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불호령
“뭐 하는 겁니까?”
군주의 불호령에 회의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뗄 수도, 군주와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
시온은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시선은 간부들에게 꽂혀 있었고 불쾌한 감정을 얼굴에 드러냈다.
그의 옷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군주는 지금껏 노동자들과 함께 성벽을 쌓고 오는 길이었다.
간부들을 향한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만경의 주민은 전쟁 준비로 피와 땀을 흘려 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도, 백발의 노인도 하루에 14시간씩 일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제 15살인 아이는 적 세력 깊숙한 곳에서 밤새 가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왜?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 또한 당신들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시한 대로 하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력 내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전쟁 준비를 위해, 한 달 전부터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의 고강도 노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동자들의 대표란 사람들은 이곳에서 의미 없는 말싸움이나 하며, 며칠이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에 시온은 분노했다.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몸 편히 이곳에 앉아서 기껏 한다는 것이 서로 헐뜯고 싸우는 건가요? 여기가 국회입니까? 그래서. 헐뜯고, 싸워서, 결론은 나왔나요?”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남들보다 편하라고, 돋보이라고 당신들이 그 자리에 앉혀 놓은 것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만경을 위해 봉사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쭐대지 마세요.”
시온의 우쭐대지 말라는 말에 간부들은 몸을 움츠렸다.
공포스러웠다.
강시온이 가지고 있는 ‘칙령’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위엄에 공포감이 밀려왔다.
군주의 억양, 말투, 행동.
그 모든 것이 간부들의 진땀을 흘리게 했다.
“제가…… 여러분들을 과대평가한 것일까요?”
군주의 말은 듣는 부하로서는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최명준에게.
“저…… 형님!”
벌떡-!
최명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온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섬뜩함에 최명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가 일어나래?”
시온에게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차마 인간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살기가 아니었다.
고양이 앞의 쥐새끼.
아니, 지금 최명준은 호랑이 앞의 쥐새끼였다.
최명준은 형님에 비해 자신이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강시온은 뭔가가 달랐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
그 이상이란 생각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리그에서 강시온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혹시, 시스템 자체가 그를 도와주는 것인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평생 타인에게 겁먹어 본 적 없었던 최명준이다.
하지만 처음 경찰서 유치장에서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강시온은 꾸준하게 압도적인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스윽-.
최명준은 군주의 불호령에 바짝 긴장해선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강시온은 다시 말했다.
“질서부장님.”
“……말씀하십시오.”
“오늘부로 간부들 모두, 격일제로 노동에 투입합니다. 계획을 세워 오늘 내로 제게 보고하세요.”
“……받들겠습니다.”
노동자들은 물을 긷다 죽고, 몬스터한테 잔혹하게 잡아먹히고, 동상으로 새끼손가락이 얼어붙어도 계속해서 일한다.
죽는 이들 중, 가장 어린아이가 13살이고, 최고령이 72살이다.
시온이 세력 내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 노동이다.
군주가 규정한 노동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시온이 그들에게 권력을 쥐여 준 것은, 그 노동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당장 오늘도, 시온은 승용차 성벽을 쌓다 굴러떨어져 죽은, 어느 이름 모를 남자의 시체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이 시대의 건설 현장에선, 안전 장비가 열악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렇게 죽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일을 직접 처리하고 궁(宮)으로 돌아온 시온에게 들렸던 건, 간부들의 서로를 향해 쏘아 대는 격앙된 목소리들이었다.
“제가 복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그 누구도 작업장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이상입니다.”
벌떡-!
시온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회의장을 나서는 동안, 그 어떤 간부도 섣불리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지한다고 해서 군주의 결단에 변화는 없다.
그들의 태도는 시온을 분노하게 했고,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간부들은 이후,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일말의 불만도 없이 군주의 명령을 따랐다.
심지어는 진재희까지.
* * *
생각하고 싶을 땐, 언제나 경찰서 옥상으로 올라온다.
이곳에선 만경의 모든 거리와 사람들이 보인다.
난간에 몸을 기대 도시를 바라보았다.
권력은 달콤하다.
권력을 지닌 자는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우쭐대곤 한다.
난 간부들의 권력욕을 억제하고 싶었다.
그들을 호되게 혼을 냈던 건, 모두 그 권력욕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들끼리 불화가 일어나면 반드시 파국으로 치닫게 되니까.
