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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06화 (106/221)

제106화. 반격의 서막 (2)

마치 럭비 선수가 터치다운을 향해 몸을 날리듯, 오우거는 적의 본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우거의 위엄은 전장의 하늘을 가득 뒤덮을 정도로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 아래에 있던 전사들은 그것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내 오우거의 육중한 돌진이 저들을 휩쓸었다.

쾅-! 콰가가가가가강!

오우거가 지나간 자리엔 사람이 종잇장처럼 허공에 휘몰아치고 짓이겨져서 껌딱지처럼 아스팔트에 달라붙었다.

전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으으……!”

“괴물……. 괴물이야……!”

“아아아!”

“아아아아아악……!”

이미 지난 한 달간 오우거에게 호되게 당했었던 동안의 전사들은 거대한 오우거의 등장에 도망가기 일쑤였다.

몇몇은 억 소리도 못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을 던져 쓰러져 있는 오우거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전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우거는 전사들의 창과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내며 일어났다.

오우거에게 그들의 공격은 이쑤시개로 찌르는 수준이었다.

놈은 침을 질질 흘리며 눈앞의 먹잇감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의 싱싱한 육고기에 놈의 거대한 눈동자가 좌우로 사정없이 움직였다.

몇몇 오우거들은 벌집을 꺼내 먹는 곰처럼 건물에 손을 휘적거리며 넣고 있었다.

뷔페 시간이었다.

* * *

안양 일번가 초입부에는 동안의 전진 기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지의 방어는 조잡한 수준이었다.

오우거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모두가 평등하게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난 오우거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대장 오우거’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었다.

전장 상황을 살피고 대응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박지수의 다음 수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수를 둘지, 난 어떻게 받아쳐야 하는지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안양역 쪽으로 적의 본대가 접근해 있어. 이건 1군 방어대 수준으로 막을 수 있을 거야. 일번가 초입부와 중심부 전투는 거의 다 내 쪽으로 넘어왔고……. 하지만 복병이나 명학역에서 넘어오는 척후병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어. 단순히 돌격해 오지만은 않을 텐데. 무언가 다른 수가 있나?’

2수 앞, 3수 앞, 4수 앞까지.

박지수가 생각할 만한 모든 수를 떠올렸다.

‘만약 내가 박지수라면 방어에 유리한 일번가를 공략하기보다는 광명 방면으로 천에서 이천 정도 병력을 보낸 뒤, 수리산 너머에서 만경의 후방을 칠 거야……. 병력 수가 많으니 전방과 후방을 함께 칠 수 있으니까. 물론 수리산에는 함정을 매설해 두었으니, 생각처럼 쉽게 그 산을 넘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럼…… 이제 어쩔 거냐. 네가 가지고 있는 최후의 패. 그건 뭐지?’

동안의 전사들은 지쳐 있다.

지쳐 있는 상태에서 아군의 최고 병력들이 전장에 투입되었다.

애초에 이 오우거들은 만경 방어전을 위해 아껴 두었던 비밀 무기였다.

하지만 박지수는 만경을 바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았고, 정면 승부를 걸어왔다.

숫자, 무기, 아님 플레이어를 믿고 정면으로 온 것인가? 아님, 다른 수가 있는 걸까?

나는 정신을 집중해 박지수의 수를 검토했다.

쇼핑몰의 김동길도, 경찰서의 박건우도 나름의 계획을 세웠지만, 모두 내가 간파했었다.

굶주린 오우거 부대 투입.

난 지금 꽤 이른 시간에 비장의 무기를 꺼내든 셈이다.

물론 비장의 무기는, ‘비장’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적을 도륙하고 있었다.

이만한 수를 둬도, 박지수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음 수를 둬야 했다.

지금껏 만경은 방어에만 전념했다면, 이젠 공격에 나설 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이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무언가 숨겨 둔 묘수가 있을 거야. 만약 네가 만경의 총전력을 보고 싶어 한다면. 정말 그걸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좋아. 응해 주지.’

결심한 나는 부하에게 총공격을 지시했다.

‘이번 수로 내 모든 걸 쏟아붓겠어.’

인정사정 봐줄 것도 없다.

오우거가 짓밟고 간, 참혹한 전장에 지금껏 힘을 비축하고 있었던 만경의 예비대가 돌격하기 시작했다.

* * *

-쿠아아아아아!

부웅-!

검은 그림자가 하늘에 떠올랐다.

오우거가 버스 전차를 들어, 전사들을 향해 날려 보낸 것이었다.

쾅, 쿠광, 드드드드등!

10톤에 육박하는 버스가 하늘을 날아올랐다가 맥없이 지면에 떨어졌다.

이어서 달려든 오우거들은 쓰러진 전사들을 집어 들어 입 속에 욱여넣었다.

