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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16화 (116/221)

제116화. 최후의 발악 (1)

박지수의 일번가 공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동안의 지휘관은 방어 전략을 세워 범계역에 병력들을 대거 배치시켰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동안의 군주, 박지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군주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거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 다 틀렸어……!”

“어떡합니까……? 군주님의 칙령이 없다면 흩어진 병력을 모으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

동안의 최고 사령관은 부하들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군주의 부재.

그 타격은 꽤 컸다.

지금껏 모든 일에는 박지수가 개입했었다.

박지수가 없는 동안의 군대는 한마디로 말해서.

저들끼리 짜고 치는 소꿉놀이에 불과했다.

동안은 이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난 몇 번의 전쟁을 통해 휘청거리던 전사들의 민심을 겨우 잡던 건, 박지수였는데.

그런 박지수가 이제 없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한 가지다.

동안의 최고 사령관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한껏 상기된 표정을 한 채, 중얼거렸다.

“도망…… 가.”

동안은 끝장이니까.

* * *

지위부가 무너진 동안의 도심은 그야말로 무법 지대였다.

전사들은 이제 도적이 되어 닥치는 대로 물자를 훔치거나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 와중, 한 여자가 아스팔트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녀가 걸어온 길에는 피 묻은 발자국이 듬성듬성 찍혀 있었다.

다 뜯겨 나간 코트를 입고 있었던 여자는 동안의 군주 박지수였다.

그녀의 주위가 일렁였다.

단단한 아스팔트도 물이 끓는 것처럼 부글거렸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모든 전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애초에……. 방식부터가 잘못된 거야.”

박지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원래부터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꿈을.

그리고 드디어 만난 자신의 남자에 대해.

“그냥 그 남자만…… 있으면…… 돼……! 그 남자랑…… 단둘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래. 마치 무인도처럼……! 우리 둘만의 세상을 만드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며언……?”

박지수의 아티팩트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건물도 집어삼켰다.

그녀가 걸어온 길은 원래부터 문명이 없었던 것처럼 메마른 대지로 변했다.

“……난 행복할 거야. 드디어.”

박지수는 걸었다.

도시 속의 무인도를 향해.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이룩할 공간을 향해.

* * *

오우거의 진격 속도는 동안의 버스 전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사실상 진격이라기보단 헤집기에 가까웠다.

범계역에 돌입한 강시온의 토벌대는 아주 손쉽게 동안의 방어 진지를 허물었다.

그뿐만 아니라 호계-평촌 방면도 진격을 서둘러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로써 동안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모든 영토를 만경에게 빼앗겼다.

만경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차례차례 동안의 성(城)을 무너뜨렸다.

모두 강시온의 전략과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오우거 덕이었다.

전쟁에서 패한 전사들 중 몇몇은 흩어졌지만, 대부분은 만경 병사들에게 사로잡혔다.

만경으로 끌고 오는 전사들의 포로 행렬이 8차선 도로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항전하기로 결심한 박지수와 그 호위대는 안양시 끝자락, 그들의 최후 방어 지대로 후퇴했다.

안양 교도소.

3미터 높이의 철책으로 둘러싼 이곳은 만경 이상의 천연 요새였다.

박지수가 호계를 정벌할 때도 마지막까지 애를 먹었던 지역이고, 점령한 이후에는 동안 최후의 방어 기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곳 안양 교도소에 박지수가 있다는 첩보를 들은 강시온은, 진격을 서둘렀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도시 속에서 거대한 오우거들이 주인의 명에 따라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쿵, 쿵, 쿵……!

오우거들의 발걸음은 먼 곳에서도 느껴질 만큼 큰 진동을 일으켰다.

* * *

교도소 내부 운동장.

전사들의 지휘관은 남은 병력들에게 소리쳤다.

“빌어먹을 경찰 족속들의 개가 될 바에는,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거다! 기억해라! 너희들이 이곳에 있는 건 모두! 군주님 덕분이라는 것을! 복수하는 거다! 죽이는 거다!”

“우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살아남은 전사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저들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단합심이었다.

하나, 소용없다.

인간에겐 충분히 높아 보이는 3미터에 달하는 교도소 철책도, 오우거에게는 그저 낮은 담벼락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철책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콰아아앙-! 후두두두둑.

