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최후의 발악 (2)
진재희는 성큼성큼 망설임 없이 걸어가 박지수의 목을 움켜쥐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술에 취해 볼이 달아오른 박지수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왁!”
학창 시절에서나 하던 장난이었다.
박지수는 진재희를 놀라게 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았고 대신 발을 들어 박지수의 명치를 걷어찼다.
우당탕-! 탱!
박지수는 뒤로 자빠져 철창에 머리를 박았다.
“아으……! 아파라.”
박지수는 뒤통수를 매만지며 실실 웃었고, 진재희는 그런 박지수의 쇄골을 발로 꾹 누르며 말했다.
“찌그러져서 가만히 기다려.”
“푸하……. 아, 발만 좀 치워 주면. 얌전히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순간, 진재희는 누르고 있던 발을 거두었다.
박지수는 피식피식 웃음을 지으며, 아려 오는 쇄골을 매만졌다.
“아-. 이제야 살 것 같……!”
하지만 진재희가 발을 거뒀던 건, 박지수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퍼억-!
박지수의 머리통을 차기 위함이었다.
철푸덕-!
진재희의 힘이 얼마나 셌던지, 박지수는 벽면에 강하게 부딪혀 앞으로 쓰러질 정도였다.
그리고 진재희는 검을 들어 박지수의 두 발목을 잘라 냈다.
서-걱!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이상하게도 박지수는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끌끌거리며 웃을 뿐.
“말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어. 입은 뻥긋도 하지 마라. 얌전히 기다려.”
진재희가 위협하자, 박지수는 피로 물든 입술을 떼며 조롱했다.
“뻥-긋.”
촤아아아아악-!
그러나 진재희는 무자비했다.
박지수가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순간, 두 눈동자를 베었던 것이다.
박지수는 이제 시야를 뺏겼다.
“……다음은 팔이다. 입 닥치고 가만히.”
“아-. 정말 이 언니는 뭔 말을…….”
서걱-!
왼팔이 잘렸다.
“아니, 씨…… 푸흐흐흐흐! 아니, 뭔 말 좀 하자고오! 아, 이 언니. 개 웃기네.”
서걱-!
다시 오른팔이 잘렸다.
진재희는 박지수가 말할 때마다 가차 없이 베었다.
그제야 박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두 팔과 다리가 잘렸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쓰러져 있는 ‘박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재밌네. 언니 최고다. 내 부하 할래?”
“?!”
진재희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성검을 날려 보냈다.
휘릭-. 푸욱!
그곳엔 박지수의 얼굴이 있었다.
벽면으로부터 반쯤 나온 박지수의 이마에 성검이 꽂혔다.
그 와중에도 박지수는 말을 이어 갔다.
사실 둘 모두 자신의 행동을 꿋꿋하게 이어 나갔다.
박지수는 계속 말했고, 진재희는 계속 베었다.
“그나저나 놀랐어. 설마 S급 플레이어가 안양에 있다니.”
서-걱!
“어쩌면 내가 진심으로 했어도, 언니 때문에 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서-걱!
“근데 뭐. 난 이런 결과 나쁘지 않아. 어차피 군주?”
서-걱!
“귀찮았거든.”
서-걱! 푸욱!
박지수는 처음으로 진재희의 검을 막았다.
손바닥으로 말이다.
그녀의 손바닥을 통과한 성검의 날이 박지수 눈동자 앞에서 멈추었다.
박지수는 고개를 우측으로 살짝 돌려, 자신을 노려보는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이런 멋진 여자도 만나고 말이야.”
“…….”
“언니, 근데 X나 이쁘다. 연예인이었어?”
휘릭-. 서걱!
진재희는 다른 성검을 쥐어, 박지수의 몸을 사선으로 베었다.
이등분된 그녀의 육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반대편 테이블 위.
새롭게 나타난 박지수가 다리를 꼬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리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코밑을 바친 채로 말했다.
“그쪽 동네는 왜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많을까. 나도 만안구에서 시작했어야 했나?”
“후우…….”
진재희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박지수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이곳엔 박지수의 시체만 수십 구가 넘었다.
진재희는 그제야 공격하기를 멈추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박지수는 코밑을 받치고 있는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에 올렸다.
“난 말이야.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가져야만 하는 년이야.”
“난 죽이고 싶은 년이 있으면, 죽여야만 하는 년이야.”