오우거의 압도적인 파괴력은 인간이 대항할 수 없는 정도였고, 전쟁의 승패는 이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안은 가만히 눈 뜨고 구경하고만 있진 않았다.

전장에 투입된 동안의 플레이어, 도깨비 가면이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타닷!

그녀는 창을 움켜쥔 채, 오우거의 눈동자를 노렸다.

-쿠아아아아아아!

도깨비 가면을 발견한 오우거가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오우거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고는 그 옆에 있던 건물의 옥상을 부숴 버렸다.

쿠구구궁!

오우거의 파괴력은 건물조차 모래성처럼 부술 정도였다.

그런 엄청난 위력을 보았음에도 도깨비 가면은 멈추지 않았다.

기어이 오우거의 어깨에 올라타, 볼살을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오우거는 괴로운 듯 괴성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악-!

도깨비 가면은 곧장 상체를 비틀어 공격을 이어 나갔다.

촤자자자자작-!

그녀의 창날이 오우거의 볼살을 가른 뒤, 곧장 눈동자로 향했다.

도깨비 가면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우거의 약점은 눈동자라는 것을.

오우거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거대한 몬스터가 휘청거리자 그것을 바라보던 동안의 전사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도깨비의 창날이 닿은 건, 오우거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창날이 눈동자를 꿰뚫으려는 순간, 검은 낙뢰가 도깨비 창날을 막은 것이다.

콰직-! 퍼벅!!!!!!!!!!

곧이어 창날에서 튕겨 나온 검은 낙뢰는 도깨비 가면을 덮쳤다.

촤아아악-!

마치 검은 물감을 뒤집어쓴 것처럼 도깨비 가면의 전신에 달라붙은 검은 낙뢰는 그녀의 몸을 천천히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도깨비 가면은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검은 낙뢰는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 그녀를 옭아맸다.

검은 낙뢰의 주인은 최현지.

어느새 오우거 정수리 위에 앉아 있던 최현지는 도깨비 가면 소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딜…… 넘봐.”

그녀는 일격으로 동안의 플레이어를 무력화시켰다.

* * *

전투는 새벽 내내 이어졌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고, 오우거는 시체를 하나씩 집어 들어 날름날름 삼켰다.

이제 일번가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일번가의 하늘은 불꽃이 뿜어내는 불빛으로 빨갛게 물들었고, 땅은 동안 전사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만경의 궁수들은 끝까지 따라붙어 남아 있는 한 사람까지 사냥했다.

시온은 그 전장에 섰다.

만경의 대승리였다.

병사들은 군주를 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

“으아아-!!!”

“와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하늘 높이 그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승리의 환호였다.

비산동 전투에서 소규모 승전보를 울리기도 했지만, 이곳 일번가의 승리는 의미가 달랐다.

대승리.

하지만 그들의 웃음 섞인 환호에도 시온은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지수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동안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그때, 건물 위에 있던 진재희가 단숨에 시온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몸은 피투성이었다. 물론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재희가 다가오자 시온은 본론부터 꺼냈다.

“추격대는?”

“명령대로 3분 전에 출발했어. 남은 한 명까지 놓치지 않을 거야.”

“확실하게 끝내야 돼. 그래야 의미가 있어.”

“응. 그래야지.”

시온은 온갖 시체와 피로 얼룩진 안양 일번가 거리를 걸었다.

걷는 도중 병사들의 안위를 살피면서도, 그녀와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늘 만경의 총반격이 시작되었고, 이제 병사들은 재정비 후 안양천을 넘어 동안으로 진격할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비산동 파미안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남은 동안 전사들의 전력은 아군의 반격 공세를 막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전사들은 비산동 파미안 아파트 단지에서 대부분의 병력을 소모했을 테니.

전쟁은 이제 끝이다.

모든 건 시온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남은 건 동안 군주의 목이었다.

‘적들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 항복을 받아 내는 것이 베스트. 그러기 위해선 박지수의 목이 필요하겠지.’

사늘한 바람이 골목 사이에서 불어왔다.

날씨는 초봄처럼 시원했고, 정오가 되면 내리쬐는 태양 빛에 땀이 났다.

강시온은 가던 길을 멈춰서 진재희를 돌아보았다.

슥-. 슥.

그녀는 손바닥으로 볼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볼을 닦아 낼수록 피는 더욱 번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온은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 지퍼를 열었다.

지이이익-.

“하루 동안 병사들에게 휴식을 부여해. ……손으로 말고 이걸로 닦아.”

시온은 그 말을 하며 가방 안에서 수건을 꺼냈다.

진재희는 조금 시온을 바라보다 이내 수건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시온은 그런 재희를 보며 말을 이었다.

