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짧은 동행: 하윤하 (2)
이른 아침.
무너진 도시에 햇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찢어질 듯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건물이 울렸다.
“꺄아아아악-! ……으으아! 하지 마요! 하지 말아 주세요! 부, 부탁드려요. 하지 말아 주세요!”
“가만히 있어. 쉬. 조용히 해.”
벌떡-!
깜짝 놀란 이수은은 덮고 있던 코트를 걷어 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상한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보니 한 명의 남자가 하윤하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남자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러곤 하윤하의 상의를 잡아 뜯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제발……. 부탁드려요. 하지 마세요. 제발…….”
“어차피 죽을 거. 어차피 죽을 거!!!”
그때, 이수은은 각목을 들어 남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퍼-억!
“커헉……!”
남자는 피를 흘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아이 씨X! 진짜!”
울먹이던 하윤하는 금세 이수은에게로 다가와 그녀의 다리 뒤로 숨어들었다.
입술이 터진 남자가 손등으로 피를 훔치며 이수은을 올려다보았다.
“대장……. 뭡니까? 예? 아프잖습니까.”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해? 얌전히 꺼져라.”
이수은은 여전히 각목을 쥔 채로 남자에게 명령했다.
남자는 동안의 전사였다.
그는 이수은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허-, 하고 허탈하게 웃더니 대답했다.
“그러는 대장은 여기서 뭐 한다요? 경찰 놈의 새끼들이 지금 부흥고를 넘어 범계역을 공격 중인데……. 대장은 여기서 애새끼 하나 데리고 뭐 한다요!!! 최전방에서 싸워도 모자랄 양반이요! 여서 뭐 한다요!!!”
“…….”
강시온의 군대가 범계역을 공격한다는 소식.
그 소식에 이수은의 등 뒤에 숨어있던 하윤하가 흠칫 몸을 떨었다.
만경이 승리하고 있다.
자신이 이곳에 남아 정보를 넘겨 주었던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하윤하는 속으로 안도했다.
자신이 시온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남자는 등 뒤에서 칼을 꺼내 들고는 이수은을 향해 겨누었다.
“대장님……. 이제 와 착한 척이요. 내가 본 것만 대장님……. 사람 여럿 죽였는데?”
“……군주의 명령이었다.”
이수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동시에 그녀의 몸도 떨리고 있었다.
이수은의 옷자락을 쥔 하윤하에게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남자는 피식거리며 비웃었다.
“그게 뭐. 어쩔 수 없었다고요? 아- 니지. 그냥 댁도 나랑 똑같은 인간 말종 쓰레기라는 거야. 이 세상에서 지금껏 살인 안 한 연놈이 어딨을까. 어차피 천국은 못 가고. 지옥이나 갈 거 뻔한데. 재미 좀 보자 이거요.”
남자는 이수은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쥐어져 있었다.
이를 본 이수은은 뒤로 손을 뻗어 하윤하를 밀어냈다. 그러고는 쥐고 있는 각목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수은은 비킬 생각이 없었다.
“왜 이런다……. 우리 대장님이……. 갑자기 사람을 다 지키고오……. 그런다고……. 뒈져 버린 당신 딸내미가 돌아오는 건 아니잖여? 소문 다 났어요. 이 아줌마야. 응? 당신. 밤마다 귀신처럼 울어 댄다며? 아니, X발. 몬스터가 아니라 아줌마 흐느끼는 것 때문에 애들이 바지에 오줌을 질질 싸대요. 아님, 뭐. 그런 건가? 어울리지도 않는 죄책감 씻기인가? 야이 X발, 노땅 년아. 제발 한 가지만 혀. 웃기지도 않아.”
남자는 다시 이수은에게 다가갔다.
“…….”
“악당은 끝까지 악당이여. 알아 처먹었으면……. 노땅 년은 비켜. 당신은 줘도 안 먹으니까.”
이수은은 중얼거렸다.
