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짧은 동행: 하윤하 (3)
“흐윽……! 윽……! 하아!”
“아, 소리 좋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 소리……! 죽여 달라고 비는 소리는 어떨까……?”
꾸우우우욱.
이종원은 이제 두 손으로 하윤하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하윤하는 더욱 고통에 몸부림치며 두 발을 동동 차 댔다.
그 순간, 하윤하의 능력이 발동되었다.
대상의 신체와 얼마간 닿아 있으면 그 대상의 기억을 볼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을 통해 하윤화는 이종원의 기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종원의 기억은 그야말로 역겹기 그지없었다.
이종원의 괴상하고 망측한 사생활들이 계속해서 보였다.
“크흐으으윽……! 흐으으으으……!”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러운 장면들이었다.
하윤하는 이종원의 팔을 붙잡으며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종원은 더욱 강하게 하윤하의 목을 움켜쥐었다.
“살려…… 주세…… 요…….”
“아아-. 안 돼요. 안 돼-. 지금 세계에서 그런 말 해 봤자-. 누가 온다고. 크크크큭. 경찰은 없어. 경찰은 드디어 없는 거야! 이 미친 세상-. 너무 행복해-.”
그때, 이종원은 주먹을 움켜쥐어 하윤하의 오른뺨을 강타했다.
꾸당-!
하윤하는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졌고, 이종원은 그 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절망에-. 빠지세요-. 우세요-. 죽여달라고 빌어 주세요-! 어차피 그래 봤자, 아무도 안 온답니다. 아무도-. 아무도-! 푸하하하!”
그렇게 이종원은 하윤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윤하는 등 뒤에 있었던 작은 돌멩이를 움켜쥐었다.
돌멩이로 이종원을 공격해 시간을 벌어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종원의 손은 하윤하에게 닿지 않았다.
스응-. 서걱!
그 순간, 이종원의 왼쪽 어깨가 베였다.
“아악!”
피가 솟구쳤고 이종원은 뒤로 주춤거렸다.
이종원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상처 난 부위를 매만졌다.
새빨간 피가 묻어 나왔다.
그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일었다.
“아-. 뭐- 지?”
하윤하는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벌목도를 쥔, 이수은이 서 있었다.
이수은은 천천히 하윤하를 지나 이종원에게 다가갔다.
이종원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이수은에게 말했다.
“대장- 님-. 이거 뭐예요?”
이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걸 군주- 님이 보시면. 참-. 좋아하시겠어요? 네? 하하하-.”
“가서 말해. 박지수한테.”
이종원의 위협에도 이수은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어차피 동안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종원은 이빨을 뿌득 갈았다.
“대장님-. 그냥 비키세요. 대장님은-. 플레이어도 아니잖아요? 저-. 이길 수 있으세요?”
“응.”
이수은은 두 손으로 쥐고 있던 벌목도를 한 손으로 쥐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이종원에게 다가갔다.
이수은의 당당한 태도에 이종원은 더욱 열이 뻗쳤다.
그는 천천히 능력을 발동했다.
이종원의 육체가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해보시지-.”
이종원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모습도 기척도 숨소리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종원은 자신의 몸을 일정 시간 동안 완전히 감출 수 있는 아티팩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이수은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종원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쿠하하하하-.”
“왜? 안 보이나?”
“날 어떻게 이기게? 응?”
사방에서 이종원이 꽥꽥 소리를 질러 댔다.
그때, 이종원은 이수은의 등에 칼을 꽂아 넣었다.
푸욱-!
“X신!”
“카하아악……!”
이수은이 쓰러진 틈에 이종원은 하윤하를 노려 칼을 휘둘렀고, 볼에 상처를 내었다.
푸슛……!
하윤하의 볼에서 피가 튀었다.
이수은은 그쪽 방향을 돌아보며 벌목도를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이수은의 벌목도는 허공을 갈랐다.
또다시 이종원이 꽥꽥거리며 소리쳤다.
“X신! X신! X신! X신! X신!”
“맞겠어? 맞겠어? 맞겠어? 맞겠어? 맞겠어? 맞겠어?”
이수은은 주변을 힐끗거리며 돌아보았다.
