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만경의 무기들
전쟁에서 중요한 건, 훈련과 보급 그리고 무기라고 볼 수 있다.
시온의 세력이 동안보다 불리한 점이라면 지휘관들의 전투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과 병사들의 훈련이 안 된 것, 그리고 압도적인 숫자 차이였다.
이 세 가지는 지금부터 아무리 고된 훈련을 거듭한다 한들, 만경이 동안을 따라갈 순 없을 것이다.
동안의 전사들은 지난 라운드 동안 끊임없이 전투를 치르고 온 그야말로 전쟁 집단이었으니까.
하지만 만경에도, 만경만의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오우거였다.
처음 시온이 놈을 조련하기 시작할 때,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었다.
심지어 몇몇은 불만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놈이 처음으로 세력에 보탬이 되자, 그 의문과 불만들은 감탄과 환호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놈은 만경에 있어선 없어선 안 될 강력한 무기와 노동력이 되어 있었다.
질서부장은 노동부장에게 시온을 안내했다.
노동부장은 어깨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며 시온에게 말했다.
“거, 뭐다냐. 그, 그. 기존 투석기의 고질적인, 예? 그 이동에 제한되는 점은 최대한 보완하고 명중률을 확보했습니다. 아마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어휴-. 이젠 덥다 더워. 보일러가 있으니 원.”
노동부장을 따라나선 시온은 그의 안내를 들으며 학교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원래 초등학교 체육관.
하지만 지금은 만경의 무기고였다.
그리고 만경의 핵심 지역 중 한 곳이었다.
과거 공을 보관하던 카트에는 이제 만경의 무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근처에서 재조합한 화살들 역시 끈으로 묶여 한 편에 보관되고 있었다.
오늘 내로 파미안 아파트 단지로 출발할 전쟁 물자들이었다.
이곳 역시 시온에 의해 만들어진 보일러가 가동 중이었으며, 노동자들은 군주가 들어오든 말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온과 노동부장의 발자국 소리가 일정하게 체육관에 울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묻힐 만큼 노동자들의 작업 소리가 더 컸다.
“보시죠. 어떠십니꼬.”
“…….”
노동부장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시온은 체육관 중앙에 떡하니 웅크리고 있는 오우거와 마주했다.
놈은 얌전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크으으…….
킁킁거리며 시온의 냄새를 맡는 듯했다.
오우거는 후각이 예민하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존재를 후각으로 기억한다.
양쪽 체육관 2층에서는 작업자들이 도르래를 이용해 오우거 등에 올라타 공사 중이었고, 놈의 등에는 거대한 투석기가 탑재되어 있었다.
노동부장의 말이 체육관에 메아리쳐 울렸다.
“일단 저 투석기를 처음 봤을 때…… 하아 요놈 요거…… 어떻게 하면 자알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 좀 했어예. 아, 근데 요 버스 밑판을 괴물 자식의 등에 박아서 그 상태에서 차량을 재조립하면 어떨까. 그런 기가 막힌 아이디어. 으이?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입니꼬. 뭐…… 현재로서는 이것조차도 꽤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어서 한 개체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추가로 두 개체 정도 더 생산할 예정입니다. 자, 이쪽으로 가시지요.”
시온은 그의 안내를 따라 더 자세하게 살폈다.
시내버스 밑판을 그대로 분해해, 놈의 등에 심어 두었다.
그리고 그 위에 버스 상판을 재조립하여, 투석기의 틀을 만든 격이었다.
신무기 생산에는 수많은 전문가와 노동력들이 동원되었다.
그만큼 시온이 기대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지금껏 투석기는 무려 오우거 두 마리나 동원될 만큼 이동하기 불편한 데다, 운용하기에는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는 무기였다.
하지만 투석기 자체를 오우거의 몸에 부착하면서 불필요한 노동력을 줄였다.
획기적이면서 생산적인 노동부의 작품이었다.
그것들은 곧 시온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오우거 (투석기)를 획득하셨습니다.]
[무기 (A급) + 1]
“훌륭하십니다. 기대 이상이네요.”
시온은 오우거를 바라보며 칭찬했다.
그러자 노동부장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이~ 아닙니더…… 다 군주님이 시키신 거 고대로 했슴다. 허허. 나이 먹고 칭찬 받으니께 억수로 부끄럽네예.”
노동부장은 다시 시온을 안내했다.
오늘 군주에게 보고할 무기가 많이 있었다.
“투석기뿐만 아니라, 거대 석궁 있지 않습니까? 고것도 어떻게든…… 장착할 생각입니다. 그 석궁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이 투석기보다 사거리는 짧아도, 요 명중률 하나는 기가 막히지 않습니꼬?”
“하지만 석궁 제작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았습니까?”
“문제가 아~ 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기능 측면에서는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보시지예.”
