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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09화 (109/221)

제109화. 정현수 (3)

어두컴컴했던 밤하늘이 일순간에 번쩍거리더니 번개가 쳤다.

동시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원래 모든 자연 현상에는 전조가 있다.

그런데 지금 내리는 소나기에는 일말의 전조조차 없었다.

번개는 비산동에 계속해서 떨어졌고, 이내 다시 동안구를 향해 쏘아졌다.

한두 번 그랬다면 자연 현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눈앞의 번개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다.

비산동에서 동안구로 쏘아진 번개를 확인한 시온은 분명 플레이어의 소행이라고 판단했다.

시온은 대장 오우거의 등에 탄 채,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힐끗 최명준을 돌아보았다.

“플레이어?”

“제가 있을 땐 없었습니다.”

최명준은 고개를 저었다.

‘번개를 동안구로 쏜다고? 그럼 아군인 건가?’

최근 들어 안양시 시외의 플레이어들이 가끔 시내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말썽을 부린 적도 있었고, 조용히 있다가 그냥 나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세력에 속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군주와의 마찰도 적은 편이었다.

시온은 일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최현지를 통해 들은 것도 있었고, 첩보원을 파견하여 알아낸 것도 있었다.

시온은 지난 1년 동안 계속해서 의왕에 첩보원을 보내 은밀하게 동생에 대한 수색을 이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 내 저렇게 번개를 쏘아 대는 플레이어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나저나.’

저렇게 단시간에 능력을 모두 쏟아 내면, 필시 플레이어는 방전이 되어 쓰러질 것이다.

그랬기에 플레이어는 자신의 능력을 필요한 상황에만 적절히 사용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런데 저 플레이어는 맞지도 않을 번개들을 동안구를 향해 마구잡이로 쏘아 대고 있었다.

초보인 건 확실하고.

만경을 거쳐 간 플레이어도 아니고.

그렇다면 누구인가.

확실한 건, 비산동에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다.

쿵, 쿵, 쿵, 쿵!

군주를 태운 오우거는 발 빠르게 비산동을 향해 내달렸다.

* * *

비산동 파미안 아파트 상공에 소년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쿠광-! 콰지지지지지직!

단지 내에 길고 짧은 번개가 내리쳤다.

소년의 분노가 넘치고 넘쳐서 힘을 제어하지 못해 생겨난 것이었다.

현수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번개를 어두컴컴한 동안구를 향해 쏘고 쏘고 또 쏘았다.

그런 정현수를 올려다보는 만경의 병사들이 소리쳤다.

“현수야……!!!”

“정현수!!! 진정해!!!”

“206동 대장님!!!”

하지만 분노한 정현수에게 타인의 말이 들릴 리가 만무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205동 대장은 소리쳤다.

“바깥에 나와 있는 인원들 전부 안으로 대피하라고 해! 한 명도 빠짐없이!”

“예! 알겠습니다.”

동 대장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하나둘 계단 층으로 뛰어 들어갔다.

205동 대장은 다시 하늘에 떠오른 정현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계속해서 쏘아 대는 번개를 보며 205동 대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정현수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동 대장은 보고야 말았다.

터억-.

“……아.”

아파트 옥상 외각 난간에 올려진 검게 타 버린 손을.

검은 손은 점점 난간을 타고 올라오더니 이내 옥상까지 올라왔다.

정 씨 아저씨와 함께 떨어져 죽은 줄만 알았던, 동안의 플레이어였다.

놈은 목뼈가 부러져 고개는 좌로 완전히 꺾인 채로 중얼거렸다.

“아…… 화나네.”

우둑-!

그러곤 곧장 목뼈를 바로잡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안의 플레이어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쳐 죽여 버리겠어.”

타앗-!

플레이어는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허공의 정현수에게 날아들었다.

* * *

정현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이성이 잡아먹혔다.

이성을 잃은 그는 아군 진형에다가 번개를 쏘아 대기도 했다.

그런 현수를 향해 동안의 플레이어가 날아들었고, 마치 괴물 같은 움직임으로 현수를 잡아챘다.

덥석-!

그러곤 반대편 거리를 향해 함께 날아갔다.

휘릭- 쾅!!!!

그와 함께 옥상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정현수는 곧장 고통스러운 듯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고통에 익숙한 동안의 플레이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정현수에게 걸어갔다.

이 일대에는 동안의 전사들이 가득 있었다.

그들은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내가…… 그냥 죽어 달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쳐드세요. 이 어린놈의 새끼야…….”

퍼억-!

