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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07화 (107/221)

제107화. 정현수 (1)

“현재까지 확인된 만경의 사망자는 778명이고 부상은 1,521명, 실종은 312명입니다. 부상병 중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습니다. 물론 이는 비산동 사상자를 제외한 수치입니다.”

1군 지휘관은 계속해서 내게 보고했다.

예상보단 적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적어도 일차 방어전에 나선 전면 부대의 사상자는 사천을 넘길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전쟁 초반 적들의 공세는 가장 컸을 테니.

비산동의 피해를 합해야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있을 테지만, 일번가에서의 전투는 그야말로 만경의 대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의도대로,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병사들도 잘 싸워 주었고.

이제 남은 건 동안의 본진으로 쳐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전쟁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마 노동자들 중, 절반 이상이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전쟁이 끝난 뒤엔 만경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터.

난 전장을 걷다, 한 편에 마련된 간이 진료소를 바라보았다.

동물 병원으로 쓰이던 1층 진료소에는 간판이 간당간당하게 붙어있었다.

그 진료소에서 곡소리와 신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리그 개최 이후, 살아남은 만경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의료 장비는 부족했지만, 그들은 최대한 노력해서 진료했다.

하지만 그들이 노력한다 한들, 중상을 입은 자들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조그만 상처에도 쉽게 무너지고 회복력도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히 떨어진다.

약하기 때문에 과학과 의학을 발전시켰다.

게다가 이곳은 전쟁터였으니, 시설은 열악하다 못해 최악.

환자를 눕혀 놓은 침대나 매트리스도 아파트 일대에서 수집한 것들이었고, 그마저도 해지고 먼지투성이였다.

어쩌면 의사들의 치료 행위는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치료한다고 해서 상처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병자의 몸으론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테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치료는 해야겠지.’

보여 주기식에 불과했지만, 치료를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에 도움이 되니까.

환자뿐만 아니라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도 지쳐 있었다.

전쟁은 이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동안의 전사들은 범계역으로 도망갔고, 우리 병사들은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난 1군 지휘관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오우거와 방어군 300명을 전진시켜 최전방에 배치하세요. 나머지 병력들에게는 특식과 휴식을 부여하세요.”

“받들겠습니다.”

지금껏 만경의 성벽을 지키고 있던 방어군 300명은 15살 아래의 미성년자와 70세 이상의 고령층으로 꾸려진 예비대다.

방어 예비대로 명명된 이 부대는 대부분이 아이들로 이뤄졌다.

사실 고령층의 대부분이 2라운드 혹한을 치르며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죽었고, 그나마 아이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전 같았다면 유치원에 가거나 초등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은 여기선 병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그러니 별수 없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만경 내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노동의 의무를 짊어져야 했다.

이제 방어 예비대에 속한 아이들은 본대의 휴식을 위해 최전방에서 경계를 설 것이다.

1군 지휘관은 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군주님. 방어 예비대, 도착했습니다.”

난 지휘관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른 한 명과 노인 몇 명, 그리고 아이들 300명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모두 10살 전후의 아이들이었다. 또한 저마다 창과 방패를 쥐고 있었다.

부대는 단순하면서도 효율성을 따져 편성되었다.

아이들은 2인 1개 조로 움직이며 한 명은 방패를, 다른 한 명은 단검을 쥐고 있었다.

최명준의 전투 훈련을 바탕으로 아이 둘이 조를 짜면 성인 한 명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이끄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줄 맞춰 서 주세요. 떠들지 말고요-.”

“선생님. 저 쉬 마려워요.”

“야-! 발 밟지 말라고오!”

“에잇! 에잇!”

방어 예비대를 이끄는 건, 전직 유치원 교사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고선 어수선하게 정렬해 있었다.

“선생님. 우리 어디 가요?”

“선생님-. 선생님-!”

“쉬 마려…….”

“킁-. 배고파.”

서로 손을 꼭 쥔 채, 어리둥절하며 두리번거리는 모습.

