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육체 감옥 (2)
다시 눈을 떴을 땐, 또 다른 공간이었다.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졌다.
난 흠뻑 젖어 있었다.
“…….”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돼지 내장처럼 구불구불한 육질들이 마구잡이로 엉켜 박동하고 있었다.
이곳은 박지수의 뇌였다.
그리고 이 공간에는 무수히 많은 공기 방울이 휘날리고 있었다.
공기 방울들은 자의식을 가진 것처럼, 나와 부딪히려고 하면 빗겨 갔다.
그리고 굉장히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한구석에서 쓰러져 있었다.
난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발가벗은 채, 죽어 있었다.
그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위었고.
두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는데, 핏대가 터져서인지 새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무엇보다 머리카락이 불에 탄 것처럼 듬성듬성 나 있었고, 두피에는 멍 자국이 가득했다.
남자는 나와 함께 1라운드를 치렀던 이세범이었다.
“…….”
이세범만 있는 건 아니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죽은 여자도 곁에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동시에 이곳에서 나는 썩은 내가 코를 자극했다.
가만히 서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근처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철퍽. 철퍽.
맨발로 물기를 털어 내며 걷는 소리.
이젠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널,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알아?”
박지수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죽어 버린 이세범을 내려다보았다.
“내 인생, 내 기억, 내 고통을 완전히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야. 이 남자는 그러지 못했지. 내 무한한 기억 속에서 혼자 미쳐서 죽어 버렸단 말이야. 그것도 하루 만에. 좀…… 버틴 거긴 해. 그 옆에 있는 여자는 겨우 2시간 만에 뇌가 터져 죽었으니까. 그럼 이제 내가 왜 널 찾아다녔는지, 알았어?”
“……내가 알아야 해?”
“푸흐……. 아니, 아니. 몰라도 돼. 어차피 넌 나랑 기억을 공유하게 될 테니까. 우린 진심으로 하나가 되는 거야.”
박지수는 두 발자국 물러섰다.
난 여전히 이세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와 난 과거 친구 사이였을지는 몰라도,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감정은 없었다.
박지수는 내 뒤통수를 매만져 대기 시작했다.
난 손을 뻗어 공기 방울 하나를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퐁.
그 순간, 그녀의 기억 일부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3평짜리 어둡고 좁은 방 안. 허리를 굽혀 만화 영화를 보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박지수. 방 밖에서는 그릇이 깨지는 소리, 서로에게 목청껏 소리치는 박지수의 부모들.
그리고 그 어린 박지수가 티비를 보며 느끼는 감정들도, 모두 내 안으로 들어왔다.
“…….”
외롭고, 공허하고, 지독했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만큼 고독한 감정이었다.
또르륵.
그때,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내려와 턱에 맺혔다.
‘……눈물? 왜?’
손바닥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쓸었다.
결코 내 의사가 아니었다.
난 그녀의 기억을 들여다보며 그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억을 받아들인 나의 두뇌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세범이는 한 방울만 맞아도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하던데. 넌 다르네? 역시.”
박지수는 뒤에서 날 껴안더니, 몸 구석구석을 만지기 시작했다.
난 다시 손바닥으로 공기 방울들을 쓸었다.
퐁, 퐁, 퐁, 퐁.
이번에는 수십 가지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동시에 온갖 감정들이 가슴속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한 번 저장된 기억들은 계속해서 날 갉아먹기 시작했다.
마치 치욕스러운 과거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사람은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나, 슬픈 과거를 떠올릴 때면 엄청난 감정이 일어나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느낀다.
이 짓은 그것에 몇 배? 아니, 수십 배에 달하는 고통이었다.
마치 정말 내가 박지수가 된 것처럼.
난 그녀의 인생을 알아 가고 있었다.
기억 하나를 볼 때마다 표정이 변했다.
초당 기억이 수십 개에 달하니, 나의 표정은 고장 난 파노라마 필름처럼 계속해서 바뀌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푸흐으……! 우욱!”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단 몇 방울일 뿐인데도, 정신적으로 버티기에 무리가 있었다.
“하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박지수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조금 알겠어?