노동부장은 또다시 다른 곳으로 걸어가 학교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석궁을 집어 들었다.
인류 역사에서 이 석궁이 개발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현대는 달랐다.
현대의 인간이 과거의 유물을 만들어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역사 속 그 어떤 민족보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초고등 생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레버를 당기시면 자동적으로 시위가 놓이면서 앞으로 발사되는 고러한 작동 방식을 가지고 있고예, 재장전은 요 레버를 다시 앞으로 밀어내면 되고예. 연사 속도는 뭐…… 숙달되면 거…… 고거 함 보자…… 아, 그래예. 한 1분당 10발? 고 정도입니다.”
화살이 분당 4발에서 5발 수준이니, 석궁의 연사 속도는 10발로 그 두 배였다.
“좋네요.”
석궁을 재장전할 때마다 철컥거리며 소리가 났다.
시온은 석궁을 자세히 살폈다.
나사와 못 등, 건설 기초 재료들이 어우러진 만경만의 고유한 석궁이었다.
설계도대로 만들어진 노동부장의 발명품이었다.
“하루 석궁 생산량은 얼마나 됩니까?”
“대략 10개 정도입니다. 현재는 35개 보유 중이고예.”
“화살 생산 역시 신경 써 주십시오. 보급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아, 그게 말이지예? 사실 화살 생산 속도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문제점을 파악해 본 결과, 아마 활과 석궁의 화살 규격이 맞지 않아서예…….”
활과 석궁에는 각기 다른 화살이 사용되었다.
활에 쓰이는 화살은 비교적 규격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도 상관없었지만, 석궁은 규격에 딱 맞는 화살만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궁 화살과 활 화살의 규격을 똑같이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석궁 화살은 과거 조선의 편전처럼 길이가 짧고 관통력이 있는 편이었고, 그에 비해 활의 화살은 길이가 있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원거리 타격기를 모두 석궁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활은 그 나름대로 활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활은 고유의 원거리 타격 능력과 석궁보다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었다.
시온은 고개를 돌려 한 곳에 둘러앉아 패딩을 뜯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화살에 사용되는 깃털은 패딩에서 얻고 있었다.
다행히 막 겨울이 지난 시점에서 만경이 보유한 패딩의 수량은 많았다.
“그래도 하셔야 합니다. 만경의 모든 노동력이 전쟁 준비에 한창입니다. 질서부장님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부장님의 능력을 보여 주십시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단지 잘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대로 준비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럼예. 군주님 말씀이면 뭔들 못 하겠습니꼬.”
노동부장의 호탕한 대답에 시온은 웃어 보였다.
시온은 차례로 무기고 시찰에 나섰다.
만경의 상비 병사들의 주력 무기는 봉 대와 날을 이어 붙인 창이었다.
봉 대로 사용되는 건, 기다랗고 단단한 물체면 모두 가능했다.
청소기 파이프, 밀대 봉, 탄탄한 나무라든가 스탠드 폴까지.
그중 제일은 당구 큐대였다.
단단하고 날카롭고, 길이도 적당했기 때문이다.
그 위에 날카롭게 벼린 날을 봉 대에 단단히 조여, 살상력을 높였다.
상비 병사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총 1,000개 남짓.
만들어진 무기를 제외한 나머지 도구는 둔기나 공구가 전부였다.
첨예하게 격돌하는 양측 병사들 사이에서 활용도가 높은 건 아무래도 단도류였다.
그래서 무기고에서는 단도류를 자체 생산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조잡할 수밖에 없었다.
세공이나 가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존의 만들어진 것을 재조합하는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세공을 비롯한 정규 가공을 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워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었다.
노동력과 비용 모두가 부족하니 말이다.
결국 현시점에서 무기 제작은 기초적인 단계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기초적인 수준이었지만, 투입된 노동력은 세력의 전적인 후원을 받아 전력을 다해 무기를 제작했다.
무기고 내부 순찰은 순조로웠다.
시온은 다시 병사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병사들은 전부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방어복을 갖춰 입게 되면 움직임이 불편해져 기동성과 전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어 장비는 달랐다.
“요것이 이제 기존의 승용차 문을 이용한 방패이고예. 그리고 이것이 새 버전. 뉴 페이스.”
한층 경량화된 버전이었다.
노동부장은 그중 하나를 쥐었다.
“기존의 차량 문은 무거워서 두 명씩 들어야 했다면, 이제 이건 개인이 들 수 있을 만큼 작아졌습니다. 이 정도면 뭐…… 웬만한 성인들은 들 수 있을 정도.”
“방패 보급은 문제없습니까?”
“차 문이야 뭐, 저기 성 쌓는 아들하고 이제, 짝짝꿍해 가 잘 조달하고 있습니다. 성벽을 쌓을 땐 차체만 필요하니까, 요 문짝은 필요 없으니께요.”
