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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04화 (104/221)

제104화. 교착 상태 (2)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는 이제 없다.

꾸직-!

전사는 비둘기 사체를 짓밟으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오른손에 망치를 든 전사들의 선봉장은 처절하게 소리쳤다.

“모조리 죽여 버려! 한 놈도 빠짐없이!”

“으랴아아-!!!”

“아아아악-!!!”

선봉장의 명령에 전사들은 일번가로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양 군대 간에 몇 번이고 난투극을 벌인 결과들이었다.

그들은 어제까지 동료였던 이들의 시체를 넘으며 앞으로 돌격했다.

폐차와 가로등을 넘고, 무너진 건물 사이로 전사들이 들어갔다.

그들은 화살과 돌멩이, 화염병들을 피해 가며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누군가는 골목에 숨어 있다가 급습했다.

적을 밀고 넘어뜨리거나 귓불을 입으로 뜯어냈다.

상가에서 전투 중인 몇몇은 창문에 달려들어 동반 낙하하기도 했다.

하늘 가득 울리는 전장의 소리들.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죽여! 죽이란 말이야!”

“살려 주세요…….”

“조금만…… 조금만…….”

“피…….”

“화살! 화살 줘! 빨리!”

“이 X발 새끼들아!”

“머리를 노려. 머리를 노려. 머리를 노려. 머리를 노려!!!”

“죽고 싶어 환장했어!”

“밀어붙여! 봐줄 것도 없어!”

“도망가…… 도망가야 돼.”

거리에는 온통 피와 비명 소리로 넘쳐났다.

거리를 달려 나가면 철퍽거리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고, 비명이 아닌 소리는 비명에 묻혔다.

바닥에 쓰러진 병사와 전사들의 몸에서 줄줄 새는 핏줄기가 옛 보도블록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찬 핏물을 헤치며 전차(戰車)는 전진했다.

버스 전차 내부의 전사들은 서로 합을 맞춰 기둥을 밀어냈다.

버스의 무게는 대략 10톤 이상.

그렇기에 15명 남짓의 전사들이 전력을 다해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버스 전차가 전진하면서 바퀴에 묻은 새빨간 피가 위로 튀어 올랐다.

버스 전차의 가장 무서운 점은 천장 위에 설치된 ‘창병’과 ‘원거리 타격기’였다.

동안도 만경만큼 정교하진 않아도 석궁을 장착하고 있었다.

퉁-! 퉁-! 퉁-!

석궁 고무밴드가 허공을 때렸다.

동안의 석궁은 조작 인원만 해도 세 명이 달라붙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고무밴드는 공업용으로 쓰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석궁 화살은 쏘아질 때마다 서너 명의 병사들을 단번에 꿰뚫었다.

콰직! 푸욱!

작살에 꽂힌 물고기처럼, 신체의 일부가 뚫린 채 땅바닥에 꽂혀 버린 병사들.

만경의 병사들도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지휘관인 짧은 머리의 여자가 소리쳤다.

“윤 씨 아저씨! 화염병……!”

“올라타야 하는 거여!”

“따라와요!!!”

“이 X같은 새끼들……!”

희생을 각오한 만경의 병사들은 번잡한 전투 현장을 헤쳐 나가며 버스 전차로 다가갔다.

내부에 화염병을 넣고 불태우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 정황을 먼저 포착한 동안의 사수가 화염병을 든 남자를 쏴 죽였다.

푹!

석궁 볼트가 남자의 몸을 꿰뚫었다.

“어억!”

“아저씨!”

화염병을 쥔 남자는 쓰러졌고, 순간 혼란스러워진 여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애도보단 승리가 우선이었다.

화염병을 꼬옥 쥔 여자는 버스 전차를 향해 달려 나갔다.

“으아아아아아!”

여자는 단숨에 달라붙어 화염병을 창틀 사이로 내던졌다.

퍼-엉!

치솟은 화염에 일대에 있던 모든 병사, 전사들이 휩싸였고 버스 전차는 불타기 시작했다.

취이이이익-!

하지만 병사들의 희생을 무릅쓴 공격에도 버스 전차는 끄떡없었다.

내부에서 소화기를 들고 진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얀 연기와 검은 연기가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일번가 초입부.

버스 전차 한 대의 출현에 만경의 수비대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만경의 병사들은 꿋꿋하게 적들을 상대했다.