하지만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하윤하에게 소리쳤다.
“신호 주면 도망쳐라.”
“하지만……!”
이수은은 하윤하의 만류 따윈 가볍게 무시했다.
그녀는 소리쳤다.
“하나, 둘- 셋!”
타앗-!
하윤하는 곧바로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윤하를 쉽게 도망치도록 내버려 둘 이종원이 아니었다.
“어딜- 가-! 오빠랑-! 놀자고-!!!”
타앗-!
이종원은 고집스럽게도 빠르게 도망치는 하윤하를 노렸다.
하지만 그때였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악-!”
이종원의 투명한 육체에 새빨간 피가 뿌려졌다.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낸 이수은이 그 피를 손바닥으로 받아 전방으로 뿌린 것이다.
“이 개X- 끼가!”
이수은은 다시 팔에서 피를 쥐어 짜내 손에 피를 가득 머금고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뿌렸다.
촤아아아악-!
“으아아악-! 아, 잠깐! 나 눈에- 눈에 들어갔어-! 타임! 타임!”
이제 얼추 이종원의 몸이 보였다.
허공에 새빨간 피가 묻은 채로 움직이는 몸. 특히 놈의 목 부분은 피를 뒤집어쓴 터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수은은 단번에 이종원에게 다가갔다.
타앗-!
달려 나가며 걷어찬 돌멩이가 아무렇게나 튀어 나갔다.
이종원 바로 앞에 도착한 그녀는 피 묻은 벌목도를 있는 힘껏 놈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휘리리익-. 쩌억!
“커헉!”
벌목도는 이종원의 목을 반쯤 갈랐고, 그 순간 아티팩트 능력이 해제되며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종원은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내질렀다.
“커헉! 카하하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X발, 아프잖아! 아프다고! 이 X발!!! 앰뷸런스! 경찰차아-! 구급차 불러 X발, 개X끼들아! 으아아아아아아악! 살려 줘! 살려 달라고오-! 누가 좀!”
이종원은 바닥에 뒤집어져서 마구 나뒹굴었다.
이수은은 그런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 역시도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
턱-!
그녀는 그의 목에 박혀 있는 벌목도를 발로 살짝 밟으며 말했다.
“누가 와. 이런 세상에서.”
“커헉-!”
“너 같은 놈은 죽어도 싸…….”
말을 마친 이수은은 발에 힘껏 힘을 주었다.
꾸직-!
그러자 목에 박혀 있던 벌목도는 그 힘에 밀려 목뼈를 완전히 부러뜨렸다.
이종원은 그렇게 죽었다.
이종원이 죽은 뒤에는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 * *
이수은은 가쁜 숨을 내몰아 쉬었다.
“후우……. 후으…….”
보다 많은 양의 피를 손에 머금기 위해서, 팔에 깊은 상처를 낸 탓이었다.
일반인이 플레이어를 상대할 때는 막대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희생을 감수한다고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엔 운이 좋았다.
뚝……. 뚝……. 뚜두두두둑…….
이수은의 팔에 맺힌 피가 한동안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떨어지더니, 이젠 물줄기를 이루어 떨어져 내렸다.
그 피를 보고 있던 이수은은 가만히 서서 몸밖에 남지 않은 이종원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그녀의 턱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크흐훕……. 크흐으으……. 끄으으으…….”
여자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돌연 몰려드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하윤하가 달려왔다.
서둘러 달려온 윤하는 이수은에게 다가와 자신의 상의를 찢어 상처 부위를 묶었다.
“피가……! 아줌마……. 피, 피가요……!”
“크흐흐흐으…….”
하윤하는 눈물을 머금으며 이수은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지만, 이수은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하윤하가 붕대질을 하고 있으니 이수은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아줌마. 조금만……. 조금만 참아요…… 미안해요. 제가 약해서……. 아무런 도움이 안 돼서……. 아무런…….”
하윤하는 매듭을 묶다가 피 묻은 소매로 눈물을 닦아 냈다.
하윤하도 볼을 베였기 때문에 얼굴이 피투성이었다.
하지만 이수은의 상처가 더 심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죽을 정도로, 피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이수은은 알고 있었다.
