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회담 (1)
아침부터 정문 쪽이 요란했다.
경비병들이 바리케이드를 치우며,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안의 군주, 박지수가 이곳에 찾아왔다.
난 부장과 부부장들과 함께,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걸어갔다.
벌써부터 주민들이 난리를 피워 대기 시작했다.
온갖 야유와 욕설이 난무하는 중앙 시장.
난 정갈한 복장을 한 뒤, 뒷짐을 지고선 그녀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작전으로 내가 노렸던 것.
그건 동안의 여왕, 박지수의 관심을 내게로 돌리는 것이다.
지금, 동안은 의왕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누군가는 의문이 들 것이다.
전선이 둘로 나뉜 동안과의 전면전을 굳이 피할 이유가 있겠냐고.
나는 단지 동안과의 전쟁을 위해 지난 1년간 준비했던 것이 아니다.
난 안양을 통일한 뒤, 이 리그에서 우승할 것이다.
당장 동안과 전면전을 펼친다면 이쪽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갱생 불가능할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지.
이번 회담은 앞으로의 전쟁에서 피해를 최소로 줄이는 동시에 요충지를 얻기 위함이다.
그렇게 얻은 요충지는 다음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
동안의 군주, 박지수의 행렬은 위풍당당해 보였다.
사슴을 타고 있는 전사들이 앞 열에 섰고, 그 뒤로 빨간 스포츠카가 따랐다.
기름이 없기에 사슴들이 차를 끌고 있었지만, 세차를 얼마나 했는지 멸망한 이후의 세계라곤 생각지도 못할 만큼 깨끗한 빨간 색상이 눈에 띄었다.
박지수는 선글라스를 낀 채 그 고급 시트에 앉아 있었다.
만경의 주민들의 야유에도 그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차량이 내 앞까지 다가왔다.
그녀의 부하가 차 문을 열어 주자 박지수는 그곳에서 내렸고, 내 앞에 선 박지수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고혹적이면서도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곧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열었다.
“하이?”
박지수는 다시 선글라스를 바로 쓰며 입꼬리를 올렸다.
* * *
향수 냄새.
또각거리며 걷는 구두 소리.
펄럭이는 모피 코트.
그녀의 선글라스는 좌우로 움직이며 쉴 새 없이 건물 내부를 살폈다.
박지수는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
“내부가 따뜻하네요. 군주님도 보일러 제작법을 사셨구나?”
“……그렇습니다.”
보일러 제작법은 시온에 의해 상용화가 되어, 거의 모든 세력에서 보일러를 사용 중이었다.
그 덕분에 시온은 다른 군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골드를 벌어들였다.
벌어들인 골드로는 다른 세력의 생활품이나 발명품을 사들여 도시를 건축했다.
만경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시온의 골드 덕이었다.
물론 박지수는 그 보일러를 만든 최초의 군주가 강시온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었다.
보일러는 지금까지도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였으니까.
박지수는 건물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구조, 발명품, 무기, 주민들의 충성도…… 규모만 우리보다 작을 뿐이지 다른 모든 분야에서 압도하고 있어.’
심지어는 주민들이 입은 옷도 달라 보였다.
세탁을 했는지 깔끔했다.
눈에 짚이는 모든 것들이 동안을 압도하고 있었다.
동안이 만경보다 앞서는 건, 기껏해야 군사력과 영토뿐이었다.
박지수의 뒤로, 강시온이 따라갔다.
그러자 진재희와 동안의 호위가 나란히 그 뒤를 따랐다.
박지수는 한동안 말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다 문득 멈춰서 시온을 돌아보았다.
시온 역시 그녀의 보폭에 맞춰 걷다 멈춰 섰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어 옷에 끼우고는 미소를 보이며 시온에게 말했다.
“이곳 풍경은 낭만적이네요.”
풍경이 낭만적이라는 말.
칭찬인지 아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애매한 말이었다.
시온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말없이 앞을 손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가시죠.”
