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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02화 (102/221)

제102화. 안양역: 전면전 (3)

플레이어 간의 대전.

그것은 시스템의 관리자들이 심어 둔 빅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존재’들에게 일반인 간의 피 튀기는 전쟁은 재미도 없고 질렸다.

그런 정도의 전투는 인류 역사 속에서도 수많은 사례가 있었기에 그것을 ‘재방송’하여 보면 된다.

그런 이유로 지금 순간은 중요했다.

그리고, 진재희의 은검이 해태를 향해 휘둘러지는 순간.

수많은 ‘존재’들은 환호했다.

* * *

해태의 육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토막 난 육체는 하나둘 모여들었고, 곧 하나가 되었다.

조각조각 몸이 복원된 놈은 금세 되살아나 진재희 앞에 섰다.

“…….”

놈이 되살아났음에도, 진재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 공격을 퍼부었다.

그녀의 검이 이번엔 해태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이를 본 해태는 오른팔로 막았다. 그러자 해태의 두꺼운 팔뚝에 재희의 검날이 그대로 박혔다.

푸-욱!

검을 손으로 막는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해태는 해냈다.

목 대신 오른팔이 베어지기를 선택한 것 같았다.

실제로 진재희의 검날이 해태의 오른팔을 베어 내고 놈의 겨드랑이에 박힌 상태였지만.

해태는 아픈 기색 하나 없이 그녀를 향해 양날톱을 휘둘렀다.

훼에에엑-! 푹!!!

그녀가 있던 공간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진재희는 순간적으로 앞으로 숙여 피해 냈다.

하지만 놈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공격을 한 번씩 할 때마다 해태의 베어진 오른손에서 또 다른 손이 뻗어 나왔다.

훼에엑-!

‘……갈라졌던 오른손?’

덥썩-!

새로 돋아난 놈의 손은 중심을 잃은 진재희를 순식간에 잡아챘다.

재희는 빠져나오려고 힘을 주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마치 곰이 움켜쥔 것 같은 악력이었다.

해태는 반대 손에 쥐고 있는 양날톱을 뒤로 젖혔다.

자신의 오른팔과 함께 진재희를 단숨에 벨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실행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지막지한 톱날이 해태의 오른팔과 진재희를 모두 베었다.

훼에에엑-! 서-걱!

“…….”

하지만 진재희의 모습은 허상이었다.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해태의 등 뒤로 진재희가 나타났다.

그녀는 살벌한 눈빛으로 해태의 등을 베어 냈다.

쉐엑-! 서-걱!

해태의 넓은 등에 사선으로 큼지막한 상처가 벌어졌다.

또한 놈의 등을 관통한 그녀의 참격은 건물 외벽에 부딪혀 그곳을 무너뜨렸다.

쿠쿵……! 드드드드드…….

은성검은 어떤 것이든 베어 낼 수 있는 S급 아티팩트이다.

아직 숙련도가 낮았기에 그 진가가 전부 발현되진 않았지만.

덕분에 해태는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놈은 우람한 팔을 들어 휘둘렀고, 재희는 검날로 그것을 막아 냈다.

빈틈없는 방어였지만 놈의 엄청난 힘에 재희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진재희의 몸은 붕 떠올라 전사와 병사들이 뒤엉킨 전장을 향해 날아갔고, 먼 구석에 있는 폐차에 부딪혔다.

쿵-!

“…….”

스윽-.

재희는 입술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쓸며 일어났다.

희미한 시야 속, 해태는 쿵쿵거리며 진재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거대한 양날톱을 쥔 채 병사든 전사든 가리지 않고 보이는 족족 썰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해태의 시선은 진재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상당한 숙련도. 아마 동안의 핵심 플레이어일 거야.’

그녀는 다시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검도의 기본자세였다.

해태가 동안의 핵심 플레이어라면 이곳에서 반드시 잡아야 했다.

플레이어를 한 명만 잡아내도 만경에는 엄청난 이점이 될 테니 말이다.

플레이어 간의 전투는 양 세력이 가진 전투력을 겨루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기에 비유하자면, 일반 졸병들이 아닌, 포(包), 말(馬), 차(車) 등.

세력에서 핵심 플레이어가 죽는다는 건, 그만큼 전력이 약해진다는 의미다.

결국 더 많은 플레이어, 강력한 군대를 지닌 군주가 이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그러니 진재희는 반드시 이겨 내야만 했다.

저놈을 쓰러트려 전세를 뒤집어야만 했다.