목소리가……. 박지수의 목소리가.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
빌어먹을……. 구역질 나는 목소리다.
-난 매일 같이 도와달라고 했어. 매일 같이. 근데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어. 왜, 왜? 난 태어나면 안 되는 인간이었던 거야?
누군가가 내 머리를 꼭 쥐었다 풀었다 하는 것처럼 지끈거렸다.
머리가 너무 뜨거웠다.
뜨거운 핫 팩을 머리 위에 잔뜩 올려 둔 것처럼 머리가 너무 뜨거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시온아. 알아 줘. 제발.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치? 알겠어? 조금만 더 힘내. 조금만 더. 힘내. 응?
크흐흐흐……!
기어이 괴성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억겁처럼 느껴지는 인내의 시간 뒤에 난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 *
“하아……. 하아……!”
두 다리가 풀려, 앞으로 쓰러졌다.
철퍽-!
알 수 없는 끈끈한 액체가 전신에 휘감겼다.
액체는 천천히 내 몸을 적시더니 육체에 걸치고 있었던 모든 옷을 녹여 내기 시작했다.
위액은 아닐 것이다. 피부가 녹아들진 않고 있으니.
이 액체는 도대체…….
“…….”
내가 직접 손을 뻗어, 박지수의 기억을 들여다본 이유는 하나였다.
박지수의 기억 속에서, ‘육체 감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 힌트를 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방금 내 머릿속에 스친 기억들은 그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었다.
온통 박지수의 비참한 과거뿐이었다.
단 몇 방울인데도 엄청난 고통이 나를 공격했다.
이걸 모두 받아들이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제 내 육체는 나체가 되어 반쯤 잠겨 있었다.
‘……제기랄.’
나는 눈동자만 올려 위를 바라보았다.
셀 수 없는 기억 방울들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것을 다 받아들이면, 나도 이세범처럼 미쳐 버릴 것이다.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틴 거야……?”
철퍽거리는 소리 뒤에는 박지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말 버틴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그 뒤로, 박지수는 내 등에 몸을 포개었다.
그녀의 숨결이 가까이서 들렸다.
“대단해……. 저, 정말 대단해……. 너의 두뇌는…… 한계가 없구나?”
그녀는 내 등 이곳저곳에 입술을 맞춰대며 애달프게 말을 이어갔다.
“아……. 드디어……. 만난 거야. 지금껏 날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어. 난 그 지옥 같은 세상에서 혼자서 묵묵히 살아왔단 말이야. 아무도 내 편이 없어. 아무도.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해. 그러니까, 네가 있어야 해. 역시 널…… 선택하길 잘했어. 내 인생을 완벽하게 이해해 줄 단 한 명의 사람. 그게……. 그게 강시온. 너였어. 너만이 내 인생을 이해해 줄 수 있어. 너만이 날 구원해 줄 수 있어! 역시 강시온이야. 버텼어. 버틴 거라고. 시온아. 정말 대단해. 시온아! 저, 정말 대단해. 아, 너무 사랑스러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입술은 다시 목 주위로 다가왔다.
박지수는 내 귀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더 할 수 있어?”
그 순간, 기억 방울들이 다가왔다.
얼마나 많은지 멀리 있는 것들은 수증기처럼 뿌옇게 보이기도 했다.
“더 해 줘. 날 위해.”
처음과는 비교조차 안 될 수많은 기억 방울들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방울들은 천천히 서로에게 모여들더니, 투명한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더. 더. 넌 내 거니까. 넌 내 사람이니까……!”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무수한 기억 더미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 * *
어두운 방 안.
어린 박지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티비를 보고 있었다.
오직 티비에서 뿜어내는 빛만 박지수의 검은 눈동자에 반사했다.
티비 속 만화 영화, 폴리스 맨의 목소리가 들렸다.
-폴리스! 매앤! 난 어디서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향해 출동한다고! 자, 조수! 오늘도 출동이다! 나쁜 범죄자를 잡는 거야!
폴리스 맨이 멋지게 범죄자를 쓰러트렸다.
수갑을 꺼내 든 폴리스 맨의 필살기.
화려한 색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내 범죄자는 꼼짝없이 잡혔다.
-카하아악! 당했다!
