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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81화 (81/221)

#제81화. 회담 (2)

짝, 짝, 짝, 짝.

박지수는 시온을 바라보며 느리게 박수를 쳤다.

“브라보. 훌륭합니다. 군주.”

박지수는 박수 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동작은 느렸다.

마치 뱀처럼.

“역시 당신은 다른 군주와는 다를 줄 알았습니다. 제 정보원에 따르자면 쿠데타를 통해 세력을 거머쥐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정권을 잡고 제게 선물을 보냈던 것도 당장의 정복전이 두려워서였겠지요. 똑똑해요. 아~ 진짜 똑똑하단 말이지.”

그 말이 끝난 뒤에야 박지수는 박수를 멈췄다.

그리고 의자를 조금 끌어 바짝 책상에 앞당겼다.

“천천히 집어삼키고 싶겠죠. 저의 세력을.”

세력 간의 위치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건, 박지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군주. 그건 의미가 없어요. 지금 의왕 쪽에선 빌어먹을 플레이어가 세력을 모아 경기 남부를 지배하려고 들거든.”

“무슨 뜻인가요?”

“자세한 건 나도 몰라요. 그 새끼가 어리다는 것만 알지. 강하다는 것도 알고. 당신은 지금 내 세력을 거머쥘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그 미친 플레이어에 대항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해. 그건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지야. 즉! 우린 애. 초. 에. 적. 이. 아. 니. 다. 이 말입니다.”

시온은 손으로 입가를 쓸었다.

그는 박지수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적이 아니라니?

2라운드 중반, 도시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지역 간의 왕래가 이루어졌다.

그건 한반도 전국 시대의 개막이었다.

“잘 들어요. 만경의 군주. 난 내 승리를 위해선 세력의 모든 생명체를 몰살할 수 있어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내 승리를 위해서라면 전부 고기 방패로 사용할 수 있단 말입니다. 근데 생각해 보자고. 당신은 그럴 수 있어요?”

박지수는 만경의 생활 터전을 보며 말했다.

박지수는 강시온이 인도적인 군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지지율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하자고요. 나의 진짜 의도는 안양의 통합입니다. 아니, 아니. 통일! 통일로 합시다. 노래도 있잖아요? 우리의~ 소원은~ 토오옹일. 토오옹일~”

박지수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 댔다.

그 노랫소리에 시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박지수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책상에 내보였다.

붉게 빛나는 원석이었다.

보석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게 뭔지 알아요?”

“…….”

“자원.”

“자원?”

“네, 자원.”

박지수는 원석을 내려놓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

팅-.

그녀의 옆에 있던 호위가 자연스럽게 지포 라이터를 켰다.

담뱃불을 붙인 박지수는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인간의 과학적 발전은 자원을 통해 이뤄졌잖아요? 석유, 석탄, 원자력, 천연가스 등. 그리고 이 빨간 보석은 이 세계에 나타난 새로운 자원이에요. 에너지원이라고요! 자, 잘 생각해 보자고. 시스템은 강을 자연 자원으로 규정하여 군주 간 영역 전쟁을 벌이는 매개체로써 이용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다음은? 장담컨대 자원입니다. 당신. 한동안 식수 때문에 고생 좀 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한테 반기를 드는 것이고. 그쵸?! 제가 맞췄죠?”

반기.

시온은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박지수는 이미 만경을 자신의 속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오만이다.

역겨운 오만.

박지수는 아직까지도 과거의 만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덥썩-!

박지수는 붉은 원석을 집어 들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자, 원석은 더욱 빛을 내고 있었고 조금 흔들리기까지 했다.

“자, 미안합니다. 장난 좀 쳤어요! 아니, 그냥 만경의 군주님. 그러니까 시온 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실지 궁금하기도 했고…… 어쨌든. 리그에서 우승하는 건, 이 자원을 거머쥔 세력일 겁니다. 우린 군주잖아요. 군주의 목적은 자신의 세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이 자원. 우리 동안구에 미친 듯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요. 처음에는 그냥 몬스터의 일부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달라요. 이건 신의 자원이죠. 석탄, 석유, 가스. 그 어떤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는 외계 광물이에요. 난 우리가 이걸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우린…… 같은 안양에 속한 ‘안양시 주민’이잖아요?”