“알겠습니다.”
시온의 의도대로 전쟁 준비는 착실했다.
시온은 장비 점검 시찰을 마친 뒤 뒤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가장 중요한 장비를 잊은 것을 깨달아 노동부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부장님. 방화복은 준비되었습니까?”
“아, 방화복. 그렇지예. 이쪽입니더.”
노동부장은 시온을 안내했다.
체육관 안쪽 창고.
그곳에는 소방대원이 착용하는 방화복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만안구 내에 있는 소방서를 모두 뒤져서 나온 방화복들이었다.
방독면까지 모두 A급들로만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이 방화복들은 비산동 방어 전력의 핵심이기도 했다.
* * *
과거 도시의 길이라고 하면, 원래 보도블록과 아스팔트가 깔린 직선으로 뻗어 있는 도로를 연상했다.
하지만 세상이 멸망한 이후로는 도시의 길이 가지는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사이로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최현지는 바닥이 뻥 뚫린 7층 가정집 거실에서 바로 아랫집 거실을 향해 폴짝 뛰어내렸다.
풀썩-!
그녀가 소파에 착지하자 자욱한 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그녀는 뻥 뚫린 천장을 보며 말했다.
“내려와요.”
“…….”
시온은 그녀를 따라 가볍게 뛰어내렸고, 뒤이어 진재희도 뛰어내렸다.
풀썩-!
진재희는 침대 위에서 가볍게 상체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냈다.
먼지가 자욱했다.
하지만 하윤하는 우물쭈물 망설였다.
조금 높았기 때문이다.
“아, 괜찮아. 뛰어내려.”
최현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고, 이내 하윤하도 폴짝 뛰어내렸다.
“꺅-!”
“큰 소리는 내지 말고.”
“아…… 죄송합니다. 군주님…… 제가 너무 놀라서.”
진재희는 아무 말없이 하윤하를 일으켜 세워 줬다.
그러자 하윤하는 진재희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감사합니…….”
하지만 홱 하고 돌아선 진재희는 아무 말없이 바로 시온을 따라 방을 나설 뿐이었다.
그 이후 최현지는 가정집에서 나와 복도를 지나, 창문으로 향했다.
이곳은 원래 7층 아파트.
하지만 창문 너머는 무너진 건물이 쓰러져 새로운 길이 나 있었다.
건물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사실 방랑자들은 나 죽여 주세요~ 하고 도로를 걷진 않죠. 이렇게 건물 사이사이, 옥상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거예요.”
최현지가 앞서 나가고, 그 뒤로는 강시온, 진재희, 하윤하가 따라 나갔다.
최현지는 이곳에 방문하고서 만경에서부터 동안까지, 몰래 잠입하는 루트를 찾아냈다.
만경의 군주인 시온에게 이 루트를 알려 주기 위해 직접 길잡이로 나선 것이었다.
그들은 얼마간 건물 사이를 지나갔다.
어떤 장소에 이르러서는 방랑자들이 만들어 놓은 간이 교량을 건너기도 했다.
“이런 곳은 우리 방랑자 커뮤니티 정보들로만 알 수 있는 꿀팁들.”
어느새 그들은 만경을 넘어 동안의 구역까지 들어왔다.
최현지의 말대로 경계를 지키는 이들의 눈을 피하면서 동안의 핵심 구역까지 잠입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하수도를 이용해 더 깊이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였던가……?”
끼익-.
눈 덮인 하수도를 열자, 예상외로 구린내는 나지 않았다.
문명이 파괴되고 나서 인간들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냄새가 전혀 안 났던 건 아니었지만.
딸각.
최현지는 손전등을 켜, 앞을 비추었다.
하수도 내부는 비좁았다.
한 명씩 차례로 들어가도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야 할 정도로.
“근데 솔직히 많은 병사들이 오가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인 루트에요. 애초에 그만큼 많은 병력이 이동하면 적이 모를 수도 없고.”
앞서 걸어가던 최현지의 목소리가 일정하게 하수도 내부에 울렸다.
곧 그들은 빛을 볼 수 있었다.
하수도 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원래 사다리 따윈 없었지만, 방랑자들이 만들어 놓은 사다리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차례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건물 사이를 넘은 그들은 이제 동안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접근했다.
이곳은 안양 범계역 인근 상권.
과거 술집 거리로도 유명해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술을 마시던 장소.
건물 내부 복도 끝에서는 한 줄기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휴우…… 도착했습니다. 아- 등산하는 줄.”
시온은 앞서 걸어 나갔다.
저 너머에 동안의 핵심들이 거주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앞질러 걸어가는 시온에게 최현지는 말했다.
“후우-! 보시죠! 동안의 수도, 범계역입니다.”
그리고 마주한 놈들의 수도는 경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