만경의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도로를 봉쇄하는 여러 바리케이드들.

기존 도로의 질서 같은 건 무너진 지 오래였다.

이곳은 더 이상 도로가 아니었다. 여기저기를 봉쇄해서 만든 미로였다. 미로는 효과적으로 요새로 향하는 길을 막아 내고 있었다.

만경의 병사들은 이런 지형상 이점을 활용하여 첫 번째 공세를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뒤로, 수십 대의 버스 전차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버스 전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는 새빨간 전차가 있었다.

“아.”

“크흑…….”

겨우겨우 동안의 선발대를 막아 낸 병사들은 동안의 새빨간 전차를 바라보고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새빨간 전차의 정체는 소방 사다리차. 만경의 요새들을 무너뜨릴 박지수의 공성 장비였다.

사다리 위에 올라탄 동안의 전사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 * *

전쟁은 이제 교착 상태에 접어들었다.

서로 밀고 당기는 전선이 형성된 것이었다.

동안의 전사들은 남서쪽으로는 비산동의 파미안 아파트 단지를 공략하고, 북서쪽으론 일번가를 공략하면서 수도 만경을 포위하려고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 지하철 1호선.

안양역-명학역-금정역으로 이어지는 지하 철도를 따라 적들의 척후병들이 진입하기도 했다.

시온은 파미안 아파트 단지에 머물며 적들의 진입 경로를 파악해 오우거를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오우거는 밤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그랬기에 장시간의 전투는 피해야 했다.

잠이 들어 버린 오우거를 놈들이 해치우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저들이 낮에만 싸우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동안의 공격 시간은 해가 뜨기 전으로, 정오가 되기 전에 군사를 물린다.

“103동……. 104동 역시 함락되었습니다.”

“적들이 113동 공략에 나섰습니다.”

몇 분마다 한 번씩 간부들이 다가와 시온에게 보고했다.

이곳 파미안 아파트 단지는 그야말로 게릴라전이 한창이었다.

방어 진지를 아파트 동 단위가 아닌, 각 층마다 건설해 두었기 때문에 적들 역시 각 층을 격파하기 위해서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사실상 방어 전선이 뚫리면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파괴하려는 이들과 막아 내려는 이들.

이곳은 전쟁 역사상 유례없었던 ‘수직으로 형성된’ 전장이었다.

게다가 그저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불에 내성이 있는 플레이어’.

놈을 해치우지 않는다면 이곳 아파트 단지 방어전의 양상은 미지수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온은 일번가 전투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이번 전쟁의 승패는 결국 안양역 일번가의 전투에서 결정될 테니까.

‘……내가 일번가를 오래 비워 둘 순 없어.’

시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전략을 쏟아부었고, 이제 이곳에 남아 있는 3,600여 명의 비산동 결사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시온은 자신의 방에 모여든 동 대장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피와 화상으로 얼룩진 몰골들이었다.

이곳의 총지휘관은 2군 대장이었다.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2군 지휘관님.”

“예. 군주님.”

“앞으로 이곳의 총지휘는 지휘관님께서 맡아 주십시오.”

“……군주님?”

2군 지휘관이 놀란 듯 고개를 쳐들었다.

군주는 침대 옆에 놓여 있던 가방을 메고는 검은 후드 모자를 뒤집어썼다.

“하지만 군주님…… 이곳에 군주님이 안 계신다면 병사들의 사기가…….”

방을 나서려던 시온은 그 목소리에 문틀에 기대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두려운 기색으로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군주가 자리를 비울 경우, 발생할 문제들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시온이 답했다.

“최명준이 올 겁니다.”

“…….”

회복한 최명준이 복귀할 거라는 말에도 지휘관은 쉽게 인상을 펴지 못했다.

그러자 시온은 이곳 안방에 모인 모든 동 대장들을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있는 한, 여러분들이 패배할 리는 없습니다. 또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버텨 주십시오.”

패배할 리는 없다는 말.

세상의 어떤 군주가 저렇게 호언장담할 수가 있을까.

군주의 그 말에 모든 간부들의 마음이 녹았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이고, 시온의 계획에 벗어나는 일은 지금껏 없었다.

계획이 딱딱 들어맞는다는 건, 곧 승리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간부들은 군주를 신뢰하고 있었다.

믿을 수밖에.