칙, 지지지지…….

박지수는 담배를 비벼껐다.

결국, 그녀의 목적은 이거였다.

만경을 이렇게까지 일으킨 시온을 자신의 휘하에 두어 앞으로의 라운드를 이겨 나가려는 것이다.

피를 보지 않고 평화적으로 세력을 합하여 남은 라운드를 치르는 것이다.

즉 이건 평화 협정, 동맹 제안이었다.

만경과 동안이 합친다면 그 규모는 거대해질 것이다.

박지수는 그걸 원했다.

그만큼 강시온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고 있으니까.

“어때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아닌가요? 당신에게는 지금 그 이상의 권력을 쥐여 주겠어요. 뭘 원해요? 다 해 줄게요. 저에겐 너무 많은 사치품이 있답니다?”

솔직히 그냥 세력을 박지수에게 넘기면 시온에게는 편한 일이었다.

시온의 목적은 어쨌거나 안양시를 통합하고, 동생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만 된다면 전쟁이라는 것은 없었을 것이고, 무기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네?”

박지수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시스템은 플레이어 간 ‘평화’ 따윌 바라지 않는다.

두 세력이 피를 튀기고 싸우며 죽이기를 원한다.

즉, 두 세력이 부딪히는 건 시간 문제라는 소리다.

지금껏 관리자의 특징을 살펴보았을 때, 결코 박지수가 원하는 평화의 형태로 판이 짜이진 않을 것이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시온은 박지수 세력의 산하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일궈 놓은 세력인데.

그녀의 의도대로 흘러가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강시온은 굉장히 불쾌했다.

자신의 세력을, 이렇게 거대하게 성장한 세력을 박지수가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온은 박지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 바로 누군가가 회담장으로 들어왔다.

덜컹.

그의 모습을 본 박지수의 동공이 흔들렸다.

박지수는 지금 눈앞에 일어난 일에 대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강시온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자는 터벅터벅 걸어와 시온의 옆에 섰다.

시온은 그의 정체를 소개했다.

“만안 제3세력의 군주다.”

벌떡-.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시온은 박지수를 내려다보며 낮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2라운드를 종료시키겠다.”

시온이 말을 마치자 3세력의 군주는 시온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항복하겠습니다.”

의미는 명확했다.

만안의 제3세력이 제1세력인 만경에 항복을 선언한 것이었으니.

2라운드는 바로 이 순간 끝이 난다.

이제 곧 3라운드가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3라운드를 대비해 서로 동맹을 맺자는 박지수의 제안은 무의미해진다.

박지수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시온을 바라보았고, 시온은 희미하게 웃었다.

박지수와는 달리 시온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3라운드에 대해서는 진재희에게 들어 알고 있었고, 그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협상이라고? 동맹을 맺자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띠링-!

그 순간, 알림 창이 무더기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라운드가 종료되는, 길고 길었던 ‘혹한’이 종료가 되는 기점이었다.

* * *

두 군주 앞에 알림창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3라운드 종료]

[생존 세력: 만안 제1세력, 동안 제1세력.]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세력은 ‘혹한’을 이겨 내셨습니다.]

[옛 고대의 선조들은 겨울을 두려워했습니다.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었고, 시련이었습니다. 겨울이라는 환경은 생명체에게 있어선 자연이 내리는 거대한 시련과도 같았죠.]

[하지만 겨울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겨울에 1월과 2월이 있는 이유. 아시겠나요? 바로 새해의 시작, 그것은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준비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겨울을 이겨낸 군주들이여. 당신들의 세력은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여전히 시스템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어 대고 있었다.

1라운드 때처럼 관리자가 나타나진 않았다.

하지만 알림 창은 여전히 2라운드 종료에 대한 안내로 가득했다.

시온은 지금 스스로 2라운드의 종료 시점을 결정했다.

스스로 시스템을 이용해,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또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타이밍에 라운드를 종료시킨 것이었다.

“…….”

[봄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번영의 순간입니다!]

