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21화 (121/221)

제121화. 진재희 (1)

진재희는 구체를 따라갔다.

구체는 한쪽으로 나아가다 어느 한 육질의 벽에 부딪혔다.

‘저쪽인가.’

진재희는 그곳을 향해 검을 반듯이 올린 뒤 곧장 내리쳤다.

스응-. 촤악!

메스로 피부를 잘라 내듯, 거대한 내피가 둘로 갈라졌다.

그곳은 혈관이었다.

구체는 벌어진 틈을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심연처럼 어두컴컴한 통로 내부에 이제 빛들이 듬성듬성 발광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밤의 고속도로 이정표처럼.

밝아진 내부를 본 재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끄으으으으……!”

“까아아아아……!”

혈관 바닥에는 무수한 박지수의 세포들이 하나같이 진재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놈들은 박지수의 외관을 하고 있었으며, 색깔은 검은색과 하얀색, 빨간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기라고 할 것은 없지만, 기다란 손톱과 날카로운 이빨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때, 박지수의 목소리가 이곳 통로 내부에 가득 울렸다.

“죽여 버려……! 죽여 버려!!! 그 새끼 죽여 버리라고!!! 사지를 찢어서 내게 데려와!”

그 순간, 개미 떼처럼 모여 있던 세포들이 진재희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혈관 내부에 놈들의 괴성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세포들은 재희를 에워싼 채 한 번에 제압하려고 들었다.

“…….”

진재희는 빠르게 눈동자를 돌리며 빠져나갈 방법을 찾다 이내 두 손을 움켜쥐었다.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은 시온처럼 상황을 분석하고 싸우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그냥 깨부수는 스타일.

그녀는 어릴 적부터, 시간상으로는 20년이 훌쩍 지난 고등학교 시절부터 말보단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들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남자든, 옆 학교 양아치 무리든 상관없다.

진재희는 어릴 적부터 안 해 본 운동이 없었고, 덕분에 웬만한 전투 기술은 성인을 능가했다.

그녀는 흔히들 말하는 ‘통’이었다.

통.

그녀는 부산 일대 고등학교에선 주먹으로는 알아 주는 여자였다.

* * *

전생.

2019년, 부산 남구 성지고등학교 옥상.

한 여학생을 두고 일진 무리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중, 덩치가 산만 한 남학생이 혀를 차며 말했다.

“와- 나. X발. 뭐꼬? ……마! 니 지금 내랑 장난하나. 부산 통이 딸내미가? 하, 나 참. 이 새끼들……. 내랑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18살치고는 우락부락하고 뚱뚱한 몸매에 가슴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문신.

분명 교복을 입었지만, 담배를 문 채 뻑뻑 피워 대는 모습을 보아하니 일진들이 분명했다.

남학생은 자신들의 무리와 함께 옥상에 앉아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2001년생 19살의 진재희가 혼자 서 있었다.

상의엔 교복을 입었지만, 하의는 체육복 차림인 채로.

단발머리는 어깨선에 걸쳐 있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양손은 주머니에 꽂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남학생은 진재희를 바라보다 피식대며 도발했다.

“을메나 잘 치길래. 너거 혼자서 왔는지 몰래도……. 가래이? 처맞기 싫으면.”

진재희는 눈동자를 돌려 일진 무리를 둘러보다 말했다.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서로를 향해 오갔다.

“너거가……. 우르르 몰려와. 아 팼다며. 서면. 딩동댕 노래방 복도. 오후 6시경.”

“머라노? 가스나. 너 아들이 먼저 시비 털었다 아이가.”

“단순히 쳐다본다고 처맞을 거면, 사람이 눈까리를 땅바닥에만 두고 살아야 하나? 너가 아, 반병신 만들어 뿌고, 불만 있으면 찾아오라 했다며? 내한테. 그래서 찾아왔다.”

재희는 교복의 소매 단추를 풀고는 접기 시작했다.

“니가 가스나인 줄은, 내는 몰랐지. 근데 이건 경우가 아이다. 머스마 데려온나. 니는 끄지라. 내는…… 가스나랑은 안 싸운다.”

덜컹-!

육중한 몸매의 남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자국씩 진재희에게 다가갔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실실 웃고는 진재희를 내려다보았다.

“왐마-. 가스나. 예쁘기는 뒤지게 예쁘네. 진짜 통 맞나?”

둘의 체격 차이는 명확했다.

진재희도 키가 172cm이라 여자치고는 장신이었지만, 남학생에 비해서는 작은 체구였다.

하지만, 깡다구가 달랐다.

진재희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며 물었다.

“그럼, 딸내미끼리 싸우면 문제 없제?”

“머라카노?”

휘릭-. 콰직!!!!!!

달걀 두 쪽이 으스러지는 소리.

“끄아아아아악……!”