하윤하가 아무리 지혈한다고 해도, 자신은 곧 과다 출혈로 죽을 것이라는 거.
하지만 이수은은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가톨릭 신자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만약 죽는다면, 그 전에 신께 죄를 고해야만 했다.
신이 정말로 있을지, 지금이 성경이 예언한 종말의 순간인지.
그건 모르지만, 말해야만 했다.
이수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야……. 하나만. 하나만. 내 얘기를 들어주겠니?”
“무엇이든요. 무엇이든요……!”
하윤하는 이수은의 등에 난 상처를 두 손으로 꾹 누르고 있었지만, 피는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이수은은 꿋꿋하게 자리에 서서 입술을 떼었다.
“나도 한때 주부였어……. 아침이면…… 애들 남편이랑 애들 밥 차려주고, 빨래도 하고, 반찬도 만들고, 청소도 하고…… 조금 힘들긴 했지만 나름대로…… 행복.”
“피가……. 흐윽……! 피가요…….”
이수은의 발밑에 피가 흥건히 모여 웅덩이가 되었다.
얼굴은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을 멈추진 않았다.
지금 말해야만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이 아이밖에 없었으니.
“근데 얘야……. 너도…… 1라운드 주제가 뭔지, 기억하지? 왕 게임. 우리 가족은 말이야. ……IMF 때 파산하고, 없는 돈 있는 돈 끌어모아다가 1층만 있던 건물에 치킨집…… 열었거든? 조금 괜찮았어……. 많이 벌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우리 세 식구……. 밥 벌어먹고 살 정도……. 그 정도는 되었거든?”
“아줌마……. 이제 말 안 하면 안 돼요? 아줌마……. 제발요……. 피가.”
“근데……. 근데……. 우리 1라운드……. 우리 남편이…… 홍 팀이고……. 딸내미가……. 청 팀이고……. 내가……. 내가……!”
이제 이수은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말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너진 도심이었지만 석양의 노을은 아직까지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 무서웠다? 남편은 먼저…… 딸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나는……. 결국 못했어……. 나도 죽었어야 했는데. 나도 딸을 살리려면 죽었어야 했는데……. 쿨럭!”
이수은은 그 말을 끝으로 피를 토해 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두 발로 버티고 있었다.
이제 윤하는 반쯤 포기한 채,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작게 흐느끼면서.
하윤하는 지금 이수은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이럴 때면 자신의 능력이 미친 듯이 원망스러웠다.
신체에 접촉하는 것만으로 타인의 기억을 훔쳐볼 수 있었으니.
하윤하는 지금 이수은의 감정에 완전히 동요되었고, 그 감정으로 인해 미친 듯이 슬퍼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윤하는 이수은의 모든 과거의 장면들을 보고 말았다.
정리 해고를 당한 남편과 그 곁에서 그를 위로하는 이수은.
아직 어린 딸이 그녀에게 기어 오는 기억 속의 장면들.
모든 걸 이겨 내고 이수은과 남편이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과.
딸아이가 교복을 입기 시작한 날부터 치킨집에서 서빙을 하는 장면과 웃음 짓던 딸아이의 모습.
딸아이의 웃음은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 가장 해맑았다.
그것 말고도 이수은의 기억 속에는 딸의 얼굴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주말이면 언제나 시간을 내 이수은과 남편의 가게 일을 돕는 딸아이.
흐느끼는 이수은을 남몰래 위로하던 딸아이의 얼굴 등등.
“흐……. 흐으……!”
하윤하의 오른쪽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흘러내렸고, 다음 장면들이 이어졌다.
비극처럼 닥친 1라운드.
눈앞에서 남편이 죽는 장면과 딸아이의 머리통이 터져 죽는 장면이 차례로 지나갔다.
그 앞에서 이수은은 미친 듯이 오열했다.
그런 이수은의 앞에 나타나 1라운드를 통과했다고 축하하는 K의 모습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이수은의 앞에 나타난 박지수.
이후 이수은은 박지수에 의해 노예처럼 부려졌다.
지난 2라운드, 3라운드를 지나면서 그녀는 밤마다 흐느꼈다.
그 흐느낌의 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수은은 피를 흘리면서도 고해 성사를 이어갔다.