플레이어는 곧장 달려 나가 정현수의 턱을 차 버렸고, 정현수는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왜……. 말을 안 쳐들어. 어?”

정현수를 노려보는 동안의 플레이어의 얼굴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근육과 피부, 내장이 재생되었고.

생머리부터 얼굴, 가슴, 허벅지, 골반, 종아리, 발바닥까지.

훼손되었던 신체들이 모두 회복되었다.

옷은 재생되지 않았지만, 그 외 그녀의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정현수가 고통스러워하자, 동안의 플레이어는 천천히 거리 한 편에 방치되어 있던 동안의 보급 수레로 다가갔다.

보급 수레에 있던 건 기름을 담은 플라스틱 통이었다.

“너 같은 새끼. 제일 마음에 안 들어.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움직이는 간사한 새끼들. 난 그런 놈들이 제일 싫었어.”

끼릭끼릭-.

그녀는 기름통의 뚜껑을 돌렸다. 그러고는 기름통을 자신의 정수리에 쏟아부었다.

마치 목욕물을 쏟아붓듯이.

이제 그녀의 온몸이 기름 범벅이 되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는 기름 덕분에 윤기가 돌았고.

입은 물론이고 엉덩이골 사이로 흘러내린 기름이 허벅지를 타고 내려가 발바닥을 적셨다.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

“어차피 결과는 같잖아. 이렇게 쳐 죽을 건데.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야?”

동안의 플레이어는 성냥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칙-.

성냥불이 타올랐다.

그녀는 그 성냥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좀 끝내자.”

그러곤 성냥불을 입으로 물었다.

마치 이쑤시개를 무는 것처럼.

그러자.

화르르르르르륵-!

그녀의 온몸이 불타기 시작했고 다시 피부와 근육, 머리카락이 녹기 시작했다.

동안의 플레이어, 권정연.

그녀는 불에 내성을 가졌지만, 영화 속 괴수처럼 불을 내뿜으며 사용할 순 없었다.

그래서 공격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가 이것.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근접전을 유도하는 것이다.

권정연의 온몸이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은 30분 내외.

15살 먹은 소년을 죽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소나기가 억세게 쏟아붓고 있었지만, 권정연의 몸에선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

정현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권정연을 노려보았다.

소년의 손에선 작은 스파크가 계속해서 튀고 있었다.

권정연은 물었다.

“할 수 있겠어? 날 이길 수 있겠냐고? 이길 수 없다면 괜히 힘 빼지 마.”

“……죽여 버릴 수 있어.”

“과연? 네가? 날?”

“……죽여 버릴 수 있어.”

“생각해 보자. 만약 내가 질 만큼 네가 강하다면, 난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고 자살해 버려서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겠지.”

“……죽여 버릴거야.”

권정연은 턱에 손을 대고 고민했다.

이젠 백골만이 남은 아래턱에 손을 댄 채로 말이다.

그러곤 결론을 내렸다.

“불가능…… 할 텐데?”

“죽여 버릴거야.”

“또 귀찮게 구네. 그 애비에 그 자식인가?”

정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권정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난…… 대답 안 하는 새끼들도 마음에 안 들어……. 귀를 처먹었나!”

타앗-!!!!!!

말을 마친 권정연은 그대로 정현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불타는 주먹이 정현수의 오른뺨에 적중했다.

퍼억-! 쿠다다다당! 쾅!

정현수는 데굴데굴 구르며 날아가, 전사들에 의해 함락당한 아파트 건물 외벽에 부딪혔다.

그러자 거대한 구멍이 나면서 그 안에 있던 전사들이 놀라 밖으로 달려 나왔다.

하지만 권정연의 공격에도 정현수는 끄떡없었다.

정현수는 콘크리트에 처박힌 채, 실실 웃었다.

“때려 줘서 고맙네……. 덕분에 정신이 말끔해지는 기분이야…….”

그는 또다시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파트 내부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번개를 사용하기 위해선 외부에 있어야만 했다.

또 외부는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권정연에게 불리한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정현수는 내부로 들어갔다.

“술래잡기…… 하자는 건가?”

권정연은 정현수가 들어간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다 이내 달려갔다.

어두컴컴한 아파트 내부로.

* * *

정현수는 무언가를 쥐고선 아파트 내부를 달렸다.

101호 계단부터 2층 계단까지.

2층에 도착하면 2층 전체를 돌아다니다 다시 3층으로 움직였다.

그 안에서 번개를 피하고 있던 동안의 전사들은 깜짝 놀라 정현수를 공격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상대하기엔 정현수의 스피드는 압도적이었다.