그 순간, 거실에선 새아빠와 엄마가 서로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접시가 깨지는 소리에 이어 엄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쾅쾅거리며 성질부리는 새아빠의 큰소리도 들려왔다.
박지수에게 술 사오라고 소리치는 새아빠와 흐느끼는 엄마.
그 소리들을 들으며, 박지수는 폴리스 맨을 응원했다.
-폴리스 맨! 다음 편 예고! 자, 자! 다음 주면 크리스마스 특집이다!
-아래 주소로 자신의 사연을 적은 편지를 보내면, 크리스마스 날 폴리스 맨이 찾아간다고! 우하하! 어린이 친구들. 많이 지원해줘야 해? 아 참, 우는 친구들에게는 선물을 줄 수 없으니까, 참고하라고! 움핫핫핫! 그럼 다음 이 시간에 또 보자! 폴리스- 맨!
어린 박지수는 속으로 빌었다.
꾹꾹 아랫입술을 깨물고, 안쪽 허벅지를 꼬집으며 눈물을 참고 참았다.
우는 아이에겐 폴리스 맨이 선물을 안 줄 테니까.
박지수는 정성스럽게 편지를 적었다.
-폴리스 맨. 저 이번에는 정말 안 울었어요. 꾹꾹 참았단 말이에요. 그니까 꼭 소원 이뤄 줄 거죠? 제 소원은 폴리스 맨이 제 새아빠를 꼭 죽여 줬으면 좋겠어요. 제 주소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하지만 폴리스 맨은 거짓말쟁이였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폴리스 맨은 박지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다음 해 초봄이 되었을 때, 엄마는 도망갔다.
박지수를 두고 혼자만 도망갔던 것이다.
그날 이후, 아빠는 매일 같이 술만 먹었다.
술 먹고, 술 먹고, 그러던 어느 날.
새아빠는 중학생이 된 박지수를 불렀다.
새벽이었고, 거실은 어두컴컴했다.
박지수는 맨발로 조금씩 조금씩 새아빠에게 다가갔다.
새아빠는 말했다.
-일로 와.
중학생이었던 박지수는 천천히 새아빠에게 다가갔다.
박지수에게 그날의 밤은 생지옥이었다.
그날의 일을 겪은 후, 박지수는 새아빠를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경찰은 심신 미약,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들어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다.
새아빠가 박지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내가 술 먹어서 정신이 없었어. 한 번만 용서해 줘. 한 번만 용서해 줘. 지수야. 지수야! 아빠야, 아빠. 아빠라고. 네 가족이잖아.
다시 새아빠가 소리쳤다.
-야이 X발 년아!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너도 술 처먹어 봐! 정신이 멀쩡한가! 어! 어! 너 나 없으면 굶어 죽어! 누구 돈으로 살고 있는데! 누구 돈으로!!! 니 애미 도망칠 때, 콱 너도 버렸어야 하는데. 기껏 안 버리고 키워 줬더니만! 어? 느그 애미나 너나! 똑같은 년들이야. 쳐 죽일 년들. 감히 집안의 가장을……!
다시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하다. 아니,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지수야. 다시 한 번만 잘 생각해 줘. 아빤. 아빠 감옥 가기 싫어. 거기. 거기는 진짜 범죄자들만 들어가는 거잖아? 나, 나는 시, 실수였고! 실수는 범죄가 아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난 지수 네 아빠다, 아빠. 가족을 말이야. 어?
폴리스 맨, 아니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가족’끼리, 좋게 좋게 끝내자고. 일 크게 만들어 봤자, 본인만 귀찮아진다고. 본인 가정 형편 살펴보니까. 돌봐 줄 사람도 없고. 나이도 조금 있어서. 시설에서도 잘 안 받아 줄 것 같은데. 본인이 괜찮겠어요?
경찰관들이 말하는 그놈의 본인, 본인, 본인, 본인, 본인, 본인.
박지수는 그 단어가 역겹게 느껴졌다.
좋게, 좋게.
좋게 흘러가는 거지 뭐.
마지막으로 판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만, 당시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감안하여 징역 5년 형을 선고한다.
땅! 땅! 땅!
