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반격의 서막 (1)
플라스크 속 개구리.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바로 뛰쳐나오지만, 일단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천천히 죽어 간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의 사실 관계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지금 동안의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적절한 비유였다.
강시온은 안양 일번가로 쳐들어온 동안의 적들을 천천히 끓이고 있었다.
* * *
동안의 지휘관은 피를 뒤집어쓴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신의 옆으로는 한 여자가 이마에 도끼가 박힌 채 죽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남자 병사가 부들거리며 입에 피를 머금고 있었다.
지휘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러 전사와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말을 탄 기마대들도 뛰어다니며 사정없이 만경의 병사들을 학살하였고.
분명 전사들은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동안의 지휘관은 전장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상하다. 이상해.
분명 우리가 이기고 있을 텐데.
왜 이기는 것 같지 않지? 라고.
“으으…… 으아아악!”
화살에 팔을 관통당한 전사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수많은 적들의 궁수가 전사들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도무지 전방으로 진격할 수도, 후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승기를 잡은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미로 속에 있는 것처럼.
몇 날 며칠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듯했다.
동안의 지휘관은 전방에서 물러나 버스 전차 출입문을 쿵쿵거리며 발로 찼다.
그러자 버스 문이 열렸다.
드르륵, 쿠궁!
버스 전차는 내부에서 누가 문을 열어 줘야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전차 내부에는 대략 15명의 인력들이 기둥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인력들은 전차를 이동시키기 위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과거 판옥선의 노를 젓는 이들과 비슷한 역할이었다.
천장에는 5명의 궁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양 창가에는 각 5명씩, 총 10명의 창병들이 창문으로 공격해오는 만경의 병사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지휘관은 가장 앞 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전차 조종수에게 다가갔다.
전차 조종수는 앞에 난, 작은 틈새 사이로 전방을 확인하며 바퀴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휘발유가 없다고 해도, 핸들을 꺾으면 버스의 바퀴가 움직였다.
그의 옆에는 총 네 개의 종이 있었으며,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차례로 ‘속도 올려’. ‘속도 줄여’,‘반대로 밀어’, ‘멈춰’의 명령 종이었다.
조종수 옆에 선 지휘관은 ‘멈춰’ 종을 집어 들고는 세차게 흔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그러자 버스 내부에 있던 모든 인력들이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하아…… 하아……! 우웩…….”
“우웩! 웩!”
지금껏 버스를 밀기만 했던 인력들이 ‘멈춰’ 명령음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 쓰러졌다.
몇몇은 구토를 했고, 몇몇은 침을 질질 흘리며 있지도 않은 물을 찾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지휘관의 명령에 깜짝 놀란 조종수가 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왜, 왜 그러십니까?! 이제 조금이면 저 새끼들 다 족칠 수 있는데……!”
“기다려…… 함정인 것 같아. 뒤로 물려야 돼.”
지휘관은 조종수의 몸을 밀면서 앞에 난 작은 틈 사이를 바라보았다.
분명 동안의 전사들이 만경의 병사들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언가 부자연스러웠다.
왜인지 모르게 적 병사들은 계속 뒤로 밀려났고, 그런 식으로 전사들을 유인하는 것 같았다.
즉, 이건 함정이라는 의미였다.
딱히 군사 경험이 없는 지휘관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공격이 쉽게 먹혀든다는 건, 함정이라는 소리다.’
간담이 사늘해진 지휘관은 곧장 전차를 뒤로 물렀다.
탱탱탱탱탱-!
‘반대로 밀어’ 명령 종이 세차게 시내버스 내부에 울려 퍼졌다.
조금의 휴식도 부여받지 못한 인력들은 곧장 반대로 이동해,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멈추지 않고 다음 종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속도 올려’ 종이었다.
깽, 깽, 깽, 깽, 깽-!!!
그는 빠르게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기 때문에.
안양 일번가를 공략하면 공략할수록 어째서인지 자신들의 전사들만 죽어 나가는 것 같았다.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지휘관은 지금 속도로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자신 역시 인력들 사이로 뛰어들어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
불길한 예상은 벗어난 적이 없다.
쿠웅…… 쿠웅……!
일정한 흔들림 끝에 시내버스 차창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처음에는 건물의 그림자인 줄 알았지만, 이내 그림자가 움직이자 지휘관은 몸을 움츠렸다.
* * *
안양 일번가.
동안의 전사들은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그들은 일번가 초입을 넘어 중심 상가로 쳐들어왔다.
그들은 지난 이틀간 계속해서 승전보를 울렸다.
