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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12화 (112/221)

제112화. 내기

함성 소리가 상영관 내 가득 울려 퍼졌다.

만경의 승리와 새로운 스타 탄생에 존재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이들 중, 유일하게 웃지 못한 이가 있었다.

“……왜죠?”

K는 화면을 바라보며 물었다.

절대자가 대답하지 않자, 이젠 뒤돌아 되물었다.

“이해할 수 없어요. 한낱 인간 주제에 어떻게 감히 내 시나리오를……! 게다가 능력 각성이라니, 절대자님. 저건 규정 위반 아닌가요?”

K는 몸을 떨며 절대자를 바라보았다.

절대자는 여전히 권좌에 앉은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끌끌 웃었다.

아주 달콤하고 매혹적인 웃음소리가 VIP실 내부에 울렸다.

절대자는 느린 박수를 치며 K를 칭찬했다.

짝-. 짝-. 짝-.

“아니야. 아주 훌륭하다. K. 넌 아주 탁월한 안목을 지녔어. 네가 저 남자를 선택한 것도, 이 전쟁을 이끈 것도,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도 모두 훌륭하다.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어. 실패든 성공이든 네가 만들어 낸 이 시나리오는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아-. 무슨 인간이 이렇단 말인가. 반신(半神)이 설계한 시나리오를 부수고, 신들이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업적을 이루다니. 하하하.”

절대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어가 K의 옆에 서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둘은 한동안 침묵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절대자였다.

“분하나?”

“…….”

“한낱 인간에게 시나리오를 간파당하여 분하나?”

“…….”

K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분합니다.”

“걱정 말거라, K. 네가 이룬 결과를 보려무나.”

열렬히 환호하는 존재들.

과정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K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K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계획은 그야말로 완벽했으니까.

박지수가 패배할 것이라는 결과는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았다.

만경의 비산동 방어 진지가 얼마나 견고한지는 상관없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동안의 플레이어가 만경의 방어 진지를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경에 새로운 각성자가 등장했다.

이는 명백히 규정 위반이었음에도, 절대자는 침묵했다.

그것이 첫 번째 패배의 원흉이고, 두 번째는 박지수의 침묵이었다.

‘왜냐, 왜. 도대체 왜. 왜. 왜.’

박지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K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실제로 박지수를 지지하던 존재들도 크게 실망하며 몇몇은 관람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박지수는 리그 안에서 핵심 능력을 지닌 자였다.

가장 큰 접전이 있을 마지막 라운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인물이었다.

K가 설정한 박지수의 메인 시나리오는 그렇게 짜여져 있었다.

K는 박지수를 아껴 3라운드까지 키웠으며, 강시온을 흡수해 그녀가‘발전’하도록 설계했다.

1라운드 중반, 당시 겁탈당하려는 위기의 박지수를 관리자가 개입하여 구했던 것도, 그녀를 시나리오의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박지수의 능력은 최강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최강의 효율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박지수는 자신의 쾌락 이외에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터라, 강시온을 제물로 그녀가 각성하길 바랐다.

그랬다면 박지수는 최상위 포식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K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는 지난 수천 년의 리그 역사 속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

K는 분했다.

바퀴벌레보다 못한 하등한 종족에게 자신의 시나리오가 완전히 막혀 버린 것이었으니.

그때 절대자는 말했다.

“내기 하나 하지.”

보기 드문 절대자의 제안이었다.

K는 금세 표정을 거두곤, 절대자를 올려다보았다.

독수리처럼 매서운 눈매가 K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3라운드 안에 네가 저자를 탈락시켜 보거라.”

“……그 말씀이라 함은?”

“만약 3라운드 내로 네가 저 남자를 리그에서 탈락시킨다면 상위 문자를 주겠다.”

“상위…… 말씀이십니까?”

A, B, C.

리그 내에서도 절대적인 입지를 얻고 있는 상위 문자 계급.

모든 관리자가 원하는 영역이며, 관리국의 엄청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리였다.

K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상위 문자는 수천 년 동안 이곳에 봉사한 관리자들조차 달지 못하는 계급이었으니.

