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안양역: 전면전 (1)
비산동, 동안 공격대 거주지.
공격대장 김정은 땀을 삐질삐질 흘려 대며 가방을 싸고 있었다.
다리 건너편, 아파트 단지는 불길에 휩싸였고 패배한 동안의 전사들은 꽁지 빠지게 주둔지로 도망 왔다.
팔뚝에 화살이 박힌 전사 한 명이 헐레벌떡 김정에게 달려갔다.
그러곤 넙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대장님……! 다…… 다…… 죽었습니다! 다음……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 명…… 명령을……!”
다급한 전사의 물음에 김정은 보란 듯이 소리쳤다.
“몰라!!! 이 X…… 발! 네 알아서 해.”
“대, 대장님……?”
김정은 서둘러 가지고 있던 모든 물품을 가방에 집어넣고 있었다.
곳곳에서 전사들이 아우성쳤지만, 지금 김정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가장 냉정해야 할 지휘관이 가장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려고 했다.
만경의 강시온이 아닌, 동안의 박지수로부터.
‘살해당할 거야……! 도망가야 해!’
박지수는 그에게 비산을 점령하라고 육천의 병력을 주었지만, 그 병력들은 처참하게 만경에게 몰살당했다.
그랬기에 동안으로 되돌아간다면 처형당할 것이 분명했다.
김정은 강시온에게 투항할 계획이었다.
투항해서 목숨만큼은 보존하려고 했다.
잘만 이야기를 나눈다면 만경에서 한 자리 쥘 수도 있다.
자신은 동안의 핵심 지휘관이니까.
“대장님……!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비켜! 이 쓸모없는 놈들……!”
퍼억-!
김정은 만류하는 부하들을 뿌리치고선 성큼성큼 불타는 아파트 단지로 달려갔다.
동안의 첫 번째 공략대는 대패했다.
압도적인 병력과 무기를 가졌음에도 철저하게 패배한 것이다.
김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시온의 머릿속에 철저하게 놀아나고 있었고, 결국 그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랬기에 김정은 항복을 선택했다.
“항-보오옥!!!”
불타는 아파트 단지를 내달리는 김정.
그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전장에 있던 만경의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항-복합니다!”
“항-복!”
“이곳 지휘관이 누굽니까?!”
“무조건 항복합니다-!”
타닥…… 타닥…….
불똥들이 튀어서 사방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선, 김정은 자신을 둘러싼 만경의 병사들과 마주했다.
하나같이 초췌한 몰골로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무기를 든 채 헐떡이는 병사들.
김정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그는 이곳의 지휘관을 찾으려고 기웃거리다가 처절하게 소리쳤다.
“지휘관이 누굽니까……? 전 동안의 대장입니다. 아, 알고 있는!!! ……동안의 정보란 정보는 모조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핵심 간부입니다! 그러니까 제발 목숨만큼은……!”
철푸덕-!
마침내 그는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병사들은 무기를 들이밀었다.
그 창날에 잔뜩 겁먹은 김정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 상태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병사들을 이상하게 여겨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누군가가 한 소년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
몸을 떨던 김정은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방독면 속 남자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죽은 사람처럼 감정 없는 눈동자를 지닌 남자.
그의 얼굴과 방화복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는 만경의 군주, 강시온이었다.
주변 전사들이 대하는 것과 남자에게 느끼는 분위기.
이를 토대로 김정은 그가 이곳의 지휘관임을 한눈에 직감했다.
엉금. 엉금.
김정은 거북이처럼 뜨거운 바닥을 기며 시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시온의 신발을 두 손으로 폭 감싸 안았다.
복종하겠다는 의미였다.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전 박지수…… 동안 군주의 핵심 전력이었으니…….”
김정은 실실 웃으며 천천히 시온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시온은 그 어떠한 감정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숙여, 엎드려 있던 김정과 시선을 마주했다.
스윽.
방독면을 벗어 든 시온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온은 숨을 크게 내쉬면서,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러고는 김정의 정수리에 손을 올리고는 그의 머리를 약하게 흔들었다.
낮게 가라앉은 시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차갑고 어두운 목소리.
김정은 목소리를 떨며 대답했다.
“예…… 예…… 예…… 예…….”
공포스럽다.
그것은 시온과 마주한 김정에게 든 첫 번째 감정이었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가.
지금 눈앞의 남자는 박지수 그 이상이다.
“……말해봐라. 네가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전 도, 동안의 핵심 정보를…….”
“전쟁 정보? 플레이어……? 아님. 무슨 정보.”
“전쟁 정보도…… 그, 그렇고…… 여러 가지…….”
“네놈들이 두 방향을 통해 진격한다는 것?”
강시온의 마지막 말에, 순간 김정은 얼어붙었다.
시온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동안의 플레이어, 인형잡이, 기마 전사, 개구리, 투명. 그 밖의 핵심 플레이어 전력에 대한 정보들이 있나? 비산을 접수하는 척, 우회하여 명학역 방향으로 진출하려는 것? 아님. 일번가를 접수한 뒤, 전쟁 장기화를 막기 위해 날 협상 테이블로 끌고 오려는 것? 동안의 전사들 총 숫자나 핵심 무기 정보들을 전부 알려 줄 수 있어? 네놈들의 문화와 지금껏 민간인을 상대로 벌인 만행, 박지수의 칙령과 도시의 정보들은? 아님, 새로운 광물에 대한 것도 알려 줄 건가? 아-. 그러니까 말해 봐. 네놈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거 외에 네놈이 내게 어떤 정보를 줄 수 있지?”
“…….”
“이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미 승패는 결정 났어. 네놈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만경의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고, 우린 분노했다. 이제 너희는 그 대가를 받을 차례지.”