이젠 시온이 그녀를 앞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박지수는 한동안 말없이 걸어가는 시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건물 바깥에서는 만경의 주민들이 아직까지도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박지수를 향한 야유와 욕설들이었다.
* * *
정상 간의 회담은 공식적인 일정이었으므로 만경의 직원들은 회담 준비를 서둘렀다.
동안의 군주가 세력을 둘러보는 동안, 만경의 조리원들은 미친 듯이 움직였다.
텅-! 트드드득.
백발의 할머니가 쥐 고기를 뼈째로 다지며 욕을 해댔다.
“으잉-! 망할 년. 뭐 한다고 이렇게 갑자기 왔다야.”
“그거 조미료. 예. 남는 마늘 있어요? 있는 대로 다 가져다 주세요.”
조리부장, 김경숙 할머니와 이호선 호텔 조리장은 각자의 조리원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45년간 돼지국밥을 만들어 오던 김경숙은 아포칼립스 식단을 위주로 요리를 만들고 있었고.
20년 동안 호텔 조리장이었던 이호선은 온갖 사치품을 이용해 최고의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질서 부장에 의해 임명된 요리 부처의 최고 담당자였다.
둘 다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였지만, 언제나 티격태격했다.
“할머니. 거기 젓가락 좀 줘요.”
“네가 가져가 이 썩을 놈아!”
“아잇! 진짜.”
요리 부처만 바쁜 게 아니었다.
경호부, 기록부, 의전부, 그 상위의 질서부는 물론이고 만경에 소속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바쁘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로 바빴다.
덜컹-!
그때, 질서부 부장이 식당에 들어오며 서둘러 물었다.
“음식 준비 다 됐어요?”
“아, 예! 거의 다 됐습니다.”
호텔 조리장은 상관인 그녀에게 넙죽 대답했지만, 할머니는 중얼거렸다.
“뭘 다 돼?! 으이? 갑자기 준비나 시키고 말이야!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욕쟁이 할머님은 상대가 질서 부장이든 말든 욕부터 했다.
질서 부장은 눈썹을 찡그리곤 할머니를 타일렀다.
“조금만 힘내 주세요. 군주님의 결정이고, 못마땅하긴 해도 동안의 군주잖아요. 이번 회담이 잘 이뤄져야 합니다.”
“누가 우리 토끼 같은 군주님이 잘못했데? 네가 보채니까 문제지, 이년아!”
“아아, 알겠어요. 안 보챌게요. 근데 서둘러 주세요.”
“으잉-! 쯧쯧. 안 보챈다면서 바로 보채고 자빠졌구만?”
의전 준비는 착실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 * *
만경의 회담장.
긴 테이블 양 끝에 강시온과 박지수가 마주 앉았다.
최소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회담장에서 나가 있었다.
음식들이 속속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할머니는 고기를 듬뿍 얹힌 쥐 국밥을 시온 앞에 놓았다.
고기가 듬성듬성 있는 박지수의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마이 먹어. 요요 다대기 푹 넣어서 따뜻할 때 먹어.”
“감사합니다.”
“필요한 거 있음 더 말하고. 고생하네. 응?”
“예.”
할머니는 시온을 끔찍이 아꼈다.
박지수는 수저로 자신의 고깃국을 살피다,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나도 고기 좀 더 줘. 이건 뭐 한강이야?”
“닥쳐. 이년아. 으잉…… 망할 년.”
할머니는 단숨에 거절하곤, 의전장을 나갔다.
덜컹-!
“……뭐야? 미친 할멈.”
박지수는 힐끗거리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든 말든 시온은 국을 한술 떠먹었다.
잘 고아진 쥐 고기의 담백한 향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말대로 다대기를 푹 넣어 국밥을 먹었다.
깊은 고기 맛과 다대기의 양념 맛이 어우러져 좋은 맛이 났다.
뒤이어 나온 건, 호텔 조리장의 파스타였다.
