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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95화 (95/221)

#제95화. 게릴라전 (1)

툰툰이 아스팔트를 내달렸다.

아직은 눈과 풀잎이 듬성듬성 피어있는 학교 운동장.

이곳은 안양 부흥고등학교 운동장, 동안의 전진 기지였다.

운동장 한 편에서 전사들과 모여 고기를 굽던 박지수는 그녀를 발견하곤 방긋 웃었다.

“아, 소피-!”

“…….”

소피아는 금세 그녀가 있는 곳으로 툰툰을 몰아갔다.

도깨비 가면을 쓰고 있던 동안의 플레이어는 툰툰에서 내려 박지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박지수는 쥐고 있던 텀블러를 소피아에게 주었다.

따뜻한 코코아였다.

둘은 영어로 대화했다.

“어땠어? 그 녀석들.”

“방어 세력이 견고하진 않았어. 조금 이상할 정도로.”

“……그래? 어때. 내 말이 맞지?”

“응. 우릴 안쪽으로 더 끌어들이려고 했어.”

“푸하하핫. 아, 그래. 그래.”

박지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소피아를 끌고선 자신의 참모진과 함께 앉았다.

박지수는 소피아에게 과자와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초코 과자 하나를 집어 들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만큼 뭔가 이상한 건 있었어.”

“뭔데, 뭔데.”

“적의 군주도 비산의 중요도를 알고 있을 텐데, 전투 병력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아마 다른 계략을 꾸민 것 같아. 조심해야 돼.”

아그작, 오물오물.

소피아는 초코 과자를 조심스럽게 씹어 먹었다.

박지수와 참모진은 소피아에게 주목하고 있었고, 뭔가 더 말해 주기를 바라는 듯한 눈치였다.

소피아는 초코 과자를 먹으며 참모진을 빙 둘러보았다.

“끝.”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짧았다.

박지수는 주변 참모진의 눈치를 둘러보더니 이내 털털하게 웃으며 소피아의 등을 어루만졌다.

“어…… 응. 오케이. 알겠어. 그치? 그거면 된 거야. ……야-. 고생하고 온 소피아한테 그 눈깔들 뭐냐?”

“……죄송합니다.”

박지수에게도 군인 출신 지휘관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동안의 핵심 참모를 맡고 있었다.

소피아에게 내려진 명령은 단순히 적의 방어력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박지수에게 더 중요한 거점은 안양역, 안양 일번가였다.

안양역, 안양 일번가.

안양시 내부에서는 손꼽히는 자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솔직한 말로 박지수는 안양역만 접수하고 전쟁을 끝내도, 만경은 알아서 자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안양역은 경찰 세력이 접수하는 동안에도 그들에게 꾸준한 자원들을 공급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만경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경제력도 안양 일번가로부터 얻고 있으니 말이다.

동안의 병력들은 안양역으로 속속 집결 중이었다.

소피아는 이제 그곳으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쿵-!

그때, 우람한 체격의 한 사내가 거대한 벌목도를 쥔 채 박지수 앞으로 다가왔다.

“군주님. 비산엔 절 보내 주십시오.”

“…….”

박지수는 소피아를 바라보다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김정.

그는 박지수 소속의 지휘관이었다.

“오천이면 됩니다. 오천만 주시면, 비산을 군주님께 바치겠습니다.”

그의 말에 먼저 반응한 건 참모진이었다.

“오천……?”

“오천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그래요. 오천으론…….”

참모들의 걱정에도 김정은 호탕하게 웃어 댔다.

“푸하하하-! 오천만 있으면 됩니다. 닥치는 대로 전부 부수고 수천 명을 노예로 잡아 오죠. 약속합니다.”

자신 넘쳐 보이는 김정의 목소리.

확실히 김정은 의왕과의 전면전에서도 엄청난 전투력을 선보이며 최전방에서 활약했다.

그의 전투력이라면 비산의 방어 세력도 거뜬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박지수 자신은 안양역 공략에 온 정신을 다 쏟아야 해서, 비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박지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지만, 그를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 좋아. 육천 줄게. 가서 다 조져 놔. 전부 죽여도 좋으니.”

“아, 예! 군주님. 믿어 주십시오!”

이렇게 비산의 본대는 김정이 이끄는 육천 명의 전사들로 구성되었다.