바로 등 뒤에 있는 하윤하만 들을 수 있게.
“……계산대 밑으로 숨어.”
“뭐라 씨불이는 거여!”
화악-!
남자는 검을 쥔 채, 이수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수은은 꽥 소리쳤다.
“숨어-!”
그녀의 외침에 하윤하는 계산대 밑으로 도망쳤다.
서걱-!
남자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이수은의 목을 스쳤다.
“그래. 오늘 둘 중 한 명은 뒈지는 거여! 어!!!”
남자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계산대 밑으로 숨은 하윤하는 더욱 깊숙이 숨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몸을 웅크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았다.
잔인한 소리들이, 매장 안에서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윤하는 머리를 감싼 채, 부들부들 떨었다.
“……싫어. 이제 싫어.”
미친 세상, 미친 사람, 미친 상황들.
하윤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두 사람의 싸움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후……. 흐으……. 후…….”
이수은은 천천히 걸었다.
온몸에 난 칼자국에서 핏물이 뚝뚝 흘렀지만 멈출 순 없었다.
옆에서 하윤하가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윤하는 최대한 깨끗한 헝겊을 가지고 와, 이수은의 상처에 덧대려고 했다.
하지만 이수은은 그런 윤하를 매몰차게 밀었다.
꽈당-!
하윤하는 옆으로 쓰러졌지만, 헝겊은 지켜 냈다.
바닥에 잔뜩 쌓인 오물과 진흙으로부터.
다시 일어난 하윤하는 꿋꿋하게 이수은에게 다가가 상처에 헝겊을 덧대었다.
그러자 이수은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됐다니까! 날 내버려 둬!”
하지만 이번엔 윤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싫어요! 가만히 좀 계세요!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고집부리는 거야!”
윤하는 이수은의 상처를 붕대로 감았다.
붕대라고 해 봤자, 그나마 깨끗한 셔츠를 길게 자른 것에 불과했다.
꽈아악-!
“읏…….”
이수은은 옅은 신음을 내뱉었고, 하윤하는 상처를 더 강하게 압박했다.
팔의 출혈은 어느 정도 막았다.
하윤하는 곧바로 반대로 걸어가 반대 팔의 상처에도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
이제 포기했는지 이수은은 윤하가 치료할 수 있게 잠자코 있었다.
하윤하는 이빨로 셔츠를 뜯으며 치료를 마무리했다.
“……후우 ……후우.”
응급 처치를 마친 윤하는 뒤로 물러나 이수은을 올려다보았고, 이수은 역시 고개만 살짝 돌려 하윤하를 바라보았다.
윤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성큼,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갔다.
원래 이수은이 항상 앞장섰는데, 이젠 하윤하가 성큼성큼 앞장서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와요. 이 근방이니까.”
하윤하는 다음 군주의 감옥으로 향했다.
“…….”
이수은은 가만히 자신의 상처를 매만지다 이내 그녀를 따라갔다.
* * *
이수은의 목적은 하나였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군주의 노예들을 해방하는 것.
하윤하와는 벌써 13일째 이어지는 동행이었다.
지금껏 85명의 노예들이 이수은과 하윤하에 의해 해방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 군주의 창고에서 컵라면을 발견한 두 사람은 아직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돌멩이 사이에 불을 피우고, 그곳에 군용 방탄모를 올렸다.
이수은은 어디선가 물을 가지고 오더니 방탄모에 부었다.
불을 꺼트리지 않는 담당은 하윤하였다.
“후-. 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땅바닥에 볼을 댄 채 불씨를 향해 입바람을 불어 댔다.
화르륵 불길이 타오르자 윤하는 매운 연기에 기침과 눈물을 쏟았다.
이수은은 컵라면을 뜯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물에 면부터 넣었다.
그러자 하윤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스프부터 넣는 건데. 그래야 육수가 우러난단 말이에요.”
“상관없어.”
탈탈탈-.