“……나 진짜 죄스러워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나 말이야. 사람……. 많이 죽였어. 박지수 말에……. 명령에 말이야. 많이 죽였단…… 말이야.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
“아줌마…….”
“……나 천국 못 가겠지? 근데 우리 딸은……! 딸은 갔으면 좋겠어어……. 흐아아아아…….”
이수은은 기어이 고개 숙여 펑펑 울어 댔다.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 부디……. 제 딸만큼은. 제발 부탁. 아아……. 진짜 너무 슬퍼서. 진짜 미치겠어……! 심장이 아파……. 아, 용서해 줘……. 제발.”
이수은은 지금 육체의 고통보다, 심장을 아려오는 슬픔이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에 이르기까지, 이수은은 단 한 차례도 그 기억 속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수은은 지금 그동안의 묵은 감정들을 모조리 토해 냈다.
지금껏 침착함을 유지해 오던 이수은이었다.
이수은은 중년의 어른들은 눈물이 없다는 말을 솔직히 스무 살 처녀 시절까지는 믿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중년이 되니,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면 남들이 자신이 우는 걸 위로해 줬음 하는 마음에 남들 앞에서도 울음을 터트렸지만, 어른들은 남들 모르게 어디론가 꽁꽁 숨어서 눈물을 흘린다.
울음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지금 이수은은 아이처럼 울었다.
다 떠나가라는 듯, 미친 듯이 울음을 토해냈다.
그때 하윤하가 말했다.
“갔을 거예요……!”
깜짝 놀란 이수은은 고개를 들었다.
하윤하는 눈물을 닦아 내며 다시 말했다.
“아줌마 딸도, 아저씨도! 그리고 아줌마도 갈 거예요. 제가 그렇게 할 거예요. 제가 이 리그요……! 우승해서. 하느님 찾아가서요! ……제가 따질 거예요. 아줌마, 다시 가족이랑 만나게 해 드릴 거니까. 그러니까. 살아 주세요……. 지금 당장은…….”
“…….”
이수은은 지금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이 아이의 이름조차 몰랐다.
하지만 이름 따윈 몰라도 되었다.
이수은은 지금껏 하윤하를 멀리했다.
자꾸 딸이 생각나서.
하지만 죽음을 앞둔 지금, 그녀는 죽기 전에 하윤하의 볼을 한번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마치 딸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혜야……. 아, 내 사랑하는 딸아. 보고 싶은 내 딸아.’
이수은은 이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기력은 다했고, 죽음을 직감했다.
‘용서해다오…….’
말로 전하진 못하지만, 이 마음이 딸에게 닿길 바랐다.
이수은은 천천히 손을 올려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하윤하의 볼을 향해 뻗었다.
“…….”
“…….”
하지만 그녀의 손은 하윤하의 볼에 닿지 못했다.
휘릭, 서-걱!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
이수은과 마주 보고 있었던 하윤하의 눈동자가 천천히 전방에서 우측 하단으로 내려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바라보던 이수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윤하의 볼에 닿지 못한 이수은의 팔은 허공에 잠시 멈춰 있더니 힘없이 몸과 함께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풀썩-!
그때, 누군가 하윤하를 옆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윤하의 귓속에 흘러 들어왔다.
“윤하야!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윤하의 동공이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윤하를 안은 건, 최현지였다.
최현지는 윤하의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 주었다.
이수은이 차마 닦아 주지 못한 그 핏자국이었다.
“다친 데 없어? 걱정했어. 진짜 다행이다. 정말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
하윤하는 최현지의 품에 안겨, 바닥에 쓰러진 이수은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이제 군주한테 말해서, 위험한 일은 가지 마. 아니면 나랑 같이 만경을 나가든가. 아-. 너 진짜……. 내가 미안. 정말 미안해.”
윤하의 귀에는 더 이상 최현지의 말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몰려오는 슬픔에 혼란스러웠다.
“하아……. 하아아……. 흐으으으……!”
꾸우우우욱…….
그녀는 말없이 최현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윤하는 최현지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미친 듯이 울음을 토해 냈다.
“으으…… 으으으…… 으으으으……!”
최현지는 자신의 품에서 울고 있는 윤하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