이제 남은 병력은 모두 안양역에 투입될 것이다.

그곳에는 진재희가 이끄는 만경의 본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부딪치면 최대 접전지가 될 터였다.

박지수는 곁에 있던 상황병에게 명령했다.

“비산, 육천, 지휘관은 김정이다. 준비시켜.”

“예, 알겠습니다.”

군주의 명령을 하달받은 전사가 빠르게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곧 학교로부터 무기를 쥔 전사들이 무리 지어 나왔다.

그들 모두는 각기 다른 색깔의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겉모습은 차마 군대라고 볼 순 없고, 오랜 고향에서 쫓겨 온 유랑민이라고 표현해야 옳았다. 볼살은 움푹 파여 시체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달랐다.

언제라도 사람을 서슴없이 죽일 것만 같은, 살인마의 눈빛들이었다.

이번 만경 원정에서 군주 박지수가 그들에게 약속한 건, 노예제의 도입이다.

노예, 노예, 노예.

어쩌면 인류에게 있어선 가장 아찔하면서도 달콤한 단어가 아닐 수가 없다.

미국은 남북 전쟁으로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고, 조선은 갑오개혁을 통해 노비 제도를 폐지했다.

하지만 지금 박지수는 이곳에서 그 노예제를 다시 부활시켰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대신하는 노예야말로 멸망 이후 세계의 가장 귀한 사치품 아닐까.

그들에게 이번 전쟁은 노예를 얻기 위한 원정이다.

학교 건물을 빠져나온 육천 명의 전사들은 열을 맞춰 김정 앞에 대기했다.

지금, 박지수는 이곳 부흥고등학교 내부에 총원 2만 명에 달하는 부대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곳은 ‘전사들의 창고’였다.

학교 내부에서 먹고 생활하며 지난 한 달 동안 지내왔다.

그들이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노예 때문이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봉사할 노예들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그들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 * *

한편, 비산에서는 방어 준비에 한창이었다.

시온은 커튼을 살짝 열어 안양천 너머의 적 기지를 살폈다.

놈들은 방패를 세워 원거리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고, 다리에는 시체가 즐비했다.

원거리 무기는 활이 대부분이었으며, 투석기나 석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밖에 놈들은 새총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작은 나뭇가지에 고무 밴드를 달아 새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활이나 석궁과 같은 정석적인 원거리 무기와는 파괴력과 사정거리에 차이가 있었지만, 새총은 새총만의 장점이 있었다.

빠른 연사 속도와 휴대성.

근접전에서는 칼을 든 병사보다 전략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겨우 새총 가지고는 만경의 무기와 비교할 순 없다.

“병사들에게 전해. 방어 진지 구축과 방화벽 설치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예, 알겠습니다.”

시온은 그 말을 뒤로 안방에서 나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이곳은 원래 가정집이었지만, 이젠 방어 진지로 활용 중이었다.

이미 많은 병사들이 전투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곳 가정집뿐만이 아니었다.

아파트 계단, 층, 옥상.

각각의 아파트 단지에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대비책이 확실하게 자리잡혀 있었다.

103동, 핵심 방어 지역.

1층과 5층부터는 게릴라 전투 지역.

6층부터 7층까지는 바리케이드와 함정 구역 및 방화 시설.

8층이 103동의 1차 방어 지역.

9층부터 20층까지는 온갖 함정을 매설하고 게릴라전에 대비한 전투 진지 지역.

20층부터 22층까지는 수성전 장기화에 대비한 식량 보급 창고 및 무기 저장고.

23층 옥상에는 교량을 설치하여 다른 아파트 옥상과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지난 2년 동안 교량에 대한 지식을 쌓아 온 만경 노동자들의 작품이었다.

36개 동으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가 하나의 성(城)으로 구축된 셈이다.

“방화 시설 정비는 어때?”

“여기 넝쿨 좀 더 가져다줘!”

“사이 공간 안 비게, 철근을 집어넣어.”

“전깃줄을 밧줄처럼 꼬아, 그래야 견고하지.”

시온은 전장을 계속 살폈다.

노동자들, 아니 이젠 병사들이 서둘러 층마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었다.

