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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18화 (118/221)

제118화. 육체 감옥 (1)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사람의 신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룡의 뼈처럼 거대한 갈비뼈가 교도소 외벽을 따라 높게 치솟아 있었다.

그 갈비뼈의 사이로 근육과 살이 붙어 있었고, 지면을 이루는 축축하고 끈적한 바닥은 아마 내장의 내벽인 듯했다.

쭈글쭈글한 주름과 미끌거리는 감촉이 이를 증명했다.

‘……괴물의 신체 내부. 아니, 사람인가.’

정체가 무엇이 되었든, 이 정도 수준의 아티팩트를 구사하는 존재는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박지수.

그녀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개를 돌려 교도소 본관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 광경을 마주한 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성인 한 명을 투명한 네모 박스에 마구잡이로 구겨 넣은 모습이었다.

눈, 코, 입, 귀, 가슴, 손가락, 발가락 심지어는 배꼽까지.

그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놈은 살아 있었다.

배꼽 주위의 살들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아…….”

“우욱! 우웨에엑!”

“우웩!”

병사들은 구역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아마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이랴.

게다가 저 눈동자.

1라운드에서 봤었던 고래의 눈동자보다 더 거대했다.

‘고유한 신체적 특징은 무시하고, 시전자의 마음대로 공간이 재설정되어 있어.’

이것이 의미하는 건, 박지수는 원한다면 이 공간 자체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언제든지 날 죽일 수 있다는 의미.

천장을 바라보았다.

태양 빛이 완전히 가려졌음에도, 내부는 마냥 어둡지는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육점의 내부처럼 새빨갰다.

나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정황상 나는 지금 박지수의 신체 내부에 갇힌 것일 테고. 내 육체가 작아진 건가? ……아니, 그보다는 박지수의 아티팩트 능력일 확률이 커. 아마 주변 사물과 공간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바꿀 수 있게 해 주는 거겠지. 거기까지가 첫 번째.’

다시 두 번째 사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곳이 신체 내부 중 한 부분이라면 과연 이곳은 어디이고, 어떻게 하면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

기본적으로 아티팩트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신력이 소모된다.

그러니 무한히 이 공간 안에 가둬 놓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절망적이라는 것엔 변함이 없었다.

“…….”

그때, 지면에 있던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던 시체들이 점점 살에 파고들고 있었다.

동시에 내 육체도 조금씩 지면에 빠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힘을 주어 발을 들어 올리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코를 찌르는 악취.

산성을 띠는 액체.

동그란 형태.

주름지어 있는 내벽.

‘위(胃)인가.’

다시 발을 떼어 앞으로 걸어갔다.

단순히 걷기만 해도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그때 한 병사가 내게 다가왔다.

좀 전에 이야기를 나눴었던 그 젊은 병사였다.

“군주님……! 우, 우선 대피하시죠.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대피?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인가, 이곳은.

글쎄,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몇몇 병사들이 공황에 빠져 있었다.

“이, 일단 저 점막 같은 것을 무기로 계속 찌르겠습니다.”

어느새 내 주위로 병사들이 밀집해 있었다.

병사의 말대로, 창을 든 몇몇 병사들이 위장 벽을 찔러 대고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제기랄!”

“힘 좀 더 줘 봐!”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우욱!”

그들은 몇 명씩 돌아가며 위장 벽을 창으로 찔렀지만, 벽엔 흠집도 나지 않았다.

난 그들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나오라고 해.”

“예, 옛!”

“거기! 나와!”

그들이 비키자 나는 아티팩트를 불러왔다.

가능한 최대의 에너지를 모아 한 곳에만 집중시켰다.

여러 구체들이 내가 지정한 중심점으로 모여들었다.

이 공격은 진재희조차 겨우 막아 낼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지만, 명중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구체를 집중시킨 그 중심점의 크기가 겨우 병뚜껑만 했으니.

하지만 지금은 그저 저 내피를 벗겨 내기만 하면 되었으니, 명중률을 고려하진 않았다.

파아아앗-! 투두두두두둑!

