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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99화 (99/221)

#제99화. 불길 속 사투 (2)

“후……!”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동시에 사방에 휘날리는 불똥들이, 방화복 곳곳에 붙었다.

나와 함께 달리고 있는 부하들은 하나같이 전신이 불타고 있었다.

이 감각, 오랜만이었다.

1라운드, 김동길의 청 팀과 바리케이드를 두고 육탄전을 벌이던 그때 그 감각.

당시 나에겐 권총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구(球)체가 있었다.

인정사정 봐줄 것도 없다.

적들을 눈앞에 두고선 물러설 곳도 없다.

이곳에서 저들을 모조리 무찌를 것이다.

“…….”

아티팩트 개방.

손 주위에 구체들이 일정하게 공전하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의 수련 덕분이었다.

진재희의 지도 덕분에, 난 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었다.

그녀는 회귀자이기에, 아티팩트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힘은 오로지 동생 준호를 만나기 위해 기른 것이다.

죄책감이나 상실감, 우울감 같은 감정은 살인엔 필요하지 않다.

나는 이 감정을 지우고는 곧장 부하들과 함께 적들에게 맞부딪혔다.

* * *

전열의 병사들은 굳은 의지로 전사들을 밀어 넘어뜨렸다.

뜨거운 기름 위로 전사들을 쓰러뜨리고, 목을 찌르며, 도끼로 두개골을 찍었다.

최명준의 살인기술을 배운 병사들의 전투력은 뛰어났다.

아니, 그보단 사람을 죽이는 데에 두려움이 없었다.

불길 때문에 이 일대의 온도는 높이 치솟았고, 곳곳에 불똥들이 꽃잎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방화복을 착용하고 있는 병사들은 안전했지만, 그렇지 않은 동안의 전사들은 불타 죽어 갔다.

그럼에도 전사들의 수는 많았으므로 전투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고, 적들은 대응하기 시작했다.

시온은 인간들이 마구잡이로 뒤엉킨 불타는 전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눈앞에 도끼를 든 전사들을 보고도 겁내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만 교차해, 자신에게 달려드는 전사를 향해 구를 방출했다.

파바바박-!

순식간에 전사는 온몸에 바람구멍이 나며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전사의 몸을 뚫고 지나간 구체는 앞으로 나아가다 공중에 멈춰 진동했다.

시온은 조심스럽게 전사가 놓친 손도끼를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피와 불로 가득한 아스팔트, 이곳엔 두 세력의 병사와 전사들이 엉겨 붙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온갖 살점과 피가 튀었고, 불타는 기름에 산 채로 튀겨지는 이들도 있었다.

기름에 튀겨지는 자들은 억, 억 소리를 내며 차마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죽어 갔다.

하지만 그 불길 사이로 시온의 부하들은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화염이 치솟고, 불길이 아스팔트를 따라 단지 내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붕- 붕-!

불길이 치솟는 아스팔트 이곳저곳에서 도끼와 식칼,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그때, 병사를 불타오르는 기름 속으로 차 버린 전사 하나가 식칼을 쥔 채 시온에게 다가왔다.

동안의 전사는 시온을 향해 처절하게 소리쳤다.

“이 X발-!!!”

전사의 공격은 단조로웠고, 시온은 몸을 틀어 손쉽게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고는 휘청거리는 전사의 목에 도끼를 내리찍었다.

푹! 촤르륵…….

“커헉……!”

전사의 목에서부터 분출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전사는 자신의 목뒤에 박힌 손도끼를 매만지다, 시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탱-!

그때, 시온의 등 뒤에서 작은 진동이 울렸다.

마치 둔탁한 날붙이로 철판을 때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시온은 눈동자만 돌려 놈을 바라보았다.

전사 한 명이 창을 겨눠 시온의 등을 찔렀던 것이다.

하지만 시온은 끄떡도 않았다.

시온의 능력이었던 ‘구’를 전신을 휘감아 두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공격이 먹혀들지 않자, 전사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아…… 프, 플레이어……!”

휘릭-. 쩌억!

시온은 곧장 손을 뻗어 창을 겨눈 전사의 온몸을 분쇄했다.

후두둑…….

방독면 표면에 전사의 피가 흩뿌려졌고, 시온은 고글에 묻은 피만 소매로 닦아 냈다.

저들은 시온이 군주인지 몰랐음에도 시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시온이 근처로 다가가면 머뭇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일반인들도 플레이어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는 그야말로 강력했으니까.

저들이 다가오지 않으니 시온이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

‘…….’

시온은 손을 뻗었다.

휘릭-!

그러자 수많은 구체가 주저하는 전사들에게 유성우처럼 덮쳤다.

파바바바박-!

적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윽.”

그 순간, 시온은 머리를 매만졌다.

세 번째 공격 이후, 순간 머릿속이 핑 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재희는 지금 이 감각이 능력의 3분의 1이 줄어들었을 때라고 했다.