“오-. 알리오올리오. 이야. 군주님께서는 꽤 실력 있는 셰프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박지수는 국밥은 저리 치워 버리곤, 바로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남은 건 모두 질서 부장에 의해 서빙되었다.
디저트까지 확실히 나온 뒤에야, 정상 간의 식사는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회담뿐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박지수가 만경에 찾아온 이유.
그건 시온조차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적어도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이 족히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지수는 3일 만에 만경에 찾아왔다.
그것도 직접.
물론 가장 완벽한 결과이긴 했다.
그녀를 회담장으로 유인하는 것이 목표였으니.
이젠 그녀의 의도를 알아야 했다.
“푸우-.”
박지수는 담배를 태웠다.
시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떤 일로 찾아오셨죠? 이렇게 갑자기.”
그 목소리에 박지수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웃는 건가.
아님, 화내는 건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무언가 속내가 있어 보였다.
“그래요. 뭐. 좋아요. 본론부터 꺼낼게요. 재밌는 일 벌여 놓으셨던데요?”
회담은 시작되었다.
* * *
“재밌는 일 벌여 놓으셨던데요? 비산도 그렇고. 3세력도 그렇고.”
박지수는 녹차를 마시며 말했다.
역시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별수 없을 것이다.
어쩔 것인가.
실질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건, 내가 아닌 3세력일 뿐이고 대외적으로 만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똑같이 돌려준 것뿐이다.
동안의 전사들도 자신들의 영토 안에서 동안의 세력이 아닌 자들을 이용해서 우리 측 노동자들을 괴롭혀 왔으니.
만약 여기서 박지수가 내 탓이라고 밀어붙이면, 나도 그녀가 풀어 둔 인간 사냥꾼에 대해서 짚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시인할 수밖에 없겠지.
그동안 자신이 나의 세력에 해 오던 공작을.
아마도 그녀는 결과가 뻔한 말싸움을 걸어오진 않을 터다.
‘그럴 리가 없지.’
난 찻잔을 들었다.
동안은 현재 전쟁 중이다.
전쟁 중에 군주가 다른 세력에 온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단순한 말싸움을 하러 여기 오진 않았을 것이다.
“리그가 시작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2라운드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안양시 내부에서 두 개의 세력이 남았을 때 끝난다고 했으니 3세력 토벌이 중요할 수도 있겠네요.”
타악-.
박지수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나이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해 봐야 20대 초반.
그럼에도 그녀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힘이 있었다.
“제가 제안할 건 하나입니다. 안양천에 있는 모든 군사적 행동을 멈춰 주십시오. 또한 3세력에서도 군대를 철수시키고요.”
“…….”
“솔직히 말씀드려서, 당장 의왕과의 전쟁을 종료하고 만안을 토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왜냐?”
“…….”
“2라운드 룰에 따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안양시에 두 개의 세력이 살아남을 수 있으니, 굳이 제가 힘을 들여 만안구를 접수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군주님께선 제게 선물도 보내셨고. 아……! 그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 경찰들의 목을 취하여, 동안구에 보냈던 일을 짚은 것이다.
그건 정말 선물이었다.
동안구의 군사적 행동을 막기 위한 정치적 선물.
그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선물 작전은 성공이었다.
박지수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으니.
그녀가 왜 유독 경찰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당장 저희 세력과 만경이 전쟁을 벌이면 두 세력 모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승리하겠지만요. 그걸 원하시진 않잖아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상호 확증 파괴 이론을 들먹였다.
뭐,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누가 승리하던 두 세력이 맞부딪힌다면, 두 세력 모두 앞으로의 라운드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전투 병력의 단위가 수십 명에 불과하는 두 세력이 부딪힌다면 상관없지만, 나와 그녀의 세력처럼 몇만 단위로 성장한 세력끼리는 서로 손해 볼 것이 많다.
결국 그 손해를 막기 위해서 사전 작업을 하는 셈이다.
“…….”