구체들이 한 곳에 모아지며 내피를 뚫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내피의 점막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공격이 먹혀들지 않자,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군주님의 아티팩트도.”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제기랄……. 바깥이랑 연락도 안 되고.”

확실히 지금 우리의 상황은 이곳에 갇혔다고 볼 수 있었다.

정말 탈출 방법은 제로인가.

‘아냐. 분명 나갈 방법이 있을 거야.’

시전자의 본체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병사끼리 몰려다닌다고 부대의 전투력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는 소단위로 부대를 나눠 정찰하는 것이 옳아 보였다.

난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5명 단위로 조를 재편성해서, 지금부터 교도소 내부를 탐사한다.”

“예, 옛!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나의 명령대로 조를 이뤄 이곳저곳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 물체의 움직임을 살폈다.

쭈글거리는 주름과 역동적인 눈동자를 제외하곤 이상한 점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이 능력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가.

분명 이곳은 인간의 신체 내부였지만, 일반적인 신체 내부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신체에 속하는 구성 물질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이젠 뭐가 뭔지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이 신체 내부라면 반드시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는 있을 것이다.

이 교도소 안, 어딘가에 말이다.

그때, 박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시온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도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악.”

“하아아아……! 하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5명 단위로 돌아다니던 병사들이 순식간에 내장 안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살려 달라며 아우성이었지만, 내게 저들을 도와줄 여유는 없었다.

어느샌가 나타난 가느다란 팔이 내게 다가와 나의 어깨부터 쇄골까지 감쌌다.

그녀는 내 등 뒤에 나타나서 날 안아 들었다.

“안녕.”

난 조심스럽게 고개만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군주 박지수.

그녀는 날 뒤에서 안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슬픈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 또한 잠겨 있었다.

“참 이상하지.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린 평범한 아이들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다니.”

꾸우우욱…….

박지수는 더 세게 날 끌어안았다.

그녀의 오른손은 나의 왼쪽 겨드랑이를 파고들었고, 왼손은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구체를 불러왔지만, 박지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용없어. 여기선 탈출할 수 없어. 널 구해 주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지. 아니, 애초에 넌 위험에 빠지지도 않았어. 그러니 구하러 올 필요도 없는 거지. 난 너랑 함께하고 싶을 뿐이야.”

박지수의 왼손이 천천히 내려가더니, 내 심장 부근에서 멈췄다.

“이 공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이니까. 그 계집도 아니고. 네 부하들도 아니고, 내 부하도 아니고, 저 괴물들도 아니고, 오로지 나를 위한. 이젠 널 위한 공간이기도 하고. 넌 앞으로 이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그게 내가 정한 너의 미래야. 발악하지 마. 그냥 받아들여.”

꿈틀꿈틀.

그때, 오우거와 맞닿아 있던 지면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오우거의 거대한 육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배고파? 밥 줄까?”

박지수는 내 어깨로부터 고개를 들어 귓속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님, 목욕할래?”

박지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내 얼굴을 보는 듯했다.

“일단 한숨 자고 싶어?”

다시 내 어깨에 턱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언제든지 그녀를 공격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내 구체가 사방에 떠올라 있는 걸 인지하고 있을 터인데, 피하거나 몸을 사리지 않았기 때문.

즉, 공격하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바깥은 위험해. 차라리 이곳에서 지내는 게 훨씬 좋아. 걱정 마. 내 육체도 망가질 일이 없어. 난 이미 이 교도소 지하 깊은 곳에서 우리의 삶을 위한 준비를 해 뒀거든. 라운드? 관리자? 리그? 다 상관없어. 그냥 우리 이곳에서 쉬자. 세계가 완전히 종말하기 전까지.”

“…….”

그 순간, 발끝부터 천천히 위액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자작자작한 수준이었던 위액이 어느새 무릎까지 차올랐다.

“이제 넌 내 거야.”

무릎을 넘어 허벅지, 배꼽까지 차올랐다.

“생각하지 마. 시온아. 넌 어차피 여기서 못 나가.”

이젠 가슴을 넘어 목까지 차올랐다.

결국엔 턱 끝까지 차올랐고, 몸 전체가 완전히 수장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

보글보글.

입술 사이로 빠져나온 수포가 일정하게 올라갔다.