자신들을 이끄는 군주의 판단을 따르는 수밖에.

그만이 이 무너진 세상 속에서 자신들을 인간답게 살게 해줄 유일한 군주니까.

이제껏 군주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까.

2군 지휘관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비장하게 소리쳤다.

“죽어서라도 막겠습니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방을 나섰다.

* * *

파미안 아파트 단지.

난 이곳을 저들의 개미지옥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곳은 저들에겐 쉽게 넘지 못하는 허들이 될 것이다.

파미안 방어 진지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한 이득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적 플레이어 및 병력들의 이동을 저지하는 것.

이로 인해 일번가 전투의 부담을 덜어 내는 것이다.

전쟁의 판도는 일번가 전투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적 병력을 최대한 분산시켜야 했다.

그러니 박지수가 이곳 아파트 단지에 적어도 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한다면 최고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미 이루었다.

그들은 6천 명을 동원한 첫 공세에서 대패하자, 만 명이 넘는 병력을 추가로 배치했다.

두 번째는 적의 최고 전력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이득과 비슷하겠지만, 이는 명백히 다르다.

플레이어의 힘과 능력은 일반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약 적의 최고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어를 비산으로 유인한다면, 안양 일번가를 수비하는 진재희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는 일번가에서의 ‘확실한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확실히 계획대로 이곳에 적의 최고급 전력이 투입되었다.

불에 내성을 지닌 플레이어.

놈이 정확히 어떤 능력을 사용하는지 알 순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활약상을 볼 때, 적어도 적 세력의 최고 전력임은 확실했다.

보고에 따르자면 놈은 단신으로 한 개 동을 격파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 정도 전투력이면 최명준은 아득히 뛰어넘었고, 아마 최현지 정도는 될 것이다.

놈을 막기 위해선 파미안 아파트 단지에서 아군의 전력을 바닥까지 소모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비산동에서 승리를 쟁취하려고 들지 않았으니까.

이곳에서 내 목표는 절반의 승리다.

이곳에서 절반만 이겨도, 나에게는 엄청난 이득이었다.

동안은 절반에 가까운 전투력을 이곳에 쏟아부었지만, 나의 만경은 기껏해야 전력의 4분의 1을 소모한 셈이었으니.

초기 배치 병력 3,600명.

이 3,600명이 저들의 주력군을 전멸시키지 못해도 상관없다. 단순히 붙잡아 둘 수만 있어도 소정의 목표를 이룬 것이다.

‘이곳은 저들에겐 생지옥이겠지. 물론 그건 내 부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파트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둘러싼 병사들이 날 바라보았다.

길을 터주거나 응원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하나하나의 눈빛을 전부 느꼈다.

얼굴들이 새까맸다. 화상을 입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피를 흘리지 않는 자도 없었다.

하지만 저들은 날 믿고 있었다.

“군주님…… 꼭 승리로 이끌어 주십시오.”

“군주님…….”

“군주님…… 군주님……!”

“군주님……! 승리하십시오!”

“승리하십시오!”

“승리하십시오!”

모두가 날 바라보았다.

난 그들의 염원과 열망을 느끼며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내려왔다.

모두 내가 받아야 할 부담이고 책임이고 과정이다.

하나 내가 가지고 있는 부담과 책임은 저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1라운드부터 지금 3라운드까지.

난 한순간도 변하지 않았다.

이 모든 건 오로지 동생을 만나기 위한 계획이다.

승리해야 하는 것도, 이들을 살려서 나의 장기말로 세우는 것도 모두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병사들의 나를 향한 외침은 비산동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도 계속해서 들려왔다.

비산동에서 빠져나온 나는 조금 더 걸어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일번가에서 마중 나온 병사들이 있었다.

부하 뒤로는 오우거가 바짝 웅크리고 있었다.

놈은 이제 내 말에 복종하는 노예였지만, 거대한 몸뚱이로 바짝 웅크린 그 모습만큼은 실로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부하는 내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파트 단지가 불타면서 뿜어내는 불빛들이 검은 하늘에 나부끼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며 대답했다.

“만경으로 간다.”

“만경으로 가신다는 것은……?”

다시 부하를 바라본 나는 그의 의문에 답해 주었다.

“반격이다.”

오늘.

하늘은 불꽃으로, 땅은 저들의 피로 붉게 물들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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