하지만 아이들이 쥐고 있는 방패와 단검, 보호구를 보면 참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유치원 교사는 그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아시겠죠? 건물 사이에서 무언가 움직이거나-. 나쁜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선생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말해 주세요. 알겠죠?”

“네에-!”

아이들은 입을 맞춰 대답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은 절대 나서지 말고 먼저 선생님한테 말하기. 짝꿍 손을 꼭 잡고 있기. 선생님한테 말하지 않고 어디 놀러 다니지 않기. 어디 아프거나 화장실 가고 싶으면 꼭꼭 짝꿍이랑 같이 다니고, 그럴 때도 선생님한테 말하기. 약속해 줄 수 있죠?”

“네에-! 약속!”

천진난만한 대답.

저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지 모를 것이다.

그저 어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며 움직이는 존재들.

결국 내가 명령을 내렸기에, 저 아이들이 최전방으로 나서는 것이겠지만.

난 그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지휘관에게 추가로 명령했다.

“후방 전투 병력 100명도 추가로 배치시키세요. 수리산 방어대 있죠? 함정 매설조.”

“……예?”

예정에 없던 명령에 지휘관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비록 하루밖에 되지 않는 임무였지만, 아무래도 아이들만 경계 근무를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 * *

일번가에서 연이어 승전보가 울렸음에도, 비산동의 상황은 달랐다.

불타는 아파트 단지.

동안은 불에 내성을 지닌 플레이어를 선두로 총공세를 이어 나갔고, 이미 10여개의 동이 동안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불타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사람들의 비명은 하늘 가득 울렸다.

206동을 맡고 있는 소년 대장 정현수는 손가락 근육이 끊어지도록 활의 시위를 당겼다.

206동 13층까지의 방어 진지는 이미 적에게 넘어갔고, 이젠 14층과 15층이 놈들의 공략 대상이 되었다.

좁디좁은 14층 계단 방어 진지에 양 진형의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206동 대장, 정현수는 다시 시위를 당겼다.

그의 활시위는 만경 병사의 방패를 움켜쥐고 끌어내리고 있는 전사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팽-! 촤악!

현수의 활시위가 끊어졌다.

덕분에 놓쳐버린 활시위가 현수의 오른뺨과 눈을 강타했다.

“크학……!”

오늘만 하더라도 벌써 200번이 넘게 화살을 쏘았다.

활시위가 끊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현수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피는 눈망울을 따라 볼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으으……! 으으……!”

현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시야는 온통 새빨갰다.

그 새빨간 시야 속에서 만경의 병사들은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곧 14층 방어 진지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와르릉-!

칼과 둔기를 든 전사들이 단숨에 밀려 들어왔고, 방어 진지가 무너진 순간 병사들도 하나둘 쓰러져 갔다.

그때까지도 현수는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몽키스패너를 쥔 전사가 현수에게 달려들었다.

“으랴악!”

하지만 소년의 아버지가 먼저였다.

퍽-!

“현수야!”

“…….”

전사의 몽키스패너 공격을 등으로 받아 낸 현수의 아버지는 전사를 밀쳐 버리곤 현수를 단숨에 업었다.

전투는 치열했지만, 현수는 쉽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그를 업은 아버지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그때 현수가 아버지의 옷자락을 당겼다.

현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싸워야…… 해……. 내려…… 줘…….”

“싸우긴 뭘 싸워! 피가 너무 많이 나! 우리 이제 의사 없으니까! 더 싸우면 안 돼! 아빤. 너까지 잃으면 못 산다!”

고집스러운 건, 현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아…… 빠……. 아빠……제발…….”

“이 애비 말 좀 한 번이라도 들어!”

아버지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17층, 18층, 19층, 20층.

부자(父子)는 방어 진지를 넘고 넘어, 방어 주둔군들을 지나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가 21층을 지나갈 때였다.

콰랑-! 퍼버버벙-!

아래층으로부터 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한 병사가 소리쳤다.

“플레이어다……! 그 괴물 새끼가 왔어……!!! 으아아아악……!!!”

“까아아아악!”

“커헉! 아아아악!”

