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게릴라전 (3)
하나둘 시체가 늘어났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에 하나둘, 남녀 할 것 없이 쓰러졌다.
비상구 등에 새빨간 혈흔이 뿌려졌다.
계단 층 중심의 지하 2층까지 뚫려 있는 빈 공간에는 저들의 피가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진 피에 적셔진 전사들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소화기에서는 가스가 분출되었고, 비명과 함성이 한데 어우러졌다.
사람의 시체가 난잡하게 쌓여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한데 쌓아 둔 옷 더미 같았다.
그 시체 더미 속에선 눈동자만 깜빡거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한편 만경의 바리케이드는 밀려드는 전사들을 무한정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병사들은 서서히 물러났다.
5.5층에서 6.5층으로, 6.5층에서 7.5층으로.
그렇게 만경의 방어 전선은 서서히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들의 방어 세력이 물러날 때마다 전사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부하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동안, 동안의 지휘관 김정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으으……! 아아아!!!”
김정은 도망치듯이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빠져나오는 동안의 전사들을 만경은 가만 놔두지 않았다.
만경의 토벌대는 ‘도르래’를 이용해 아래로 내려왔다.
그 도르래는 위층에서 아래층으로만 이동할 수 있으며, 조종 역시 위층의 조종수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마치 특수 경찰들이 사용하는 레펠과 같은 용도였다.
만경의 정예대. 그러니까 최명준이 대장으로 있는 그 정예대는 아래층에 도착하자마자 전사 사냥에 돌입했다.
그들은 검은 숯으로 얼굴을 칠한 채 칼을 빼 들었다.
스응-.
전투에 전투를 거듭한 동안의 전사들?
어떤 세력과도 수많은 전투를 치렀던 전투의 베테랑들?
다 필요 없다.
만경의 정예대와 마주한 순간…….
“으아아아-!!!”
“아아아악!!!”
……전사들은 하나둘 죽어 나갈 뿐이다.
솨-악! 서걱! 꽈득……! 꽉!
정예대가 칼을 찌를 때마다 픽, 픽, 쓰러졌다.
최명준에게 교육받은 적의 약점을 정확히 공략하는 전투 방식.
목을 찌르고 바로 넘어가 배를 찌르고, 바로 넘어가 허벅지와 사타구니를 찌른다.
찌르고, 찌르고, 또 찌른다.
베는 건 없다.
오로지 찌를 뿐이다.
정예대는 놀라운 스피드와 압도적인 살상 능력으로 전사들을 죽여 나갔다.
정예대는 경찰서에 있을 때부터 ‘좁은 지형’에 특화되어 있는 전투 집단이었다.
이제 전투의 기세는 완전히 만경에 넘어왔다.
“헉…… 헉…… 허억……!”
풀썩-!
김정은 한참 도망가다, 시체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왼 볼이 찢어지고, 머리가 아찔했지만 겨우 상체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마주한 광경은 차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두컴컴한 아파트 단지.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
창문에서 바깥으로 몸을 던지는 전사들.
그 위층에선 수없이 쏟아지는 만경의 볼트들.
속수무책으로 볼트에 맞아 죽어 나가는 전사들.
피를 흘리는 전사를 부축하며 단지에서 나오는 전사들.
그들을 바로 앞에서 보면서도 김정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방적인 전투는 장장 3시간 동안 이어졌다.
무기력한 지휘관을 보다 못한 동안의 전사들이 스스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 * *
난 고개를 들어 도시 저편 너머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길었던 밤이 끝이 나는 듯싶었다.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다시 단지 내를 살폈다.
까마귀들은 어느새 이곳저곳에서 날아와 죽어 버린 전사들의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신선한 눈알부터 드러난 살점까지.
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적들이 퇴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승리했습니다.”
난 여전히 옥상 턱에 아슬하게 앉아 단지 내를 살피고 있었다.
승리했다라.
“승리…….”
고개를 돌려 부하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의식한 동 대장이 몸을 바짝 움츠렸다.
금방 전투를 치르고 온 듯했다.
그의 몸에는 피가 얼룩져 묻어 있었다.
난 안양천 반대편, 저들의 본거지 범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이세요?”
부하의 눈동자가 내 손가락을 따라갔고, 난 그에게 이어서 말했다.
“저곳을 손에 거머쥐기 전까진…… 승리라고 하지 마세요. 저들은 다시 옵니다. 2차 방어 준비하세요.”
안양을 통일하기 전까진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
우린 계속해서 이 추악한 전투를 이어 나갈 것이다.
추악하고, 추악하게.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자들과 쾌락에 미쳐 무기를 든 이들을 상대로 우린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
그렇게 싸워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부하는 말했다.