병사들은 저들의 공세에 하나둘 죽어 갔고, 만경의 전선은 계속해서 뒤로 밀렸다.
동안의 전략은 단순하면서도 잔혹했다.
공략 목표로 잡은 타깃 지점의 방어 세력이 완전히 괴멸할 때까지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방식이었다.
인력, 무기, 플레이어.
전사들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하고 있었다.
동안은 압도적인 화력과 인원수로 밀어붙였다. 제아무리 만경의 견고한 바리케이드라도 완전히 무너뜨릴 때까지 낮이고, 밤이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전투는 대부분 3시간 단위로 이루어졌고, 한 번 전투를 할 때마다 두 세력은 도합 4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남겼다.
만경이 상가 건물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원거리 타격기로 방어했지만 소용없었다.
동안에겐 중세의 공성 무기인 사다리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견고한 ‘소방 사다리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가공할 공성 무기는 만경의 바리케이드를 손쉽게 무너뜨렸다.
동안이 건물 하나를 공략하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경에겐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플레이어 진재희.
그녀가 다시 전장에 투입되었다.
일번가의 건물 옥상.
그녀는 한 남자를 쓰러트리곤, 그의 쇄골 가운데에 검을 찔러 넣었다.
피를 뿜어낸 남자가 재희에게 말했다.
“이 괴물 새끼……! 이 씨…… X새끼…… 죽여 버릴거야…… 죽어!”
그녀는 그 도발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더 강하게 검날을 찔러 넣었다.
트득…… 드드득……!
재희가 더 강하게 검날을 찔러 넣자, 공포에 질린 전사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아파…… 아…… 미안해…… 아, 너한테…… 욕한 거 아냐…… 살려 줘…… 제발.”
조금 전까지 죽일 듯이 쳐다보던 전사였지만 강렬한 고통에 금세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잊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전사와 눈을 마주친 그녀는 단숨에 전사의 목을 베어 버렸다.
촤아아악-!
“……후.”
재희는 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전투가 한창인 옥상에서 동안의 전사들을 마구잡이로 도륙하고 있었다.
이미 숨이 입천장까지 차올랐을 정도로 지쳤지만, 그녀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서걱-!
그들이 가진 힘은 인간을 뛰어넘었지만, 결코 신적일 순 없었다.
유지력 때문이다.
서걱-!
하지만 단련과 훈련을 통해 그 유지력을 성장시킬 순 있었다.
서걱-! 츄르르륵…….
“…….”
“커헉…… 카하아악…….”
“아악……!”
그녀의 검에 목이 꿰뚫린 동안의 전사가 피를 토해 냈다.
진재희는 힘을 주어 검을 빼내었다.
츄르르르륵……!
동안의 전사가 흘리는 피가 아스팔트 바닥에 흩뿌려졌다.
이미 그녀의 검에 수십 명이 죽어 나갔다.
검 손잡이를 쥔, 재희의 손이 벌벌 떨렸다.
“…….”
그녀의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 흥건히 피가 묻어 나올 정도였다.
재희는 컥컥거리며 죽어 가는 전사를 바라보다 검날의 핏물을 털어 내곤, 거리를 바라보았다.
병사와 전사가 뒤엉켜서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이제 도로에선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몇몇 전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방어 병력이 없는 건물로 들어갔다.
시온이 그 건물에 방어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던 건 단순한 이유였다.
그곳은 ‘악어 거북의 늪’이었으니까.
안양 일번가는 악어 거북의 최대 서식지다.
동안의 전사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제 발로 거북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또다시 전사들의 비명 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는 인간의 것과 짐승의 것이 뒤섞여 있었다.
“이대로 밀어붙여!”
“캭캭캭! 캬아아아악-!”
“한 놈도 살려 두지 마!”
“끼햐아아아아악!”
아니, 사실 이곳에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모두가 짐승일 뿐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먹잇감에 달려들고 포기를 모르고 눈앞의 이빨을 드러내는 같은 종을 공격한다.
이 두 세력의 관계는 피식과 포식이 아닌, 포식과 포식의 관계이다.
이미 다 잡아놓은 사냥감을 두고, 팽팽하게 싸우는 두 마리의 하이에나와 같았다.
이제 두 하이에나는 피를 잔뜩 흘리고 있었고, 전투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동안의 전사들은 이미 지쳐 있었고, 부대 단위로 교체하면서 싸우는 만경의 병사들은 여력이 남아 있었다.
시온은 진재희에게 말했었다.
적이 오랜 공격으로 지쳤을 때, 그때가 반격의 서막일 것이라고.