물론 공격만 멈췄을 뿐이지, 진재희는 박지수를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박지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난 시온이만 가져갈게. 언니는 살려 준다니까?”
“그 소린, 언제든지 날 죽일 수 있다는 소리야?”
“‘내가’죽일 순 없어도, 언니 ‘스스로’죽게 만들 순 있어.”
“해 봐. 사이코 년아.”
“하아-. X년.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그때, 진재희는 검을 휘둘러 테이블을 갈라놓았다.
휘잉-. 서걱! 쩌저저저적!
긴 테이블이 둘로 나뉘어, 의자에 앉아 있던 박지수를 갈랐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박지수는 진재희를 뒤에서 안았다.
와락-.
‘또.’
소리도 기척도 없었다.
그냥 원래 뒤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났다.
박지수는 그녀의 등 뒤에서 뱀처럼 유혹했다.
“근데 그게 나쁘지 않아. 나 혹시 막 대해 주는 걸 좋아할지도 몰라. 언니가 눈 뜨게 해 줬으니까, 책임져야 할지도.”
‘안 움직여져…….’
진재희는 박지수의 포박을 풀려고 했지만,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얼어붙은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전신에 무언가 달라붙은 느낌.
이건 아마도…….
“……?!”
그때, 진재희를 중심으로 수많은 박지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
눈에 보이는 박지수 외에도 이 방 안 모든 공간에서 박지수가 나타났다.
그녀들은 진재희의 목, 가슴, 허리, 손, 배,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얼굴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위를 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여러 공간에서 나타난 박지수의 손들은 재희의 몸 구석구석을 붙들곤 놓아 주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뒤에 있던 박지수는 진재희의 귓불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잘근.
새빨간 핏줄기가 귓불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
박지수는 그 흐르는 핏줄기를 혀로 핥았다.
진재희의 피가 박지수의 신체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순간, 박지수는 야릇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 모든 박지수들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로 끝. 언니는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미 나와 한 몸이 되어 있었던 거야.”
“이곳은 나의 감옥, 나만의 감옥. 들어올 땐 쉽지만, 절대 나갈 수 없는 감옥.”
“내 능력이 궁금해?”
“궁금해? 궁금해? 궁금해?”
“대답해 봐. 궁금해?”
“아-. 행복해.”
“세상이 멸망해서 정말 다행이야.”
“언니도 나처럼 행복해?”
“아님, 불행해?”
“불행하다면 걱정 마. 내 육체 안에서 언니는 영원히 행복할 거야.”
“나와 함께.”
“평-생.”
그때였다.
부글부글부글-.
딱딱한 시멘트로 이루어진 교도소 벽면에 용암이 끓는 것처럼 기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벽면뿐만이 아니었다.
천장, 바닥, 철제문, 철창까지.
이 안에 있는 모든 공간이 쭈글쭈글하게 변해 가더니 이내 ‘육질(肉質)의 무언가’가 되었다.
진재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박지수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처음 보는 아티팩트.
전생에서도 이런 기상천외한 아티팩트는 없었다.
이런 육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설마…….’
이제 박지수의 목소리는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간악하고 영악한 목소리.
“어서 와. 내 몸 안에.”
진재희를 둘러싼 박지수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피와 살점이 가득한 교도소 연병장.
저항을 포기하고 사로잡힌 전사들은 밧줄에 묶여 생포되었고, 계속하여 저항하는 전사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교도소를 정리하는 데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만경의 병사들은 환호하고 있었고, 난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연병장 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때, 동안의 전사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더니 무릎 꿇었다.
방금 전까지 죽여 버릴 거라며 소리치던 그 전사는 이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뭐든 할 테니까. 살려만 주시면……!”
그러자 주변 병사들이 서둘러 내게 달려왔다.
“이 개X끼가. 감히 군주님 앞길을.”
“야! 빨리 치워!”
그리고 병사들은 단숨에 달려들어 전사의 관자놀이를 발로 차 버렸다.
철퍽-!
전사는 시체로 가득한 바닥에 쓰러졌다.
병사들은 금세 다가와 전사를 포박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군주님. 이놈이 포박 도중에 도망가서…….”
병사는 피를 머금은 전사를 바라보다 다시 내게 물었다.
“……죽일까요?”
내게 묻는 병사를 바라보았다.