내 몸은 물에 잠겨 붕 떠올랐다.

난 물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그곳엔 나와 마찬가지로 박지수가 잠수해 있었다.

박지수와 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녀는 수중에 잠겨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앳된 얼굴의 그녀는 날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서 와. 내 육체 감옥에.”

* * *

사람의 체내에 증식하는 세포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따라서 육체 감옥을 구사하는 박지수조차 자신이 증식할 수 있는 정확한 세포의 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압도적인 세포의 숫자.

그리고 그녀의 몸속에 있는 진재희는, 백혈구에 의해 퇴치해야만 하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였다.

“쿨럭……!”

털썩.

결국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왼쪽 이마가 찢어져 흘러내린 피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박지수들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괴물은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이 공간 내에서, 박지수의 능력은 최강이었다.

무한으로 증식하는 세포.

박지수의 모습을 한 놈들은 백혈구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끝이 없군…….’

츠즈즈즈. 촤르르륵.

진재희의 오른손에 든 검이 얇게 쪼개져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두 무릎을 꿇었다.

시야가 새빨갰다.

정신은 아찔했고, 두 다리는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흔들렸다.

‘증식체를 죽여 봤자 의미 없어……. 본체를 죽여야 해. 기본 능력으로는 여기가 한계인가.’

재희는 힘겹게 눈동자를 올렸다.

자신을 주위로 수없이 많은 백혈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남은 성검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그때, 백혈구의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30분 만에 352마리……. 분당 10마리라……. 확실히 괴물 년이긴 하네.”

백혈구들은 사방에서 다가왔다.

어떤 백혈구가 먼저 공격해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진재희는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데 어쩔 건데! 캬하-!”

백혈구들은 계속 말했다.

“내 몸에 들어온 총 451마리의 벌레 새끼들. 모조리 죽였어. 이제 남은 건 너 한 마리뿐이야. 너만 없으면 돼.”

“너만 없으면……! 너만 없으면……! 흐어어어엉…….”

“아빠, 미안…….”

“방해하지 마. 빌어먹을 년아. 그만 죽어.”

“깔깔깔! 아-! 피로 얼룩진 꼬락서니 보라지!”

“죽어. 죽어. 나쁜 년아.”

“아빠, 미안해…….”

“죽어! 죽어!”

백혈구들의 표정과 감정은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고, 누구는 박장대소를, 누구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다중 인격이라기보다는, 원래 박지수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이 시간에 따라 하나씩 나오는 듯했다.

‘……신기하네. 세포마다 감정이 다 다르다는 건가.’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진재희는 박지수의 능력을 탐색하고 있었다.

진재희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성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퍽! 퍼억! 퍽!

사방에서 날아드는 주먹과 발길질, 어떤 백혈구는 박치기를 하기도 했다.

“캬하아아아악! 깔깔깔깔!”

“아빠. 미안해요.”

“죽어! 죽어!”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공격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형편없는 공격에도 진재희는 풀썩풀썩 쓰러졌다.

철푸덕-! 철퍽!

그렇게 쓰러지기를 수십 번.

이제 진재희는 일어나지 못했다.

바닥에 대자로 뻗어,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녀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

“……하아 ……후우.”

진재희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원형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두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정체 모를 공간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재희의 시야 속으로 백혈구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한 명은 무릎을 접고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다른 한 명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힘들어?”

“저기요오-. 힘들어요?”

“머리카락…… 미역…….”

툭툭툭.

한 백혈구가 진재희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건드려 댔다.

그럴 때마다 진재희의 몸이 일정하게 흔들렸다.

“약하다, 약해.”

“아빠, 미안해…….”

“너 정말 S급 플레이어 맞아?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온이가 아깝다.”

“백만 번 아까워.”

“그럼, 그럼!”

“아빠, 미안해.”

백혈구들은 서로 깔깔대면서 웃어댔다.

이곳은 한참이나 백혈구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백혈구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질 때 즈음.

한 웃음소리가 그 소리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그러자 백혈구들은 순식간에 표정을 거두었다.

한 백혈구가 인상을 찌푸린 채, 그녀에게 물었다.

“……너 왜 웃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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