오우거 한 마리가 너무나 손쉽게 철책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리고 냅다 전사 한 명을 낚아채 쥐어뜯기 시작했다.

오우거의 손에 붙잡힌 여자가 공포에 사로잡혀 소리쳤다.

“으악! 아아아아악……!”

잠시 후 인간의 몸은 손쉽게 두 조각으로 뜯겨 나갔다.

뜨득……. 뚜두두둑-!

여자의 육체를 둘로 쪼개어 쥔 오우거는 전사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오우거가 소리치자 그 입에서 침과 피가 사방으로 분출되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더불어 악취와 피 냄새가 교도소를 가득 채웠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전사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놈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동안의 지휘관은 전사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전부 돌격해!”

“죽여 버려!”

“으아아아아!!!”

전사들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순간, 오우거를 선두로 한 만경의 병사들 역시 교도소 내부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두 진영의 군대가 함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는 교도소 하늘을 가득 메웠다.

곧이어 두 집단은 중앙에서 만나 살육전을 벌였다.

“…….”

그 한복판에서 진재희는 몰려드는 전사들을 향해 태연하게 걸어 나갔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차분한 걸음걸이.

긴박한 전방의 상황과는 대조적이었다.

“죽어-! 죽어!!!”

그때 전사 하나가 진재희를 발견하곤 달려들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전사들을 바라보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곧 은빛의 섬광과 함께 성검이 허공에 나타났고, 그녀는 제일 앞의 전사를 향해 검을 쏘았다.

푸욱-!

“우욱……!”

성검은 곧장 전사의 몸을 꿰뚫었다.

전사는 피를 토해 내며 앞으로 쓰러졌고, 성검은 다시 재희에게 돌아왔다.

성검은 스스로 움직였다.

이번에는 진재희 주위로 세 개의 검이 떠올랐다.

다시 검들은 전방으로 쏘아졌다.

푹, 푹, 푹, 푹, 푹, 푹-!

“카학……!”

“커헉……!”

“으악……!”

성검은 전사들을 연이어 꿰뚫어 버리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날아다녔다.

마치 꼬챙이로 고깃덩어리 여러 개를 꿰뚫는 것처럼, 그녀의 성검은 멈추지 않고 전사들의 몸뚱어리를 꿰뚫었다.

한 전사가 쇠 파이프를 쥐고 진재희에게 달려들었다.

“이 개X끼야!”

전사는 진재희에게 쇠 파이프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전사의 쇠 파이프는 허공을 갈랐다.

고개를 숙여 전사의 공격을 피한 재희는 곧장 전사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헉……!”

첫 번째 전사가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진재희는 허리춤의 단검을 빼서 곧장 자신에게 달려오는 두 번째 전사의 허벅지를 찔렀다.

푹-!

“끄악……!”

매우 빠른 움직임이었기에, 두 번째 전사는 반응할 수도 없었다.

역동적인 움직임에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진재희는 멈추지 않았다.

쓰러지려고 하던 두 번째 남자를 움켜쥐곤 전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막았다.

푹, 푹, 푹!

전사의 등에 화살이 계속해서 박혔다.

그때, 앞으로 쓰러졌던 첫 번째 남자가 다시 진재희에게 달려들었고, 그녀는 두 번째 남자를 그에게 밀어 버리며 같이 넘어뜨렸다.

“악!”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온 성검이 두 전사의 몸을 동시에 꿰뚫었다.

푹!

사람을 잔혹하게 죽였음에도 진재희는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다시 눈동자를 전방으로 옮겼다.

이어서 그녀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운집해 있는 초식 동물을 향해 겁 없이 뛰어드는 한 마리의 야수처럼, 그녀는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다시 목을 긋고, 관절을 비틀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신발 굽으로 얼굴을 뭉개고, 옆구리를 찌른 다음 복부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고, 뒤돌려 차기로 배후를 노리던 전사의 턱을 가격했다.

퍼억-!

그녀의 뒷발에 맞은 전사의 아래턱이 위턱과 분리되며 너덜너덜해졌다.

“후우……!”

진재희는 지금까지 참아오던 숨을 크게 내뱉곤, 다시 크게 들이마시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적들에겐 그야말로 잔혹하기 그지없었지만, 만경의 병사들에겐 실로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녀는 마치 허리케인처럼 혼자서 모든 걸 집어삼키고 있었다.