정현수는 빠르게 놈들을 제압하고는, 더욱 빠르게 아파트 내부의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그 뒤로 권정연이 뒤따랐다.

“포기해! 푸하하하하-!”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현수는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도망갔다.

계단 층.

동안의 전사들과 만경의 병사들의 시체가 불타 검은 재가 되어, 방치되고 있던 이곳을 정현수는 오르기 시작했다.

3층에서 16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무너진 엘리베이터를 통해 16층에서 6층으로 내려왔다.

정현수의 행동은 권정연의 말처럼 정말 술래잡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정현수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동안의 전사들은 두 플레이어가 아파트 내부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들이 건드릴 수도 없을 만큼 플레이어는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정현수와 권정연은 아파트 내부를 계속해서 돌고 돌았다.

그러면서도 권정연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정현수가 단순히 자신을 유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렇게 유인한다고 해도 이제 갓 플레이어가 된 정현수를 권정연이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는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만경의 플레이어가 죽는다면 만경이 입는 타격은 크다.

권정연은 여기서, 바로 이곳 비산동에서 정현수를 죽일 생각이었다.

빠르게 정현수를 죽이고 이젠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편, 정현수는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꾸우우욱!

16층에서 17층으로 넘어가는 엘리베이터 통로.

줄은 더 이상 당겨지지 않았다.

정현수는 엘리베이터 통로 벽면에 매달려 다시 한번 ‘그것’을 있는 힘껏 당겼다.

드드드드드득!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젠 한계였다.

“후우…… 후우…… 흐으.”

이만하면 되었다.

그때.

콰앙-!

3층 엘리베이터 문이 박살이 나고, 그곳에서 권정연이 걸어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2층까지 추락해있어 지금 이곳은 거대한 굴뚝처럼 휑한 공간이었다.

권정연은 고개만 쳐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16층에서 정현수가 아슬아슬하게 통로 벽면에 매달려 있었다.

현수를 바라보며 권정연은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쥐새끼.”

텅! 텅! 텅!

권정연은 엘리베이터 통로 벽면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높이에 다다르자, 권정연은 곧장 뛰었다.

투웅-!

그녀는 다시 허공에서 정현수를 마주하고는 그의 목을 잡아챘다.

콰앙-!

권정연의 손에 잡힌 정현수는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었다.

자신의 목이 그녀에 의해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정연은 한쪽 팔로 벽면에 구멍을 내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정현수는 권정연의 팔에 붙잡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둘은 이제 벼랑 끝에 매달려,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권정연은 실실 웃었다.

“봐. 불가능할 거라고 내가 말했지? 시간 낭비라고.”

그때 정현수 역시 그녀를 따라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현수의 손에는 전깃줄이 들려 있었다.

전깃줄을 바라보는 권정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

권정연은 잠시 생각했다.

왜, 전깃줄이 여기에 있을까?

언제부터 쥐고 있었던 것인가.

정현수와 권정연.

둘의 얼굴은 상당히 가까웠고, 둘 다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현수는 조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들며 권정연을 노려보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파트에…… 군주님의 명령대로…… 온 도시의 전깃줄을 끌어다 사용했어.”

“뭐?”

“……전깃줄을 밧줄 대신에 방어 진지 구축에 사용했다는 거야.”

“…….”

“그럼 이 건물 내부에 전깃줄이 얼마나 길까……?”

콰직-.

전깃줄을 움켜쥔 정현수의 손아귀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권정연은 두려움에 가득 찬 눈동자로 소년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수십 줄기의 전깃줄이 소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정현수가 아파트를 계속해서 돌아다닌 이유.

사실 그는 거미처럼 거미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먹잇감이 다가오도록 유도하고 놈이 궁지에 몰렸을 때, 정현수는 기어이 이빨을 드러냈다.

“말해 봐, 얼마나 길까? 말해 보라고. 대답하라고. 대답 안 하는 사람이 가장 짜증 난다며?”

그때 번개가 내리치며 비산동 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광-!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 정현수가 입에 머금고 있던 피를 튀겨 대며 말했다.

“뒤져……. 괴물 새끼.”

그 순간, 다시 한번 거대한 번개가 비산동에 내리쳤다.

콰직-! 콰과과과광-!

그와 동시에 그 번개는 전깃줄을 타고 주변의 모든 것을 감전시켰다.

이 아파트 내부에는 권정연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전사들도 있었다.

일망타진(一網打盡).

그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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