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96화 (96/221)

#제96화. 게릴라전 (2)

깊은 새벽.

정확히 몇 시인지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강둑에 모인 동안의 선발대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비산동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는 김정은 중얼거렸다.

누군가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전쟁은 은밀함이야. 그냥 조용히 다가가서 냅다 뒤통수에 칼 꽂는 거지. 김일성도 그렇게 전쟁을 시작했잖아? 그리고 성공했고. 기습은 언제나 옳다 이 말이지. 어이, 시작해.”

동안 6천 명의 파미안 아파트 공략대.

그들은 조심스럽게 안양천을 도하했다.

그들은 만경의 볼트를 피하기 위해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러곤 만경의 병사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기 위해, 다른 손에는 창과 칼, 새총을 쥐었다.

전사들이 내는 철퍽거리는 소리는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도하는 어렵지 않았다.

안양천이라고 해봐야 깊이가 50cm가 채 되지 않았으니.

전사들이 강을 건너는 순간에도 만경은 고요했다.

어두컴컴한 아파트 단지에는 작은 빛도 찾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전사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악어 입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

이 느낌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 멈추지 않았다.

동안의 전사들이 얼추 강을 넘어오자, 김정이 명령했다.

“산개해.”

깊은 밤 아파트 담벼락.

동안의 선발대가 대장의 명령에 흩어졌다.

그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김정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아. 굉장해.’

수천 명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산개했다.

자신이 지닌 권력의 힘이었다.

사실 김정이 위험한 선발대를 자원한 것도 모두 이 같은 권력을 누리기 위함이었다.

‘이 맛에 살지……!’

그리고 김정은 이번 공략을 성공해서, 박지수의 최측근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박지수의 최측근이 되면 주어지는 혜택은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노예 다섯 명이 할당되고, 매달 배당품도 받는다.

자신의 영지와 건물도 받아, 그 내부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아…… 흐으…….”

아포칼립스.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기존의 법과 질서가 사라지고 새로운 규칙이 다스리는 세상.

김정은 그 세상이 주는 쾌락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니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하이에나처럼 몸을 바짝 웅크린 채, 먹잇감을 노리며 둥지로 다가갔다.

하지만 만경의 군주, 강시온은 아파트 옥상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독수리처럼.

* * *

208동, 1층 로비.

한 무리의 전사들이 무기를 쥐고 208동을 향해 달려 나갔다.

로비 입구는 철제로 된 사슬과 잡다한 가구들로 막혀 있었다.

대장 남자가 앞장서고, 그 뒤로 스무 명이 따르고 있었다.

대장은 사슬을 살피더니 말했다.

“망치 줘. 망치.”

그러자 곁에 있던 마스크를 쓴 여자가 손에 쥐고 있던 공구 망치를 쥐여 주었다.

대장은 망치로 사슬과 로비의 유리문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쾅! 쾅! 쨍그랑-.

곧 허술한 바리케이드가 무너지고 전사들은 아파트 내부로 진입했다.

마스크를 쓴 여자는 그를 따라 들어가려다가, 깨진 사슬을 주섬주섬 가방에 담고 있는 장발의 남자를 발견했다.

여자가 그에게 물었다.

“야, 뭐해. 빨리 들어가.”

“……이것만 챙기고. 먼저 가.”

“사슬은 어디다 쓰게? 무겁기만 하잖아.”

“…….”

장발 남자가 사슬을 가방 안에 넣다가, 힐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표정 없이 말했다.

“노예 목줄. 필요할 것 같아서. 왜, 네 것도 챙겨 줄까?”

“…….”

순간,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발 남자는 입속에서 혀를 굴렀다.

그러곤 한껏 낮은 톤으로 말했다.

“……뭐야? 그 표정. 기분 나쁘게.”

“……아니.”

“……꺼져. 방해되니까.”

“……그래.”

대화를 마친 마스크 여자는 전사 무리가 침투한 아파트 로비를 향해 나아갔다.

그때,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아파트 내부에서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푸하하하! 잡았다! 잡았어!”

“어이, 김 씨! 이년 숨어 있던 거, 내가 먼저 잡았잖아!”

“내 거야. 이 X발. 안 꺼져?”

만경의 한 여자가 전사들 여럿에게 둘러싸여 머리채가 잡힌 채 끌려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전사들은 중얼거렸다.

“빠, 빨리 잡아야 해…… 아니면 다 채어 가고 없을 거야.”

“나도 노예. 노예 줘. 싱싱한…… 젊은 남자로! 하아……!”