진재희의 검날을 받거나 주먹에 맞은 전사들이 종잇장처럼 날아가서 지면에 처박혔고, 온몸이 베어져 죽어 갔다.

몇 번이고 싸움을 이어 나갔지만, 진재희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쿵, 쿵, 쿵, 쿵!

그때, 오우거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쿠아아아아아아!

오우거는 더 많은 전사를 잡아먹기 위해 본관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진재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우거의 종아리에 올라탔다.

그러자 뿌려 놓았던 성검들이 그녀에게 되돌아왔고, 오우거는 곧장 교도소 본관으로 달려갔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

왕을 붙잡으면 전투는 끝난다.

오우거의 어깨에 올라가 있던 진재희는,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교도소 본관 옥상에 떨어졌다.

툭.

가볍게 옥상에 내려앉은 진재희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도소 옥상, 그곳에서 화살을 쏘아 대던 수십 명의 전사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갑자기 옥상에 들이닥친 여자의 모습에 전사들은 주춤거렸다.

“어엇……?”

“뭐, 뭐야?!”

“야, 야. 야!”

재희는 볼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쓸고는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 * *

교도소 깊은 곳.

이곳은 과거 사형을 집행하던 공간이었다.

1997년 이후, 대한민국이 실질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서 이곳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하지만 이곳엔 여전히 목줄이 묶여 있었고, 사형수를 위한 의자 역시 존재했다.

박지수는 그 의자에 앉아 병째로 소주를 마셨다.

꿀떡, 꿀떡-.

이미 그녀 주위로 수많은 소주병이 흩어져 있었다.

박지수는 비틀거리는 고개를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박지수는 쥐고 있던 소주병을 힘없이 놓았다.

탱-. 탱그르르…….

소주병이 힘없이 굴러가 다른 소주병과 부딪혔다.

박지수는 다시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 철창에 몸을 기대었다.

교도소 밖으로 수많은 함성 소리가 들렸다.

괴물들의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어릴 적 자신을 부르던 부모님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박지수는 철창에 얼굴을 문댄 채, 힘없이 말했다.

“문 열어…….”

군주의 말에 팔 한쪽이 없는 남자가 말없이 걸어와 열쇠로 철창을 열었다.

끼이이익-.

요란한 경첩 소리가 교도소 내부에 울렸고, 군주는 천천히 걸어가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이곳은 사형장으로 향하는 복도였지만, 지금은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에 엎어진 박지수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았다.

“후……. 후…….”

술에 잔뜩 취했는지, 가쁜 숨을 내몰아 쉬었다.

나약해진 군주의 모습을 바라보던 박지수의 호위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호위는 2라운드 때부터 지금까지 박지수 곁을 지키던 여자였다.

일전에 진재희에 의해 한쪽 팔이 잘렸지만, 그는 아직까지 박지수의 최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지수는 테이블에 엎드린 채, 오들오들 떨었다.

겨울이 지났지만, 아직 바람이 쌀쌀했다.

호위는 근처에 있던 전사에게 담요를 가져올 것을 지시하고는 부하에게서 담요를 받아 조심히 박지수를 덮어 주었다.

박지수는 조금 더 몸을 떠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어두컴컴한 교도소 내부.

여왕의 테이블 위에 있는 촛불만이 주위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저기……. 저.”

그때, 호위의 곁에 있던 전사 두 명이 말을 걸어왔다.

호위는 두 전사를 바라보았다.

“도망……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젠…… 정말 끝인 것 같은데.”

“맞습니다……. 군주님도. 그렇게 당당하시던 군주님도 결국 아무것도 못 하셨고. 이제 끝입니다. 동안구는.”

“…….”

두 전사들의 애처로운 목소리에 호위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 도리어 물었다.

“……어디로?”

“예?”

“어디로 가냔 말이야. 어디로 도망칠까. 의왕? 과천? 서울? 수원? 어디. 어디로 갈까. 일본? 중국? 미국으로 갈까? 말해 봐.”

“그건…….”

“도망갈 덴 없어. 어차피 선택지는 죽냐, 발악하다 죽냐 뿐이지.”

“…….”