이수은은 스프를 면 위에 탈탈 털었다.
면부터 넣든, 스프부터 넣든.
방탄모에서 맛있게 익어 가는 라면의 향기는 그야말로 극락의 향기였다.
이수은은 무너진 도시 속을 다니며 젓가락으로 쓸 만한 것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폐자동차에서 와이퍼를 뜯어내 그것을 부러뜨려 젓가락을 만들었다.
보글보글보글.
방탄모 속 빨간 국물의 라면이 먹음직스럽게 익어 갔다.
그것을 바라보던 윤하는 물끄러미 이수은을 올려다보았다.
이수은은 그런 윤하에게 말했다.
“덜 익힌 걸 좋아하면 먼저 먹어라.”
그 소리에 하윤하는 서둘러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후루룹, 후루룹.
윤하는 와이퍼 젓가락으로 잘도 라면을 집어 먹었다.
이수은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자신도 몇 번 먹곤 젓가락을 놓았다.
윤하는 방탄모를 통째로 들어 국물까지 마셨다.
이수은은 담배를 물고 피우기 시작했다.
덥수룩한 머리를 고무줄로 뒤로 묶은 다음 담배를 피우며 물었다.
“근데 너. 내가 무섭지 않은 거냐?”
이수은이 윤하에게 질문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윤하는 방탄모를 내려놓고는 이수은을 바라보았다.
온통 상처뿐인 얼굴이었다.
칼에 긁힌 자국은 물론이고, 찢겨진 피부, 화상 자국도 가득했다.
외관상 무서울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포악한 산적 느낌. 아니지, 오랫동안 무법 지역을 돌아다닌 음습한 방랑 기사 같은 비주얼이었다.
등에는 벌목도도 메고 있었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다른 동안의 전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윤하가 한동안 대답하지 않자, 이수은은 담배 연기를 내뱉고는 다시 윤하를 바라보았다.
윤하는 본능적으로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무섭죠. 아줌마는……. 사람도 쉽게 죽이고……. 무엇보다 동안구 사람이고. 게다가 대장이라면서요. 전 무서워요. 동안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건 빼 주렴. 이제 그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이 되었으니.”
학생이 학교에 가는 것처럼, 회사원이 회사에 가는 것처럼,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것처럼.
지금은 살인이 익숙한 세계다.
하지만 하윤하는 고개를 저었다.
“전 한 번도 사람을 죽여 본 적 없어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정말이에요! 전 그랬던 적 없어요. 맹세코.”
“…….”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리그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껏 단 한 번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인간이 있다니.
누가 말했더라도 못 믿었을 것 같지만, 이수은은 믿기로 했다.
탈탈-.
이수은은 담뱃재를 털고는 뒤로 누웠다.
타탁, 타닥.
방탄모를 태우던 모닥불에서 불똥이 튀어 잔잔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수은은 물었다.
“네 군주는 어떤 사람이니.”
“군주님이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정말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아줌마, 2라운드 아시죠. 엄청 추웠던. 근데 울 군주님이 말이에요? 저도 처음에 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엄청 동안이신 거예요. 저보다 7살이나 위! 아니, 본론으로 돌아와서? 군주님은 추위를 해결하기 위해…….”
하윤하는 봇물 터진 듯 군주의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수은은 윤하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수은은 만경 군주의 얼굴을 본 몇 안 되는 전사 중 한 명이었다.
2라운드 당시, 이수은은 정찰에 나섰을 때 강시온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상당히 어린 남자였다.
한참 군주에 대해 이야기하던 하윤하는 이수은에게 선언했다.
“하여튼 전 아줌마 이제 안 무서워요.”
“…….”
“어제 이불도 덮어 주셨잖아요.”
“…….”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밖에 없어요.”
“…….”
“그리고 절 도와주셨고.”
“…….”
“아줌마는 제가 본 사람 중에 세 번째로 착한 사람이에요.”