“포로는 어떻게 할까요?”
‘포로’라는 말에 나는 예전부터 곱씹어 온 생각을 정리했다.
추악한 건 저들만이 아니다. 맞서 싸우는 우리도 저들을 닮아 있다.
악에 받쳐 무기를 만들고 일말의 가책도 없이 저들을 죽여 왔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추악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더 추악해지는 것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힘이 될 것이다.
만경을 이끄는 나는 군주로서 더욱 추악해질 것이다. 너무도 추악해져서 저들이 감히 넘볼 수도 없게 만들 것이다.
내 행동, 내 얼굴, 내 모든 걸 보았을 때 오금이 저리고 소름이 돋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놈들이 얼씬도 못 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입을 열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창가에 목매달아 놓으세요. 저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사기를 꺾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하는 조금 뜸 들이다 다시 말했다.
“그중에는 늙은이나…… 전투 의사가 없는 이도…….”
“한 명도 빠짐없이.”
그를 노려보며 거듭 강조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입니다.”
그러자 그는 잠시 침묵하고 시선을 회피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받들겠습니다.”
* * *
비산, 동안 주둔지.
파미안 아파트로부터 도망쳐 온 김정은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선 허탈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손이 벌벌 떨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안양천 너머의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부하들의 비명 소리가 안양천을 넘어 이곳 동안의 주둔지까지 울리고 있었다.
저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김정은 머리를 감쌌다.
부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공을 세우지 못했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김정은 조심스럽게 곁에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몇 명…… 죽었어……?”
“……모, 모르겠습니다. 돌아온 전사는 3,800명 정도입니다…….”
“뭐……?”
김정은 깜짝 놀라선 부하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전투에서 2,200명을 잃었다.
이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김정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부하는 조심스럽게 김정에게 물었다.
“보고…… 올릴까요?”
그러자 김정은 버럭 화를 내었다.
“보고? 야이, 씨…… 하아…… 보고? 보고를 왜 해? 누구한테.”
“아무래도 군주님께 지원병을 요구하는 것이…….”
“시끄러워! 장난쳐? 니들이 못 싸운 걸 왜 내가 보고를 쳐 올려야 하는 건데? 어?!!”
소리치는 김정의 동공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보고,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박지수의 분노는 처형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동안의 처형 제도는 참으로 잔혹하기에, 김정은 그런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곳에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했다.
“으…… 으……! 간사한 새끼들.”
만경의 병사들은 그가 마주했었던 의왕 세력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지능적으로 전투를 이끌고 있었다.
원래라면 아파트 담벼락을 기준으로 방어 세력을 세웠겠지만, 만경은 오히려 아파트 내부를 요새로 만들어 수성에 나섰다.
그곳은 늪처럼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당장 김정이 마주했던 놈들의 무자비한 공격은 손발이 떨릴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그렇다고 비산동을 우회하여 곧장 만경으로 쳐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박지수가 김정에게 내린 명령은 ‘비산을 접수하라’라는 것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도 우회해서 돌아가 봐야, 저들에게 뒤를 내주는 꼴이었다.
그렇게 되면 만경의 부대와 파미안에 주둔한 부대가 양동 작전을 펼칠 테고, 김정의 부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동안의 입장에선 반드시 파미안 아파트 단지, 비산을 접수해야 했다.
김정은 만경의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릴 작전을 세워야 했다.
‘해야 돼…… 내가 해야 돼…… 여기서 해야만 해……!’
그렇게 그의 뻘짓은 시작했다.
멍청한 사람이 지휘관이 되면 벌어지는 일을 그는 몸소 보여 주었다.
* * *
원활한 보급과 잘 훈련된 병사들.
하지만 생소한 전투 환경에 노출된 동안의 전사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아파트를 진입하기 위해선 안양천부터 시작되는 만경의 공격 세례를 버텨 내야 했다.
그걸 버텨 내서, 도하한 뒤 아파트 단지에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내부에 구축한 만경의 바리케이드를 뚫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6층을 방어하는 바리케이드를 뚫는다고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6층을 겨우 넘으면 이제 7층에 주둔한 방어 부대와 마주해야 했다.
7층을 넘으면 8층, 8층 다음에는 9층…… 10층…… 11층…….
9층부터 22층까지, 총 14개의 방어 진지를 차례로 넘어야만 아파트 ‘한 동’을 접수할 수 있었다.
그뿐만인가?
아파트 단지는 총 36동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비산에 구축된 방어 진지만 648개라는 것.
648개의 방어 진지.