게다가 강시온을 탈락시켜 보라는 절대자의 제안.

K는 그것이 절대자가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사실 관리자가 마음만 먹으면 리그 내의 인간 하나쯤 탈락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K는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반드시.”

관리자가 플레이어를 탈락시킨다.

이는 지난 수천 년의 리그 역사 속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신 절대자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대신 네가 진다면 영생을 내놓거라.”

절대자의 목소리에 K는 몸을 움츠렸다.

“기대하마.”

절대자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걸어갔다.

관리자에게 영생을 내놓으라는 말은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은 차원의 존재들마다 다른 가치를 지닌다.

바퀴벌레 한 마리의 목숨값과 강아지 한 마리의 목숨값이 다르듯.

인간의 목숨값과 관리자의 목숨값의 차이는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K는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질 수가 없었던 내기였기 때문이다.

“예.”

그녀의 새빨간 입술이 씰룩거렸다.

* * *

비산동 전투로부터 3일이 지났다.

만경은 재건 중이었고, 추격대는 안양천을 넘어 동안으로의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강시온의 부대는 박지수의 전방 기지였던 부흥고등학교를 함락시켰고, 이제 범계역 방어 진지 부근으로 선발대가 도착했다.

강시온은 일번가로 되돌아왔다.

시내를 복구 중인 시민들의 사이를 걸으며 질서부장에게 물었다.

“박지수는 찾았습니까?”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포한 적의 수는요.”

“대략 2천 정도입니다. 명령하신 대로 모두 학교에 가둬 놓았습니다.”

“수갑은요. 부족하지 않습니까?”

“부족한 물량은 케이블 타이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강시온은 질서부장과 함께 걸어가다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전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 두 손은 묶인 채, 10명 단위로 포박되어 있었다.

병사들은 그런 전사들을 조롱했다.

“퉤-!”

“빌어먹을 전사 새끼들!”

“짐승만도 못한 놈들. 자-. 목마르지. 입 벌려라~ 음료 들어간다~”

졸졸졸-.

“낄낄낄. 야-. 입을 조준해. 뭐 그리 힘이 없어?”

“조용히 해 봐. 이년은 눈빛이 싸가지가 없어. 눈에다가 쏘아 주지. 어어? 눈 감지 마? 감지 말라고. 아까 째려보던 것처럼 또 노려봐봐.”

포박당한 전사들은 아무 말 않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전사들에 대한 앙금이 깊이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그들을 해코지했다.

강시온과 질서부장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낄낄거리던 병사는 군주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야, 야, 야! 야! 군주님. 군주님!”

“어떠냐~ 시원하냐~ 낄낄낄. 뭐, 뭐?! 어엇! 구, 군주님!”

후다닥-.

방금까지 전사들을 조롱하고 있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강시온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혼이 날까, 몸을 떨었다.

“…….”

“…….”

하지만 강시온은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만 사로잡은 전사들의 포로는 추후 만경의 시민이 될 자들이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귀중한 노동원이 될 테니, 목숨만큼은 살려 두어야 했다.

동시에 병사들의 피로와 스트레스, 전사들에 대한 적대감과 울분도 풀어 줘야만 했다.

만약 저들이 저런 일을 벌이며 마음을 풀 수 있다면, 그렇게 두는 것이 맞았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병사들에 대한 보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선은 있어야겠지.

성범죄, 가학적인 폭력과 고문 등 선을 넘는 보복은 질서부장과 의논해 사전에 방지할 것이다.

포로들은 적절한 절차를 거친 후, 앞으로 만경 내에서. 아니, 이제 통합된 안양시에서 2등 시민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2등 시민은 기존 만경의 주민과의 차별을 두어 세력 발전의 노동력으로 사용될 것이다.

툭.

강시온은 병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고는 다시 걸어갔다.

* * *

전사들은 안양천을 넘어 동안구로 퇴각했다.

그들의 패배 행렬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군대의 기본적인 제식도 갖추지 못한 채, 꽁지 빠지게 도망치기 바빴기 때문이다.

전쟁은 이제 마지막에 도달했다.

