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98화 (98/221)

#제98화. 불길 속 사투 (1)

“놈들은 이제 불을 이용할 겁니다. 대응해야 합니다.”

난 각 동 대장을 불러 모아 당부했다.

이곳은 아파트 옥상, 36명의 동 대장이 모두 모였다.

동 대장들은 지금까지 적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잘 막아 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건 아니다.

본격적인 전투는 안양역. 그 전에 이곳에서 결과를 내고 싶었다.

이제 금방이다.

놈들이 불을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원래 개전과 동시에 놈들이 불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안의 지휘관은 아직까지도 불을 사용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걸까.

설마 지금껏 불을 사용할 생각을 못 했던 것은 아닐 테고.

꼼수가 있나? 아님, 불 따윈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전력을 데리고 온 건가.

비산으로 파견된 동안 지휘관의 생각을 좀처럼 읽을 수 없었다.

지금껏 놈은 정말 ‘단순하기’ 그지없는 전술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생각한 정도의 수준…… 하지만 겨우 그 정도는 아니겠지.’

분명 다른 묘책이 있을 거다.

“놈들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아마 저희 측도 피해가 없진 않을 겁니다.”

201동 대장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의 의견에 105동 대장 역시 동의했다.

“아마가 아니라…… 다 죽을 겁니다. 불은 위로 번지니까요. 연기도 위험합니다. 한 시간만 들이마셔도 힘듭니다. 아무리 방화복이 있다 해도.”

두 동 대장이 말하기 시작하자, 다른 동 대장들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건물은 괜찮을까요? 무너져내리는 건…….”

“그나마 이곳이 안양 일대에선 신축 아파트라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어려운 것이죠. 너무 우리 좋을 대로만 생각해선 안 돼요.”

“물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어림도 없는 소리. 우리 마실 것도 없습니다. 불을 진화할 정도면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할 텐데.”

“설치한 방화벽으로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소화기도 있고요.”

“방화벽은 불의 확산을 막을 뿐이지, 완전히 진화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난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모두는 입을 다물고는 다시 날 바라보았다.

“방화벽 설치는 다 되어있을 겁니다. 맞습니까?”

내 말에 동 대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안양 지하상가 및 여러 건물에서부터 방화벽을 뜯어와 6층부터 5층 단위로 설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불을 진화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이곳에 가져왔다.

소화기, 모래, 방화복 등.

그러니 저들이 불을 지른다고 하더라도 얼마간은 막아 낼 것이다.

하지만 무한정 막아 낼 수는 없다.

그들이 지른 불은 결국 이곳 옥상까지 올라올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겨울이 지난 이후부터 안양에는 짧은 주기로 비가 쏟아진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오늘 밤, 소나기가 내릴 것 같았다.

“제 말을 들으십시오.”

36명의 동 대장은 모두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날 중심으로 둘러앉은 그들의 표정은 결의에 차 있다.

일단 난 그들을 위로했다.

“우리가 했던 지난 한 달 동안의 훈련은 지난 3일간의 전투보다 더 가혹했습니다. 우린 적이 불로 공격할 것을 예상해 그 한 달 동안 피와 땀을 흘려 가며 훈련했던 겁니다.”

적이 불을 쓰면 어쩔 수 없다.

나의 부하들은 화력전에 대비하여 지난 한 달간 훈련을 했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일주일이 최대다.

그것이 내가 비산동 전투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 근거였다.

난 현재 상태보다 더 좋은 방어 계획을 세우진 못했다.

하지만 목적은 단 하나.

필요한 희생을 최소한으로 감수하며 이곳에서 최대한 저들을 지체시키는 것이다.

비산동 아파트에서 최소 2만 명 이상의 동안 전사들을 이곳에 묶는다면.

그렇게 2만 명을 3,600명만으로 막을 수 있다면, 안양역에서의 전투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난 동 대장 중 한 명인 소년을 불렀다.

“현수야.”

“……예!”

동 대장 사이에서 유독 몸집이 작은 짧은 머리의 소년.

소년은 등에 긴 활을 메고 있었다.

소년은 벌떡 일어나, 날 바라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답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구, 군주님.”

“……오늘 밤 이길 수 있겠지?”

내 진지한 물음에 소년은 소리쳤다.

“예…… 예!!! 무조건…… 이기겠습니다. 군주님을 위해! 만경을 위해!”

“그래. 저번처럼 오줌 싸면 안 된다.”

“아…… 아. 그건…….”

다른 동 대장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현수는 힐끗거리며 다른 동 대장들의 눈치를 살펴 댔다.

단순히 농담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부하들의 긴장이 풀리는 듯싶다.