“설마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리그가 시작되었는데? 웃기는군.”

“…….”

“어차피 다 죽을 거다. 정말 소수만 빼고 말이야. 근데 우린 그 소수가 아니야. 이 여자애도, 너희도, 나도 말이지.”

호위는 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촛불을 들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깊게 들이마셨다.

“이 여자는 우릴 구원했다. 눈구덩이에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고 빌었던 너희들의 모습을 떠올려 봐라. 그리고 이 여자는 우리에게 자유롭게 살아갈 기회를 주었지. 진정한 자유 말이다.”

그의 목소리에, 다른 두 전사는 침묵했다.

세 사람 사이에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동안의 세력 구성원 모두가 박지수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지수의 가장 큰 능력은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박지수 자신이 인생의 벼랑 끝까지 선 기분을 잘 알았기에, 그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박지수에 의해 삶을 구원받은 자들은 끝까지 이곳에 남아 군주와 함께 명을 다하려고 했다.

교도소의 수백 명의 전사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호위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살려고 하지 마. 우린 그냥 군주를 위해, 죽으면 돼.”

그리고 그때였다.

가까운 복도에서 전사들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비명 소리는 점차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고, 호위는 식탁 위에 있던 식칼을 거머쥐었다.

덥썩-!

그의 얼굴이 마구잡이로 일그러졌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도 가빠졌다.

호위는 피우던 담배를 입 속으로 넣고는 그것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담뱃불이 얼마나 뜨겁든 상관없었다.

“그래……. 다 죽는 거야. 다. 근데 그냥은 안 죽을 거다. 날 죽이는 저놈에게도 톡톡히 알려 줘야지. 내가 뭐 하는 놈인지. 난. 쉽게 안 죽을 거야. 쉽게 죽을 순 없어. 뭐라도 남겨야지. 한 사람의 기억 속에라도 남아야지. 응?”

그때, 복도로 나오는 철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그곳엔 웬 남자가 등을 보이고 있었고, 곧 피를 뿜어내며 뒤로 쓰러졌다.

철퍽-!

남자를 찌르고 이곳까지 단신으로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진재희였다.

“…….”

진재희는 숨을 크게 내뱉고, 박지수와 세 전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수십 명에 달하는 전사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베어 내고, 이곳 군주의 방까지 도착했던 것이다.

그 순간, 진재희를 바라보던 호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신께서 내게 마지막 선물을 준 것 같군……. 복수…… 복수다.”

과거 호위는 진재희에게 팔 한쪽이 잘렸다.

벼랑 끝에 몰려서 원수를 만나다니, 호위는 자신에게 이러한 기회를 준 신께 감사했다.

진재희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터벅터벅 복도로 들어섰다.

진재희의 눈동자는 오로지 책상에 엎어져 잠을 자고 있는 박지수에게 향해 있었다.

“군주님을 지키자!”

“으아아아!”

두 전사는 진재희에게 달려들었다.

진재희를 바라보고 있던 호위는 아랫입술을 피나도록 깨물었다.

지금껏 수많은 플레이어를 베어 왔던 그다.

그의 능력은 순간적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

그 지속 시간은 짧지만, 파괴력과 스피드만큼은 도깨비 가면과 군주 박지수와 버금갔다.

단단히 마음먹은 호위는 식칼을 쥔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타앗-!

호위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빠른 스피드로 진재희에게 접근했다.

진재희는 지금 두 전사를 상대하느라 바빴다.

분명 자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호위는 온 에너지를 속도와 왼손에만 집중했다.

지금 그의 칼날은 닿기만 해도 두꺼운 나무조차 썰어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저년이 아무리 강한다 한들……! 한 방이면 돼! 한 방이면……! 한 방만 맞으면……! 우선 그 잘난 얼굴부터 씹어 먹어 주마……!’

호위는 쥐고 있는 식칼을 진재희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휘릭-. 서걱! ……툭. 툭투르르르…….

* * *

“…….”

호위의 머리가 허공을 한 바퀴 돌더니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그 옆으론 순식간에 토막 난 전사들의 시체가 있었다.

목이 잘린 호위의 눈동자가 진재희를 올려다보았다.

“…….”

진재희는 쓰러진 전사들의 시체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박지수에게 다가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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