남은 건 잔당 토벌과 박지수를 사로잡는 것뿐이다.

비산동 전투 승리 이후, 이틀이 지났다.

만경의 전쟁 피해 현황은 대강 정리가 되었다.

●총사상자 2,316명:

전사자 1,059명, 부상자 756명, 실종 501명.

●피해 현황:

오우거 1마리, 석궁 및 활 103개, 볼트 및 화살 4,512발, 돌격 무기 1,045개, 화염병 854개, 방패 89개.

이렇듯 만경의 사무관들이 정확한 집계를 낼 수 있었던 건, 질서부장의 타고난 업무 능력 덕분이었다.

그녀가 사전에 무기와 자원의 정확한 수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전투 이후에는 없어진 양만큼 차감해 계산할 수 있었다.

이 정보는 곧장 군주 강시온에게 전달되었다.

“부상자는 대부분 전투 불능 상태로 생사를 오가는 이도 많습니다.”

“…….”

강시온과 질서부장은 건물에 부딪혀 죽어 버린 오우거의 사체 앞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로서 가용 가능한 병력은 대략 3,500명이고, 남은 병력들은 현재 만경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중입니다.”

팔랑-.

시온은 차트에 끼워진 종이를 넘기며 계속해서 보고를 들었다.

그의 주위로는 호위들이 가득했다.

혹시 모를 적의 저격병으로부터 군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최명준 총대장이 현재 비산을 넘어 범계역 인근까지 정예대를 이끌고 진격한 상황이며, 그 뒤로 진재희 씨가 대기 중입니다.”

팔랑-.

시온은 다시 종이를 넘겼다.

사망자 명단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 역시도 질서부장의 솜씨였다.

질서부장의 직속 사무관들만 해도 30명이 넘는다.

사무관들은 이처럼 세력에 속하는 모든 관리 사항 및 정보들을 취합하고, 종이에 그 정보들을 적어서 군주에게 보고를 올린다.

그들이 이렇게 방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었던 건, 경찰서 안에 남아 전투 대신 사무를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재공격은 언제 하시겠습니까?”

질서부장이 시온에게 물었다.

시온은 차트를 다시 덮어 그녀에게 건넸고, 질서부장은 시온에게서 차트를 공손히 받았다.

시온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장 해야죠. 별문제 없을 겁니다. 동안은 이제 괴멸 수준이고, 더 이상 우리 공격대를 방어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일주일 안으로 모조리 섬멸하고, 박지수의 목을 가져올 겁니다.”

“……차라리 항복을 받아 내심은 어떠십니까? 이 이상의 민간 피해는 향후 세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무리를 줄 겁니다.”

질서부장의 의견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편이 가장 좋겠죠. 하지만 박지수가 항복할 것 같진 않습니다.”

질서부장은 시온의 말에 납득했다.

그녀 역시 박지수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박지수는 결코 쉽게 남에게 고개를 조아릴 만한 인물이 아니다.

끝까지 항전하며 범계를 지키려고 들 것이다.

좋은 말로 하면 나름대로의 책임감 있는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고집이 센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지수가 어떻게 하든 소용없다.

강시온은 장담했다.

전쟁은 이제 끝이라고.

“걱정 마십시오. 전쟁은 끝입니다. 부장님은 이제 세력 재건에 힘써 주세요. 저는 1,000여 명의 대원들과 범계를 공략할 겁니다. 남은 병사들은 원래 위치로 돌려보내 부장님의 뜻대로 다시 노동을 시작해 주십시오.”

전쟁이 끝난 뒤에, 군주에게 돌아오는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전쟁 피해 복구와 지지율 관리이고.

두 번째는 동안을 접수함으로써 얻는 막대한 전쟁 이득일 것이다.

영토 역시 두 배 이상 커질 테고, 자원, 인구, 무기 등 그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K에게서 약속받은 ‘동생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온도 꾸물거리고 싶지 않았다.

토벌은 곧바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희소식은 꽤 이른 시간에 들려왔다.

멀리서부터 병사 한 명이 시온에게 뛰어와 무릎을 꿇었다.

“박지수…… 숨은 장소. 찾은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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