새아빠는 5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가게 되었다.
-아아, 안 되는데. 5년 형이면. 금방 나오잖아. 금방 나와서, 또 날…….
타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각자 살아온 인생도, 성별도, 성격도, 무엇보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박지수는 세상 그 누구도 이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박지수는 정말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왔다.
육체적이 아닌, 심리적으로.
지독한 암흑 속에 혼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은 분명 살아 있음에도, 살아갈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도, 내려도, 올려도 모든 것이 지독한 암흑뿐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건넨 손길조차 어두웠다.
타인이 어떤 말을 해도 가식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타인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으면, 마음속으로 살해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타인이 자신을 업신여기면, 그제야 지금껏 자신에게 베푼 친절조차도 가식이었음을 확신한다.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
그리고 타인들도 자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확신.
겉으로는 행복한 척, 걱정 따윈 없는 척.
별 볼 일 없는 위선자들.
박지수의 비이성적인 성욕은 위선자들을 심판하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생겨났다.
정작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재밌잖아!
자신보다 잘사는 연놈들.
발가벗겨지고 무자비하게 당해 무참히 망가지는 그 모습!
끝내 구원받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죽는 그 모습!
도시 각지에 흩어져 감금되어 있는 박지수의 노예들은 자신과 똑같이, 평생 동안 구원받지 못하고 그곳에서 절망스럽게 굶어 죽을 것이다.
-너희도……. 너희도……! 이제 좀 알 것 같아? 내 기분을 1퍼센트라도 이해할 것 같아? 왜 너희만 행복해야 해? 너희도 불행해. 불행하라고!
세상이 멸망했을 때, 박지수는 신께 처음으로 감사했다.
-내가 불행하면 남들도 불행해야 돼.
박지수는 이제 행복하다.
적어도 리그가 시작되고 지난 몇 년간,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강시온을 만났다.
우주의 공간처럼, 둘은 떠올라 있었다.
주위에는 수많은 기억 결정들이 가득했다.
“너도 힘들었지?”
박지수는 강시온에게 물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박지수의 모든 기억이 강시온에게 흘러갔다가 빠져나왔다.
이제 강시온은 박지수의 모든 감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다.
“고마워. 날 이해해 줘서.”
박지수는 누군가는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
세상에는 개미 떼만큼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 단 한 사람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까.
강시온의 이 두뇌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받고도 버텨 낼 두뇌였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버틸 남자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강시온은 박지수의 모든 감정을 전달받았다.
인간이라면 미쳐야 정상일 정도의 감정들.
지난 20년간 느꼈던 박지수의 모든 악감정이 시온에게 흘러 들어갔다.
“그치? 그치??? 내가 얼마나 비참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날 이해하고! 날 위해줄 수 있는 거지!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을 알아 준 거 맞지! 날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한 거 맞지! 아-! 시온아! 시온……!!!”
모든 감정 이식이 끝난 뒤, 강시온은 두 눈을 떴다.
그러고는 첫마디를 내뱉었다.
박지수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강시온의 그 한 마디.
* * *
“……아니.”
* * *
건조한 목소리 뒤엔, 굉음이 있었다.
와장창-! 촤르르르르르르륵-!!!!
시온을 가두고 있던 수많은 기억의 결정들이 무너져 내렸다.
기억의 감옥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될 터일 그의 육체가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사실 강시온이 풀려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한 가지는 박지수 본인이 스킬을 캔슬하는 것.
다른 한 가지는 강시온이 스스로 모든 기억을 받아들이고 버텨 내는 것이다.
물론 박지수는 스킬을 캔슬한 적이 없었다.
이제 해방된 강시온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좀 전의 초췌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그야말로 절대자의 가까운 위용을 뿜어내며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그 주위로는 부서진 기억의 결정들이 눈처럼 흩날렸다.
박지수는 자신에게 떨어지는 그 수많은 기억의 결정들 속에서 몸을 떨었다.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어……! 안 돼……. 안 돼……!’
13,998,103개의 기억 속에 있던 아티팩트에 관한 단 7개의 힌트.
박지수의 기억을 탐색하던 강시온은 결국 그 약점을 찾아냈다.
“찾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