또 노동자들과 간부들의 격차를 줄이기 위함이기도 했다.
애초에 노동자라고 해서 간부들에게 불만이 없진 않을 것이다.
간부라고 해서 노동자들과 다를 건 없다.
단지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을 윗자리에 앉혀, 세력 발전에 박차를 가하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간부들이 직접 노동 현장에 뛰어들면, 노동자들 역시 간부들을 다시 보기 시작할 것이다.
전쟁까지는 이제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전쟁은 곧, 세력이 가지는 모든 힘을 겨루는 것이다.
노동력, 생산력, 전투력, 경제, 정치, 관계, 인구수 그 모든 것을 말이다.
난 세력을 통합하고, 적을 토벌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부 결속은 반드시 이뤄져야만 했다.
동안의 박지수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지금껏 마주했던 어떠한 적들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이다.
김동길, 박건우 등.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지체하고 싶은 마음 따윈 없다.
불가침 만료까지는 이제 10일.
다시 말해, 전쟁까지는 이제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조약이 만료되는 그날, 놈들의 대군이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이제 진재희와 최명준을 선두로 간부들이 작업을 하기 위해 곡괭이와 삽을 들고 경찰서를 나서고 있었다.
난 그들을 내려다보다 문득 난간을 지탱하고 있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
상처 많고 해진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난 떠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꼭 쥐었다.
‘이제 조금이다, 조금. 참자…… 참아.’
지금껏 잘 준비했고, 조금만 참아 내는 거다.
모든 건 동생 준호를 위해서다.
* * *
정찰을 수행 중인 윤하는 초코바를 핥아먹으며 적의 세력을 관찰 중이었다.
벌써 일주일 넘게 진행된 작전.
외롭고, 춥고, 불안했지만 윤하는 군주를 위해 이 힘든 일에 자원했다.
‘……적의 기마대는 4,501명. 단순 보병 역시 1만 2,010명. 잠깐. 저건 뭐야?’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기괴한 병기.
꼴딱-.
그것과 마주한 하윤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참으로 획기적인 병기였다.
동안의 전사들은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새로운 ‘아포칼립스 전차’를 만들어 냈다.
시내버스의 바닥 면은 모두 떼어 냈지만, 네 바퀴는 여전히 달려 있다.
대신 시내버스의 양쪽 창문에 두꺼운 나무나, 철근을 끼워 넣었다. 이를 잡고 끌고 갈 수 있도록.
따라서 안에 들어가 있는 전사들이 나무와 철근을 밀면 버스가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다.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 앞창과 옆 창, 뒤창에는 모두 창과 방패를 꽂아 넣어, 적의 접근을 방어했다. 또한 버스 천장 위에는 놈들의 원거리 무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 생김새는 마치 거북선과 같았다.
버스 전차.
그것은 동안의 군주 박지수의 전쟁 발명품이었다.
‘……저, 저건 진짜……!’
심히 충격적이었지만 윤하는 빠짐없이 버스 전차의 정보를 머릿속에 기억했다.
이건 핵심 정보였다.
이 버스 전차에 대한 정보는 오늘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플레이어는 문제가 없겠지만, 만경의 일반 병사들로는 저 버스 전차를 쓰러트리기 어려울 것이다.
저건 그야말로 1차 대전 때 독일군 앞에 나타난 영국군 탱크나 다름없었다.
저 ‘아포칼립스 탱크’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정보를 만경에 전달해야 했다.
윤하는 종이에 빼곡하게 적었다.
초코바를 문 채로.
그리고 바로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호위들에게 그 종이를 보이며 말했다.
“이거.”
윤하는 입에 초코바를 물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넙죽 그걸 손으로 빼내며 이어 말했다.
“이거! 빨리 군주님께 보내 주세요!”
“푸하하- 아, 그래서 그때 시…… 엉? 뭐야, 벌써?”
C급 플레이어 둘.
둘은 비산의 마담에 의해 고용된 시온의 용병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하윤하의 호위를 맡고 있었다.
하윤하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다.
“저기요! 정말 빠르게 전달해 주세요. 핵심 정보니깐요!”
“오케이, 오케이. 알겠어. 이리 줘.”
하윤하가 만경에 정보를 전달하는 식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하윤하는 24시간 내내, 이곳에 있고 그녀의 호위 중 한 명이 만경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되는 거지?”