진시황의 만리장성, 프랑스의 마지노선, 낙동강의 방어 전선보다도 훨씬 견고한 거미줄처럼 촘촘한 방어 진지.
그 방어 진지에 막혀 후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도 적의 화살 세례를 받았고, 그렇다고 적이 몰려 있는 아파트의 계단을 타고 올라갈 수도 없었다.
가까스로 밖으로 나온다 해도 온 아파트 창문에서 볼트와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쏟아지는 만경의 화살 세례를 그들은 버텨 내지 못했다.
다른 방법도 동원했다.
동안 역시 만경만큼은 아니지만, 공성전을 대비한 투석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쏘는 투석기는 명중률과 사거리가 현저히 뒤떨어졌고, 설령 맞춘다고 하더라도 콘크리트 구조의 아파트를 통째로 무너뜨릴 순 없었다.
폭약은 시스템상 금지이기에 아파트를 통째로 폭파하는 것도 불가능.
흙을 잔뜩 가져와 그것을 쌓아서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
기다란 창과 온갖 무기를 이용해서 계단 바리케이드를 뚫어보려 했지만, 이 역시도 불가능.
첫 공격부터 지금까지.
지난 3일간 김정은 수도 없이 많은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그 어느 것도 먹혀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절망에 빠졌다.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어……!!!’
김정은 지금껏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마치 적의 지휘관 손아귀 안에서 자신이 놀아나는 것만 같았다.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만경의 군주는 모조리 간파하여 대응했다.
“…….”
호기롭게 비산 정벌을 떠난 김정의 부대는 이제 1,893명만 남았다.
대략 4천 명의 전사들이 포로가 되거나 죽은 것이다.
망연자실한 김정은 안양천 반대편 자신들의 주둔지에서 말없이 파미안 아파트 단지를 올려다보았다.
원래 세계에선 밥 먹듯이 드나들던 아파트가 이젠 거대한 지옥문으로 보였다.
아니, 저건 일종의 포탑이었다.
움직이지만 않을 뿐이지, 사방팔방 무기로 가득 무장한 아포칼립스 최대의 전략적 무기나 다름없었다.
현대로 비유하자면 항공 모함과도 버금갈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두려웠던 건, 전쟁에서 패배한 자신보다 패한 자신을 탓할 박지수였다.
“꺄아아아악……! 카하아악……! 커헉!”
먼 하늘로부터 여자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경의 병사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창틀에 목을 매달아 전사들을 처형시키고 있었다.
덕분에 이 전장에 전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시온의 의도대로, 그 비명은 동안의 전사들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오고 있었다.
지휘관 김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정은 조심스럽게 두려움에 찬 말투로 물었다.
“이, 이제껏 우리는 몇 명 죽였어……?”
동안의 전사들이 많이 죽었다면, 만경의 병사들 역시 많이 죽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부하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확인된 건, 104명…… 입니다.”
수치를 말하는 부하도, 그걸 듣고 있는 김정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군은 4,000명 이상씩 죽어 나가는 동안 적군은 104명밖에 죽지 않았다니.
이것은 전사들의 목격담이었으니, 전사 개개인이 목격한 중복 사례는 계산되지 않았다.
참패 중의 참패였다.
“으으…… 안 돼…… 안 돼……!”
김정은 두려움에 머리를 감싸 안았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대패를 기록한 장군은 한 명도 없었다.
이걸 박지수가 아는 순간, 자신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혀가 바짝바짝 마르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였다.
김정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타닥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조금씩 들었다.
그곳에선 동안의 전사들이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물을 끓이기 위함이었다.
불똥이 조금씩 바깥으로 튀었다.
근처에 있던 종이 박스에 튄 불꽃은 그곳을 검게 그을렸다.
몇몇 전사들이 잔불을 끄기 위해 종이 박스를 발로 밟아 댔다.
그 모습을 본 김정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묘책을 생각해 낸 것이다.
“……불. 그래, 불.”
벌떡-!
김정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불로 다가가더니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부하가 걱정스러운 듯 다가왔다.
“대장님……?”
김정은 그렇게 타들어 가는 불꽃을 바라보다가, 반대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
김정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불 지르면 되잖아……? 여, 연기는 위로 가니까.”
김정은 훽 되돌아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섬뜩한 미소에 부하는 떨며 뒤로 물러났다.
“그 새끼……! 만경의 그 군주, 그 X새끼도 우리가 불 지를 줄은 모르겠지? 그치? 와-! 나 천잰가?? 저기, 다 불 질러 버려. 기름, 그래, 기름을 모아! 빨리!”
그는 이내 이빨 다 드러나도록 웃어 댔다.
“모조리 통구이로 만들어 주겠어. 푸흐흐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