쿵…… 쿵…… 쿵……!

“…….”

해태는 진재희 앞까지 걸어와 눈앞에 서 보였다.

거대하고 육중한 풍채.

놈의 몸은 전사와 병사들의 피로 푹 젖어 있었다.

전장은 계속해서 피 튀기는 접전이 이어지고 있었고, 진재희는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슈슉.

일반인에게 진재희는 그저, 오른손으로 검 손잡이를 쥐었다가 놓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재희는 그 짧은 순간에 진심을 다해 해태의 몸을 베었다.

해태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진재희는 회귀자다.

일개 플레이어가 회귀자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해태는 상체가 사선으로 그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쿠 쿵……!

놈의 몸은 완전히 이등분되었다.

진재희는 분리된 놈의 몸뚱이를 뒤로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남은 동안의 전사들을 해치우고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해태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릭-. 휘리리릭…… 휘릭-.

해태의 상체로부터 검은 실들이 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해태는 몸을 세워 다시 재희를 내려다보았다.

‘……실?’

진재희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다.

대체 어떻게? 분명 완벽하게 베어 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 순간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은성검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즉사기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그때였다.

희미한 실들이 옆에서 날아들었다.

휘리리리릭-. 꽈악!

실들은 단번에 진재희를 낚아채, 움켜쥐었다.

“……웃?!”

어느새 다시 일어선 해태는 양날톱을 들고는 진재희를 베려고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그녀는 몸에 붙은 실들을 힘으로 끊어 냈다.

힘을 주면 어떻게든 끊어 낼 수 있는 실이었다.

하지만 해태가 뿜어내는 실은 끝없이 날아들었다.

휘릭휘릭- 휘릭-!!!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은 실.

말이 검은 ‘실’이지, 터무니없이 얇아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재희는 뒤로 물러나며 필사적으로 실들을 피하려고 애썼다.

그 검은 실에 맞은 만경의 병사와 동안의 전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일반인은 피부에 닿기만 해도 피부가 푸딩처럼 사르르 베어지는 예리한 실들.

그런 치명적인 실들이 전장에 한가득 뿜어져 나왔다.

이후 해태는 진재희에게 달려들었다.

‘몸 전체가 실인가? 그게 아니면…… 설마 조종자가 있는 건가?’

픽, 픽, 픽.

실들이 계속해서 진재희의 피부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때마다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온몸은 베인 상처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었다.

아티팩트의 종류는 파악된 걸로만 5,000가지 이상이다.

진재희가 아무리 회귀자라고 한들, 그 모든 능력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돌파구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진재희는 움직임을 멈추고, 두 번째 은성검을 뽑아냈다.

드드드드드……!

이제 그녀의 양손에는 은성검 두 자루가 쥐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볼에 십자 모양의 은빛 표식이 생겨났다.

플레이어는 각자의 능력을 통제하여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기본적인 아티팩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각성 1>.

기본적인 능력에서 성능이 크게 강화된 <각성 2>.

<각성 3>의 존재는 아직 진재희조차 알지 못했다.

리그는 이제 2년 차.

겨우 2년 만에 진재희는 <각성 2>에 도달했다.

전생에 그녀는 5년 차 때가 되어서야 <각성 1>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 상당히 빠른 성장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각성 1>을 개방한 플레이어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압도적으로 강하니까.

각성 1로 돌입한 진재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해태를 바라보았다.

‘놈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모조리 벤다.’

촤좌좌좌좌좌좌좌좌좌좌좍-!!!!!!

“…….”

진재희는 은검을 사방으로 휘둘러 순식간에 날아드는 모든 실을 베어 냈다.

너무나도 강한 공격에 은검의 날이 빠질 정도였다.

그렇게 휘몰아진 각성 단계의 공격은 전방에 있던 해태를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놈의 몸은 무차별적으로 베어져 토막이 났고, 가루처럼 분해되어 사방에 흩날렸다.

이제 실로 이어 붙여 재생시킨다는 건 불가능했다.

“푸-하……!”

힘을 쏟아 낸 재희가 거친 숨을 크게 내뱉었다.

정신이 아찔하고 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듯 아려왔다. 그녀의 양손은 여전히 교차된 채, 날 빠진 은검을 쥐고 있었다.

적을 쓰러뜨렸지만, 진재희는 방심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주변 상황을 살피고, 놈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피가 흐르지 않아.’