“예…… 부탁합니다. 아저씨.”
“……아저씨라니. 나 이제 스물다섯인데.”
“하, 하여튼 빨리 가세요. 이거 진짜 중요하니까.”
“아, 아- 알겠어. 갔다 온다. 우리 VIP 잘 지켜라잉.”
“어. 그래.”
호위 한 명은 이곳에 남고 다른 한 명은 전달을 위해 다시 만경으로 출발했다.
C급 플레이어는 강하다.
일반인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시스템의 득을 보고 있었다.
당장의 윤하에게 붙여 놓은 두 C급 플레이어들은 최근에 시온이 영입한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자들이었다.
시온은 홀로 정보를 얻던 윤하를 걱정했기에 이 같은 조치를 취해 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C급 플레이어들조차도 상대할 수 없는 존재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리 줘.”
“여기요.”
“어-…….”
덥썩-.
C급 플레이어가 하윤하의 편지를 쥐어 든 순간이었다.
스르르륵……
그의 얼굴이 바둑판 모양으로 잘려져,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목이 떨어진 플레이어의 육체가 동상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
플레이어의 죽음 앞에 하윤하는 사색이 되었다.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암살.
그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피 묻은 허공의 무언가가.
“……찾았다-. 쥐새끼. 헤헤.”
투명한 무언가가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는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자신의 사시미 칼을 빨았다.
장발 머리의 동안 플레이어는 피 묻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하윤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찾아다녔는 줄 알아-?”
“…….”
“진짜- 정정당당하게 싸울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정보를 속속 빼 가면-. 내가-. 슬퍼-? 안 슬퍼-?”
“…….”
하윤하의 두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두 다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C급 플레이어가 한 번에 죽었다.
눈앞에 서 있는 동안의 장발 머리 플레이어는 ‘투명’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이. 개X끼가!”
그때, 뒤에 있던 나머지 C급 플레이어가 단숨에 장발 머리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장발 머리 남자는 허리를 펴, 자신에게 달려드는 C급 플레이어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히죽 웃었다.
“멍청-해. 내가-. 분명? ‘우리’. 라고 하지 않았나-?”
“……!”
그 목소리에 소름이 돋은 C급 플레이어는 달려들기를 멈췄다.
하지만 깨달은 순간, 이미 늦었다.
“멍청하면-. 죽어야지 뭐-. 푸흐흐……!”
푸욱!
그때, 거대한 붉은 창이 C급 플레이어의 심장을 꿰뚫었다.
차마 휘둘러지지 않은 C급 플레이어의 손은 허공에서 멈췄다.
“커헉…… 억……!”
풀썩!
시온에 의해 고용된 플레이어들은 모두 쉽게 죽어 버리고 말았다.
고용된 플레이어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두 명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윤하의 동공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그녀는 붉은 창이 날아온 곳으로 눈동자를 서서히 돌렸다.
그곳에는 육중한 몸을 지닌 남자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붉은 창은 다름 아닌 ‘혀’였다.
“…….”
하윤하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소녀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자신의 목숨 따위가 아니었다.
차마 시온에게 전해지지 못한 동안 버스 전차에 대한 정보였다.
“같이- 가자-. 꼬마야. 오빠들이-. 놀아줄게-. 첫 번째 놀이는-. 흐으으으음…… 발톱 뽑기 게에에임-?”
장발 머리 남자는 긴 손톱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그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말을 이어 갔다.
“두 번째느은-. 달고나 게임! 달고나 게임은-. 불에 달군 쇠뭉치로 네 몸 구석구석에 표시를 남기는 거야-. 그리고-. 살을 칼로 도려내면서-. 우리 예쁜 문양 많이 뽀, 뽑자? 히히. 오빠는- 미대 출신이니까-. 예쁘게. 그려 줄게?”
“…….”
“그리고 세 번째느은-. 으으으음…… 그래, 그래. 사극 놀이하자아-. 주리를 틀어랏! 이거- 말이야. 히히.”
덥썩-!
장발 머리 남자는 윤하의 양 팔뚝을 잡으며 말했다. 윤하의 두 눈을 마주하고서.
“어때-? 네가 만경의 정보를 우리한테 넘길 때까지-. 우리들의 놀이는…… 계- 속될 거야. 푸흐흐흐……!”
간악하고 사악한 웃음소리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