 2000cc 맥주 통에 소주와 맥주를 9 대 1 비율로 쏟아부었다.
콸콸콸콸-!
일명 꿀주.
미치도록 맛있지만, 금방 취하게 된다는 전설적인 비율의 술이었다.
꿀주를 가득 담은 재희는 맥주잔을 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보며 실실 웃었다.
“성공해라. 니들.”
“……뭐고 아재야?”
“시끄러워! 그냥 성공하라고!”
친구들은 너도나도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잔을 부딪혔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재희의 휴대전화 역시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10통……. 20통…….
1203호 아주머니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