“비산동에는 내가 최명준을 데리고 가볼게. 넌 이곳에서 정비하고 체력을 보충해.”

진재희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하루도 쉼 없이 전투만 했다.

아티팩트의 힘이 완전하지 않음에도 일당백의 각오로 적을 모조리 섬멸했다.

실제로 진재희가 없었더라면, 일번가는 강시온이 오기 전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진재희는 쉴 생각이 없었다.

“……난 괜찮아. 그보다 넌? 쉬어야 하는 건 너 같은데.”

진재희는 수건에 묻었던 얼굴을 들며 시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는 얼추 닦여 있었다.

피로가 누적된 건 시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온 역시 전쟁이 시작된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잠을 자도 3시간을 넘지 않았고, 비산동과 안양역을 누비며 전장을 지휘했다.

그런 상황임에도 시온은 뛰어난 관찰력으로 타인의 생각을 곧잘 읽어 냈다.

순간적으로 재희의 생각을 읽은 시온은 그녀의 오른손을 잡아챘다.

덥석-!

그녀는 순간 놀랐지만, 곧 그의 손에 쥐어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진재희의 손이 조금, 아니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시온은 그녀의 손 떨림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가 조금 강하게 움켜쥐었음에도, 그녀의 손 떨림은 멈출 줄 몰랐다.

재희는 자신의 몸 상태도 확인하지 않고, 지금껏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시온은 그녀의 손을 놓아 주며 말했다.

“돌아가. 명령이야.”

재희의 손이 그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재희는 왼손으로 떨고 있는 오른손을 꼭 쥐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떨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진재희는 고개를 떨궜다.

“……알겠어.”

“연락할 테니, 기다려.”

시온의 목소리에 재희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는 다시 간부들과 함께 전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 * *

박지수는 과자를 우적우적 집어 먹으며 일번가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

전사 한 명이 오우거의 입 속에 떨어지자, 박지수 역시 팝콘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우와하-! 와-! X나게 큰 사람이다! X나게 큰 사람이 X만 한 사람을 잡아먹고 있어. 와-! 와……! 거인 같아. 그, 그. 애니메이션 알아?”

“……군주님.”

“설마 오우거 길들이기의 주인이 강시온이었다니. 이건 진짜 예상 못 했긴 했어. 아…… 진짜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미친 남자라니까?! 푸흐흐…… 푸하하하하!”

“군주님……!”

박지수는 낄낄거리며 이를 즐기고 있었지만, 그 곁에 있던 부하는 전혀 즐길 수 없었다.

군주의 웃음과는 다르게 전장 상황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었으니까.

호기롭게 선보인 버스 전차는 오우거에 의해 완전히 짓뭉개졌고, 플레이어를 비롯한 만경의 병사들은 서서히 이곳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동안의 플레이어는 여전히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었지만, 승기는 이미 만경 쪽으로 기울었다.

군주보다 걱정이 앞선 비서가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군주님……. 이제…… 끝장입니다. 병력들이 이제!”

“괜찮아…….”

박지수는 금세 그의 말을 끊어 버리며 손을 휘적거렸다.

그녀는 반쯤 고개를 숙인 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했어.”

박지수는 불현듯, 과거 경찰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학생.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야, 일류. 세상 사람들 다- 힘든 경험들이 있었어. 그냥 지나가는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가족이잖아. 가족.

“……괜찮아.”

-합의해요? 응? 그 합의 안 하면 엄청 귀찮아져요. 그리고. 이거 처벌 안 받을 수도 있어. 그니까 그냥 돈 받고…….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다-. 괜찮아.”

한껏 가라앉은 군주의 목소리에 비서는 깜짝 놀라 조아렸던 고개를 들었다.

펄럭-.

그녀의 검은 코트가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핏물이 가득한 바닥에 떨어졌다.

코트를 벗어 던진 박지수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녀 주위 공간이 일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강력한 아티팩트의 힘이 그녀의 주위를 감돌고 있던 것이다.

“군주님……? 군주님! 일단 퇴각하시죠! 이봐! 군주님을 모셔라!”

“예…… 옛!”

“군주님!”

전사 두 명이 박지수를 부축하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박지수는 작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X발.”

그 순간, 박지수는 자신에게 달려든 두 전사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촤아아아악-!

그 순간, 달려가던 전사 두 명은 목이 잘려 죽었다.

그 뒤를 따르던 전사들은 주춤거리며 걸음을 멈췄다.

“어엇…….”

“웃……?!”

베일에 감춰진 군주의 능력.

그녀의 최측근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관리자 ‘K’가 박지수를 이번 전쟁의 승리자로 지목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군주이자 플레이어인 박지수.

그녀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전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내 몸에. 손대라고. 했어?”

그녀를 중심으로 지면이 일렁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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