플레이어의 모든 능력은 무한대가 아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구체를 운용할 땐 꽤 많은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순 없다.

방독면을 입었기에 탁한 시야.

그 시야 속에서 시온의 구체들이 불길로 뛰어들었다.

그의 구체들이 불길에 달궈지기 시작했다.

이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시온은 고민도 않고 다리를 넘어오는 적의 증원 병력을 향해 불에 달군 구체를 날려 보냈다.

파바바바바바박-!

그의 구체가 불길을 뚫고 지나가 달려드는 전사들에게 쏟아졌다.

“아악……!”

“억……!”

“꺄악!”

방어구를 장착하지 않은 전사들은 그야말로 다짐육이 되어 아스팔트에 쓰러졌다.

왼편에서 또 다른 접근 반응이 느껴졌다.

시온은 고개만 틀었다.

솩-!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온의 등 뒤에서 창이 찔러져 들어왔다.

푸-욱!

시온은 고통에 미간을 좁혔다.

‘…….’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구체는 제한적이다.

대략 73개의 구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중 몸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구체는 22개.

방금 전 적의 중원 병력을 토벌할 때, 몸에 부착된 방어 구체 역시 날려 보냈다.

그러니 지금 시온의 육체는 무방비 상태.

놈은 그 틈을 노려 시온을 공격했고, 이후 등 뒤에서 속닥였다.

“이 전장에 플레이어는 너만 있는 줄 아나……? 죽여 주마.”

놈은 동안의 플레이어였다.

놈의 능력은 신기루.

정신력을 소모해 일정한 시간 동안 신기루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놈의 능력이 신기루이든, 무엇이든.

시온의 능력은 이미 ‘보통’의 플레이어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진재희는 각성 1과 각성 2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아티팩트는 시전자의 훈련량과 능력에 비례해 진화할 수 있다.

재희는 처음에 아티팩트가 개방된 당시를 ‘각성 0’으로 명칭했다.

이 모든 명칭은 진재희 스스로가 붙인 것이었다.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무언가를 정의할 만한 기관이 없었으니.

‘각성 0’ 상태에서 수십 개월간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각성 1.’

‘각성 1’만 연마한 상태여도, 일반적인 플레이어와는 독보적인 힘의 격차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리그의 톱클래스 플레이어들만이 얻게 된다는 ‘각성 2.’

그 윗 차원의 능력 역시 분명 존재하지만, 재희는 전생 동안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시온은 이미 ‘각성 2단계’와 비슷한 수준의 아티팩트를 구사할 수 있었다.

회귀자의 훈련법은 그야말로 레벨이 달랐으니까.

시온의 구체에 뾰족한 가시가 돋아났다.

그러곤 곧장 적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욱!

적 플레이어의 등에 시온의 구체가 꽂혔고, 뒤이어.

푹, 푹, 푹, 푹, 푹, 푹-!!!!

검은 가시들이 마구잡이로 플레이어의 등에 속속 박혔다.

“커헉…… 아아……!”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어버린 플레이어는 피를 토해 내며 앞으로 쓰러졌다.

“……쿨럭! 쿨럭!”

구체를 기다란 쐐기 모양으로 만들어 살상력을 배가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변화시키면 기존의 구체보다 더 날카롭고 관통력이 있었다.

원래 보통의 인간이라면 ‘구체’로 피부를 뚫을 수 있었지만, 플레이어는 다르니까.

플레이어를 상대하기 위해선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지녀야만 했다.

허공에 멈춰 선 그 모든 쐐기들이 시온의 명령만을 따랐다.

이미 전장의 허공엔 쐐기들이 떠올라 진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쐐기’를 처음부터 쓰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이렇게 형태를 변형시키려면 기존의 두 배에 달하는 정신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주륵-.

방독면 속 시온의 입술 사이에서 핏물이 흘러 내려왔다.

전투를 빨리 끝낼 필요가 있었다.

불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고 정신력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방화복이 아무리 불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고 하더라도, 무한하게 막아 주는 것은 아니다.

병사들의 체력도 떨어지고 있었다.

시온은 쐐기를 공중에 모두 떠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

분명 쐐기들을 공중에 멈추게 한 것은 시온이었지만 이 순간 이 일대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눈앞에서 휘날리는 작은 불꽃과.

서로에게 도끼와 단검을 휘두르는 전사와 병사들.

불타 죽어 가는 전사들.

방화복에 불이 붙은 채, 앞으로 달려 나가는 병사들.

이 모든 것들이 멈췄고, 움직이는 건 오로지 시온의 두 눈동자뿐이었다.

‘……뭐지?’

그의 검은 눈동자가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움직였다.

분명 시간이 멈췄다.

시스템의 오류인가?

설마 시온만이 그 오류에서 벗어난 것인가?

그리고 시온은 마주했다.

만경의 병사와 동안의 전사가 맞부딪히는 불타는 전장 속.

자신과 쏙 닮은 한 남자와.

그는 그냥 자기 자신이었다.