“야! 가자고!”

“하하하하하하!”

툭! 투둑! 툭!

전사들은 마스크 여자의 어깨를 쳐 가며 아파트 내부로 달려 들어갔다.

사슬을 챙기고 있던 장발 남자도 도끼를 쥔 채, 그들을 따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스크 여자는 단지 내를 한 번 돌아보곤, 이내 고개를 돌려 동료들이 향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콩닥거렸다. 아파트 내부는 칠흑같이 어두웠으며, 곳곳에선 정체불명의 괴성들이 들려왔다.

괴성들이라고 했지만, 결국 인간이 내는 소리들이었다.

마스크 여자는 로비 층에 들어가 천천히 계단 층으로 이동했다.

1층. 1001호, 1002호.

수많은 전사들이 그곳에서 쏘다니며 약탈하고 있었다.

사람, 즉 노예를 찾는 이들도 있었지만,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는 이들도 많았다.

“…….”

심장이 마구잡이로 콩닥거렸다.

마스크 여자는 쥐고 있는 플라이어(공구)를 두 손으로 꼭 쥔 채, 반쯤 열려 있던 1001호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어두운 가정집 안.

수십 명의 전사들이 집 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가방에 닥치는 대로 생활용품을 쑤셔 넣고 있었다.

필요한 물품이라고 생각되면 닥치는 대로 챙겼다.

마스크 여자는 천천히 방 내부를 살폈다.

작은방 문틈 사이로 한 중년 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서랍에서 속옷을 꺼내더니 킁킁 코로 맡아 댔다.

곧 주변을 힐끗거리던 녀석은 속옷을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화장실 내부에 들어간 이들은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샴푸 통 내부를 들여다보거나, 오물이 묻어 있는 수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방에 넣었다.

안방 문을 열자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전사들은 퀸 사이즈의 침대를 넘나들며 물건을 챙기고 있었고, 그들 옆에는 커튼 봉에 넥타이로 목을 매단 시체가 있었다.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 이젠 백골이 되어 있었다.

시체의 모습은 끔찍했지만, 전사들은 개의치 않고 백골의 호주머니까지 뒤졌다.

그중 한 명이 호주머니 안에서 밴쯔 차 키를 찰랑거리며 실실 웃었다.

“오…… 밴쯔. 이 새끼 잘사는 새끼였나 보네.”

“야, 롤넥스 시계 있다. 여기. 이런 건 또 수요가 있지. 시간이 정확하잖아.”

“하하. 이 X발련들. 매트리스 밑에다가 비상금 꿍쳐 놨네. 야! 여기 현금 다발 있다.”

“현금을 어디다 써? 필요한 것만 챙겨.”

“우욱…….”

마스크 여자는 헛구역질이 나오려던 걸 겨우 참아 가며 안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걸었다.

정처 없이, 마구잡이로 쏘다니는 동안의 전사들 사이로.

2층 계단 층, 3층, 3층 계단 층, 4층.

아무도 없다.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이상할 정도로.

동안의 전사들은 전투를 하려고 왔음에도, 이젠 눈앞의 욕구에 눈이 멀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우욱……!’

휘청거리며 걷고.

넘어질 뻔하다가 또 걷고.

눈앞은 아른거렸고, 구토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마스크 여자는 어느새 5층에 올랐다.

5층 계단 층.

그곳에는 네 명의 전사들이 계단 층 문에 잠긴 쇠사슬을 풀어내고 있었다.

마스크 여자는 목적 없이 그곳으로 걸어갔다.

쾅, 쿵! 쾅, 쾅!

전사들은 열심히 쇠사슬을 두드렸고, 이내 쇠사슬은 끊어졌다.

철크덩!

“좋아! 어서 가자고.”

“만경 X새끼들. 다 쫄았나. 어디 간 거야? 오랜만에 피 맛 좀 보려고 했더니만.”

“아…… 제발 노예 한 명만.”

끼이이익…….

6층으로 향하는 5층 계단 문이 서서히 열렸다.

* * *

2시간 넘게 이곳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만경의 병사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숨소리조차 참으면서 아래층에서 나는 놈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저벅저벅…… 사박사박…… 쿵쿵…… 쨍그랑…… 텅텅…….

만경의 병사들은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바깥으로 석궁을 겨눈 채, 놈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피 말리는 기다림이었다.

그들의 눈앞으로 죽음이 다가왔다. 이젠 진짜 적을 향해 무기를 겨눠야 한다는 공포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만경 병사들 대부분은 전투 경험이 전무했다.