하윤하는 방탄모에 붙어 있던 라면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착한 사람, 착한 그리고 사람.
이수은은 그 두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 두 단어가 뜻하는 바가 더 이상 이 세계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착한 것도 없고, 사람도 없다.
모두가 한 마리의 짐승일 뿐이다.
간혹 인간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도 극한의 상황에 놓여있을 땐, 짐승의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 마련이었다.
이수은은 돌아누웠다.
하윤하는 아직까지도 군주의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근데 거기서 군주님이 무언가를 끌고 오시는 거예요. 그게 뭔지 알아요? 엄청 큰……!”
“……난 착하지 않아.”
낮은 목소리.
윤하는 돌아누운 이수은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난 착하지 않아.”
이수은은 같은 톤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난 착하지 않아.”
하윤하는 침묵했다.
이수은은 고장 난 로봇처럼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난 착하지 않아.”
이수은은 등을 구부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십자가 목걸이를 꼭 쥐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하윤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모닥불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곧 밤이 찾아왔다.
* * *
끼이이익-. 터엉!
감금되었던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으며 튀어나왔다.
“다행이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그들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이수은은 철제 잠금장치를 풀어 버리며 중얼거렸다.
“이걸로 마지막인가.”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윤하는 대답했다.
“네. 마지막이요.”
“그래. 너도 해방이다. 지금쯤 범계역에 가면 만경의 병사들이 있을 거다. 너도 만경 시민이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겠지? 이제 가라.”
이수은은 그렇게 말없이 돌아섰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아, 저, 저기.”
그때, 하윤하는 뒤돌아 걸어가는 이수은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줌마도 같이 가실래요? 저희 군주님이라면, 아줌마도 만경의 시민이 되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가 군주님께 부탁드리면…….”
“만경의 군주……. 그 갈색 머리 남자 말인가?”
스윽-.
이수은은 뒤돌아 하윤하에게 이어 말했다.
“그 남자, 괴물이야. 자신의 목적이라면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윈 손쉽게 버릴 수 있을…….”
“구, 군주님이 그럴 리가 없어요!”
하윤하는 이수은의 말을 가로채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수은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그럴 일 없다고? 과연 그럴까. 널 정말 생각했다면, 그 남자가 널 이곳에 파견하지도 않았을 거다.”
이수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맺었다.
“아무도 믿지 마. 네가 믿는 그 사람은 널 믿고 있지 않을 거야.”
“…….”
그 말을 남기고, 이수은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건물 사이로 걸어가던 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곤 하윤하를 돌아보았다.
하윤하는 아직까지 그곳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이수은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목숨을 버릴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 * *
반쯤 무너진 건물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고, 윤하의 시야에서 이수은이 사라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하윤하는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이수은이 사라진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도 몸을 돌렸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하윤하는 애써 외면했다.
그녀는 이제 만경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최현지도 보고 싶었고, 같은 동의 이웃 주민들도 보고 싶었다.
물론 군주의 칭찬도 듣고 싶었다.
윤하는 무너진 도심 속을 걸었다.
간간이 전사들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보였고, 정체불명의 작은 몬스터들도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의 시선을 피해 범계역 인근에 도착한 윤하는 숨을 푹 내쉬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그때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 디- 어-. 혼자- 가 되었구나-?”
터억-.
허공에서 갑자기 손이 나타나더니 하윤하의 목을 움켜쥐었다.
“?!”
그리고 지금껏 투명했던 ‘놈’의 육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깡마른 상체의 남자. 놈의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휘날리고 있었고, 반바지만 입은 다리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하지만 놈의 눈동자만큼은 전혀 달랐다.
놈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하윤하를 바라보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우리……. 킥킥킥킥! 저번에 못 했던 놀이……. 킥캭캭캭! 해야지……? 캌카카카칵! 즐거울 거야…… 틀림없이 즐겁고말고!”
놈은 동안의 플레이어, 이종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