그 남자는 동안의 전사의 칼에 맞아 죽어 가고 있었다.

“…….”

기상천외한 현상과 마주한 시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자신’ 역시 전사에게 가려지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허공에 떠오른 그의 쐐기들이 전사를 향해 쏟아지며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렀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박-!!!!

* * *

“콜록……!”

불타는 소리와 비명 소리, 함성 소리 그리고 몰아쉬는 숨소리가 교차해 가며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옅은 신음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고는 방독면을 벗어들었다.

“후으…… 푸하……! 우윽……!”

방화복을 입고 방독면을 써도 미칠 듯이 답답하고 뜨거웠다.

연이어 고통스러운 기침을 토해 냈다.

미칠 듯이 뜨겁고 고통스러웠다.

“콜록……! 콜록! 우욱……!”

누운 상태에서 곧장 바닥에 엎드려 구토했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숨도 차올랐고, 정신도 아찔했다.

난 엎드려 기침을 토해 내다 장갑을 바라보았다.

방화 장갑은 불타고 있었다.

이 일대가 너무나 뜨거워 장갑에 불이 붙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것이다.

이곳은 기름 천지에 불천지였다.

타들어 가는 시체와 도망치는 사람들. 생지옥 그리고 불지옥이 따로 없었다.

“군주님……!”

“군주님!!!”

병사들이 내게 몰려와 호위하기 시작했다.

전투를 이어 나가면서도 병사들의 시선은 나에게 몰려 있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어린 목소리가 맴돌았다.

“……군 ……님! 괜…… 십…… 까?”

“……아.”

어렴풋이 기억나는 동생 준호의 목소리였다.

난 그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아이가 날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불길을 헤쳐 나오는 희미한 실루엣이 앞을 가렸다.

준호였다.

동생 강준호.

내게로 달려오는 소년은 분명 준호의 모습이었다.

난 떨리는 입술로 그 이름을 불렀다.

“준호야…….”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시 본 그 소년은 준호가 아니었다. 활을 메고 있던 206동 대장 정현수였다.

“군주님!!! 저…… 저 현수입니다!”

그 목소리에 소년에게 뻗었던 손이 주춤거리며 자연스레 물러났다.

촤르르륵-!

정현수는 불길이 가득한 기름을 뚫고 다가와 날 부축했다.

난 고개를 들어 온통 빨간빛 배경의 시야 속에서 현수를 바라보았다.

“군주님……! 군주님! 괜찮으십니까……! 지원 나왔습니다!”

희미한 시야 속 현수의 얼굴이 흔들렸다.

‘아, 그랬지.’

준호도 지금쯤 현수처럼 어엿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키도 나보다 크겠지.

요즘 애들 발육 상태는 못 따라갈 정도니까.

이제 벌써 15살이나 됐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정현수 동 대장은 어쩌면 동생과 동창 사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같으니까.

뭐가 되었건,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전투는 이어지고 있었고, 전장의 최고 지휘관은 나다.

내가 이 작전을 끝내야만 했다.

“……적은?”

“거의 다…… 해치웠습니다. 아군 전투병들이 잔여 졸개들을 소탕 중입니다.”

난 현수에게 부축된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불천지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말대로 병사들이 전사들을 대부분 해치운 듯 보였다.

쓰러져 있는 전사들을 병사들이 마구잡이로 도륙하고 있었다.

전사들의 시체가 아스팔트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득 깔려 있었다.

피를 머금은 전사들은 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었고, 살아남은 전사들은 안양천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난 현수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불꽃이 튀고 있는 놈들의 주둔지를 바라보았다.

‘……뜨거워.’

단지 숨을 쉴 뿐이었지만 미친 듯이 고통스러웠다.

기름을 만난 불길이 마구잡이로 치솟아 인근은 마치 용광로 같았다.

방화복이 없었더라면 맨살이 타들어 갈 정도의 온도였다.

하지만 이걸로 저들은 거의 괴멸했을 것이다.

거의 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쩔 것인가.

박지수는 이제 안양역에서 병력을 더 증원해야 할 것이다.

이곳 비산을 접수하지 않으면 측면이 불안할 테니 말이다.

저들에게 이곳은 반드시 점령해야 할 땅이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한, 호락호락하게 내주진 않을 것이다. 결코.

병사의 부축을 받으며 피와 시체가 가득한 거리를 걸었다.

그때, 단지 내에 가득 울려 퍼지는 이름.

“강시온! 강시온! 강시온!”

“강시온! 강시온! 강시온!”

아파트 창가에 가득 찬 병사들이 나의 이름을 소리치고 있었다.

승리에 감격한 만경의 병사들의 외치는 소리였다.

이로써 적들의 기세는 무참히 짓밟혔고,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불길이 너무…… 거세. 병력들 데리고 진지로 후퇴해…….”

“……받들겠습니다. 군주님. 더,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피가……!”

현수는 날 부축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치며 내게 다가왔다.

그를 본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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