그리고 시온의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중앙 시내 거리로부터 만경의 병사들이 서서히 전사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저들이 체력을 모두 소모해 지쳐 가기 시작할 때가 바로 ‘놈들’이 몸을 일으켜 진격할 때였다.
때마침 먼 만경의 성벽으로부터 북소리가 들려왔다.
퉁-!
퉁-!
퉁-!
군주의 작전 개시 명령이었다.
이 전쟁을 끝낼 때가 온 것이다.
‘……드디어.’
진재희는 들려오는 북소리에 은성검을 없애고, 안주머니에서 500ml 생수병을 꺼냈다.
그리고 고민도 않고 생수병 안에 있던 정체불명의 액체를 머리에 쏟아부었다.
콸콸콸-.
그녀의 전신에 향긋한 꽃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진재희뿐만이 아니었다.
만경의 병사들은 전투를 멈추고 각자 가지고 있던 생수병의 뚜껑을 열어 몸에 액체를 뿌렸다.
구석구석, 빠진 곳 없이, ‘잡아먹히지 않기’위해서.
그 앞에서 전투를 하던 전사들은 그들이 단체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쿠구구구구궁……!
아스팔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 * *
오우거는 굴을 파고 생활한다.
그 큰 몸뚱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작은 포유류처럼 땅바닥에 굴을 파놓고 은신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안양역 지하상가는 놈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시온은 일번가 방어전에 대해서 비산동과는 다른 방어 전략을 세웠다.
오우거의 습성을 이용하는 전략이었다.
오우거는 오랜 기간 굶주렸고, 굶주린 포식자는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쿠구구구궁……!
다시 한번, 이 일대가 흔들렸다.
그리고 북소리를 들은 오우거들은 하나둘 고개를 쳐들었다.
콰과과과광-!
오우거들은 단단한 아스팔트를 부수고 일어서서 진격하기 시작했다.
“…….”
“…….”
“아……. 아……!”
시간이 멈춘 듯, 전장의 풍경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전사들 사이사이로 거대한 오우거가 하나같이 고개를 쳐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시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굶주렸다.
시온이 지난 한 달간 일부러 놈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크아아아…….
-카아아아…….
그리고 놈들은 네펜데스의 꽃 향을 싫어한다.
시온은 종소리와 훈련을 통해 그렇게 학습시켰다.
오우거는 꽃 향을 뒤집어쓴 만경의 병사들만 피해서 식사를 시작할 것이다.
버스 전차에 올라탄 전사들이 넋 놓고 놈들을 올려다보았다.
전방과 후방, 측면과 지하. 사방이 온통 오우거뿐이었다.
한마디로 이곳은 오우거 밭이었다.
그걸 바라보던 버스 전차의 동안 지휘관은 실성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
“푸흐흐……. 푸하하하하……!”
오우거들은 곧장 동안의 버스 전차에 달려들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오우거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내려쳤고, 버스 전차는 호떡처럼 납작해졌다.
콰앙-!
납작해진 버스 사이에서, 인간의 피와 살점이 호떡 속의 꿀처럼 흘러나왔다.
* * *
내 몸이 오우거의 어깨 위에서 일정하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적들은 지금 지쳐 있을 것이다.
지난 일주일간 일번가 공략이 이어졌고,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으니.
또한 파미안 아파트 단지가 교착 상태에 접어들게 되면서, 동안의 지휘관들은 골치가 아파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이 반격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다.
적들은 이미 만경의 모든 전투력을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
하지만 놈들이 겪은 건, 그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쿠아아아아아……!!!
쿵, 쿵!
내 앞에서 달려 나가던 오우거가 갑자기 엎드렸다.
놈의 등에는 거대한 석궁이 메어져 있었다.
오우거 등에 올라타고 있던 노동부장은 수학 교사와 함께 거대 석궁을 세밀하게 조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뒤를 돌아보며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는 오우거의 어깨에서부터 일어났다.
우리 별동대는 만경 뒤, 수리산 언저리에서 숨어 있었다.
저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며칠 동안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힘을 비축한 별동대의 전투력은 가히 최고일 터.
나의 말 한마디로 이제 전쟁의 양상은 뒤바뀔 것이다.
쇼핑몰에서도 그랬고, 경찰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젠, 이 도시. 안양은 내 것이다.
내가 안양을 통일할 것이다.
그렇게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명령했다.
“돌격하라.”
그 명령과 함께, 곁에 있던 지휘관이 깃발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만경의 신호병들이 북을 치기 시작했다.
퉁, 퉁, 퉁-!
일번가 도심.
그곳을 향해 오우거들이 북소리와 함께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신도 공포에 질릴 만큼 거대한 괴성을 내지르면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