전투 경험이 있는 이들은 정예대 소속의 병사들. 그들은 강시온과 쿠데타를 일으켰던 병사들이었고, 지금은 최명준에게 배속되어 있었다.

전투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이제 병사들은 싸워야만 했다.

그들이 싸워야 할 적들은 동안의 전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몰려드는 공포와 겁에 질린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했다.

“…….”

“…….”

침 넘어가는 소리.

놈들의 발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그들은 이내 철제로 된 계단 문 앞에 모여들어 쿵쿵거리며 쇠사슬을 끊어 내고 있었다.

병사들은 석궁을 꼭 쥐었다.

곧 소리가 들렸다.

철크덩!

쇠사슬이 끊어지는 소리.

6층으로 향하는 5층 계단 문이 서서히 열렸다.

동시에 공구와 칼을 든, 동안의 전사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리들은 서로를 마주한 채, 정확히 3초.

3초 동안 침묵했다.

3시간 같은 3초였다.

그 3초가 지나자 침묵은 곧 비명과 함성으로 뒤바뀌었다.

“으랴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야아아아아아아아-!!!”

동안의 전사들은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 * *

계단 층은 폭이 좁다.

성인 두 명이 겨우 설 수 있을 정도다.

강시온은 이러한 계단 층의 특징을 이용하여 방어 진지를 구상했다.

첫 번째, 가구의 잔재들을 쌓아 놓고, 통로 중간중간을 전깃줄로 묶어 놓아 진로를 방해했다.

두 번째, 긴 폴대로 만든 창들을 전방을 향하게 놓고 각각을 전깃줄로 묶어 적들의 돌격에 대비했다.

세 번째, 창대 뒤에는 커다란 가구로 층 자체를 틀어막아 작은 ‘성벽’을 구축했다.

석궁과 활을 든 사수들은 그 작은 성벽 위에 올라 사격을 준비했다.

이렇게 준비된 만경의 방어 진지는 5층부터 22층까지 총 17개가 아파트 한 개 동에 포진되어 있었다.

“우아아아악……!”

“카학……!”

“칵……! 억……!”

만경의 병사들은 이곳으로 들어오는 전사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볼트를 쏟아부었다.

화살을 맞고 죽은 전사들의 시체가 통로에 설치된 첫 번째 장애물 앞에 하나둘 쌓여 갔다.

이것이 네 번째 장애물.

저들의 시체가 자연스레 바리케이드가 되는 것이다.

계단 층을 향해 달려드는 전사는 동료의 시체를 넘어, 잔재 방해물을 넘어, 폴대 창을 넘어, 가구 성벽을 넘고, 이곳을 지키는 만경의 병사를 죽여야만 ‘1개 층’을 돌파할 수 있다.

강시온이 고안한 완벽한 작품.

그 작품 앞에서 동안의 전사들은 속속 죽어 나갔다.

“X발……! X발……!”

“일단 빼! 우회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비열한 놈들……!”

마스크 여자도 이마 중앙에 볼트가 박혀 시체 더미 위에 쓰러졌다.

기껏 쇠사슬을 챙겼던 장발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둘 동료들의 시체가 쌓여 가는 것을 보고 전사들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우회할 수 있는 공간 따윈 없다.

이곳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아니면 계단을 이용해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작동될 리가 없는 데다 이미 시온은 엘리베이터를 지하 2층에 떨어뜨려 놓았다.

게다가 창문을 통해 올라갈 수 없었고, 계단만이 그들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 돌파구를 뚫기 위해서 몇 명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동안의 상황은 안 좋아졌다.

아파트 안에 진입한 전사들에게 쏟아지는 볼트들.

한 번에 수십 명씩 죽어 나가는 전사들.

가장 절망을 느낀 이는 이번 원정대의 대장, 김정이었다.

그는 5층 창문을 통해 자신의 부하가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명과 함성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는 김정은 사색이 되어선 중얼거렸다.

“……X발.”

중얼거리는 김정을 향해 부하가 달려왔다.

그러곤 다급하게 말했다.

“어, 어떡할까요! 명령…… 명령을……!”

하지만 이미 패닉에 빠진 지휘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와 무릎 꿇은 부하를 바라보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몰라.”

* * *

비명과 함성이 단지 내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학살극을 보며 웃고 있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아파트 옥상 난간, 아슬하게 서 있는 강시온은 첫 번째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는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그 군주 곁에 있던 부하는 그를 보며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강시온이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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