해태는 무수한 검격에 당해 토막 나 죽었음에도 그 주변에는 핏방울은커녕 핏자국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애초부터 놈은 인간이 아니었어.’

경험상 베었을 때 이런 흔적을 남기는 건 따로 있었다.

시체 혹은 인형.

지금까지의 증거들로 미뤄 보았을 때, 해태의 몸은 실로 만들어진 꼭두각시 인형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본체가 따로 있을 거야.’

재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지……?’

재희의 공격에 휘말려 토막 난 전사들이 셋.

서로 식칼을 겨누며 바닥에 나뒹굴고 싸우는 전사와 병사.

승용차 전차 위에 올라타 망치질을 해 대는 피 흘리는 병사.

세 명씩 모여 이미 쓰러진 병사에게 창을 찔러 넣는 전사들.

겁에 질려 폐차 밑으로 숨어드는 몇몇 전사들.

자신에게 달려들지만, 금세 병사에게 저지당하는 전사.

그 어디서도 해태의 조종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재희에 의해 잘게 잘린 검은 실들이 어디론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동안의 집결지 방향이었다.

‘상당한 거리에서 조종한 건가? 그렇다면.’

타앗-!

그녀는 곧장 전투 현장에서 벗어났다.

‘최대한 위로 올라가야 해.’

그래야 실의 목적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계단을 타고 건물을 올라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랬기에 진재희는 소리쳤다.

“야-!!!”

최현지에게.

전투 중인 전사와 병사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최현지는 본능적으로 미어캣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어?”

“부유물!”

최현지는 갑작스러운 반말에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어…… 뭐……? 부유…… 물? 야?”

갑자기 부유물이라니.

최현지 자신은 말한 적도 없는데. 하지만 눈빛을 보니 진재희는 이미 최현지의 스킬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허공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곧 최현지는 진재희의 의도를 알아차리곤 검은 물질을 꺼내 들었다.

츄르르르르륵-. 촤악!

최현지의 검은 물질이 빠르게 진재희에게 다가가 발판을 만들어 주었고, 그녀는 이를 밟으며 하늘 위로 올라갔다.

‘좋아. 이 정도면. 아군의 방어 진지도 피할 수 있겠어.’

진재희는 손을 허리춤으로 내렸다.

동시에 상체도 살짝 숙였다.

그러자 또 하나의 은성검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플레이어의 능력은 무한대가 아니다.

그건 진재희도 마찬가지다.

아마 이번 공격으로 그녀의 정신력은 모두 소모될 것이다.

‘……실이 흘러가는 방향을 향해 정확히 벤다.’

각성한 힘은 이미, 2년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놈들은 이 힘의 존재에 대해 모를 것이다.

검은 실이 몰려가는 방향을 확인한 진재희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부웅-!

단조로운 움직임이었지만, 그 단조로운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광경은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촤좌좌좌좍-! 서-걱!

전방의 모든 건물 상층부가 송두리째 베어졌다.

베어진 건물 잔해가 골목길 곳곳에 쏟아졌다.

그 잔해들은 마침 골목길에서 기습을 노리던 동안의 전사들에게 떨어졌다.

“으으…… 으아아아!!!!”

“꺄아아아악-!”

“갸아아아아아악-!”

쿵, 쿠궁, 쿵!!!

몇몇 건물을 허리째 잘라 낸 참격은 그대로 뻗어 나가 실이 모여드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힘을 모두 소모한 진재희는 최현지의 부유물에 주저앉았다.

“후우…… 후으…… 후으…… 훅…….”

옅은 신음을 몰아쉬면서도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빛나며 참격이 날아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고, 승패는 결정 나지 않았다.

그리고 적의 공세는 아직까지도 거셌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플레이어가 없는 동안의 선발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할 테니.

그리고 플레이어가 제거된 지금, 최현지를 선두로 한 만경의 총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 최현지가 나타났다.

그녀는 힘없이 쓰러진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숨만 몰아쉴 뿐, 차마 대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소모한 상태였다.

그런 재희에게 최현지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 동생님아.”

“후우, 후우, 후…….”

최현지는 자신의 아티팩트를 개방했다.

그러자 검은 물질이 그녀의 팔을 감싸기 시작했다.

“……콜라값은 할 테니까.”

휘릭-.

최현지는 쥐고 있던 콜라 캔을 허공에 던졌다.

타앗-.

하지만 지면에 먼저 떨어진 건 콜라가 아닌, 최현지였다.

이어지는 최현지의 일방적인 학살극은 적의 본대를 초토화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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