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산처럼 거대한 존재 (1)
우릉-!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난 오우거에서 재빠르게 내려 단지 내로 빠르게 걸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동안의 전사들이 죽어 있었다.
온몸이 불탔거나 전기에 타 버린 시체들뿐이었다.
몇몇 살아남은 전사들은 안양천으로 도망치고 있었고, 난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최명준에게 명령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자들은 사로잡고, 저항하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
“예. 알겠습니다, 형님. 맡겨 주십시오.”
최명준은 과도를 움켜쥔 채,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이곳에 파견된 지원 병력은 총 300명이다.
최명준은 이 300명을 이끌고, 남은 잔당들을 토벌할 것이다.
초기 목표에서 변한 건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다.
만에 하나, 2군 지휘관의 3,600 결사대가 이곳 비산동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아주 좋은 쪽으로 말이다.
난 불타는 아파트 단지를 향해 달려갔다.
전사들이 단지 안을 좀비처럼 어슬렁거리며 신음을 내뱉고 있다.
얼굴이 불타, 피부가 흘러내리고 있던 전사 하나는 나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죽여 줘…….”
오히려 빨리 죽기를 원하는 전사가 대부분이었고, 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었다.
구체는 사방에 흩어졌다.
구체에 맞은 전사들의 살갗은 마치 두부처럼 쉽게 뚫렸다.
후두두두둑-!
전사들은 온몸에 벌집이 난 채로 죽어 갔다.
나는 멈추지 않고 적들을 차례차례 죽여 나갔다.
이곳에는 시체 타는 냄새와 비명 소리, 공기 중에 휘날리는 불씨가 가득했다.
고기 타는 냄새와 찢어질 듯한 비명과 신음,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
바닥을 가득 메운 시체들은 자꾸만 발에 걸렸고, 입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뜨거웠다.
달리는 내내, 나의 오감(五感)은 이곳이 전쟁터임을 실감케 해주었다.
그리고 또다시 건물이 흔들렸다.
쿠구궁……!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건물 전체가 진동했다.
그때, 전방에서 웬 빨간 막대가 날아들었다.
휘릭-. 핑!
“?!”
꽤 위협적이었지만 내 주위를 공전하던 구체들이 날아드는 막대를 튕겨 냈다.
난 가던 길을 멈추고 막대가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뚱뚱한 남자가 있었고, 놈은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아-! 악악. 아파. 하아. 쇠구슬? 쇠구슬! 너 뭐야!!!”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게, 배가 산만큼 나온 남자였다.
빨간 막대의 정체는 그 남자의 기다란 혀였다.
놈은 개구리처럼 혀를 단단하게 굳힌 채로 길게 내뻗을 수 있었다.
동안의 또 다른 플레이어였다.
나는 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불에 내성 있는 놈? 아니, 그보다 약한 놈이다.’
어떻게 봐도 비산동을 초토화한 ‘불의 플레이어’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졸개일 터였다.
놈은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도발하기 시작했다.
“아쉽다-. 일격에 주, 죽일 수 있었는데. 너, 너. 그거 아주 잘못된 선택이야. 곧 있으면. 내 앞에 무릎 꿇고는 제발 죽여 달라고 사정하게, 될걸. 이, 이 몸은 박지수 군주님의 최측근 심복. 김, 김용표 님이시다. 하하하! 지금이라도 무릎 꿇으면……!”
휘릭-. 휘릭. 츄릅.
남자의 혀가 꼬불거리며 다시 입 속으로 들어갔다.
놈은 계속해서 호탕하게 웃어 댔고, 난 아무 말없이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뻗었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꽈악-.
그러자 허공에 아무렇게나 퍼져 있던 구체들이 놈을 향해 빠르게 모여들었다.
휘릭-. 슈슈슈슈슉-.
“어? 어라?”
개구리 남자는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슈슈슈슉-. 꾸직!!!
“…….”
구체는 순식간에 한데 뭉쳐, 놈을 압착해 버렸다.
잔뜩 망치질 당한 떡처럼 전신이 눌린 놈은 억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쓰러져 죽었다.
쥐었던 주먹을 피자, 구체는 다시 흩어져 내 주위를 공전했다.
조금 전 기술은 응축.
흩어져 있는 구체들을 지정한 중심점으로 모여들게 하는 공격 기술이다.
‘너무 약해. 이놈은 불의 플레이어가 아니야.’
그리고 ‘군주의 최측근’이라고 말하고 다니려면, 적어도 진재희의 전투력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 개구리 놈은 허세만 가득한 졸개임이 확실했다.