나는 소년의 다짐을 통해 분위기를 다시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로써 동 대장들에게서 아까의 불안감은 사라졌고 사기가 충만해졌다.

“하여튼 모두. 훈련대로 하십시오. 우린 막아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물론 이곳 비산동에서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거의 실패한다고 봐야겠지.

난 비산동이 결국 동안에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동안이 불 공격을 시작했다.

* * *

206동 6층 계단 층 최전방 방어 진지.

어두컴컴한 계단 층 내부, 코를 찌르는 시체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한편, 창과 석궁을 쥔 병사들은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계단 층에 일정한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15살의 동 대장 정현수.

그는 멸망이 시작되었을 땐 초등학교 육학년이었다.

강시온의 동생, 강준수와 같은 나이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키가 170cm를 넘었고, 어엿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만경의 군주 산하, 206동 대장을 맡고 있었다.

뛰어난 활 능력을 인정해, 강시온이 임명한 자였다.

그때, 바리케이드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소년을 발견하곤 함박 웃었다.

그는 정현수의 한 명밖에 남지 않은 가족이었다.

“혀, 현수, 왔나? 안 배고프냐? 여기 이거 먹어라. 애비가 챙겨 놨…….”

“……시끄러워.”

덥석.

현수는 벽면에 세워 둔 자신의 화살을 쥐고선 바리케이드로 다가갔다.

자연스레 그의 아버지 곁에서 경계를 섰다.

현수 아버지는 그런 현수에게 말했다.

“현수야, 뭔 일 있으면, 애비 옆에 있어라. 알겠지? 너 절대로 저번처럼 나서지 말아라.”

“…….”

“현수, 네가 아무리 동 대장이라고 해도 이 애비의 자식이다. 너무 나서지 말고. 적당한 선을 지키거라.”

“……좀.”

“전투가 벌어지면 애비 옆에 있어. 군말 말고. 저번에도 말없이 나가서 이 애비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 알겠다고! 그만 좀 잔소리해!”

현수는 남자에게 버럭 소리치고선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멸망 이후, 어머니와 두 딸을 잃었으니까.

아버지는 막내딸마저 잃어 버린 후, 유독 현수를 챙기려고 들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혈육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수는 그런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춘기였다.

현수는 애써 아버지 말을 무시하며 바리케이드 너머 계단 층을 바라보았다.

‘…….’

바리케이드의 길이는 대략 1m.

계단 중간층에는 이미 동안 전사들의 시체가 수도 없이 쌓여 있었다.

시체 사이사이로 쥐들이 돌아다녔다.

현수는 활을 거머쥔 채, 앞을 겨누었다.

이곳에서 싸운 지 벌써 3일째.

마치 3년 같은 3일이었다.

그때,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한 여자.

정현수의 부하였다.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도, 동 대장님……! 적이 오고 있습니다.”

다급한 그녀와 다르게 현수는 침착하게 물었다.

“……얼마나 왔죠?”

“놈들이 안양천을 건너고 있습니다. 관측 층으로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현수의 손목을 쥐며 말했다.

“현수야, 몸조심해야 한다. 뭔 일 있음 바로 애비한테 와. 바로 와야 한다……?”

“아-! 알아서 한다고. 내가 나이가 몇 갠데……!”

타악-!

현수는 아버지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곤 여자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아버지의 걱정에도 현수는 비장한 각오를 한 채, 다시 계단을 올랐다.

현수는 206동의 대장이다.

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면, 현수도 현수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현수는 이곳을 지켜야만 했다.

그것이 군주 강시온이 그에게 내린 명령이었으니.

정현수와 부하는 방어 진지 6층을 넘어, 13층으로 향했다.

206동, 13층 1301호.

원래 가정집이었지만, 이젠 석궁 진지 및 관측소가 되어 있었다.

그곳엔 이미 많은 병사가 석궁 화살을 쥔 채, 대기 중이었다.

현수는 후다닥 달려가 창문 너머 동안 전사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여자가 건네는 망원경을 건네받고, 안양천 너머를 바라보았다.

하천을 건넌 놈들이 이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이 석궁과 활 공격에 대비해 방패를 쥐고 있었고, 그들에게 보호받는 다른 이들의 양손에는 양동이가 들려 있었다.

아마도 기름일 터.

군주의 말대로였다.

현수는 망원경을 내리며 말했다.

“1사수님. 기름통을 가지고 있는 놈들만 조준해 주세요.”

“맡겨 주십시오.”

“2사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13층, 14층, 15층.

각 두 개씩 총 6개의 석궁.

그리고 방어 진지에 3개의 석궁.

206동은 현재 9개의 석궁을 운용 중이었다.

