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짧은 동행: 하윤하 (1)
만경의 잔당 토벌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살아남은 동안의 전사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무너진 도심 속으로 숨어들거나, 두 손 들어 항복하거나.
사로잡은 전사들은 만경으로 이송되었고, 반항하는 전사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처형되었다.
강시온의 군대는 동안 세력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범계역 일대로 들어섰다.
범계역 일대에는 군주 박지수의 흔적들이 여럿 보였다.
가로등에 목이 걸린 썩어 문드러진 시체와 쌓다 만 성벽, 여러 곳에 나뉘어 버려져 있는 몬스터의 시체 등.
거리에서 온갖 악취가 진동했다.
범계역 중심 상가 중앙 분수대에서는 살아남은 전사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전사들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동안의 시민들이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썩 꺼져 버려! 꺼져 버리란 말이다! 더러운 경찰의 앞잡이들!”
“군주님! 박지수 군주님! 군주님을 해방시켜 줘……!”
무기를 들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는 강시온의 명령에 있었기에, 병사들은 그들을 무시한 채 걸었다.
만경의 플레이어, 최현지는 병사들 사이에서 걸으며 동안의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한때,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던 시민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지독한 몰골이었다.
만경의 시민들은 무너지기 전의 세계에서만큼 스스로를 가꾸거나 꾸미진 않았다.
하지만 수염이 너무 자라나면, 가위로 자르거나 긴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었다.
또한 손톱과 발톱을 주기적으로 잘라 주기도 했다.
일상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치장’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안의 시민들은 달랐다.
옷도 아무렇게나 껴입고, 손톱과 발톱은 귀신처럼 길었으며, 피부는 검게 그을리거나 오물이 묻어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악취가 제일 문제였다.
인간의 육체에서 날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다.
죽은 시체?
아니, 시체도 이들보단 향이 좋을 것이다.
동안의 시민들은 이곳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때, 어떤 노인의 목소리가 범계역 사거리에 가득 울려 퍼졌다.
“썩- 꺼져 버려라-! 빌어먹을 경찰의 후손들아-!”
최현지는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은 채,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범계역 사거리 쇼핑몰 13층, 그곳은 벽면이 통째로 무너져 내려 야외에 노출된 공간이었다.
그곳에 발가벗은 백발의 노인이 깃발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고 있었다.
태극기에 X가 쳐진, 동안의 상징기였다.
노인은 거리에 만경의 병사들을 향해 계속해서 소리쳤다.
“썩- 꺼져 버려라! 이 빌어먹을 경찰의 후손들아! 이 억압자 놈들! 너희들은 살 가치가 없는 놈들이다! 왜 세계가 멸망하고도 경찰 행세를 해 대는 거냐! 너희들의 개가 될 바엔 스스로 죽는 것이 백 배, 천 배 낫다! 이 더러운 경찰 족속들! 법 위에 군림하여 시민들을 괴롭히는! 더러운 개X끼들! 다 꺼져 버리라고-! 너희들은 지금 우리 자유민들을 또다시 법과 질서에 가둬 놓으려는 거다! 이 비겁한 새끼들! 이 더러운 자식들! 봐라! 난 너희들에게 굴복하지 않을 거다! 절대로!”
그 말 뒤로, 노인은 주춤거리며 건물 끝으로 발을 옮기더니 이내 허공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노인이 자살하자, 최현지 곁에 있던 궁수는 활시위를 천천히 풀었다.
한바탕 소동은 노인의 자살로 끝이 났다.
만경의 병사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로지 최현지만이 움직이는 병사들 사이에서 멈춘 채, 노인이 추락한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인이 보기에는 동안의 시민들은 차마 인간이 아닌 짐승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론 달랐다.
그들은 단지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가 그 쾌락을 즐기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본능만을 위해 사는 짐승들이었다.
최현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정보로 먹고사는 방랑자 출신이니.
동안의 시민들은 인간이라는 고등 생물이 만들어 놓은 법과 질서가 자신들을 억압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먹고 싶으면 먹을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죽여서 그걸 빼앗아 먹고, 잠을 자고 싶으면 어디서든 잠을 자고, 타인을 없애 버리고 싶으면 바로 가서 없애 버리고, 그들 가운데 먹을 것이 나타나면 나이, 성별,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서로 싸워 오로지 강자만이 쟁취하는 세계.
사회가 정의한 질서가 없는 인간들의 무리가 바로 그들이었고, 그들이 사는 곳은 동물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동물의 세계에선 육체가 얼마나 더럽고 피로한지는 상관없고, 오로지 본능과 쾌락만이 남아 있다.
그렇다.
동안의 시민들은 인간 집단에서 원숭이 집단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최현지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현지는 지금껏 많은 세력들을 돌아다녔다.
세력마다 다른 문화와 칙령, 군주들이 있었지만 동안의 박지수만큼 한 세력을 강력하게 휘어잡은 군주는 없었다.
박지수의 군중 장악력만큼은 강시온을 능가했다.