재희는 남학생의 사타구니를 올려 차 버렸다.

그 순간, 남학생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선빵필승이다. 이 개자슥아.”

그 뒤로 재희에게 달려드는 양아치들.

“야. 한꺼번에 덮쳐!”

“으아아아아!!!!”

“이 가시나가 미칫나!”

부산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돌고 도는 소문.

23대 1의 전설.

믿거나 말거나 한 소문이었지만, 확실한 건 재희는 누구보다 싸움에 진심이었다.

주먹이 오가는 옥상.

재희 혼자서 여덟 명을 때려눕히자, 나머지는 지레 겁먹고는 달아났다.

재희는 온몸에 성한 곳이 하나 없을 만큼 다쳤지만, 실실 웃었다.

“까불고 있어. X밥들이.”

재희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 일진 부류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친구를 건드리는 놈들에게는 양아치보다 더한 폭력을 행사했다.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싸움을 해 오다 보니 어느새 통이 되어 있었다.

……물론 공부는 꽝이었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성적은 전교 꼴찌였으니.

* * *

“퉤-.”

재희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침에 핏물이 조금 묻어나와 있었다.

그때, 곁에 있던 호승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희, 니 괘안나?”

늦은 밤, 재희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 정자에 앉아 있었다.

호승, 철호, 민지는 울상이었다.

괜스레 자신들 때문에 싸움에 불려 나간 재희가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호승은 기타 가방끈을 매만지다 고개를 픽 숙였다.

“미안하다……. 괜히 내가 시비 걸려서…….”

“미안할 게 뭐 있노.”

그때, 재희는 고개를 들고선 호승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그 양아치 새끼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또 싸우자고 덤벼든다. 확실히 밟아 줘야 다음부턴 안 건들지. 언제 한 번 손 봐야지, 손 봐야지 했다가. 오늘 날 잡은 거제.”

“……미안하다.”

재희는 언제나 그랬다.

어디선가 친구가 맞고 오면, 후다닥 달려가서 때린 놈을 패 버리는 친구.

진재희, 이호승, 김철호, 박민지.

넷은 어릴 적부터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 온, 한마디로 동네 친구들이었다.

넷은 항상 같이 놀았다.

그들이 어릴 적에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서, 지금 아이들처럼 피시방이나 여러 즐길 거리가 적었다.

즐길 거리라고 하면…… 문방구 앞에 오락기나 놀이터가 전부였다.

그만큼 넷의 사이는 끈끈했다.

나이를 하나씩 먹어 가며 서로에게 소홀하게 된 적도 있었지만, 진정한 친구는 사이가 멀어져도 서로를 생각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넷은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민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다시 재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희, 너. 음악은 이제 접었나?”

“…….”

그 목소리를 들은 재희의 눈꺼풀이 흔들렸다.

* * *

음악.

운동, 잠, 쌈박질뿐이었던 그녀의 인생에서 음악은 유일한 ‘색다름’이었다.

시작은 정말 단순했다.

중학교 시절이었던가, 다 같이 노래를 부르러 다니던 것이 발단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네 사람 모두 음악을 좋아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냐면, 네 사람이 모두 모이는 날은 언제나 노래방을 꼭 갈 정도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시작은 철호였다.

밴드를 만들어 보자는 거였다.

우리만의 밴드.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각자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고 했다.

그 당시 재희는 숏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피식 웃었다.

무슨 삼류 청춘물 드라마 찍냐고.

하지만 음악만큼은 서로 진심이었던 넷은 결국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청춘 페스티벌에 초청받기도 하고, 너튜버의 영상에도 나오기도 했었다.

물론 너튜브 영상에서 재희는 음악이 아닌 외모로서 더 돋보였다.

어느새인가, 네 친구들은 음악을 전공으로 친구들은 대학교를 지망했다.

호승이는 피아노.

철호는 기타.

민지는 베이스.

남이 들으면 조금 웃길 수는 있어도 재희는 보컬이었다.

재희는 정말 좋은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잔잔한 멜로디, 차분한 음색, 타고나진 않았지만 좋은 박자 감각까지.

호승, 철호, 민지는 재희의 그런 모습에 반했다.

재희는 정말 예뻤다.

노래할 때면 말이다.

처음으로 운동뿐이었던 재희에게 음악은 삶에 색다름을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하지만 꿈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교무실.

담임은 진재희를 앉혀 놓고 말했다.

책상 위에는 그녀의 9월 모의고사 성적표가 있었다.

“……재희 너. 이 학기부론 아무 데도 못 간다. 출석률도, 성적도, 무엇보다 학교폭력 때문에 수시는 꿈도 꾸지 말아라. 네가 체전 1위를 하든,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든 상관없어. 학교폭력 전과가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정시 준비를 시작해서…….”

학교폭력.