자제를 모아다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계단 층을 통째로 막았고, 그 사이사이를 도시의 전깃줄을 끌어다 밧줄처럼 꼬았다.

전투가 시작되면 동안의 전사들은 아파트를 오를 수밖에 없을 테고, 시온은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이곳에서 층을 오르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하지만 계단은 노동자들이 바리케이드, 전깃줄, 함정, 무기를 배치하여 철저하게 봉쇄해 두었다.

놈들은 한 개 층을 오를 때마다 새로운 아군의 공격에 대항할 수밖에 없을 터.

20층에 도착한 시온은 거실과 복도에 의료 침대를 확인하고 있는 의사와 마주했다.

의사는 곧장 시온에게 다가왔다.

“군주님, 약품이나 붕대 추가 보급 언제쯤 가능합니까?”

“곧 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게다가 한 개의 동에는 반드시 의사가 한 명씩 배치되었다.

대부분 보급, 의료, 식사, 정비에 관련된 모든 것이 20층에서 22층에 배치되었다.

또한 식량과 식수 역시 한 달간의 전투를 대비하여 모두 구비해 놓았다.

물을 저장할 공간은 마땅치 않아, 대부분이 욕조나 싱크대에 받아놓았다.

아파트는 견고한 요새다.

전투가 시작되면 전사들의 생지옥이 될 것이다.

한 개 동에 100명의 병사.

총 3,600명의 병사들이 이곳 파미안 아파트 단지 방어에 투입되었다.

시온은 다시 23층에 올랐다.

그곳에는 교량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파트 옥상과 옥상 사이를 잇는 교량.

“오셨습니까, 군주님.”

“오셨습니까, 군주님!”

103동 대장이 시온에게 인사했다.

이곳을 지키는 백 명의 병사들의 대장이었다.

그녀는 시온에게 고개를 숙인 뒤, 교량으로 안내했다.

솔직히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허술하기 그지없는 교량이었다.

하지만 멸망 이후, 이건 시온의 걸작이었다.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현대 건설 장비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비산 마담에 의해 고용된 ‘건축 플레이어’가 이를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바로 이 건축 플레이어가 있었기에 아파트 단지를 성으로 구축하는 것이 가능했다.

103동 대장 곁에 있던 건축 플레이어는 교량을 설명했다.

“철근으로 양 건물 옥상에 넓게 고정한 뒤, 그 사이를 이었습니다. 이 두께 50cm짜리 철근은 주변 공사장이나 아니면 건물에서 뽑아다 썼고요. 정말 다행인 것이 안양은 대도시라 여러 건설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에 건널 수 있는 건 대략 5명이 최대입니다.”

건축 플레이어.

그는 모든 물체를 작게 만들어 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원할 때 원래 크기로 되돌릴 수 있었다.

그의 능력은 옥상 위 교량을 건설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별말씀입니다. 승리하십시오. 군주님.”

폭은 50cm 내외로 철근으로 이었다고 하지만, 그 밑에는 무려 23층 높이의 낭떠러지였다.

시온은 성큼성큼 교량을 건넜다.

덜컹, 덜컹!

그가 교량 위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일정하게 흔들렸다.

그는 103동에서 113동으로 넘어가, 또 그곳에서 병사들을 위로했다.

시온은 이곳에 있는 모두를 군주의 위치에서 위로하고, 다시 핵심 방어 단지로 돌아왔다.

이곳의 총사령관 2군 지휘관.

그는 시온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방어 준비 끝났습니다.”

지난 6개월간 틈틈이 공사를 진행하다, 1년간의 불가침 조약 동안 모든 노동력을 이곳에 투자했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의 ‘마지노’ 방어 전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치밀하고 정교한 방어 기지였다.

모든 건 시온의 기획하에 준비되어 왔고, 이제 그 전쟁의 서막이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시온은 각 동 대장과 2군 지휘관에게 말했다.

“맞이합시다. 손님.”

시온은 옥상 건너, 동안의 주둔지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다.

총돌격을 준비하려는 듯했다.

시온은 얼굴을 구겼다.

‘새벽에 올 텐가. 아님, 이른 저녁? 언제냐. 네 생각은 뭐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사람을 보낼 테냐. 전부 와라. 한 명도 빠짐없이.’

이곳은 놈들에게 지옥이 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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