강시온은 적어도 시민들의 삶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면서 그 대가로 그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으나, 박지수는 아니었다.
그녀는 시민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오히려 그 삶을 더 피폐하고 비루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박지수에게 충성을 다했다.
‘……아마 박지수는 시민들을 지금처럼 자유롭게 풀어놓고, 부족한 도시의 노동력은 만경의 시민들로 채우려고 했겠지.’
실제로 동안이 전쟁을 일으킨 가장 큰 목적은 ‘노예’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지수의 야망은 강시온에 의해 꺾였다.
결국 박지수도 자신보다 더 강한 자에 의해 잡아먹히고 만 것이다.
“…….”
최현지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윤하를 찾고 있었다.
하윤하가 왠지 살아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하윤하가 플레이어라는 것.
플레이어가 군주에게 있어서 귀중한 자원이라는 것은 만경의 어린 꼬마들도 아는 사실이다.
박지수가 군주인 이상, 플레이어를 쉽게 죽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최현지는 우선 하윤하를 찾고자 했다.
동안 세력이 완전히 무너지면 하윤하는 정말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있을 만한 곳은 전부 찾아다녔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안양시청과 평촌역 방면이었다.
최현지는 그곳으로 향했다.
* * *
안양시청.
그 건물 깊은 곳에는 전쟁 상황에 대비한 방공호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군주 박지수의 보물 창고 중 한 곳에 불과했다.
이곳에는 꽤 다양한 보물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휴대용 게임기, 배터리와 사용 금지 처분이 된 휴대용 소총과 총알, 화장품은 물론이고 잔뜩 쌓인 각종 술과 담배까지.
이젠 도저히 만들어 낼 수도, 찾을 수도 없는 현대 문명 사회의 사치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박지수 역시 가장 아끼는 보물은 꽁꽁 숨겨 두었다.
방공호 가장 안쪽에는 철제문이 있었다.
그 철제문은 오로지 군주만이 알고 있는 거대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철제문 안쪽, 이곳은 박지수의 가장 은밀한 공간이었다.
“…….”
“…….”
두 여자가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나이 든 여자는 손전등으로 어두컴컴한 복도를 비추고 있었고, 어린 여자는 나이 든 여자의 가방끈을 꼭 쥐고는 따라갔다.
나이 든 여자는 철제문 앞으로 다가가 자물쇠를 열었다.
끼이이이이익-.
요란한 경첩 소리와 함께 악취가 풍겨 왔다.
나이 든 여자는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세 사람이 그곳에 갇혀 있었다.
남자가 한 명, 여자가 두 명이었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벽면에 달라붙어 숨만 간신히 쉬고 있었다.
방의 중앙에는 최고급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성인 용품을 가득 담은 녹슨 철제 3단 서랍장도 있었다.
침대 앞에는 고급 소파가 침대를 향하여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박지수의 ‘관람석’이었다.
관람석 앞의 테이블에는 양주와 맥주, 과일과 과자가 가득 있었다.
박지수의 욕망을 가득 담은 상영관.
벽면에 붙어 있던 세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감춘 나이 든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두건을 내렸다.
“…….”
나이 든 여자는 박지수의 최측근이었던 정찰대장 이수은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만경의 플레이어, 하윤하도 함께였다.
그녀는 감금된 세 사람을 둘러보더니 이내 철제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감금된 세 사람에게 말했다.
“너흰 자유다. 가라.”
“…….”
“…….”
자유라는 말에도 감금된 사람들은 쭈뼛거릴 뿐,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수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님, 죽든가.”
덥썩-.
이수은은 다시 철제문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세 사람은 다급하게 일어서서 쏜살같이 나왔다.
후다닥-.
마치 인간에게 발견된 쥐들이 도망치는 것 같았다.
저들이 바깥으로 나간다 한들,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저들은 이미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병든 존재였다.
하지만 이수은은 해방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윤하는 말없이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수은은 하윤하에게 물었다.
“다음은 어디지? 서둘러야 해. 밤이 되면 몬스터가 활개를 치니까.”
하윤하는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하윤하는 아티팩트 능력자다.
한 번 본 물체나 정보를 머릿속에서 보관할 수 있다.
컴퓨터의 메모리처럼 그 정보를 기억해 놓았다가, 언제든지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윤하에게는 또 다른 능력이 있었다.
아티팩트가 ‘각성 1단계’로 진화해서 생긴 능력이었다.
그것은 바로 신체를 접촉한 대상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
컴퓨터의 USB처럼 대상의 신체를 몇 초 정도 잡고 있으면 대상의 기억이 자신의 머릿속에 전송되는 것이었다.
일전에 군주 박지수와 접촉했던 하윤하는 그녀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박지수가 감금해 놓은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고 있었다.
물론 이건 이수은이 기획한 것이다.
군주 몰래 말이다.
몰래 한다고 해도 칙령이 보장하는 군주의 명령을 어기면, 대상은 페널티를 부여받게 된다.
지금 이수은은 초 단위로 늙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칙령을 어김으로써 지난 한 달 동안 줄어든 수명은 무려 18년이었다.