[지금껏 맞이하지 못했던 생명들이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화사하게 빛나는 알림 창들.

강시온도.

진재희도.

박지수도.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난 포식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굶주린 배부터 채우는 일이지요.]

[존경하고 위대한 군주님.]

[저 배고픈 포식의 존재로부터 백성들을 지켜 주세요.]

[3라운드의 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3라운드의 주제, 그것은 바로 ‘포식과 피식’입니다.]

쿠궁……! 쿵!!!!!!!

그때였다.

건물 전체가 흔들리면서 박지수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녀의 호위가 달려들어 박지수를 부축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시온은 태연했다.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박지수의 행동을 주시했다.

사실 박지수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어렴풋이’일 뿐이다.

미래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어렴풋이 미래에 대해서 예측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의왕은 아직까지 2라운드이지만, 과천 방면은 3라운드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서울로 향할수록 눈의 양은 현저히 적어졌고, 기상천외한 몬스터들이 쉽게 발견되었다.

놈들은 모두 건물 높이까지 쌓인 눈 아래에서 겨울잠을 자던 몬스터들이었다.

그러니까, 2라운드에는 ‘겨울잠’을 자지 않은 몬스터만 있었다면, 3라운드부터는 ‘모든 몬스터’가 존재하는 라운드.

즉, 지금까지 몬스터는 반의반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소리.

덜컹-! 드르륵-!

박지수는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정말 놀랍게도 만경의 군주, 강시온은 지난 2라운드 내내 성벽을 쌓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될 거라고 예측했던 것일까, 아님 우연일까.

-…….

하늘을 가득 메운, 정체불명의 비행 몬스터 떼.

기괴한 울음소리와 생김새.

놈들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한순간 지상에는 놈들의 그림자가 짙게 깔릴 정도였다.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박지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놈들은 동안과 의왕의 전쟁터.

먹이가 될 피와 살점이 가득한 그곳을 향할 터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박지수를 향해 강시온은 말했다.

“동안은 큰일이군요. 전쟁을 해야 하는데, 3라운드에 대처도 해야 하고. 군주님은 우리 만경보다는 몬스터에 더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요? 놈들을 막아낼 성벽은 만들어 두셨나요?”

“…….”

박지수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시온을 돌아보았다.

지금껏 박지수는 의왕 세력과 만안 세력만 견제했다.

하지만 3라운드가 되면서 이제 마구잡이로 속출하는 몬스터에 대해서도 대비해야만 했다.

반면, 강시온의 세력은 몬스터에 대한 대비는 이미 끝난 상황.

시온은 동안을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둘 사이의 상하 관계는 정해졌다.

“이제부터 바빠지시겠는데요? 전쟁도 하고, 성벽도 쌓아야 하고, 우리와 마찰도 없어야 하고.”

“…….”

시온의 마지막 말에 박지수의 동공이 흔들렸다.

마찰.

박지수는 더 이상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강시온에게 동맹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입장 차이가 명확해진 지금, 강시온은 박지수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먹잇감으로.

이미 강시온도 알고 있었다.

인간 사냥꾼들에게 만경의 노동자들을 괴롭히라고 명령한 것이 바로 그녀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그녀는 자신을 모욕하러 왔다는 것을.

‘X발, X발, X발, X발……!’

박지수는 매우 곤란하게 되었다.

지금 박지수의 입장은 시온에게 무릎 꿇고 빌어야 할 상황이었다.

제발 쳐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가장 세력이 약해졌을 때, 공격하는 것이 시온에게는 가장 좋았다.

물론 시온은 당장 동안과 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쪽도 3라운드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뭘 원해…….”

창틀을 쥔 박지수의 손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그녀의 어깨 역시 들썩였다.

시온은 더 다가가, 그녀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뭘 원하냐고?”

시온은 이것으로 안양 내 세력을 완전히 휘어잡았다.

박지수는 그제야 자신에게 다가온 시온을 올려다보았다.

시온은 똑바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가진 전부.”

박지수는 대가를 치르는 일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지금껏 자신이 만경에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그리고 강시온에겐 그동안 참아왔던 무자비한 복수의 시간이 도래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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