‘박지수의 최측근이라면 적어도 비산동에 있진 않겠지.’
나는 다시 불의 플레이어를 찾기 위해 발길을 서둘렀다.
분명 결사대 내부 인원일 것이다.
아파트 단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힘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플레이어라면 절대 놓쳐선 안 될 인재임에는 확실했다.
하지만 서둘러야 했다.
이렇게 힘을 마구잡이로 쏟아붓고 있다면 분명 궁지에 몰렸다는 소리일 테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소리가 가까워졌어. 208동. 아니 207동 쪽인가.’
나는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신축 아파트 단지 내부에는 인공 하천이 있다.
그리고 그 인공 하천에는 전사들의 시체가 가득 쌓여 있었다.
난 그 전사들의 시체를 넘어 곧장 208동으로 향했다.
조금씩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방화복을 착용하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의 온도는 높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먼 골목 사이로 새빨간 빛이 방출되고 있었다.
나는 곧장 골목을 돌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했다.
“……!”
화르르르르르르륵-!
아파트 전체가 마치 장작이 타는 것처럼 불타고 있었다.
그 불들이 내뿜는 빛 때문에 눈부실 정도였다.
붙타는 아파트는 206동, 정현수가 대장으로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타고 있으니, 아마도 206동의 병사들은 전멸했을 것이다.
그리고 힘은 바로 옆 동인 208동에서 느껴졌다.
1층 로비 안쪽으로 전사들의 시체가 간간이 보였다.
난 조심스럽게 208동 로비로 들어갔다.
“…….”
과연 그곳엔 전기에 타 죽은 전사들의 시체가 복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바스락-.
살짝 밟기만 해도 으스러질 정도였다.
그때 벌어진 엘리베이터 문틈에서 여자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 * *
“커헉. 허어억. 가아아아악! 아아아악!”
“하아. 하아.”
정현수의 손아귀에 쥐어진 권정연은 전신이 감전된 채, 부들거렸다.
정현수는 손에 힘을 풀었고, 동안의 플레이어 권정연은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다.
쿵. 쿵, 쿵! 콰직!
권정연은 엘리베이터 통로 내부 벽면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힘없이 낙하했다.
정현수는 눈동자만 내려 저 아래에 피로 얼룩진 권정연을 바라보았다.
권정연은 뼈가 뒤틀린 채, 그곳에 쓰러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마치 토마토를 떨어뜨린 것처럼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정현수는 그녀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했다.
“하아. 하아. 후으. 흐.”
정현수는 숨을 불규칙하게 내뱉다가 이내 아래로 떨어졌다.
휘오-. 쿵!
그가 떨어진 곳은 엘리베이터 통로 바닥, 권정연의 바로 옆이었다.
머리가 핑 도는 듯했고, 찢어진 상처에선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정현수는 최후를 직감했다.
“흐으. 흐. 푸흐읍!”
한껏 몰아쉬던 그의 숨은 곧 울음으로 뒤바뀌었다.
만약 이 상태로 기적적으로 살 아남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현수에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버지가 죽었고. 이제 자신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그 허무함과 절망감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끄으으…… 끄흐으으……!”
소년은 울음을 꺽꺽 참아 가며 짙은 심연 속에서 통로의 상층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세상은 멸망해 버렸고, 마지막 남은 가족은 죽어 버린 지금.
정현수에겐 아직 어른이 필요했다. 아직 가족이 필요했다.
그 모든 것을 잃은 지금은 끝이나 다름없었다.
엘리베이터 통로 내부는 그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슬프지?”
그 순간, 정현수는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눈동자만 겨우 돌려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권정연은 아직 살아 있었다.
육체는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 군데군데 뼈와 근육이 드러나 있었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지만, 그와 나란히 누운 채로 말을 이었다.
“힘들지……? 심장이 좀먹는 것처럼. 인생살이 진짜 X같지? 예전에 난 진짜 자살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됐거든? 어떻게 얻은 인생인데…… 그냥 내버리다니. 아깝잖아!”
권정연은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근데…… 지금은 말이야? 조금 알 것 같기도 해.”
그러고는 피 묻은 자신의 손을 쓰러져 있는 정현수에게로 뻗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바로……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죽는 게 더 편한 거지! 아하하하……! 어차피 난 시간만 지나면……! 재생하거든? 아하하하……! 근데 넌 못하지? 너…… 보니까.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고. 회복하는 방법도, 성장하는 방법도 모르잖아…….”