“…….”
“……더 말하고 싶은 건?”
“…….”
“……없나 보군.”
시온은 이미 동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 절반 정도는 하윤하에 의해 얻은 확실한 정보였고, 나머지 절반은 시온의 예측이었다.
하지만 그 예측마저도 이젠 진실로 확인되었다.
김정의 반응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시온은 굳이 동안의 지휘관을 살려 둘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병사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선 적의 지휘관을 처형해야 했다.
시온은 무릎을 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시 방독면을 쓰며 차갑게 돌아섰다.
“……목을 쳐라.”
군주의 명령에 날카로운 중식칼을 쥔 병사 한 명이 서서히 김정에게 다가갔다.
“…….”
김정은 엎드린 채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고, 병사는 명령을 그대로 이행했다.
한 번으로는 목을 자를 수 없어, 여러 번 내리쳤다.
휘릭-. 퍽! 퍼억! 퍽! 뚜둑!
* * *
한편, 안양역에서는 양측 모두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양역 인근에는 변변찮은 방어 진지도 없을뿐더러, 인근 아파트 단지를 요새화한다고 하더라도 박지수가 그곳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안 입장에선 요새화된 방어 진지는 비산동 한 곳만 공략하는 데에도 상당히 벅찼다.
이런 상황에서 비산동 파미안 단지에서는 만안이 연전연승 승전보를 울리고 있었고, 그 소식은 동안의 안양역 방어대에도 전해졌다.
“X신 같은 새끼. 자신 있어 하더니.”
동안의 군주, 박지수는 혼잣말로 욕지거리를 내뱉다 부하를 불렀다.
부하는 단숨에 그녀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비산동엔 새로운 플레이어를 보낸다. 추가로 병력은…… 1만. 오늘 밤 내로 즉시.”
“예.”
후다닥.
군주의 명령을 전달받은 전사가 뛰어나갔다.
안양역은 역과 쇼핑몰이 합쳐진 복합상가 역으로, 무궁화호와 서울로 가기 위한 1호선이 지나가는 안양을 대표하는 역이다.
만경과 동안.
두 세력 모두 그 뿌리는 ‘안양시’이기 때문에, 강시온과 박지수는 안양역을 차지하고 싶어 했다.
안양역은 안양시의 근본이다.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한국 전쟁 직후, 안양이 아직 작은 시골 도시였을 당시, 안양은 안양역을 중심으로 상권을 발전시키고 대도시로 성장했다.
안양 일번가는 범계역, 평촌 로데오거리와 평촌 학원가와 더불어 제일가는 상권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했다.
상권이 집중되어 있는 곳은 아포칼립스를 살아가는 생존자들에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기존 현대 사회의 잔재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군주들은 상권가를 하나의 도시로 만들어 이를 중심으로 세금을 걷거나, 방어 진지를 구축했다.
안양 일번가는 비산동, 파미안 아파트 단지와 더불어 시온의 핵심 방어 지역이었다.
이곳은 시온이 처음부터 주름잡고 돌아다니던 곳으로 이미 건물 옥상 사이에는 그들이 설치해둔 교량들이 가득했다.
“……뭐야, 저건.”
동안의 군주 박지수도 건물 높은 곳에 설치된 교량들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6차선 도로에는 아무런 방어 진지도 없었지만, 일번가 내부는 사정이 달랐다.
일번가 건물 사이사이에 이어진 교량 위로 만경의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동안의 군주에게 누군가 다가갔다.
만경의 동태를 살피고 온 동안의 척후병이었다.
“대부분 1층은 바리케이드와 장애물로 모두 막아 놓았습니다. 건물에 숨어든 놈들의 방어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공성전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예상대로 나와 주는군. 뭐, 상관없어.”
군주는 뒤돌아 ‘그것’을 바라보았다.
박지수가 주문한 적의 ‘건물 요새’를 무너뜨릴 공성 무기였다.
그 웅장한 자태에 그녀는 미소를 보였다.
빨간 페인트로 칠해진 ‘그것’에는 동안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그 위에 서 있는 동안의 전사들은 각자 무기를 쥐고 있었다.
군주는 다시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해태.”
그녀의 부름에 가만히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일어났다.
맨발에 검은 탈을 쓴 남자였다.
아직 겨울의 추위가 많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는 반팔 반바지 차림이었다.
게다가 드러난 근육과 어깨에 걸치고 있는 1m에 육박하는 양날톱은 같은 동안의 전사들일지라도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그야말로 ‘전사’ 그 자체.
“…….”
해태의 키는 2m에 육박했다.
그는 말이 없다.
감정 역시 없다.
오로지 군주 박지수의 명령에 움직이는 살육 병기였다.
박지수는 해태를 두고 ‘적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의왕과의 전쟁이 한창인 당시에도 해태의 전력은 그야말로 무자비했으니까.
박지수는 명령했다.
“가서 맛보고 와.”
“…….”
해태는 걸었다.
맨발로 갈라진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그가 움직이자 동안의 전사들은 주춤주춤 거리를 내주었다.
전장으로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다.
“자…… 어떻게 나올 거냐. 시온아. 어떻게 발악할 거야. 최선을 다해 발악해 줘. 어차피 넌 내 거니까.”
해태가 간다는 건, 동안 플레이어 중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경에서도, 만경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죽을 테니까.
박지수는 만경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과연 얼마나 강한 놈일지 궁금했다.
“선발대. 진격 개시.”
군주의 명령에 트럼펫을 든 전사가 힘차게 악기를 불었다.
뿌우우우우-.
트럼펫 소리와 함께 전사들은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동안의 본대는 그렇게 만경의 본대를 향해 전진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