그건 재희가 다른 아이들을 괴롭혀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학교에서 양아치 짓을 일삼는 일진 놈들을 흠씬 두들겨 팼을 뿐이었다.

하필 일진 놈의 부모가 부산시에서는 알아 주는 정치인이었고, 진재희는 피해자들의 진술에 간신히 정학만을 받으며 고등학교는 잘리지 않았다.

“너, 노래도 하지?”

담임은 책상에 학생기록부를 내려놓으며 이어 말했다.

“꽤 잘한다고?”

“…….”

“재희야. 요즘 뉴스 보라. 그 유명한 가수들도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해서 수십 년간 쌓아 온 음악 인생 한 번에 날아간다. 알제?”

“선생님, 저는…….”

“알지. 알아. 네가 양아치는 아니라는 거. 하지만 세간이 그렇게 본다고. 주먹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아무것도. 다 너한테 돌아오는 거다.”

“…….”

“정말 아무도 모르는 예대도 요즘에는 국영수 선택 2합 해서…… 12는 나와야 하거든? 체대는 말할 것도 없고. 체대는 성적 더 본다. 가스나야.”

담임은 재희의 9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힐끗 바라보았다.

국 9, 영 9, 수 9.

“……찍어도 이것보단 잘 나오겠다. 찍어도. 재희야. 아님, 3번으로 줄지어. 수학 마지막 주관식 답은 무조건 –1, 0, 1 중에 하나니까. 이것도 셋 중에 찍고. 나아참. 선생이 학생한테 별 걸 다 가르친다, 야.”

“…….”

“나, 진짜 안타까워서 그런다. 안타까워서. 너 잘 들어라잉? 앞으로 수능까지 2개월 남았는데. 솔직히 한국사랑 사탐 정도는 공부하자.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외워. 너 빗살무늬토기가 뭔지는 알제……?”

담임의 기습적인 질문에 재희는 잔뜩 움츠린 채, 자신 없이 대답했다.

“토끼……? 동물.”

“하이고……! 가스나! 니 진짜 대한민국 고3 맞나?!? 담임이 한국사인데! 왐마. 진짜 너 때문에 내 미치것다! 너 일단 책방에 가서, 내가 말하는 참고서…….”

……주저리주저리.

담임의 그다음 말부터 재희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재희는 대학교를 가지 않았다.

못 간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재희는 공부를 못했고, 아니, 공부를 하기 싫었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부를 못한다는 건, 하고 싶은 걸 못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포기하자.’

재희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음악과 진로를 포기했고, 이젠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재희는 가로등이 깜빡거리는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들어섰다.

이곳은 부산시에서도 꽤 외곽이라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깡-!

지나가다 발견한 캔을 차 버리기도.

스으윽-. 스으으윽-.

괜스레 슬리퍼로 지면을 쓸기도 했다.

그러다 옆을 돌아보았다.

가드레일 너머, 부산 앞바다가 보였다.

어두컴컴한 밤바다, 수평선을 따라 낚싯배가 쏘아 대는 빛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치 새까만 도화지에 누군가 실수로 하얀 페인트를 일자로 뚝뚝 흘려놓은 것 같았다.

여기서는 부산의 유명한 광안대교도 해운대 해수욕장도 없지만, 나름의 운치는 있었다.

재희는 항상 생각이 많아질 때면 바다를 보았다.

부산에서 살면 좋았던 건, 이거 하나뿐이다.

“…….”

재희는 고개를 돌려,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아버지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근데 들어가긴 해야 했다.

통금이 있었으니.

아파트를 바라보던 재희는 아까 차 버렸던 깡통을 주웠다.

그리고 쓰레기통이 아닌 가드레일 너머 바다를 향했다.

“……될 대로 살라지.”

훽-!

그녀가 던진 깡통은 저 멀리 바닷가로 날아가다 떨어졌다.

꽤 멀리 날아갔다.

* * *

푸-욱!!! 촤르르르륵-.

피가 사방으로 떨어졌다.

재희는 세포의 목을 벤 채, 또다시 뒤로 휘둘렀다.

그녀가 성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박지수의 세포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퍼-억!

재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세포의 턱을 오른 주먹으로 가격하고선 생각했다.

‘나, 왜……. 갑자기…….’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하필 이 타이밍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누군가가 일부러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았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과거 자신의 모습이 충돌하고 있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연습하던 모습과, 죽이려고 달려드는 세포를 베어 내는 모습.

샌드백을 때리며 땀에 적셔진 모습과, 은빛에 휘감겨 피에 뒤집어쓴 모습.

“하아……. 하아…….”

아버지.

게다가 그 그리운 이름도 떠올렸다.

‘…….’

재희는 세포들을 베어 내며 오래전 그날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들을 떠올리면서도, 그녀의 몸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시온의 구체를 따라가며, 세포를 베어 나가며, 기어이 첫 번째 약점을 베어 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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