그녀는 이제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수은은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두 여자는 다음 장소를 향해 걸었다.
무너진 도심을 걷고 있으면 온 도시가 고요했다.
이따금씩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소리들은 이곳에선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이수은을 바짝 쫓아오던 하윤하가 넘어졌다.
철푸덕-!
도로가 거친 탓이다.
아스팔트 바닥은 여기저기 솟구쳐 있었고, 막히고 파인 도로는 정글처럼 험난했다.
아직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하윤하가 걷기에는 어려운 길이었다.
“…….”
이수은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을 뿐, 하윤하를 일으켜 세워 주거나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금방. 금방 갈게요. 금방……. 버리지 말아 주세요.”
하윤하는 힘겹게 일어나 허겁지겁 이수은에게 다가갔다.
하윤하는 이수은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수은은 원래 박지수의 측근이었다.
원래 박지수가 이수은에게 전달한 마지막 명령은 하윤하를 여타 다른 성 노예와 마찬가지로 감금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윤하의 능력을 알게 된 이수은은 그녀를 이용해 오히려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기 시작했다.
둘의 동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일주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하으……. 후으…….”
윤하는 이수은 옆에서 절뚝거리며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수은은 다시 눈동자만 돌려 하윤하의 상처를 살폈다.
그녀의 양 무릎에서 새빨간 핏줄기가 종아리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이수은은 하윤하의 상처를 바라보다 이내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여자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너진 도심 속으로.
군주 박지수에 의해 감금된 성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두 여자가 걷는 동안, 일번가에선 강시온의 군대가 범계역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 * *
평촌역 상가.
이수은과 하윤하는 오늘 밤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밤이 되면 몬스터는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렇기에 이곳 동안은 만경과는 다르게 저녁이 되면 모든 전사들이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숨죽여 정황을 살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체불명의 몬스터들은 무너진 아스팔트를 어슬렁거렸고, 이수은은 숨을 죽인 채 놈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마침내 놈이 지나가자 이수은은 하윤하를 먼저 반대편 건물로 향해 뛰도록 했다.
하윤하가 안전하게 반대편 건물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서야, 이수은 역시 반대편 건물로 달려갔다.
물론 두 번째로 달려간 사람이 더 위험했다. 첫 번째가 달려가면서 이미 놈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퀘아아아아악!
타조처럼 목이 긴 괴생명체가 재빠르게 이수은 쪽으로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반대편에 도착한 이수은은 벽면에 숨어, 다시 숨을 죽였다.
-퀘아아아악…….
인간의 뇌를 부리로 콕콕 뚫어 뇌만 쏙 빨아먹는 타조 괴물.
놈들은 평촌역 인근에 서식하며 꽤 많은 전사들의 목숨을 앗아 간 골칫덩이였다.
이수은은 숨을 참아 가며 놈이 그냥 지나쳐 가길 기다렸다.
-퀘아아아악…….
다행히도 놈은 이수은을 발견하지 못한 채 무사히 지나갔다.
이수은은 숨을 크게 내쉬었고, 그제야 프론트 밑에 숨어 있던 하윤하가 그녀에게 후다닥 달려왔다.
하윤하는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수은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
벌떡-!
하지만 이수은은 그녀를 무시하곤 매몰차게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의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하윤하는 그곳에 남아 있다가 또다시 후다닥 그녀를 따라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긴장이 풀린 이수은은 지쳤는지 벽면에 기대었다.
하윤하는 통조림 캔 두 개를 들고서 지쳐 앉아 있는 이수은에게 가져갔다.
벽면에 기대고 있던 이수은은 눈동자만 떠 하윤하가 내민 통조림을 바라보았다.
고양이 사료용, 통조림 캔이었다.
“……후우.”
이를 본 이수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벽면에 머리를 기대었다.
먹고 싶지 않았다.
입맛도 없고, 삶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하윤하는 통조림 캔 뚜껑을 따고선 조심스레 이수은 앞에 놓았다.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지 않게 말이다.
그러고는 제자리로 다시 되돌아갔다.
두 여자는 대화하지 않았다.
특히나 밤이 되면 몬스터가 소리를 듣고 올까 봐 대화하지 않았다.
윤하는 조심스럽게 통조림을 따 손가락으로 떠먹었다.
그러면서 이수은의 눈치를 살폈다.
이수은은 목걸이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쥐고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흐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동안의 전사들은 어둠이 찾아온 저녁이 되면 잠을 자고, 해가 뜰 때까지 수면을 취했다.
지금 같은 절기에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자는 셈이었다.
통조림을 다 먹은 하윤하는 먼저 잠에 들었고, 이수은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접근해 윤하를 내려다보았다.
하윤하는 새우처럼 등을 굽힌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아직 추위가 많이 가시지 않은 날씨였다.
하윤하는 잠을 자면서도 몇 번이고 몸을 움찔거리며 떨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거나 입술을 오들오들 떨고, 이따금 기침을 토해 내기도 했다.
“…….”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수은은 천천히 하윤하에게 손을 뻗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