젊은 남자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한두 살 정도 더 먹어 보였다.
얼굴에는 검은 마스크를, 상의로는 바람막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바람막이는 병사들에겐 훌륭한 군복이었다.
바람막이의 재질이 어느 정도 방수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래하기도 간단하고, 젖어도 빨리 말랐다.
또한 피가 묻더라도 옷에 스며들지 않고 흐르듯이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고, 하의는 작업용 바지와 군용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한 달이 넘어가는 전쟁 동안,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제 끝이 났으니, 정리를 해야 할 때다.
난 다시 내게 질문한 병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광기 서린 병사의 눈동자는 금세 누그러들었다.
당장이라도 이빨을 드러내며 살육을 즐길 것 같던 병사의 태도는 사라지고, 곧 몸을 파르르 떨며 새끼 고양이처럼 내게 물었다.
“……군주님. 제가 혹시 실수라도.”
“…….”
전사 한 명이 죽든 안 죽든, 나에게 큰 차이는 없었다.
어차피 전쟁은 끝이었고, 병사들이 이 일대를 포위하여 박지수의 퇴로도 사전에 막았다.
호계 방면은 최명준이, 평촌 방면은 최현지가 갔기 때문에, 아마 오래 가지 않아 승전보가 올 것이다.
하지만 뭐냐.
뭐가 이렇게 불안한 거냐.
내가 느꼈던 ‘박지수’는 이렇게 작은 그릇의 여자가 아니었다.
일번가부터 범계역, 그리고 이곳 안양 교도소까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 잘못된 무언가는 생각보다 일찍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뭐야?”
내 앞에 있던 병사가, 나의 등 뒤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병사는 내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요. 군주님.”
그는 날 지나쳐, 그 무언가에게 다가갔다.
난 그를 따라 뒤돌아보았다.
그러곤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철퍽-. 철퍽-. 철퍽-.
한 여자가 점액을 온몸에 두르곤, 네발로 기고 있었다.
짐승의 모습이었다.
그 여자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병사는 쥐고 있는 망치를 그 여자에게 휘둘렀다.
퍼-억!
여자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사람……?’
아니, 그건 아니었다.
함몰되었던 두개골이 서서히 복구되고 있었으니.
그리고 곧 변화가 시작되었다.
츄르르륵-. 철퍽. 철퍽-. 츄르르르륵-.
온 운동장 바닥에 인간의 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어엇…….”
“뭐, 뭐야?!”
“이, 이, 이건…….”
지면에서 뻗어 나오는 것과는 달랐다.
마치 물에서 나오는 듯한…….
‘?!’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난, 교도소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춤거리며 몸을 떨었다.
푸슛-! 푸푸푸푸푸푸푸푸풋!
거대한 하얀 기둥이 교도소 외각을 중심으로 하늘 높게 솟구쳤다.
“저, 저, 저게 뭐야!”
“사람……. 뼈 같은데?”
“갈비뼈……?”
병사들의 말대로 저건 사람의 갈비뼈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거대한 갈비뼈.
난 즉시,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오우거를 이동시켜. 갈비뼈를 무너뜨리고, 전 부대 후퇴한다.”
“예, 예-!”
“예!!!”
병사들은 서둘러 바깥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오우거를 조종하는 병사는 종을 집어 들고는 열심히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끈적하고 푹신한 느낌.
그리고 거대한 갈비뼈 사이 공간에 생겨나기 시작한 육질의 무언가.
그 육질의 무언가는 갈비뼈를 가득 덮더니, 이내 교도소를 가득 뒤덮었다.
이제 이곳은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휘릭-. 쿵! 쿵!
햇빛이 차단된 오우거는 하나둘,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에 남은 건 나와 병사들뿐이었다.
“…….”
그리고 난 보았다.
네모난 모양의 교도소 본관 외벽.
그곳에 있는 거대한 사람의 눈동자를.
또한 외벽 모서리에 나 있는 거대한 콧등도 보였다.
그리고 사각 형태의 건물 외벽은 이제 인간의 육체가 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직사각형 상자에 사람을 꾹꾹 눌러 담은 것 같았다.
신체와 뼈, 근육이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지만, 놈의 눈동자만큼은 싱긋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푸흐흐흐흐. 흐흐흐흐흐흐흐-.”
모든 공간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