놈들이 더 근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사수는 기름통을 든 전사를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슉-! 슉-!

206동의 사수들이 화살을 쏘아 대기 시작하자 마찬가지로 반대편 아파트, 209동과 210동의 사수들 역시 기름통을 쥔 전사들을 노려 화살을 쏘아 댔다.

한 동당 6대, 세 개 동이면 총 18대의 석궁이다.

이들이 분당 10발을 쏘아 대니, 그 화력은 놈들을 저지하기에 충분했다.

몇몇 방패를 쥔 이들도 석궁 화살에 맞아 죽어 가기 시작했고, 기름을 운반하던 이들 중 대부분은 기름통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현수는 탄약수에게 명령했다.

“불화살요! 어서요!”

“예……! 여기 있습니다.”

현수는 화살촉에 불이 붙은 불화살을 건네받았다.

시온에게 받은 명령은, 저들의 기름을 사전에 터트려 진입 경로를 막으라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현수의 206동, 209동, 210동의 사수들이 맡고 있었다.

현수는 건네받은 불화살을 활시위에 메기고는 곧장 당겼다.

추우우우욱-.

현수의 오른팔이 뒤로 바짝 당겨졌다.

소년의 눈동자는 오로지 적이 엎지른 기름에만 향해 있었다.

현수는 강시온에게 인정받은 타고난 명사수였다.

그리고 그 능력을 지금 발휘해야 했다.

목표가 조준점에 들어왔을 때, 현수는 시위를 놓았다.

핑-!

불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쏘아졌다.

불화살은 네펜데스의 줄기와 기름을 엮어서 만든 것.

날아가는 도중 꺼질 일은 없었다.

온갖 함성과 신음, 석궁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을 배경으로 불화살 한 대가 올곧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리고 이윽고 불화살은 바닥에 엎질러진 기름에 꽂혔다.

푹.

화르르르르르르륵-!!!!

불이 마구잡이로 번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전사들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몸부림치면서 고통스럽게 죽어 갔다.

“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 아아아아악!!!!”

비명을 질러 댔지만 그들을 돕는 이들은 없었다. 그 대신 기름통을 든 전사들은 마구잡이로 아파트 쪽으로 돌진했다.

몇몇은 아파트 벽면에 기름 붓기를 성공하기도 했다.

저들이 계속해서 아파트에 기름을 붓자 현수는 소리쳤다.

“쏴요! 지금 모조리 죽여야 합니다!”

현수의 명령에 사수들은 동안의 전사들을 겨냥하여 쉬지 않고 쏘기 시작했다.

‘적의 무기를 활용해 적을 토벌한다.’라는 시온의 전략이었다.

그렇게 만경과 동안의 다섯 번째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놈들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내세워 계속해서 아파트 단지 내로 진입했다.

만경의 활시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을 쏘아 맞추었다.

* * *

나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들이 알 수 없는 은밀한 곳에 숨어서.

206동, 209동, 210동 인근에서 큰 불길이 치솟았다.

동시에 반대편 단지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놈들은 이중 작전을 펼쳐 아파트 단지의 두 방어 진지를 공략하려고 들고 있었다.

206동 창가를 바라보니 그곳에는 아군의 원거리 타격대가 쉴 새 없이 적에게 화살을 쏘아 대고 있었다.

역시 아파트 단지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단지 내부로 들어온 동안의 전사들은 화살을 피해 정신없이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었다.

저들의 관심은 오로지 아파트에 진입해 기름을 붓는 데만 꽂혀 있었다.

방심한 적의 배후를 노린다.

이번 공성전에서의 핵심은 나와 기습조 300명이었다.

난 진재희와의 훈련을 통해 강해졌고, 만안 2세력을 정복할 때 그 힘을 증명했다.

만경에는 플레이어가 턱없이 부족하기에, 나 홀로 만경의 병사들과 함께 싸우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적들이 분명 ‘만경의 병사들은 아파트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는다’라고 방심한 지금.

바로 지금이 배후를 노리기 가장 적합한 타이밍이었다.

이 타이밍에 나는 놈들의 허를 찌르고, 보급로를 차단할 것이다.

“가자.”

터벅-.

난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수백 명의 병사들이 나를 따라나섰다.

그들은 모두 방화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방독면을 쓰고,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우리를 본 동안의 전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들은 기름과 방패를 쥐고 있던 보급병들이었다.

“어엇…….”

“저…… 저 새끼들……!”

놀랐겠지.

차마 이쪽에서 이렇게 육탄전을 시작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방심의 결과는 파멸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너희들의 파멸이 될 것이다.

“돌격 개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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