난 박지수가 계속 말하도록 유도했다.
침묵을 유지하면 상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한다.
정보가 필요한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동안구에 대한 모든 군사적 적대 행위를 멈추세요. 그러면 그 보상으로 시스템으로 맺어진 상호 세력 간의 불가침 조약을 맺어 드리겠습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만족스럽죠?”
박지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의자에 기대었다.
하지만 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맺어 준다고?
부탁이 아니라?
불편한 심기를 안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대화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동안의 전사들이 안양시를 주름잡는 핵심 세력인 줄 알고 있다.
그녀는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 착각을 단단히 고쳐 주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첫 번째, 비산 일대에서 일어난 전투는 우리 세력의 일이 아닙니다. 두 번째, 우린 현재 만안구를 접수하기 위해 3세력과 전투 중이죠. 즉, 3세력과 우린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 행위를 막고 싶다면 제가 아닌 3세력 군주를 찾아가셨어야죠.”
박지수에게 나의 작전은 정황상 그렇게 보일 뿐이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을 것이다.
내가 발뺌한다면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저렇게 인상을 찌푸릴 뿐이지, 그 외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찌푸린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린 당장 동안구와 싸울 이유가 없어요. 그랬기에 나는 라운드를 마무리하기 위해 3세력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고, 이에 따른 책임은 모두 제 세력에서 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거죠?”
물론, 그녀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척했다.
난 그녀를 노려보며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불가침 조약을 부탁해야 하는 건 오히려 그쪽이 아닌가요? 나와 싸운다고 해도 의왕과의 전면전을 급하게 끝내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나의 세력이 동안과의 전면전을 펼치는 순간, 동안은 의왕과의 전쟁을 급하게 끝내야만 했다.
그 갑과 을이 명확한 과정에서 동안은 전쟁을 급하게 종결시키기 위한 의왕에 대한 엄청난 전쟁 보상금과 더불어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될 것이다.
현재 동안은 전선이 두 개로 나뉘는 것을 철저히 방어해야만 하기에, 만안에 있던 우리 세력을 정치적으로 견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렇게 급하게 찾아왔던 것이겠지.
유리한 건 내 쪽이다.
박지수는 처음부터 약을 치고 있었고, 내가 그걸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단순히 세력의 전투력만 따지면 동안구가 앞설지 몰라도, 나 역시도 똑같이 상호 확증 파괴 이론을 들먹일 수 있었다.
“당신 세력과 우리 세력이 부딪힌다면 서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본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아요?”
상호 확증 파괴 이론은 어느 국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양측 모두에게 적용된다.
내가 이를 정확히 짚자 박지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
이제 박지수의 표정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지금껏 자신의 무력을 가지고 수많은 약소 세력들에게 을러댔는지는 몰라도, 내게는 먹히지 않는다.
이미 그녀의 생각, 행동, 방향 모두 분석했다.
난 지금 이 회담을 통해 박지수와의 위치를 완전히 동등하게, 아니 한 단계 더 우월하게 만들 것이다.
2라운드는 이미 끝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늘 난 ‘그’를 이미 대기시켜 놓았으니.
결국 만안 제3세력은 나의 식민지가 될 것이고, 이 회담 이후 어찌 되었건 모든 군사적 행위는 멈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3라운드다.
난 3라운드를 염두에 두고 판을 짜고 있었다.
난 3라운드가 무엇인지 진재희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3라운드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선 동안과의 전쟁은 미뤄야 한다.
그것이 이득이므로.
하지만 그렇다고 맨입으로 전쟁을 미뤄 주진 않을 것이다.
박지수에겐 그에 상당하는 대가를 받아 낼 것이다.
“안됐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회담장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내 쪽으로 넘어왔다.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난 말 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할 얘기 끝났습니까?”
하지만 박지수는 단지 그 말만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씨익-.
내 말을 들은 그녀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난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런 미소를 보이는지.
다음 말에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진짜 의도를.
(다음 편에서 계속)