병사들의 비명 소리는 계단 층 내부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 비명 소리에 병사들은 지레 겁먹었고, 현수 아버지는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부자(父子)는 기어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 한 명이 깜짝 놀라 현수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도, 동 대장님……! 어딜 가시렵니까?!”

“비켜! 우린 가겠어.”

현수 아버지는 자신들을 막아서는 병사들을 밀치며 교량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병사들은 그를 말렸다.

“아, 안 됩니다!”

“우리에겐 동 대장님이 필요합니다!”

“두 분만 도망치시겠다는 겁니까?!”

“비키게! 난 살려야겠어! 싸우는 거라면 내가 아들 몫까지 싸우겠네!”

병사와 현수 아버지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옥상 위의 교량은 보급품을 옮기는 만경의 병사들로 분주했다.

그런 상황에서 현수 아버지의 행동은 결코 옳지 못했다.

이는 군주가 정한 군법에도 어긋나는 행위였다.

하지만 현수 아버지에겐, 드높은 군주의 명령보다 아들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그랬기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병사들에게 현수 아버지의 행위는 용납할 수 없었다.

병사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무기를 겨눴다.

“우린 동 대장님이 필요합니다……!”

“자네들!”

“누구라도! 도망치고 싶습니다! 누가 여기서 싸우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싸워야만 하지 않습니까? 아저씨 알잖아요!”

206동.

시온은 각 동에 속하는 병사들을 예전부터 서로 잘 알던 사람들로 배속했다.

그래야 전우애가 끈끈할 테고, 전투 능률도 오를 테니 말이다.

그랬기에 소년의 아버지와 그에게 무기를 겨누는 병사들은 원래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1라운드 때부터 지금까지.

병사는 눈물을 머금곤 소리쳤다.

“알아요. 안다고요! 아저씨가 얼마나 비참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하지만 아저씨!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예요. 여기서 무언가 안 잃어 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단 말이에요!”

“…….”

“동 대장님은 뛰어납니다. 그러니까 군주님께서 선택하신 거예요. 우린 동 대장님이 필요합니다. 현수, 내려놓으세요.”

“……안 돼.”

“내려놓으세요! 아님, 체포하겠습니다!”

“안 돼!”

퍼억-!

현수 아버지는 만경의 병사를 밀쳐 버렸다.

그러고는 교량을 통해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금세 병사들에게 에워싸여 붙잡혔다.

병사들은 기절한 현수를 붙잡곤 바닥으로 끌어내렸고, 발악하는 현수 아버지를 포박했다.

포박당해 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현수 아버지에게 병사는 소리쳤다.

“아저씨!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요……!”

“제발…… 보내 줘.”

“여기서 도망치면? 뭐가 있는데요? 뭐가 있는데요! 만경이 아니면! 전부 지옥이라고요!”

그때, 계단 층 쪽을 지키고 있던 병사가 소리쳤다.

“이봐! 실랑이할 시간 없어! 적의 플레이어가 20층을 돌파했어! 서둘러!”

그 목소리에 병사는 수갑을 꺼내, 현수 아버지의 양손을 묶었다.

“아저씨. 군주님께서 지원 병력을 보내 주실 겁니다. 예?! 그러니까 가만히 좀 계세요!”

“크으윽…… 흐으으……!”

“그래서…… 그래서! 우린 여기서 반드시 이길 겁니다. 그러니까 얌전히 계세요!”

콰앙-!

그때, 옥상 출입구가 한 차례 불길에 휩싸이면서 일대의 방어 진지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화염으로 뒤덮인 옥상 출입구에선 마치 굴뚝처럼 화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화염 연기.

이는 동안의 플레이어가 다가왔다는 신호였다.

“…….”

온몸이 불타고 있는 새하얀 백골의 플레이어. 옥상까지 올라온 놈은 기어이 모습을 드러냈다.

활활…… 타닥…… 타닥…….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놈의 모습에 만경의 병사들은 뒷걸음질 쳤다.

불타는 플레이어는 턱을 치켜올리곤 옥상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미 없다니까. 빨리 죽어 줘. 너희.”

터벅.

놈은 천천히 만경의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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