권정연은 엉금엉금 기어와 정현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아무리 체력이 바닥이 난 권정연이라고 할지라도 힘없는 소년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권정연은 피로 얼룩진 이빨을 드러내며 실실 웃어 댔다.
그러면서 소년의 목을 움켜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이곳은 추락한 엘리베이터의 천장 위.
그 위에서 여자는 기이하게 웃어 대며, 소년을 죽이고 있었다.
“누나가…… 너 편하게 해 줄게. 우리 같이 지옥에서 만나……! 거기에선…… 우리 친구하자……? 응……?”
“크흐…… 우우우으…….”
정현수는 손을 뻗어 권정연의 얼굴을 밀어냈다.
하지만 권정연은 멈추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참아. 5분? 아니, 2분만……!”
꾸우우우욱…….
정현수는 고통스러운 듯 숨을 내뱉었다.
권정연은 반쯤 근육이 드러난 얼굴로 광기에 사로잡혀선 박 터지게 웃어댔다.
“푸하하하……! 아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결국 내 승리야! 내가 이겼다고! 너 최소 A급 아티팩트 사용자지……? 난 말이야……? C급이거든? 근데 X나게 노력해서…… 이렇게 강해진 거야…… 하하하…… 하하하하!!!”
정현수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갔고, 이젠 권정연의 웃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정현수가 권정연을 밀어내던 손에 힘이 점점 풀렸다.
이제 막 그의 숨이 끊기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덥석-!
* * *
“……!?”
“…….”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나온 시온은 권정연의 목을 움켜쥐었다.
엄청난 힘으로 그녀를 집어 든 시온은 그대로 권정연을 벽면으로 밀어붙였다.
쾅-!
그러고는 그녀의 입을 한 손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입을 쩍 벌린 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를 보면서 강시온은 낮고 어두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동의해.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삶을 포기하려고 들었으니까. 나도 죽는 것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최악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강시온의 구체가 허공에 하나둘 생겨나더니 이내 알갱이처럼 작아졌다.
응축.
구체들이 한데 모여 권정연의 입 속으로 사정없이 들어갔다.
그에 따라 그녀의 볼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강시온은 말을 이었다.
“근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이제 권정연의 목부터 가슴, 배까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강시온의 구체가 그녀의 식도부터 내장까지 침투해 가득 채운 것이었다.
“그건 적어도 애 앞에서 할 말은 아니라는 거.”
권정연은 괴로워하면서도 시온의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강시온의 눈동자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강시온은 권정연 같은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
빌어먹을 정도로 X신 같은 가치관을 아이에게 주입하는 인간들.
어른이 될 자격조차 없는 이들 말이다.
강시온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제 어디서나 동생 강준호를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
준호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라도 만회하기 위해서.
강시온의 손은 여전히 권정연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험악하게 말을 맺었다.
“……곱게 뒤져.”
말을 마친 시온은 가볍게 손바닥을 펼쳤다.
분출.
한데 모여 있던 구체를 단번에 사방으로 보내며, 마치 수류탄의 파편이 터져 나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기술이다.
응축에 이어지는 연속 공격 기술로 그 파괴력은 어지간한 폭탄을 능가한다.
강시온이 분출을 사용하자 입과 내장에 구체를 가득 머금고 있던 권정연의 몸이 폭발했다.
퍼벙-! ……후두두두둑.
살점들이 사방으로 터지면서 권정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시온은 분노가 가시지 않았는지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끝났다.
비산동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던 동안의 플레이어는 시온의 손에 의해 죽었다.
결국 시온이 예측하지 못한 만에 하나의 사태가 벌어졌다.
비산동의 결사대는 승리했고 살아남은 것이다.
엘리베이터 천장 위에 쓰러져 있던 정현수는 흐느끼면서 강시온을 불렀다.
“군주님……!”
정현수의 목소리는 애처로웠다.
엘리베이터 통로는 소년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를 보던 시온은 이내 말했다.
“……집에 가자.”
군주의 위로 섞인 나긋한 목소리에 정현수는 눈물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예.”
현수는 숨을 크게 마시고, 다시 말했다.
“……네.”
* * *
비산동 방어전 역시 만경의 승리로 끝났다.
유일하게 강시온의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였다.
게다가 강시온은 새로운 A급 플레이어도 영입하게 되었다.
전쟁은 이제 끝났고, 소탕전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한편, 경기도 의왕시 의왕역.
사람과 괴물의 시체가 가득 쌓인 이곳에서, ‘소년’은 고개를 들어 관리자 ‘J’를 바라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